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53. 패닉
한껏 목소리를 내려깐 갓프리드였지만, 낑깡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허허! 이 사람은 또 왜 이러나?”
“냅 둬. 저 녀석이 저런 게 한두 번이냐?”
“????”
조금 전 까지의 무거웠던 분위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머금는 차현화와, 그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낑깡.
사람들은 단체로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뭐, 대련장 조금 망가졌다고 저 난리를 피우잖아? 너도 한 마디 해 줘라, 좀.”
“대련장이야 만날 쳐 부숴지는 것 아니었나?”
“내 말이! 그놈의 ‘법적 대응’ 레파토리 좀 바꾸라니까 사람이 바뀌질 않아?”
“에잉~ 쯧쯧쯧.”
“……수리비. 보내라.”
“하, 진짜 쪼잔한 녀석.”
입을 삐쭉- 내밀고 말하는 현화에게, 한아름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어…… 선생님…? 괘,괜찮은 건가요……?”
그에 현화는 걱정할 것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아, 신경쓰지 마. 이래봬도 친하니까.”
“……네?”
그러면 방금 전까지 심각하게 싸운 건 대체 뭔데?
당사자 세 명을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
시뻘건불꽃이 가득한 대장간.
바로 앞에서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낑깡이 가진 스킬 덕에 실내는 놀라울 정도로 쾌적했다.
그는 한쪽 구석에서 손바닥만하게 접힌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의아하게 바라보는 우리 발 앞으로, 그것을 내던졌다.
그러자……
키리릭-
키릭……
찰칵!
바닥에 떨어진 그것은 스스로 펼쳐지며 모양을 잡아 가더니, 다섯명이 족히 앉을 수 있는 의자로 변했다.
“오오……!”
“신기한걸?!”
“와아…… 마력도 전혀 안 느껴졌는데? 이런게 가능하군요!”
감탄을금치 못하는 우리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낑깡은 나를 가리키며 걸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 녀석이 그 소문의 꼬맹이야? 천재 중에천재라고하던?”
“그래. 본인은 절대로 아니라고 하지만.”
“뭐? 하하핫! 전 세계가 아는 사실을 본인만 부정하고 있구만?”
어제 있었던 발표회.
그곳에서 내가 증명했던 이론은 하루아침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아니, 하루 아침이 뭐야? 30분 만에 인터넷 기사가뜨기 시작하더만.’
이제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각종 인터넷 기사는 물론이고, 너튜브의 마법 채널이라든지, 학교 교과서에까지도 이미 영향력이 닿아 있었으니까.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조져도 단단히 조진 듯한 느낌이 드는데……’
그로 인해 수익이 생기거나, 인정을 받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질 수록 대놓고 트롤링을 하는 것은 힘들어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거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신상이 털리기야 하겠냐만은, 그리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크건 작건 결국에는 트롤링을 해야 제약을 풀 수 있는 상황……
성장하는 거야상관없다고 치더라도, 제약을풀려면……
‘잠깐만.’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뭔가 묘수를 떠올렸다.
‘오히려…… 앗싸리 유명세를 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발론의 교장이었던 알렉시스의 말을 돌이켜 보면, 결국 가장 가까운 목표는 헌터 협회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결국에 팔릴 얼굴이라면, 끝까지 유명해지는 것도 꽤나 나쁘지 않을 듯 한데.
‘관건은 현혹 스킬과 속임수 스킬을 얼마나 잘 활용하냐겠네.’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실마리에 나는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오늘 찾아온 용건이 뭐야? 여기 와도 바빠서 얼굴은 못 볼거라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낑깡의 말에 현화 쌤이 대답했다.
“아,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이 녀석이 하도 졸라대서 말이지.”
“저기요, 차현화씨. 말은 똑바로 하시죠…?”
“……”
스스로도잘못하셨다는 건 아시는가보네요?
시선을피하시는걸 보니까.
두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현화를 바라보는 내게,낑깡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 천하의 차현화한테 이렇게 대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래서? 느닷없이 쌈박질은 왜 한 건데?”
그에 가만히 앉아있던 한주희가 대뜸 소리질렀다.
“아아악!”
“……?”
“젠장, 원래 내 상대였는데! 비겁하게 뺏어가기냐?! 나중에 꼭 갚아라?!”
그걸 이제서야 생각해 내다니.
그래도 머리가 비어있는 사람으로는 봤는데 진짜 머리에 든 게 없네.
하하, 새삼스럽게말이야.
‘그리고 갚으라는 건 또 뭐야. 뭐, 싸울 사람 찾아달라는 거냐?’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이해하려고 든 내가 잘못이지.
“아무튼, 여러가지 사정이 있기는 한데…… 친구로서 좀 부탁할 게 있어서 그래.”
“응?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화 네가 그렇다면 못해 줄것도 없지. 터무니없는 것만 아니면 말야.”
그의 말에 현화쌤은 당당하게 요구사항을 전했다.
“장비몇 개만 만들어 주라. 한 5~6개 정도면 될 것 같은데.”
“……”
그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낑깡이 말했다.
“아이고, 요즘 환청이 들리나~? 다시 한 번 말해 줄래? ‘터무니없는 것만 아니면’ 들어줄 수 있어.”
“장비 몇 개만 만들어 주라. 5~6개 정도.”
“그것 참 터무니없는 부탁인데.”
현실도피를 실패한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에이, 터무니없다니? 누가 봐도 친구라면 흔쾌히 들어 줄 부탁인데.”
“뭐, 종말이라도 이르렀냐?! 맨입으로 그러라는 건 너무 도둑놈 심보잖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낑깡과, 그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들.
그러나 현화는 물러서지 않았다.
잔뜩 상처받았다는 표정과 함께 그녀는 따지고 들었다.
“그러기냐? 친구끼리?”
그리고 그 순간, 은서현과 이현진, 한주희와 한아름이 일제히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을 나는 목격했다.
독심술 스킬을 익힌 것도 아닌데, 그들의 머리 위에 ‘친구……?’ 라는 말풍선이 보이는 듯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진실은 언제나 충격적인 법이다.
누가 봐도 50대 중년 아저씨로 보이는 낑깡의 나이가, 현화 쌤과 같은 31살이라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테니까.
혼란과 충격에 빠진 네 명과,그에 전혀 아랑곳않고 설전을 펴 나가는 둘.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나는 입을 열었다.
“일단 재료부터 보시면 안될까요?”
“뭐? 흐흠…… 대체 얼마나 까다로운 재료길래 굳이 나한테까지 이런 부탁을 하겠나 싶기는 한데……”
가늘어지는 그의 두 눈.
그러나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재료를 보여주는 것 만으로, 이 거래가 성사되리라는 것을.
현화쌤과 아는 사이라는 건 몰랐지만,내가 회귀하기 전 낑깡은내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내가 타워공략에 사용하던 대부분의 장비는 그의 손을 거쳤으니까.
심지어 나중에는 타워 안에서 그와 만나 한동안 동행했던 적도 있었다.
……잠시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꽤나 오랜 기간 함께 했었기에 나는 그의 성격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약간 괴팍한 면이 있다는 것도……그리고, 희귀한 재료를 가공하거나 스스로의 기술력을 연마하는데 변태적일 정도로 집착한다는 것도.
“여러개가 있기는 한데, 일단은 이것 먼저 보여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현진에게 손짓했다.
“네? 아… 잠시만요.”
그는 자신의 상태창을 켜 그 인벤토리 속에서 삼각수의 뿔을 꺼내들었다.
얼마 전 호주에서 귀국한 후, 내가 녀석에게 선물한 것들이었다.
내가 그것을 낑깡에게 건내자, 그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을 더듬었다.
“뭐…? 뭐,뭐야, 이게?! 서,설마 각수의 뿔이냐? 설마 이각수……?”
“아뇨.”
“일각수의 뿔이 이런 빛을 띤다고?”
그의 말에 나는 재차 고개를 저었다.
“아뇨. 삼각수의 뿔인데요.”
“오오…!”
그는 자신의 한쪽 손에서 큼직한 안경을 꺼내들어 순식간에 눈에 장착했다.
그리고는 내가 건낸 삼각수의 뿔을 눈 앞으로 가져갔다.
안경에 닿을 정도의 거리로.
‘저러다 눈 튀어나오겠네.’
있는대로 크게 떠진 그의 두 눈이안경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예전에야 몇 번 봤던 광경이지만……
오랜만에 보니 또 감회가 새로웠다.
‘내 재료를 보면 아주 환장하겠지.’
나름 기대가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내 걸 보여주지 않은 것도 있었고.
한참 동안 삼각수의 뿔을 코앞에서 관찰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좋다!”
“정말?”
“하지만!”
“……?”
“만들어 주는 건 하나밖에 못 해줘. 전부 삼각수의 뿔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야.”
단호한그의 말에 현화 쌤이 불만을 토했다.
“아 쪼잔하게!”
“쪼잔?! 야, 넌 내 인건비가 얼만지 알지 않냐?! 무상으로 해 주는것만 해도 어? 사람들이 말야, 어? 얼마나 뭐라하는……”
억울하다는 식으로 속사포를 쏘아대던 그를 향해,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 전부 같은 재료는 아니구요…… 제 거는 조금 달라요.”
“응……? 다르다고 해도, 그래 봐야…”
설마 하는 표정을 짓는 그.
나는 인벤토리에서 네 개 남은 오각수의 뿔 중 하나를 꺼내들었다.
“제 장비는 이걸로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데요?”
그는 멈췄다.
마치 마력이 떨어진 장난감이 멈춰서는 것 마냥,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그런 그를 가만히 마주 바라봤다.
“어……그,어……음…”
“문제 있나요?”
누가 봐도 확연히 다른 빛을 발하는 재료.
그리고 재료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양의 마력.
아마 그는 짐작했을 것이다.
한참 동안이나 버벅대던 그는, 썼던 안경을 벗고 두 눈을 비볐다.
“잠깐만……잠깐,잠깐만? 허허, 나이를 먹으니 헛게 보이는데?”
“뭐가 보이시는데요?”
“내 눈에는 네 손에 오각수의 뿔이 들려 있는 걸로 보여서 말이다. 하하, 물론 말도 안 되는……”
“맞아요.”
“……”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쩍 벌리는 그에게, 나는 쐐기를 박았다.
“맞아요, 오각수의 뿔.”
떨리는 손을 뻗는 낑깡.
그가오각수의 뿔을 쥐려는 순간, 나는 그것을 인벤토리로 되돌렸다.
“아아, 그런데 하나뿐이라고 하셨죠? 이거 정말 아쉽게 됐네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자,자,자,잠까아아안!”
다급하게 내 말을 끊고 들어오는 낑깡의 목소리.
그에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거래 성사라고.
*
“오늘은 아주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무려 헌터 협회소속의 S급 헌터! 모든 헌터들의 우상이라고 할 수도 있는 분이죠?”
“맞습니다!특히나 백골단 졸업생이라면 인생에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으신 분이죠!”
“지금바로 만나보실까요? 『검성』 - 강기호 헌터십니다!”
“와아아아!”
관객석의 환호 속에 한 남성이 강단으로 올라섰다.
약간은 여리여리해 보이는 얼굴.
그러나 다부진 체격을 가진 그였다.
옅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인 그는 인터뷰를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진행자가 먼저 인사를 건냈다.
“반갑습니다! 이야~ 강기호 헌터를 여기서 뵙게 되네요?”
“오히려 제가 영광이죠.”
“네? 에이, 그럴 리가요~!”
능청스럽게 받아치는 진행자의 말에 강기호는 웃으며 농을 건냈다.
“제가 어렸을 때 꿈이 TV에 나오는 거였거든요. 설마 이렇게 큰 방송에까지 나오게 될 줄은 몰랐죠.”
“역시 듣던 대로 겸손하시네요. 헌터 협회소속이라고 하면 다들 우락부락한 이미지를 연상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되게 잘생기셨네요?”
“네, 그건 저도 압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장난스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하하! 과묵하시다고 알려져 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군요? 유머 감각도 아주 뛰어나세요.”
“아아, 네.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방송 같이 하시게 됐는데, 정말 감사드리구요……”
간단한 장난과 함께 방송이 진행되었다.
꽤나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프로그램.
유명 배우가 출연하기도 하고, 가수나 아이돌, 혹은 운동선수도 예외는 아니었으나 이제껏 S급 헌터의 출연은 전례가 없었기에, 시청률은 빠르게 치솟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되는 듯한 방송.
그러나 모두가 웃고 있는 중에도, 정작 당사자인 강기호 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겉으로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의 두 눈동자는 쉴새 없이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슬슬 방송의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는데요, 강기호 헌터? 한 가지 질문 드려도 될까요?”
“네……? 네. 물론입니다.”
“보통 S급헌터들은 방송 출연을 되게 꺼리시는 경향이 있던데…… 혹시 스스로 출연의사를 밝힌 이유가 있나요?”
“……”
그에 강기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건…… 일단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방송이기도 하고…”
“에이, 오늘은 강기호 헌터의 덕이 컸죠!”
“……그리고, 꼭 전하고픈 말이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그에 진행자의 표정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네? 전하고 싶은 말이라…… 누구인가요~? 혹시 마음 속의 그녀인가요~!?”
“……모든 사람들입니다.”
처음으로 진행자가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길었던 방송경력으로 애써 표정을 갈무리한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다시 물었다.
“아하~! 역시 스케일이 다르시군요! 네! 마음껏 하셔도 됩니다! 브금 깔아드릴까요?”
“그건 괜찮습니다.”
무거운 목소리로, 그는 말을 내뱉었다.
“저는 곧, 타워를 오를 계획입니다.”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린 한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