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50. 불확실한 미래
“그…그걸 어떻게……?”
이제까지회귀에 대한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알린 적 없었다.
아니, 설령 말했다고 한들 그 사실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리 선택자라고 하더라도 미래에서 과거로 올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러나 알렉시스는 확신을 담아서 말했다.
“내 권능은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믿기 힘든 일이라도 그렇게 보인다면…… 그런 거겠지.”
은가람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알렉시스에게 말했다.
“저는…… S급의 헌터였습니다. 타워를 오르고 있던 중이었죠.”
은가람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알렉시스.
“타워를 등반하던 헌터라…… 그렇다면 회귀했더라고 해도 모를 수 있겠군.”
타워에서의 시간은 외부와 다르게 흘렀다.
그나마 아래쪽이라면 비슷한 시간대로 흘러가지만, 층수가 높아질 수록 그 차이가 커지는 것이다.
은가람의 실력 정도면 아래층에서 머물 정도가 아님을, 알렉시스는 잘 알고 있었다.
“타워는 몇 층까지 공략했었나?”
은가람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애초부터 혜안을 가진 상대에게 사실을 숨긴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지만, 말해준다고 해도 그라면 자신을 배반하지 않을 것 같았다.
“99층입니다.”
알렉시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보통 헌터…… 아니, 보통의 S급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설마 99층까지 공략한 사람을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그러나 그는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그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는 싶네만…… 지금은 그럴때가 아니겠지.”
그는 그제서야 넣어 뒀던 본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알고 있겠지만 헌터 협회에는 총 여섯 명의 S급 헌터가 존재하네.”
은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타워를 공략하던 사람이라고 해도, 그 정도는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최근 만났던 이진명 회장 역시도 그 중 하나였으니까.
“그 중 2명은 타워로 향하고, 한 명은 죽었네.”
“뭐라구요……?”
기정 사실인 것 마냥 이야기하는 알렉시스.
은가람은 얼굴을 굳혔다.
헌터 협회, 그 중에서도 지휘부라고도 할 수 있는 S급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타워의 공략을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타워를 공략하지 않는 S급.
그런 점 때문에 나태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지켰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두 명이나 타워로 갔다고…?’
쉽게 믿기지 않는 사실.
더군다나 S급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다.
그 정도의 일이 있었다면 이슈화가 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런 그의 생각을읽은 알렉시스가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네만…… 사실 아직 일어난 일은 아닐세.”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3년 후에 벌어질 일이지.그런 미래를 ‘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거고.”
혜안의 권능.
본질을 꿰뚫어 보거나 상대의 생각을 짐작하는 것은 물론이요, 가까운 미래를 읽을 수도 있는 권능이었다.
“문제는 남은 세 명이지. 그 세 명은…… 마인이 되니까.”
“……!!”
은가람의 얼굴이 굳었다.
마인──
던전에서 흘러나오는 마력파장을 이용해 사람의 몸을 개조해서 만들어지는 게 그 마인이었다.
그 한 명을 상대하는데도 S급 헌터가 둘 이상은 달려들어야만 했다.
고작해야 헌터처럼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범죄자, 빌런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젠장……! 역시 발표회에 가는 것이 아니었나?’
마인을 위한 기술은 기본적으로 은가람이 마법학회에서 밝힌 이론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인공적인 던전이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테고, 마찬가지로 마인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없었던 것이다.
미간을 좁히는 은가람을 향해 알렉시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 탓이 아니네.”
“예……?”
“자네가 그 사실을 밝혀내기 이전부터 그 미래는 존재해 왔으니까.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야. 이론이 지금 밝혀지든, 혹은 몇 년 후에 밝혀지든 그건 상관이 없다는 말일세.”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은가람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누가 죽는 건지도 알 수 있나요? 마인이 되는 사람이라던지……”
회귀 이전, 타워를 오르고 있었기에 알지 못했던 미래.
미리 알 수 있다면 대처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알렉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보기는 했지만 말해줄 수는 없네. 이 이상 말해버리면…… 내가 봐야 할 미래가 너무 많아지거든.”
“그렇군요……”
흔히 나비효과라고 하던가.
사소한 행동 하나가 미래에 어떻게 돌아올 지 알 수 없었기에 그 이상 말해줄 수 없는 알렉시스였다.
그를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은가람.
알렉시스는 그의 두 눈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자네라면 그 미래를 바꿀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네. 그러니까…… 잘 선택해 주길 바라네.”
*
필요하다면 내가 만나러 가겠네─
의미심장한 알렉시스의 말을 뒤로 하고, 은가람은 응접실을 나섰다.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행원의 도움을 받아 숙소로 안내된 은가람.
그 안에서는 은가람과 이현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현화와 한아름, 그리고 한주희는 옆 방에 있었고.
“아, 싫다고!”
“뭐 어때서 그래?! 네가저쪽 침대 쓰면 되잖아?”
“닥쳐!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해?”
“진짜 말 안 듣는 꼬맹이일세?”
“뭐야?! 이…이……! 팔 병신이!”
“팔 병신?! 이…… 따,땅꼬마가!”
“땅꼬…!! 이런 썅!”
아주 그냥 신이 났구만.
그런 생각을 하며 은가람은 은서현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야, 말투좀 고쳐라, 말투좀.”
“썅……! 왜 맨날 나한테만……”
“그리고 이현진, 너도 애한테 좀 양보해 줄 순 없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녀석이 뭐 하는 거야?”
“……”
은가람은 두 명이 쟁취하기 위해 열을 올리던 침대로 가 몸을 눕혔다.
“어어……?”
“야! 뭐 하는……”
“둘이 싸우니까, 이 침대는 내가 쓴다. 불만있냐?”
“……”
이것이야말로 독재가 아닌가 싶었지만, 그들 역시도 찔리는 게 있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마지못해 다른 침대를 찾아가는 둘을 바라보며, 은가람은 천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역시 코사 노스트라인가……?’
심증만을 따지자면, 코사 노스트라가 가장 유력할 것이다.
이미 인공적인 게이트를 만들어 낸 전적이 있었고, 심지어 던전브레이크의 방법마저도 알고 있었으니까.
마인을 키워내는 기술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직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었다.
그들의 연결고리를 찾아내지 못한 지금, 섣불리 단정지었다가는 양쪽 모두에게 공격을 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일단은 지금은 할 수 있는게 없어. 아직 3년 정도가 남아 있으니…… 지금은 지켜보는게 맞겠네.’
확실한 건, 그 안에 어느 한쪽이든 압도할 만한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안은 채로, 그는 잠에 빠져들었다.
*
“고…골든 헬리오스요?!”
현화의 말에 한아름의 두 눈이, 또 한 번 크게 떠졌다.
‘저러다 눈 튀어나오겠네.’
영국으로 넘어 온 이후로 대체 저게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뭐…… 그만큼 여러가지 일이 있기는 했지만.
의외였던 점은, 이번에는 다른 녀석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골든 헬리오스……! 살면서 거기도 가 보는군요!”
“확실히 놈들이 강한 편이긴 하지.”
“오오, 재미있겠는데? 싸우러 가는 거야?”
“언니…… 견학이라고 하셨잖아, 싸움이 아니라.”
웬일로 들뜬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현화 쌤에게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그 쪽으로 가게 된 이유라도있어요?”
“뭐어…… 딱히 이유라고 하기는 애매한데. 일단 이왕 왔으니 다른 아카데미도 견학시켜 주면 좋지 않을까 싶었지. 이래봬도, 나 교사잖아?”
“……?”
“네……?”
그녀의 말에 우리는 일제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내가먼저 입을 열었다.
“……맞다, 선생님이었죠?”
“맞을래?”
수업도 없고, 그렇다고 시험의 심사관으로 오거나 하는 일도 전혀 없었기에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현화 ‘쌤’이셨지, 참.
만장일치로 같은 생각을 하는 우리들을 보며 분노를 터뜨리던 그녀는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후우…… 그것도 있지만, 지난 번에 한 약속 지키려는 거야.”
“네? 무슨 약속이요?”
내가 어떤 약속을 했었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던 나는 이내 내가 제시했던 조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혹시…… 대장장이?”
“아, 말하지 말 걸.”
오각수의 뿔을 내어주는 조건으로, 나는 한 사람의 소개를 부탁했었다.
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기술자이자 대장장이.
물론 현화쌤도 ‘기술자’라는 면에서는 전 세계적으로알아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장장이와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는게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현화 쌤한테 무기 제조를 맡기지 않았던 것이고.
“마침 그 사람이 지금 골든 헬리오스에 머물고 있다고 하니까, 겸사겸사지.”
“그 사람이 누군데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아름이 질문을 건냈다.
“낑깡이라고, 대장장이 한 명 있어.”
“낑……깡이요?”
묘한 표정을 짓는 한아름.
그녀를 향해 차현화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이름 이상하지? 별명인거 같은데,이름은 죽어도 안 가르쳐 주더라.”
“그…믿어도 되는 사람일까요?”
“그건 그렇겠지. 이래봬도 실력은 전 세계에서 원탑이니까. 너네, 이거 나 아니면 못 만나는 거다? 잘 알아둬?”
“이런 걸로 생색 내시는 겁니까?”
“그래, 이 능구렁이 같은 자식아. 이렇게라도 생색을 내야 스승 높은 줄들 알지.”
그녀의 대답에 나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받은 재료들 잘 준비해 놓고 있어. 이번 기회가 아니면삼각수의 뿔을 가공하는 사람 찾는 건 쉽지 않으니까.”
현화의 그런 말과 함께, 우리는 골든 헬리오스로향했다.
*
“죄송합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중년의 남성을 향해,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의 사과는 중년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다.
“내가 몇 번이나 경고했지? 그래, 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어. 그런데 이게 대체 몇 번째야? 한 달동안 매출이 반토막이 됐잖아.”
“……”
그의 말에헌권은 입을 다물었다.
최근들어, 그는 제대로 된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않을 줄 알았다.
게이트의 사건을 겪은 이후, 그는 매 순간마다 느껴지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주변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웠다.
거기에 하루 8시간의 일까지 겹쳤기에 그의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미안하지만, 이미 공고는 올려 뒀고… 늦어도 다음 주면 신입이 들어올 거야. 신입 교육은 점장한테 맡길 테니까, 너는 내일부터 쉬도록 해라.”
“하…하지만……”
“이미 끝났어.”
그 말과 함께 중년은 가차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달 월급이랑 퇴직금은 제대로 챙겨주마. 일단은…… 푹 쉬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라. 아무리 봐도 지금은 정상으로 안 보이니까.”
“……”
끝내 헌권은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그가 느끼는 불안감.
그것이 왜 그런 것인지는 그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공포와, 스스로 그것을 당해낼 수 없다는 무력감.
조금이나마 그를 해소해 보고자 운동도 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헌터들의 앞에서, 그는 한 없이 작기만 했다.
“하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해는 뉘엿뉘엿 져 가고 있었다.
당장 내일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앞이 막막했다.
‘가람이는 좋겠네……’
전에 만났을 때, 그는 이전과는확연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그만큼 그는 좋은 대우도 받고 있는 듯했다.
천 만원을 선뜻 건낼 정도의 재력 역시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에 반해 자신은 뭘까.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안정적이기만 한 직장생활을 쫓을 뿐.
문득, 눈물이 나왔다.
“뭐여, 괜찮은겨……?”
“……?”
그런 그의 귀에, 낯익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진우였다.
*
아발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골든 헬리오스.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을 지닌게 아발론이라면, 골든 헬리오스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조금 날카로운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크으~! 몸이 근질근질한데? 한 수 배워보고 싶구만!”
주변을 지나다니는 골든 헬리오스의 학생들을 바라보며 한주희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차현화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대련장에 먼저 들러 볼래? 거기라면 자유롭게 대결할 수도 있을 거고.”
“오오!”
“좋지!”
“물론, 이현진 너는 제외다. 부상자잖아?”
“……쳇.”
부러진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혀를 차는 현진.
그들은 이내 골든 헬리오스의 대련장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신분을 묻거나 입장을 제지하려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한주희의 얼굴을 확인한 그들은 곧바로 길을 열어 줬다.
월영의 훈련장과는비교할 수 없을 크기의 대련장.
땀을 흘리며 저마다의 애검을 휘두르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한주희는 두 눈을 빛냈다.
“빨리! 나도 싸워보고 싶어! 누구랑싸우면 되는 거냐? 아무나 갖다 후드려 패면 돼?”
“언니, 제발…… 목소리좀……”
흥분한 한주희를 말리는 한아름.
그러나 이미 눈이 돌아간 후였기에 그녀의 목소리는 한주희에게 닿지 못했다.
그런 한주희를 발견하고는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약 180정도의 키와 떡 벌어진 어깨.
짧은 금발을 가진 사내였다.
“견학인가?”
그리고 한주희는 직구를 던졌다.
“오? 너로 정했다! 나랑 싸우자!”
일행들은 일제히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