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51. 놀아줘?
“너무 부담 갖지는 말래이. 꼭 입학을 해야 하는건 아닝께.”
기운이 없는 헌권을 향해, 한진우는 그렇게 말했다.
헌터가 되기 위해서 무조건 아카데미에 입학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의 희망으로 헌터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의 헌권처럼 본인의 의사과 관계없이 각성해 버린 사람도 있었으니까.
“그려도 추후에 등록을 허긴 혀야 하제. 아예 헌터가 하기 싫으믄안혀도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말여.”
“헌터가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에요.”
“응……? 그럼 뭐가 문제당가?”
한진우의 질문에 헌권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해는 지평선 아래로 숨어 하늘은 검게 물든 상태였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가람이는 해 보라고 하기는 했는데,그래도 제가 그만한 자질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있는 재능을 썩히는 것도 아깝기는 하지만……”
“……”
한진우는 말 없이 헌권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치 자신의 옛날 시절을 보는 느낌이었다.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해야하는지조차알지 못하고 방황하기만 할 뿐.
학생 때야 강요라도 받아서 공부라도 했지만,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덩그러니 혼자만 내던져진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도 두려운 상태.
한진우 역시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가람이랑 많이 친하다고 혔지?”
“……네.”
나지막하게 묻는 한진우.
그에 헌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 오래 본 건 아니지만……가람이 그노마는 정상이 아녀. 상식 밖의 놈이제.”
“처음 헌터를 한다고 했을 때도 분명 S급이 될 거라고 확신했었죠.”
예전의 일을 떠올리며 헌권은 옅게 미소지었다.
“그려. 그 자슥은 은제가 됐든 S급을 달고도 남것제.”
“……”
“그런디, 내가 여태 본 바로 그놈은 장난기가 있어도 헛소리 할 자슥은 아녀.”
“네……?”
진지하게 건내는 한진우의 말에 헌권은 그를돌아보았다.
“아니면 아니라고 딱! 말하는 성격이고, 맞으면 누가 때려 직이도 그 길을 걷는 놈이란 말여. 그런 놈이 재능이 있으니 헌터가 되라고 말혔으면…… 나가 보기에는 모가 되든 도가 되든 해 보는게맞을 것 같구만.”
“……”
그에 헌권은 복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떨궜다.
잠시 망설이던 한진우가 말을 이었다.
“……그라고, 나가 보기에도 형씨는 헌터가 돼야 되긋구만.”
“네……?”
“불안하고 무력하다고 했잖여? 그럼 강해지면 되는 겨! 헌터가 되면 그런 문제야 자동으로 해결될 것이고…… 혹시 모르는가? 헌터가 체질에 맞을지. 나만 혀도, 헌터 아카데미에서 교사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제.”
“그러면…… 역시 아카데미에 가는게 좋을까요?”
“뭐, 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말여. 혼자 하는 것 보다야 아카데미가 훨씬 편하긴 하제. 동기부여도 되고 말여. 헌디, 입학시즌은 한참 남았으니께……”
말을 끌던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헌권의 눈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 때 까정 나한테 개인과외라도 받아볼랑가?”
제자──
아카데미의 다른 교사나 학생들이 들었다면 해가 서쪽에서 떴냐고 할 만한 발언이었다.
정작 아카데미에서 담임을 맡고 있는 자신의 반 조차도 제대로 가르치기 싫어하는 그였으니까.
아니, 가르친다는 것 보다, 학생들을 헌터로 만드는 것 자체를 꺼려하던 그였다.
‘그래도 무투에 자질이 꽤나 보이니께…… 그라고 은가람 금마가 인정한 사람이믄 또 모른단 말이지.’
최근 그와 여러가지로 얽히며 마음이 약해진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고민에 잠기는 헌권을 바라보며, 한진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진짜로 마지막으로, 한 번제대로 가르쳐 보자고.
*
“여자와 대결할 마음따위 없다.”
단호한 어조로 그는 그렇게 내뱉었다.
그에 한주희는 건들거리며 받아쳤다.
“질 것 같아서 쫀 건 아니고?”
“그 따위 도발에 넘어갈 것이라 생각하는 거냐? 이 곳은 너희같은 싸움꾼들이 함부로 소란을 피울 공간이 아니다.”
미간을 좁히며 그렇게 말하는 그.
골든 헬리오스는 다른 아카데미와는 조금 다른 차별점을 가지고 있었다.
강함을 추구하지만, 그러면서도명예를 저버리지 않는 마음가짐 역시도 중요시여겼다.
기사단의 성격을 가진 기관.
아발론과 마찬가지로 ‘아카데미’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 것 역시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 역시도 많았다.
“기사도니 뭐니 하는 건 대체 언제적 마인드냐? 뭐, 혼자 18세기 사니?”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골든 헬리오스의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소리였다.
황당하다는 듯 말을 건낸 것은 차현화였다.
“헬리오스에도 여학생은 많잖아?”
대련장의 한 쪽을 가리키는 현화.
그 손 끝에는 두 여학생의 대련이 펼쳐지고 있었다.
“……”
그에 할 말을 잃은 남자.
그런 그에게, 현화는 한 마디를 더 쏘아붙였다.
“그리고, 장담하는데넌 이 녀석 못 이길걸?”
“웃기지 마라!”
“해 보시든가?”
“……쯧…!”
미간을 좁힌 채로 혀를 차는 남자.
현화도 헬리오스의 기사도적인 성격을 모르는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그런 걸로 거들먹거리며 마법사들을 무시하는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하여간 우리나라의 백골 놈들이나 이놈들이나, 다를게 없다니까?’
마법사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둘은 아주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여자에게는 검을 들지 않는다. 그리고, 너희들처럼 명예를 모르는 사람들을 대련장에 들일 마음도 없고.”
그런 그의 말에 답한 것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은가람이었다.
“어라? 내가 알기로 대련장의 출입은 문제없는걸로 아는데……? 대련하는 거야 헬리오스 기사들을 상대하는 것한정이지만.”
남자는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은가람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 쯤은, 그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좁힌 채로 불청객들을 차근차근 뜯어보았다.
‘차현화야 대마도사니 뭐니 말이 많지만 결국 육체적인 능력이야 보잘것 없고……’
그 이전에 차현화와 한아름, 그리고한주희 같은 여성과는 싸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남은 이들은 총 셋.
은가람과 은서현, 그리고 이현진.
‘환자와 꼬맹이를 제외하면 결국 한 명 뿐이군.’
그의 시선이 은가람에게 고정되었다.
마침 조금 전 대화에서 초를 친 것도 은가람이었기에 그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여자는 사양이지만, 네놈이 덤빈다면 한 수 가르쳐 주도록 하지.”
“……엉?”
순간, 일행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은가람과 남자를 바라보았다.
묘한 침묵이 그들 사이에 흘렀다.
‘뭐지……?’
그에 그가 의아해 하고 있는데, 은가람이 웃음을 머금으며 앞으로 나섰다.
“뭐, 좋지. 어디 한 수 가르쳐 주신다면야.”
마침 기분도 꿀꿀했겠다, 기분전환도 할 겸 그는 몸을 풀었다.
찝찝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는 남자와, 그를 뒤따르는 은가람.
그들을 바라보며 한아름은 입을 열었다.
“저…… 선생님, 괜찮은 걸까요?”
“글쎄다. 나도 불안한데……”
“혹시라도 불구가 된다거나 하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나누는 둘의 대화.
그를 듣고 있던 현진이 입을 열었다.
서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에이~ 뭘들 그리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건 그래! 저 놈이 싸가지가 없는 건 맞지만, 어딜 가서 맞고 다닐 녀석은 아니라고.”
그리고그런 둘을, 현화와 한아름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얘들이 뭘 잘못 먹었니……? 이상한 소리를 하네.”
“……네?”
서현과 현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가람이야 당연히 잘 하겠지.”
“문제는 저 대책 없는 돌대가리가 뭔 짓을 벌일지 모른다는 거지. 제발 적당히 해라……”
“……”
그들은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가람이 아니라…… 그 상대를.
*
‘오오, 역시 시설은 아주 좋구만?’
속으로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나는 골든 헬리오스의 대련장 안으로 들어섰다.
말 없이 자신의 검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확인하는 금발의 남성을 향해 나는 물었다.
“마법 써도 되냐?”
물론, 예상했지만 택도 없었다.
“미친 건가? 여기는 신성한 대련장이다. 그런 상스러운 술수를 허락할 것이라 생각하나?”
“신성하긴 개뿔. 아주 그냥 대놓고 마법사는 무섭다고 하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한 쪽에 비치되어 있던 단도를 집어들었다.
“그러면 ‘스킬’은?”
“스킬이 마법사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럼그런 거지 짜증은……”
입을 삐쭉 내밀며 나는 양 손에 쥔 단도로 시선을 떨궜다.
‘두 개…… 까지는 필요 없겠지?’
보통 양 손에 쥐고 전투하는 것이 익숙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한 손으로도 충분했다.
집어 든 단도에는 여타의 다른 장검에 비해 수북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를 털어내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우, 이 먼지 봐. 제대로 관리도 안 돼 있구만?”
“단도라… 역시 무기를 고르는 것도 명예롭지 못하군.”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더 위로 못 올라가는 걸 본인들만 모르지.”
물론, 골든 헬리오스라고 하면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아카데미이기는 하지만.
아니, 아카데미라기보다는 헌터 기사 양성소 정도가 더 맞을려나?
실제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능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근접전에 한해서는 아발론 학생들보다도 더 뛰어날 정도로.
적당히 먼지를 닦아 낸 후, 나는 단도를 잠시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그래도 무기 자체는 되게 잘 만들었네.’
그렇게 감탄하며 나는 대련장 안으로 걸어가 남자의 맞은편에 섰다.
곧바로 대련이 시작될 줄 알았으나, 그는 대뜸 내게 질문을 던졌다.
“이름은?”
“……? 은가람.”
“……”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짤막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세바스찬 폰벨프. 골든 헬리오스의 중급 기사다.”
“……”
자기 소개가 하고 싶었구만.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 바라보자 그는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조금 전, 어째서 한 번에 두 개의 단도를 쥐었었지?”
“평소에는 두 개를 사용하거든.”
“그런데 어째서 하나만 들고 온 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는 그의 말에,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서.”
“……건방진 녀석…!”
그가 빠득- 하고 이를 갈며 자신의 검을 빼들었다.
대놓고 무시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헬리오스에서 중급 기사면 꽤나 실력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월영으로 치자면 A급 3학년 1반 정도일까.’
무난하게 1년을 보내면 학년이 올라가는 일반적인 아카데미와 달리, 헬리오스는 실력을 입증해서 등급을 올리지 못하면 졸업할 수가 없었다.
골든 헬리오스 출신 기사들이 강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고.
‘물론, 그래봐야 학생이지.’
나름 제약도 좀 풀렸겠다, 고작 이런 녀석한테 고전할 내가 아니었다.
여유롭게 미소짓고 있는 나를 향해, 그는 씹어발기듯이 말을 내뱉었다.
“핸디캡은 집어치워라. 특별히 네놈만큼은 마법을 허용해 주지.”
“어? 안 그래도 되는데? 어차피 내가 이기거든.”
“그깟 잡기술, 제 아무리날뛰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시켜 주마!”
그렇게 말하는그의 기도가 바뀌었다.
그의 몸 자체가 하나의 검처럼 보일 정도.
확실히,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일개 학생이 이런 기도를 뿜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일반적이지 않았으니까.
그의 말에 나는 입매를 말아 올렸다.
“그래 뭐…… 한 번 놀아 줄게. 만약 위험할 것 같으면 마법도 써볼까, 생각해 보고.”
“……큿…!”
“그럼, 드루와.”
*
카가강!
콰각!
“큿……!”
은가람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가빠져 오는 숨.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세바스찬은 강했다.
그는 혀를 차며 다시금 다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쯧……! 역시 두 개를가져올 걸 그랬나?’
현재 그가 발휘할 수 있는 본 능력은 약 30%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를 감안한다고 해도, 세바스찬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속도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단도와 장검.
그러나 세바스찬은 은가람의 속도를 잘 따라오고 있었다.
“슈르드 블레이드_Shrewd Blade!!”
일순간 십수개로 불어난 세바스찬의 검.
모든 방위를 점하고 날아드는 예리한 공격에 은가람은 속임수 스킬을 사용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그의 신형.
다음 순간 세바스찬의 바로 뒤에서 나타난 그는세바스찬의 목을 노리고 단도를 휘둘렀다.
까앙!
“큿……!”
그러나 세바스찬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부터 그럴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듯, 그는 빠르게 검을 회수해 은가람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재차 찔러가는 그의검.
아주 짧은 순간에 십수번의 공방이 서로 오가고, 사방에서 흙먼지가 날렸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대결.
세바스찬은 속으로 내심 감탄을 내뱉었다.
‘이 녀석, 보통이 아니다……!’
조금만 방심하더라도 자신이 질 것이 뻔했다.
점점 고조되어 가는 전투 속에서, 그는처음부터 은가람이 핸디캡을 가지고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빈틈!’
일순간 드러난 은가람의 빈틈.
아주 작은 헛점에 불과했지만, 세바스찬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이걸로 끝이다!”
그러나 그는, 은가람의 입가에 서린 미소를 발견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