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47화 - 케히빈 학술회
“우와……”
새하얀 대리석을 기본으로 곳곳에 금으로 장식된 건물.
그리 화려하지도 않고 절제되어 보였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거대한 건물을 바라보며 한아름은 감탄을 내뱉었다.
런던에 위치한 케히빈 마법 학술회.
그 건물 역시 독자적으로 그들이 지어낸 마법사들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짜 크네요……”
한쪽 팔에 깁스를 한 채로 현진은 그렇게 말했다.
다행히 정신을 차린 그는 온 몸에 붕대를 하고 있긴 해도, 걷는 것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물론, 그것은 현화와 그녀가 데려온 조력자의 덕이 컸다.
“클 수밖에 없지. 아마 런던에서 이 건물이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까.”
빅벤을 포함한 웨스트민스터 궁보다도 큰 크기.
오랜만의 방문으로 새로운 감회를 느끼며 현화는설명을 이어갔다.
“3년 전의 그 사건으로 지도에서 런던이 지워졌었잖아? 그걸 단기간에 복구할 수 있었던 것도 마법사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거든. 그래서 런던에서 그 자리를 마련해 준 거기도 하고.”
“그럼…… 케히빈 학회는 3년밖에 되지 않은 건가요?”
“아냐. 그 이전부터 있었는데, 지금처럼 공식적으로 이런 건물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뿐.”
“아하……”
고개를 끄덕이며, 한아름은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하기 바빴다.
“그래 봐야 특별할 것도 없으면서……”
“이게 그리 대단한 건가…? 툭 치면 다 부서질 것 같은데.”
그런 그녀와 달리, 은서현과 한주희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거대한건물 안쪽으로 입장하며 한아름은 질문을 건냈다.
“그런데 아직 학생인 우리가 그런데 참석해도 되는 걸까요…?”
“상관없어. 참석 자체는 어느 정도의 마력적합도만 있다면 문제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혹시 알아챈 거 있어?”
그녀의 말에 은가람이 대답했다.
“뭐, 지금까지 세 번 지나쳤던 결계요?”
“역시 넌 알고 있었구나.”
“네……? 결계요? 그런 게 있었어요?”
“우리는 이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몇 번이나 그 적합도를 시험받았어. 만약 자격이 부족했으면 이까지 들어오지도 못했을 거야.”
“……네?”
그녀의 설명에 한아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현진과 서현, 심지어 한주희마저도 놀란 감정을 숨기지는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누구나 들어와도 되는 건지……”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현진에게 은가람이 대답했다.
“어차피 여기서 발표된 이론은 그게 옳든, 옳지 않든 언론을 타고 퍼지게 되어 있어. 아마 내일 아침이 되기도 전에 인터넷의 메인 기사로 뜰걸?”
“그, 그 정도입니까?”
경악하는 현진.
현화가 그의 말을 받았다.
“문제는 발언권이지. 아무나 의견을 제시할 수는 없거든. 발표는 당연한 거고.”
현화의 설명과 함께, 그들은 어느새 건물의 꽤나 안쪽까지 도달해 있었다.
케히빈 건물의 중심부.
회장 안쪽으로 입장하며 현화는 입에 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자, 여기부터는 최대한 말은줄여야 한다?”
그렇게, 그들은 축구장 만한 크기의 회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장의 가운데에는 거대한 단상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발표자가 자유롭게 마법을 발현할 수 있도록 마련된 만큼, 웬만한 충격과 마법에도 상처 하나 없이 버틸 수 있도록 고안되어있었다.
그 단상의 위에는 전 방향에서 볼 수 있는 스크린이 거대하게 켜져 있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마법사들이 모인 장소.
한쪽 자리에 모여 앉은 일행들은 혹여나 하나라도 놓칠 새라 신경을 잔뜩 곤두세웠다.
[……제 연구 발표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약 2시간이 되지 않는 시간동안 여러가지 연구 결과들과 이론들이 나왔다.
앞서 그래왔던것 처럼, 사회자는 다음 발표자의 이름을 호명했다.
[다음은, 차현화 ‘마도사’…… 그리고 그 제자인 은가람의 발표입니다.]
“자, 나가자.”
“네.”
자그마한 usb하나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는 둘.
“화이팅하세요! 가람이도!”
“힘내십쇼!”
한아름과 현진의 응원과 함께, 그들은 단상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이 앞 쪽으로 나아갈 때마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현화…… 한동안 안 나오지 않았나?”
“차 마도사는 그렇다고 쳐도, 저 꼬맹이는……”
“자기 아카데미 학생이라던것 같던데.”
“학생? 차현화 다 죽었네.”
그런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은가람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만……’
설마하니 진짜로 고위마법 5개를 익히게 만들 줄이야.
기초적인 마법도 일 주일 안에 5개를 익히는 건 힘들었다.
고위마법은 어떻겠는가?
그것을 실제로 해 낸 차현화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천재 한 번 하지, 뭐.’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은가람은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오늘 발표하게 될 것은, 마법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될 겁니다.”
*
“어린 친구가 패기가 넘치는구만.”
“말로야 뭘 못하겠나?”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뭐, 그야 그렇겠지.
이런 말을 해 놓고 아무것도 아닌 이론이거나, 제대로 증명을 하지도 않은 가설인 경우도 있었으니까.
‘거기다 나이가 어리니 더 그렇게 생각하겠지.’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는그들이지 않던가?
진짜 천재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현화 쌤의 보조를 받으며, 나는 발표를 진행시켜 나갔다.
“우선은 게이트의 파장과,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고유 마력 파장’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겉모습이야 이래봬도 나름 헌터 생활을 17년 한중고 신입생이다.
이 정도의 발표 쯤이야 아무런 문제될 게 없었던 것이다.
나는 매끄럽게 발표를 진행해 가며, 변하는 그들의 표정을 관람했다.
처음 비웃음으로 가득 찬 채로 의자에 기대 있던 그들은 점점 앞쪽으로 자세를 기울였다.
“에이…… 말도 안 돼!”
“아냐, 아냐. 이런 건 그냥 헛소리라고. 쯧쯧……”
“그런데 제대로증명도 안했을 리가……그래도 차현화의 학생인데?”
“일단 저기에 마력량에 대한 변수를……”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전 세계에서 똑똑하다는 이들을 다 모아놓은 자리라서 그런가 대부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발표를 들었다.
아예 조그맣게 마력을 발산해서증명을 해 보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럼……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 볼까?’
아직까지는 아직 서론에 불과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충분히 끌어들인 상황.
이제부터가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직 서론에 불과합니다.”
“……뭐?”
그들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가득 찼다.
게이트로부터 흘러나오는 마력 파장에 대한 혁신적인 분석.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영향력이 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더 갈 생각이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역사서에 이름 석 자 한 번 새겨 봐야지.
“현재까지 마법의 역사는 케히빈 공식의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죠. 아마 앞으로는…… 오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겁니다.”
이미 알고있는 역사였기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는 한 노인…… 이 학술회의 근간이라고도할 수 있는 케히빈을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오늘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케히빈의 공식을전면 부정하는 겁니다.”
*
장내가 술렁였다.
앞서 은가람이 일으켰던 자그마한 소란과는 거리가 있었다.
말도 안 된다며 부정하는 이들도 많았고, 그 자리에서 패닉에 빠진 마법사들도 있었다.
그리고……
“웃기지 마라!”
당연하게도, 케히빈본인은 그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는 단상으로 걸어 올라가며 입을 열었다.
평소같았으면 곧바로 저지했을 사회자 역시도 그 대상이 대상인 만큼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히빈은 마이크 하나를 집어들며 말했다.
“네 말이 기발하다는 건 인정한다. 아주 기발했어! 하지만…… 내 공식이 틀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흐음…… 그런가요? 되게 확신하시네요?”
“그야 당연하지!”
그는 회장을 둘러보며 들으란 듯이 말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아주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제 공식은 이제까지 대부분의 마법에 큰 영향이 있었고, 무엇보다 사람의 힘으로 ‘마력’을 제어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것을요!”
그리고는 은가람을 가리켰다.
“그런 제 이론을 부정한다는 건, 마법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다는 것 아닌가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론을 그대로 둘 만큼, 저희 학회가 만만했습니까?”
그의 말에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열린 학회라고는 해도 아무에게나 발표권을 줘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은가람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케히빈 공식은 이제껏 많은 마법사들에게 교과서와도 같은 존재였죠. 하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당신은 틀렸어요.”
“미친 소리!”
“제대로 본론도 안 듣고 그런 말을 할 정도면…… 케히빈 님도 늙으셨나 봅니다?”
그의 말에 케히빈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는 빠득 이를 갈며 말했다.
“제대로 마법이나 사용할 수 있는 놈인지모르겠군! 어디, 그런 대단하신 이론을 발표할 자격이 있는가 볼까?!”
그렇게 말하며 그는 양 손에 마력을끌어올렸다.
모든 마법학의 근간이 되는 케히빈.
그가 증명한 이론 만큼, 그의 손으로 모여드는마력의 양은 상당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현화는 은가람을 만류했다.
“가람아, 일단 여기는 내가……”
“아뇨.”
“……뭐?”
“싫어요.”
그러나 은가람은 간단하게 그녀의 말을 거절했다.
그녀든 다급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물론, 목소리는 한 없이줄인 상태였지만.
“그러지 말고 좀! 여기서 소란을 피웠다간 조용히 끝나지는 않을 거라고!”
“괜찮아요.”
“그렇다고 케히빈을 상대로……!”
최대한 그를 말려 보려던 현화였지만, 그는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있게 다가서는 은가람을 보며, 현화는 한 손으로 턱- 머리를 짚었다.
‘아오, 하필이면 이럴 때……’
안전은 둘째 치고 전 세계가 시선을 모으고 있는 이런 자리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케히빈을 상대로는 가능성이 없어 보였으니까.
‘거기다 제대로 된 방어 마법도 안 가지고 있는 주제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자신이 전수해 준 은화방벽이 있기는 했지만, 그 이외에 지난 이틀간 전수해 준 건죄다 고화력의 공격마법 뿐이었다.
그런 만큼, 그는 은가람의 안위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가람은 당당한 표정으로 케히빈에게 입을 열었다.
“얼마든지 확인해 보시죠. 그래봐야 제가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밖에 되지 않겠지만요.”
*
“건방진 녀석……!”
이를 가는케히빈을 바라보며 나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현화 쌤에게 미안한 것도 있었고.
‘그래도 빡치는 건 어쩔 수 없잖아?’
회귀하기 이전부터 꼭 한 대는 후려패고싶었던 사람이었다.
수학에 피타고라스가 있다면 마법에 케히빈이 있다.
그런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내가 학생이던 시절, 마법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기도 했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자격 정명은 어떻게 할까요? 여기서 마법이라도 부려요?”
“마법을 못 사용한다면 애초부터 이 자리에 올라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 뭘 원하는데요? 사실 그냥 이론을 증명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론만 증명되면 사실 그 발표자가 누구든 크게 상관없지 않나?
괜히 일을 복잡하게 만드네.
케히빈은 양쪽 손 끝의 마력을 화염으로 변화시키며 입을 열었다.
“가볍게 해 주마. 어디 내 마법을 받아낼 힘이나 있는지보자고!”
그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마법을 포기했다고는 했지만, 나라고 그냥 시간만 허비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타워를 등반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마법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다.
비록 지금은 제약으로 인해 해당 스킬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오늘 증명할 현화의 이론을 바탕으로 그를 응용한다면 일회성의 무력화 술식 정도는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뭐…… 사실 편법이라 그리 신뢰할 만한 건 아니지만, 어차피 한 번이니 상관없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잠잠했던 사람들의 틈에 다시금 소요가 일었다.
“엄청난 자신감인데……?”
“아무리 그래도 케히빈의 마법은 조금 너무하지 않을까?”
“여기서 죽는다면 뭐, 객기에 불과한 거지.”
“……반대로, 그걸 막아낸다면 케히빈 공식이 부정되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에이 설마……”
술렁거리는 회장의 분위기.
내가 준비되었음을 알리자, 케히빈은 입매를 말아올렸다.
“네 스스로의 객기를 원망해라……!”
파지지직!!
푸화악!
그의 손에서, 뜨거운 염화가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이…이럴…이럴 수는…!”
그의 마법과 내 술식이 허공에서 마주친 순간.
두 술식은 동시에 서로를 상쇄시켜 나가 흩어졌고……
──회장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저, 이제 발표 계속해도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