소설리스트

〈 56화 〉56. 이이제이 (56/114)



〈 56화 〉56. 이이제이

“제기랄, 그 녀석은 뭐야?!”



갑자기 회의실에 난입한 것도 모자라 일을 마무리 지으려던 이진명을 데려간 남자.


은가람을 떠올리며  후웨이는 이를 갈았다.

“집사는 아닐 텐데……! 숨겨둔 아들이기라도 한 거냐고!”



분노한 그의 말을 타카하시 세츠나가 받았다.




“짐작가는 녀석은 있어.”


“뭐? 그게 누군데?”

“월영 아카데미의 학생이 아닐까.”



그녀의 대답에  후에이는 얼굴을 구기며 소리쳤다.


“지금 놀리는 거냐?! 그럼 일개 학생이 저렇게 세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말이 안될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은가람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허공에 띄워올렸다.

월영 아카데미에서의 일상.


에이전트가 살아있었을 때 이현진이라는 숙주를 통해 본 영상이었다.



“뭐야……? 아까 그 녀석인데…”

“그래.  녀석과 몇몇 학생들, 그리고 차현화는 얼마 전까지 이탈리아에  있었어.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시점에 에이전트가 죽었지.”



“……!”




“우연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지 않을까?”




그제서야 천 후에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서 있던 성유리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정보가 새어 나간 거 아냐?”

그에 타카하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닐거야. 제대로 된 정보는 죄다 폐기된 걸 확인했어.”


“그럼 대체……”


“우연이라고 생각하긴 힘들지만…… 일단은 조금 사리는게 좋을 거야. 어차피 그 실험도 아직은 진행중인 상황이고.”



그녀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가 이진명은 뭔가 갈등하는 듯한 분위기였어. 철혈금강이 우리 편으로 돌아선다면 적지 않은 전력이 되겠지.”


“젠밍 그 자식 성격으로는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답답할 정도로 융통성 없는 놈이잖아.”


“이진명의  상태는 좋지 않아. 제대로 실험에 대한 것을 전달한다면…… 제 아무리 올곧은 이진명도 거부할 수는 없을거야.”

그렇게 대답하며 그녀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현존하는 헌터  가장 강하면서도, 가장 올곧다고 알려져 있는 이진명.



그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도, 꽤나 흥미로울 것 같았다.


*


“아직은 조심스럽더군. 자신들의 패를 쉽사리 보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어두운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이진명은 그렇게 말했다.

“그딴 녀석들이 헌터 협회의 우두머리랍시고 앉아 있다니…… 열이  뻗치는군.”

빠득- 이를 가는 이진명.

그에 은가람이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는  수 없지만, 코사 노스트라와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요.”

“뭐라고……?”




의외의 사실에 그는 은가람을 돌아보았다.

물론, 코사 노스트라의 영향력이 큰 것은 그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과거 런던사태 당시, 자신을 조종했던 녀석이 코사 노스트라 소속이었으니까.


그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놈들이 그럴 이유가 있나? 그들의 목적은 헌터 협회의 입지를 낮추는 것일 텐데……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힐 생각이겠지.”

“그러니까요.”

“그런데 놈들이 굳이 헌터 협회를 장악할 필요가 있나?”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은가람이 대답했다.




“장악하는게 아니죠. 아예 없애버릴 계획이지.”


“뭐…?”


“헌터 협회의 규모가 아무리 크다고는 해도, 절대적인 S급 헌터의 전력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만약 조금 전의 그 세 명이 코사 노스트라와 손을 잡았다면,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걸 전부 이룰수 있을테구요.”

그런 은가람의 말에 이진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이유가 없지. 그놈들이 싸가지가 없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생각이 없는 놈들은 아냐.  명 한 명이 전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의 실력자인데, 굳이 코사 노스트라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을까?”




은가람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요. 그게 뭔지도 잘 알고 있구요.”


“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이진명.


은가람은 뜬금없이 질문을 건냈다.

“회장님은, 만약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있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글쎄,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군.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 피를 토할 정도로 노력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적수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면 질문을 바꾸죠. 만약 그런 노력들 없이도 지금처럼 강해질  있다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이진명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런 방법을, 코사 노스트라는 가지고 있거든요.”

“……”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도 S급의 헌터만큼 강해질  있는 방법.
그런 게 가능한지도 의문이었으나, 만약 사실이라면 쉽게 넘길  있는게 아니었다.




“그게 뭐지?”

“‘마인’이죠.”


“마인?”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이진명의 말에 은가람은 설명을 이었다.


“게이트와 던전 내의 마력파장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사람을 마물로 변화시키거나, 마물과 합성하는 것이죠. 개조인간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 산물이 바로 마인.”

“그런게 가능할 리가……”


“제가 며칠  증명해 냈던 이론에도, 사람들은 같은 반응을 보였죠.”


“……”

은가람이 회귀하기 이전의 시간대에서, 마인은 그리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

 시대에서 대부분의 빌런은 마인이었고, 흔하지는 않아도 헌터에게 있어서 골칫거리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지금은 ‘마인’의 존재를 인정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는 이진명을 바라보며, 은가람은 설명을 재개했다.



“기본적으로 일반인을 마인화 시킬 경우, 어지간한 B급 헌터는 상대가 되지 않아요. 물론, 사용된 재료에 따라도 차이가 나긴 하겠지만.”

“만약 S급 헌터가 마인화한다면……”

“지금으로선 막을 전력이 턱없이 부족하죠.”

만약 그 이전에 자신이 모든 제약을 풀 수 있다면 상관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을 삼키는 은가람에게, 이진명이 물었다.



“네가 허튼 소리를  녀석은 아니니 분명 사실이겠지. 그런데…… 이런 걸 어떻게 너는 알고 있지?”


묘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 그의 질문.

은가람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제 고유 권능이라고 해 두죠.”

“……그러고 보니 선택자라고 했었지.”


“제가 허튼 짓을 할 수 없었다는 건 회장님이 가장 잘 아시지 않나요?”



“……”


이진명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는 은가람에게 감시자를 붙여 둔 상태였으니까.

자신의 아들을 맡겨 둔 사람으로서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는 솔직하게 사과를 건냈다.

“미안하게 됐군.”
“이해해요. 그러니까 가만히 있었죠.”



다른 이가 이런 말을 했다면 코웃음을 쳤을지도 몰랐다.


감시자들은  명 한 명이 A급에 준하는 헌터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녀석이라면……’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 모두를 상대할 수 있다고, 그는 확신했다.



그렇게 그들이 탄 차가 밤길을 달렸다.



*


잠시 후 월영의 기숙사 앞에 도착한 이진명은, 걸음을 옮기는 은가람에게 입을 열었다.



“아마 한동안은 놈들도 사릴 거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도록 하지.”

“네. 그러죠.”

그렇게 대답한 후, 은가람은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

다음 날, 여느 때와 크게 다름없이 월영은 아침을 맞았다.


짧은 여행 끝에 우리는 다시금 수업으로 돌아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카데미 생활을 이어나갔다.


“가람아!”
“저기, 가람아…… 이 술식 말인데…”


“여기서 마력 분배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정정한다.


변하지 않은  다른 녀석들 뿐, 내 일상은 통째로 뒤바뀌어 있었다.



“젠자앙! 나도 몰라! 귀찮게 하지 말라고!!”




그렇게 소리치며, 나는 쉬는시간마다 힘을 빼야만 했다.


물론, 그런 힘 없는 외침따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점심시간인 지금, 나는 제대로 밥도 못 먹은 채 달려야만 했다.


“치사하게 그러기냐?!”
“야, 선배가 묻는데 조금 대답해 줄 수도 있잖아!”

“내 질문은 비교적 간단한 건데……”



그렇게 간단하면 스스로 풀어!
아니면 선생님한테 묻던가!

‘대체 왜 나한테 묻고 지랄들이냐고오!’



케히빈 학회에서의 여파는 엄청났다.

물론, 범세계적인 거창한 것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멀리  것도 없이,  일상에서 그 여파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용기를 내서 내게 질문을 건내 오는 사람들이 몇몇 있기는 했지만, ‘꺼져’라던지, ‘시끄러’, 혹은 ‘닥쳐’ 등의 은서현식 대처법을 사용했으니까.

그들은 저마다 다양하게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고작 그런 것에 양심에 가책을 느낄 내가 아니었으니 전혀 상관없었다.


그로 인해 짜잘하게 스텟 포인트가 돌아오기도 했거니와, 앞으로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 예상했으니까.




‘그런데 오산이었을 줄이야……’

사람의 변태성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절실하게 느낀 오전이었다.

아예 대놓고 ‘형, 욕해줘!’라고 내뱉는 남학생을 보며 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점심시간인 지금, 나는 정문 앞까지 달려올 수밖에 없었고.

“어후…… 저 미친놈들은 지치지도 않나…?”


A동에서 이까지 쫓아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나름 A클래스 학생이라 그런지 그들은 지칠 줄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신경쓰고 있을 틈이 없었다.

바로 코앞에서, 누군가 나를 불러세웠기 때문이다.


“뭐야, 마중까지 나와 준 거야? 참나…… 꼴에 잘 보이고 싶다, 이거야?”

“엉……?”

검은색의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깔끔하게 묶어올린 여성.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일까.


그녀는 묘하게 내리까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키는 나보다 크지 않았지만.


‘어라……? 어디서  듯한 기분이 드는데……’




사실 외모야 나름 준수한 편이지만, 그것보다는 저 재수없는 태도나 싸가지  말아먹은 말투가 왠지 익숙했다.

한참동안 미간을 좁힌 채로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보니? 그래, 내가  미모 하기는……”

“……저기, 누구였더라…?”

“……”




미모고 자시고, 누군지도 모르는데  헛소리야?


내 말이 황당했는지 그녀는 살풋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장난해? 나를 못알아 본다고? 아니, 모르는  연기하는 건가? 그렇게 관심을 끌고 싶어?”

“저기요, 도끼병 말기이신  같은데 여기는 병원이 아니라 아카데미인데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녀가 그렇게 앙칼지게 외치고 있을 때, 그새 나를 따라잡은 녀석들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허억…헉! 가람이…형……!”
“대체……저 체력이……어디서……”




아, 젠장할.


속으로 혀를 차며 다시 도망가려던 순간.

그 중 한 명이  앞을 막은 여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성백의 한송희…?”

“한송희라고?”
“진짜?!”




어디선가 많이 들어 봤던 이름.


나는 어렵지 않게 그녀가 한성그룹 회장의 딸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다.


뒤늦게 떠오른  사실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아아! 그 싸가지?!”


“……”

“어쩐지!  재수없는 말투가 어디서 봤다고 했어! 미안하다, 야. 내가 마주치는 사람이 많다 보니까 일일이 다 기억을 못해.”




순간 주변에 침묵이 감돈 건 내 착각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정도로, 나는 어리석지 않았다.


물을 흘렸으면 주워 담으려고 애쓸 게 아니라 걸레로 닦던가 해야지.


그리고 지금의 경우는 그녀와의 관계가 바로 흘린 물. 그 관계를 설설 기며 회복하려고 하는게 ‘주워담으려고 애쓰는 일’이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두고보자고 돌아선 사람인데. 괜히 자세 낮출 필요는 없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내게 한송희는 입을 열었다.


“건방진 녀석…! 내가 오늘 네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 주겠어!”


“음…… 그러려고 온 거야?”

“당연하지! 네가 제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성백의 수석인 내게는 안된다는 사실을 똑똑히 새겨 주겠어!”



이것 봐라.


처음부터 싸우려고 칼 갈고 온 년한테  긴다는 말인가.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는, 그 때까지 철저하게 도망다녀오던  학생에게 시선을 옮겼다.


약간 키가 작은 여학생이었다.

“아, 아까 질문이 있다고 했었지?”

“어……네? 아, 네! 그,그러니까…… 이 술식인데요……”

“아아. 심화과정이구나. 음…… 여기서는 곧바로 화염계로 트는 것 보다, 일단은 형태를 먼저 완성한 후에 끝에서 전환하는게 맞아. 그게 더 효율적이거든.”



마법사가 아니기는 했지만 이 정도 이론은 어렵지 않지.


내 설명에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아……! 그렇군요! 와아! 진짜 그러네?!”



그녀는 한 손으로 직접 술식을 구현해 보더니, 그렇게 감탄했다.




“정말 감사해요!”


“아냐, 뭘. 이 정도는 ‘실력있는 마법사’라면 아무것도 아니지!”

특정 단어를 강조하며, 나는 한송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지금 고작 그런 걸로 유세 떨겠다, 이거야?”

“어어~? 나는 그런  한 적 없는데? 자고로 우.수.한. 마.법.사. 면 직접 하는것 말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도 잘해야 하지 않나? 제대로 설명하려면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말도 있잖아?”

 말에 그녀는 표독스런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고, 모여 있던 학생들은 그녀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속으로 갈등을 하고 있을 그들에게, 나는 확실한 불씨를 얹어 주었다.



“아무리 다른 아카데미라고는 해도…… 성백의 수석이면 제대로 질문에 답변해 주지 않을까? 아니, 실력이 없다면 모르지만……”


“할 수 있거든! 어디 가져와 봐! 초등학교 1학년도 이해할  있게 다 설명해 줄 테니까!”

 말의 여파는 조금씩 커져 갔다.



“어……그, 그럼 혹시 이 문제는…”

“그 다음에 저도 질문드려도 될까요?”

“술식이라기 보다 공부법이나 수련법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


이것이 바로 이이제이!

점차 그녀에게로 옮겨 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바라보며, 나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그리고 조금씩, 그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그 후일담을 접할 수 있었다.



[한송희_를 속였습니다.]
[한송희_가 당신에게 배신감을 느낍니다]


[스테이터스 증가]



‘아이고, 달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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