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48. 케히빈 박살내기
게이트 안쪽의 마물들은 일반적인 무기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
과거 미국이 게이트 안쪽으로 원자 폭탄을 가져간 사례도 있었지만, 애꿎은 사람들만이 죽어났을 정도.
만약 마력에 대한 적합도를 가진 사람들, 즉, 1세대의 헌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에 관해서, 제가 앞서 말씀드린 공식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게이트, 혹은 던전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마력파장을 분석해 보면……”
그렇게 말하며 그는 슬라이드를 넘겼다.
다음 화면에는 단순화시킨 마물의 그림과 그 겉면을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이 그려져 있었다.
“보시는 대로 얇은 마력파장이 각각의 개체를 일반적인 물리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그가 또다시 화면을넘기자, 이번에는 짧은 영상 여러 개가 연속적으로 재생되었다.
총과 대포와 같은 무기들이 몬스터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하는 장면을 모아둔 것이다.
“본 영상들을 프레임 단위로 쪼개서 살펴보시면, 착탄의 순간 잠깐이지만 빛이 왜곡되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방벽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의 말에 회중들은 미간을 좁히며 영상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자신의 노트를 꺼내들어 몇 번이고 공식을 확인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긴가민가 하면서도 의심을 벗지 못하는 상태였다.
“증명은 어떻게 할 건가?”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 있던 케히빈이 그렇게 말했다.
의외로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은가람의 이론에 내심 감탄한 그였지만, 그렇다고 쉽게 자신의 공식을 포기하지는 못했다.
어쨌건 증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가설에 불과하다.
그것은 모든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는 팔짱을 풀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이론에 대한 증명 말야.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그에 대답한 것은 차현화였다.
“앞서 영상을 보여드렸지 않나요? 해당 이론을……”
“그거야 환각 마법이나 왜곡마법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연출해 낼 수 있는 영상 아닌가? 자료로 제시한 것들 역시도 마찬가지네. 자네들끼리 한 실험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이지?”
그의 말에 회장이 다시금 술렁였다.
케히빈의 발언은 차현화에게 있어서 상당히 무례한 말이었다. 세계 최고의 마법사로 손꼽히는 이들 중 하나가 바로 차현화.
그런 그녀의 실험을 ‘방구석 실험’으로 치부해 버렸으니까.
그러나 그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만도 아니었다.
명성만 가지고 이론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었다.
“그건 맞긴 하지……? 아무래도 확실한 증명이 없으면…”
“이제까지의 모든 이론들을 전부 뒤집어 엎는 격이니까.”
“하아……이게 증명된다면 지난 세 달간 쓴 논문을 다 엎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며 케히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품 안쪽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자, 이러면 어떨까? 그렇게 증명에 자신있다면, 손수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케,케히빈 마도사!”
“여기서 뭐하는 짓입니까?!”
학회를 진행하던 사회자들이나 관련 마법사들은 그의 돌발 행동에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그는 완고했다.
“이론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론에 대한 증명이 된다면 그만큼 좋은 것 아니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도가 지나치오!조금 전도 그렇고, 꼭 이런 식으로……”
당황한 사회자가 그를 만류하려던 때였다.
“그렇게 해요. 좋네.”
은가람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한 순간 회장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것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약간의 떨림을 동반한 케히빈의 말이었다.
“저……정말 목숨까지도 걸겠다는 말인가?”
“이미 경험이 있는데 뭐 어때서요?”
“……다른 방어계열의 스킬은 일절 용납하지 않겠네. 설마 이 많은 마법사들을 상대로 속임수를 사용할 생각은 아닐테지?”
헌터에게 있어서 신체 강화 계열이나 방어 계열의 스킬 한 두개 쯤은 필수적일터.
엄밀히 말해서, 그를 사용한다면 총을 막아내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점을 주지시킨 케히빈.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잘들 보세요. 두 눈 크게 뜨고 말이죠.”
“……”
설마 하는 심정.
그러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파멸적인 ‘기대’를 작게 품으며, 그는 손가락에 힘을 불어넣었다.
타아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총성이 회장 안을 울리며 메아리쳤다.
그리고──
“……!!”
“됐죠? 혹시 모르니 녹화본 재생해 주세요. 프레임 단위로 끊어주시면 더 고맙고요.”
그의 말을 들은 방송반에서, 조금 전 녹화된 영상을 스크린에 띄웠다.
케히빈의 손에서 쏘아진 총알은 은가람의 복부에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리고 그 순간, 미미한 빛의 왜곡이 그 자리에서발생했다.
“증명 완료.”
나지막한 은가람의 말.
그가 입매를 말아올림과 동시에, 학회가 발칵 뒤집혔다.
“이……럴…순 없어……”
넋이 나간 듯, 자신의 자리에 털썩주저앉는 케히빈.
그와 반대로, 회장 내의 마법사들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저들끼리 토론을 벌였다.
은가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들도 많았다.
“잠깐만! 분명 형태가 복잡한 마물에게는……”
“케히빈 공식에 모순점이 있잖아!”
“그렇다는 건, 대부분의 마력 술식이 전부 흠이 있다는 거야!”
“질문 있습니다! 본 공식을 활용하면……!”
“저,저도 질문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평소에는 그 누구보다 점잖고 교양있는 모습을 보이는그들이었지만, 진리와 지식을 추구하는 그들의 갈망은 그 누구보다 강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삼키며, 그는 발표를 재개했다.
“자자, 질문은 추후에 받겠습니다. 거의 다 끝나가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벌써?!”
“이후에는! 이것 말고도 조금 더……”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은가람은 발표를 속행했다.
그에 따라 목에 핏대를 세우던 사람들도 하나 둘, 그의 발표에 빠져들며 자신의 노트에 적어 내려가기 바빴다.
그런 그들의 사이에서, 한 사람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회장을 벗어났다.
처음 학회가 시작되었을 때 부터 뒤쪽에 앉아 긴 로브를 푹- 눌러쓰고 있던 사람이었다.
문을 열고 자리를 뜨는 그의 뒷모습을, 은가람은 놓치지 않았다.
*
“계획을 서두를 필요가 있겠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로브의 사내는 그렇게 운을 띄웠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기계가 말하는것 처럼 변조되어, 제대로 된 성별조차 알아듣기 힘들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꼬맹이가 그 이론을 증명해 냈어. 차현화가 곁에 있다고는 해도 믿기지 않는군.”
가설과 이론은 다르다.
과학계에서 하나의 ‘이론’이라고 한다면 사실과 검증, 그리고 법칙으로 입증한 현상.
생각해 낼 수 있는 질문들을 모조리 던져 그 모든 시험을 통과해 낸 것이 비로소 ‘이론’이었다.
그것은 마법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작해야 20대의 아카데미 학생이 뚝딱 발견해 낼 수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침음을 흘리며 상대의 말을 듣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게 걱정이지. 어쩌면 파훼법이 드러나게 될 지도 몰라.”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의 계획에 크나큰 차질을 빚을 것이다.
이제 와서 저 꼬맹이를 죽인다고 한들, 밝혀진 이론을되돌릴 수는 없는 법.
결국 지금으로서의 최선은 자신들의 계획을 앞당기는 것 뿐이었다.
“우리들의 것을, 곧 우리들의 손에.”
그 말과 함께, 그는 통화를 종료했다.
*
“진짜 멋지다! 원래정상이 아닌 건 알았지만, 오늘은 유독 더 그렇게 보여!”
“……”
칭찬을 하는 건지, 욕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한아름의 말.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때로 사람은, 긍정적인 면 ‘만’을 바라봐야 할 때도 있는 법.
“역시 형님! 대단하십니다! 제가 마법을 잘모르지만……”
“고맙다, 짜샤. 넌 몸은 좀 괜찮아?”
내 말에 녀석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곳곳이 좀 쑤시긴 하지만 이젠 좀 살만합니다.”
좀 쑤시는 정도가 아닐텐데.
칼로 그렇게 쑤셔댔으니까.
그래도 살아있는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현화 쌤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아주 그냥 아인슈타인이 된 기분이지?”
“정확하시네요? 독심술 스킬도 있으신가요?”
“비밀.”
“하하……네에?!”
그에 난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물론, 그녀가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줄 리 없었고.
장난스런 웃음을 잔뜩 지으며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넌 결혼 첫날밤에 열쇠 까먹지 마라.”
“조용히 해요.”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한쪽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예상 외로, 그들은 확연한 동양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큰 키에 검은색의 정장을 빼 입은 남자 한 명과,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성.
대략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녀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들어보니까 너, 월영 아카데미 학생이라며?”
“……?”
심지어그냥 동양인도 아니라 한국인이네?
근데 왜 이렇게 기분나쁘지?
그런 생각을 안고 나는 대답했다.
“그런데? 왜 초면부터 반말이냐?”
“뭐……?”
내 말에 그녀는 벙 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황당하다는 듯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부쳐 댔다.
“1학년 아니었어? 난 3학년이야. 말 놓는거야 당연하지?”
“그러냐? 그래라.”
그러면 나도 말 놓지 뭐.
꼬우면 먼저 존대하시던가.
그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버릇없긴……! 뭐, 상관없어. 내 소개부터 하자면, 나는 성백 아카데미 수석……”
“안 궁금한데.”
“사람이 말을 하면 끝까지 들어! 제대로 된 실력도 없어서 교사의 후광에 기대기나 한 주제에 말야!”
“……”
대체 이 여자는 뭐길래 혼자서 열폭을 하고 있는거야?
너무 갑작스런 일이었기에 나는 차마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사람 말을 해야 대답하든 하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실력이니 덜떨어지니 하는 말을 쏟아내는 그녀에게, 나는 간단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자고로 마법 실력이란 말야! 한국에서는 성백 아카데미가……”
“지랄 났네.”
“……뭐라고?!”
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야.
뭐, 자기 잘난 거 알아서 어쩌라고?
나는 한쪽 귀를 파며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티를 냈다.
“네네, 성백 아카데미가 마법사들이 아주 우수하죠. 그래서 뭐? 원하는 게 뭔데? 꼬우면 이론 하나 내시든가?”
“풋! 푸하하핫!”
“……!!”
내 말에 옆에서 그걸 듣고 있던 한주희는 배를 잡으며 박장대소를 터뜨렸고, 이름도 모르는 성백의 수석 학생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내가 이걸 어디서 배웠는데.’
오래 지내다 보면 닮는다더니, 나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떨던 그녀는 이내 나를 표독스럽게 노려보며 말했다.
한 자 한 자 씹어발기듯이.
“후회하게 될 거야……! 교양없는 자식…!”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곁에서, 간신히 웃음을 멈춘 한주희가 거들었다.
“넌 실력이 없고 말이지.”
“이익……!”
“뭣하면 둘이 붙어? 그러면 되잖아? 깔끔하고. 아니면 내가 대신 상대해 줄까?”
“언니, 참아…… 제발…”
곁에서 한아름이 창피한 듯 말렸지만, 이번에는 한주희도 당당했다.
성백 아카데미의 수석 마법 여학생, 괄호 열고 이름모름 은 잠시 우리를 노려보다가 홱 고개를 돌리고는 멀어져 갔다.
함께 온 정장의 사내와 함께.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현화가 낮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넌 어쩌려고 저런 애를 건드리냐?”
“뭐가요?”
“정말로 누군지 몰라? 성백의 수석이라고 하면 가진 힘도 가진 힘이지만…… 한성그룹 회장의딸내미잖아? 한송희.”
“……”
아, 진짜 꼬이네.
전에는 진명그룹의 사모더니 이번에는 한성그룹이냐?
‘이놈의 거대 그룹들은 나한테 뭐 씌인 거라도 있나? 인생한 번 스펙타클하네 진짜.’
거기다 한성그룹이면 진명그룹과 비교자체가 힘든 기업이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한성을 알지 못하는 이는 없었으니까.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그룹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인생 씨발.”
진심을 담아,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내 어깨에 자연스레 팔을 올리며 한주희가 이죽거렸다.
“넌 주변이 대체 왜 이따위냐? 인생 좀 잘 살지 그랬어?”
“그러게나…… 말이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는당신인데요─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간신히 억눌렀다.
어깨 위에 올려진 그녀의 팔을 자연스레 내리며 나는입을 열었다.
“뭐…… 코사 노스트라한테 찍힌 마당에, 겁낼 것도 없잖아?”
“카핫! 그렇긴 하지!”
크게 한 번 웃음을 내뱉은 그녀는 다시 한 번 내 어깨 위로 팔을 기대 온다.
“그래서 더 흥미가 가는데…… 이번 기회에 한 번 붙어 볼 생각은?”
“없어.”
다시 한 번 팔을 내리며 그렇게 대답한다.
“쳇.”
낮게 혀를 차며 물러나는 그녀.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꼴값들을 떨어라.”
“조용히 해라, 꼬맹이.”
“닥쳐, 꼬마야.”
“이런 썅!”
이럴 때 만큼은 빌어먹게도 마음이잘 맞는 한주희였다.
그렇게 일행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발표 잘 들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