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42화 - 번아웃
‘최근들어 가장 많이교류한 사람이라…… 은가람이라는 녀석이랑 은서현인가.’
사실상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같은 방을 사용하는 이현성이었으나, 아무래도 같은 가족을 동행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다.
적당히 선을 긋고 잠시 헤어질 타이밍이 필요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히 친하면서도 사적인 시간을 가져도 되는 친구 정도가 적당했다.
‘굳이 둘을 데려갈 필요는 없겠지. 은가람 정도면 충분할 거야. 혹시라도 변수가 될지 모르니까.’
숙주를 통해 관찰한 바로, 은가람이라는 녀석은 꽤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봐야 학생이니 별 일이 있겠냐 싶긴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는 곧바로 은가람에게로 향했다.
아직꽤나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제 숙주의 몸에 어느정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람이 형님, 혹시 다음 주에 시간 되세요?”
“응? 갑자기 왜?”
“기말도 끝났겠다, 다음주에 여행이나 갈까 싶거든요.”
그에 은가람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이현진을 바라봤다.
“누구누구 가는데?”
“……일단은 저랑 형님만 갈까 했는데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이현진.
은가람은 질색하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 드디어 미친 거야? 왜 갑자기 입으로 똥을 싸?”
“네……?”
“내가 왜 너랑 단둘이 여행을 가냐? 아니, 그 이전에 갑자기 무슨 일이야? 그렇게 가고 싶으면 혼자 가면 되잖아? 집도 부자겠다?”
“……”
그에 이현진은 잠시 망설이다 이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실혼자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혼자서는 안된다고 했거든요.”
“이진명 회장님이? 별일이네.”
“그래서 같이 갈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셨어요. 사실 주변에 친한 사람이라곤 많지 않아서……”
그의 말에 은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근데 그래도 싫어.”
“네? 왜요……?”
울상이 된 채로 이현진은 되물었다.
혼자빠져나오려고 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래서는 대번에 의심을 사게 된다.
결국 아직까지는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향해, 은가람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야, 토나와! 남정네 둘이서 가서 뭘 할 거냐고. 니가 내 여자친구도 아니잖……???”
거기까지 말하던 은가람은 돌연 경악하며 스스로의 몸을 끌어안았다.
“설마……?! 야! 난 싫어! 난 여자가……”
“아니거든요?! 누굴 동성애자로 만들고 있는 거에요?!”
“아니, 그럼 왜 둘인데? 한 명 더 데려가.”
“둘이나 셋이나 차이는 없지 않아요?”
“진짜 이해 못할 녀석이네? 원래 남자끼리 야동을 봐도 세 명은 괜찮지만 두 명은 안된다고. 모르냐?”
“……”
굳이 그런 예시를 들어야만 할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현진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서현이도 같이 데려가자. 그 정도는 문제 없잖아?”
“으음…… 그래도…”
“그거 아니면 안 가. 아니면 앗싸리 선생님 한 명을 대동하든지?”
“……”
결국 현진은 은가람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차피 조금 뛰어난 애새끼 두 명쯤이야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현진.
그를 바라보던 은가람은 속으로 미소지었다.
‘꽤나 조급한가 보구만?’
사실 지금의 이현진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간파한 후였다.
아마 이진명 회장의 말대로, 코사 노스트라 쪽에서 그를 조종하고 있을 것이다.
‘하긴, 파견됐던 네명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거기다가 이진명의 상태가 위독하다는 정보 역시도 분명 전해졌을 것이다.
지금 즘 그들이 손을 쓸 것을 예상한 은가람이 미리 일러둔 것이다.
더군다나 이진명이 직접 알려주기도 했기에, 현진이 함께 여행을 제안할 것이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너 안대는 왜벗었대? 그거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냐?”
“아,안대요……?”
현진의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색의 안대가 사라져 있었다.
본래 현진을통해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현화가 달아뒀던 장치.
그것이 벗겨졌다는 사실은 지금 현진이 스스로의 의지로 여기에 있는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에 관한 사실을 전혀 알 리 없는 현진은 자신이 직접 본 ‘거짓 정보’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아, 얼마 전에 이미 완전회복 했어요!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떨어져 나가도록 되어 있었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꽤 빠르네……? 두어 달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말야. 역시 너도 꽤나 재능충이긴 하구나?”
“하핫…… 그,그런가요?”
“어우, 재수없는 녀석.”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은가람이었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정작 에이전트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현화 쌤이 일은 잘 하신다니까? 세계적인 재능이 어딜가진 않는단 말이지.’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있는데, 때마침 은서현이 강의실로 들어섰다.
은가람은 곧바로 손을 흔들며 그를 불렀다.
“야야, 은서현! 잠깐 와 봐!”
“왜, 또? 말해두는데, 이상한 일 시키면 안 할거야.”
“에이~ 내가 시키는데 안 하는게 어디있어? 까라면 까야지.”
“지랄하고 있네.”
불안한 감정을 안은 채로 그렇게 말하는 은서현.
그러나 은가람은 전혀 그에 신경쓰지않았다.
“다음 주에 현진이랑 같이 해외로 나갈 건데, 너도 같이 안 갈래?”
“해외……? 싫어, 내가 왜……”
“오케이, 서현이도 확보! 그러면 셋이서 가면 딱 되겠다.”
“사람 말 좀 들어, 이새끼야!”
전력으로 거부하는 은서현이었지만, 결국 그 역시도 은가람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현진과 여행하게 될 세 명의 인원이 결정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그래도……’
충분히 당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에이전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로 다음 순간 누군가가 대화에 끼어들기 전까지는.
“어? 가람아, 너 여행 가?”
“어……? 아름아, 네가 여긴 왜?”
지난 번 특별훈련 때 함께 했던 사람이자, 같은 훈련장 동지인 한아름이었다.
그녀는 자랑스런 표정을 지으며 은가람에게 입을 열었다.
“후훗! 나도 드디어 이 반으로 오게 됐거든!다음 학기부터!”
“아, 진짜? C클 3반에서 바로 여기로?”
“그렇단 말이지!! 그거 자랑하려고!”
뿌듯한 표정으로 가슴을 내미는 그녀를 바라보며 은가람은 옅게 미소지었다.
‘확실히, 엄청 늘기는 했지.’
기본적으로 필기는 만점이었던 한아름.
최근 훈련장을 꾸준히 이용하기도 했고, 특훈의 영향도 어마어마했기에 그녀는 실력의 변화 폭이 가장 컸다.
무엇보다 잠재되어 있던 A급 스킬, 광전사의 길이 개방된 덕이 가장 컸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은가람은 축하의 말을 건냈다.
“축하해. 이번 실기 잘 봤나보네? 필기야 뭐 말할 것도 없겠지만.”
“당연하지! 그런데 너! 중간에 도망갔더라? 자기 할 것만 하고 그렇게 튀기 있냐?”
“아……”
기말 실기평가가 있던 날.
자신의 시험이 끝난 은가람은 곧장 그 자리를 떴기에 3조 이후로 이뤄졌던 평가는 보지 못했었다.
당연히 4조에 속해 있던 한아름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급한 일이 있었거든. 미안해.”
“쳇! 뭐…… 상관없어.그래도 운성 쌤은 보셨으니까.”
“응……? 운성쌤은 왜?”
의아하게 묻는 은가람.
그에 한아름은 눈에띄게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그게! 운성 쌤은 일단 훈련장의 관리를 하고 계시잖아? 그래서 그런 거지! 자주 뵙기도 했고.”
“그래, 그러냐.”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여행간다는 건 무슨 소리야? 나는?”
그녀의 말에 이현진의 표정은 사정없이 구겨졌다.
‘젠장, 여기서 인원이 더 늘어나면 귀찮아지는데……’
그는 한아름의 말을 가차없이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은가람이 더 빨랐다.
“사람이 많으면 더 좋지! 설마 현진이 갑자기 거절하거나 하지는 않을거고. 그렇지?”
“다,당연하지! 하하…… 내가 그런 거 거절한 적 없잖아?”
“그럴 줄 알았어~! 집도 부자에 통 큰 현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오오! 그럼 어디로 가는 건데?”
‘제기랄!’
현진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거절하고 싶었다.
‘아니야, 조금만 참자. 여기서 꼬리를 잡히면 곤란하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완벽하게일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자신이 에반스같은 놈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으니까.
그를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의 사소한 문제는 조금 미뤄둘 필요가 있었다.
“유럽이라! 진짜 기대된다! 꼭 가 보고 싶었거든!”
“말해두는데, 지난 번 처럼 훈련하라고 하면베어버린다?!”
“그 때는 기말대비 특훈이었잖아? 이번에는 안 그러니까 쫄지 마, 꼬맹아.”
“꼬맹이?! 진짜 뒤질래!”
그렇게 이탈리아로 떠나는 네 명의 인원이 정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심지어 이 모든 일을 계획한 은가람조차도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그 곳에서 어떤 존재와 마주하게 될 지.
*
“그러니까…… 전에 그 놈들이 이현진에게 들러붙어 있다는 거지?”
서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번에 너희 가족에 관해 물어 본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 그리고…… 내가 이번 여행에 굳이 너를 끼워넣은 것도 그래서였고. 정 가기 싫다면 상관없지만.”
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당연히 가야지. 그 개같은 자식들의 숨통은 내 손으로 끊어버려야 성이 풀릴 것 같으니까.”
“그래. 숙소는 이진명 회장님이랑 현화쌤이 미리 준비해 뒀어. 물론, 그렇다고 현화 쌤을 거기서 마주치지는 않겠지만.”
처음부터 대략적인 상황을 예견하고 있던 이진명이었다.
당연히 그가 예약한 숙소는 그저 고급스럽기만 한 호텔이 아니었다.
오히려 규모만 따지자면 생각보다 작은건물.
다름아닌, 차현화가 소유한 4층짜리 건물이었다.
“뭐? 그 여자 소유의 건물이라고…?”
“응. 아마 얼마 전에 가서 곧바로 샀나봐.”
“대체 그런 돈이 어디서……”
“너 몰랐냐? 현화 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마법사잖아. 그 정도 돈은 당연히 있겠지.”
“……”
설마 잊고 있었던 걸까.
아니, 단순히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미지라 그를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나는 설명을 이었다.
“어쨌든, 아마 거기서 놈들이 빈틈을 드러낼 가능성이 커. 아무래도 자신들의 본거지니까 위험하기도 할 거고.”
“그 빈틈을 노리자는 거지?”
“그래. 그러니까…… 되도록 조심하도록 해. 자칫 잘못해서 들켜버리면 아무것도 못하고 도망쳐야 될 수도 있으니까.”
내 말에 서현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의 계획은 조금씩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
“설마 이번에도 가면 겨울이거나, 그렇진 않겠지?”
“이탈리아잖아. 호주는 남반구에 있으니까 그런 거고, 멍청아.”
한아름의 걱정어린 말에 은서현은 그렇게 대답했다.
가깝게 지낸 진도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한아름은 그의 말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안 무섭겠니, ‘우리’ 서현이?”
“전에도 안 무서웠거든?!”
“오구, 그랬쪄? 괜찮아, 뭐…… 애기들은 울수도 있지~”
“이런 썅!뒤지고 싶냐!”
진명그룹의 개인 전용기로 향하며, 그런 대화가 오갔다.
주변의 이목을 확 끄는 그들의 목소리에 은가람은 그들을 진정시켰다.
“조용히 좀 해! 여기 전세냈냐?!”
“저거 우리 집 전용기……”
“……”
그러고보니그랬지.
뒤늦게 그 사실을 자각하며 은가람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와 한아름이 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갑자기 무슨바람이야? 웬일로 여행도 가고……”
그러고 보니 한아름은 아직 코사 노스트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겠지……?’
일단 그녀도 나름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내지 않았던가.
정 문제가 커질 것 같으면 그가 직접 나서도 되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것도 있었고.
거기에 사람이 많을 수록 코사 노스트라 쪽에서 함부로 일을 벌이지 못할 테니까.
그런 생각을 삼키며, 그는 태연하게 되물었다.
“여행은 지난 번에도 갔잖아?”
“그건 훈련이었잖아? 왠지 너 하는 거 보면…… 하루 종일 훈련만 할 것 같거든.”
“그런가……?”
그는 회귀 후의 자신을 돌이켜 봤다.
확실히, 생각해 보면 일반적인 1학년 학생에 비해 조금 더 노력한 것은 맞았다.
중간고사가 끝날 때에도 술을 마시러 가거나, PC방으로 향하는 다른 녀석들과 달리, 그는 곧바로 훈련장으로 쳐박혔으니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아닌데.’
정말로 매일같이 사경을 드나들던 예전을 떠올리며, 그는 미소지었다.
“그냥, 성격이 좀 그런 편인가 봐.”
“이상해.”
“그럴 수도 있지. 원래 사람은 다 이상한 거야.그걸 어떻게 감추느냐가 다를 뿐.”
그렇게 대답하는 은가람.
기내로 향하는 통로를걸으며, 한아름은 나지막히 말했다.
“그러다간 혼자 쓰러질걸?”
“……뭐?”
“너 보고 있으면…… 뭐든지 혼자서 다 짊어지려고 하는 것 같거든.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고, 박터지게 노력하고.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뭐든 과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해.”
“……그건 그렇겠지. 그래도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할 때가 있으니까.”
─지금은 그러지 않으면 더안되는 거고.
그런 말을 속으로 삼키는 은가람에게, 한아름은 말을 이었다.
“매 순간 노력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그렇게 혼자서 모든 문제를 끌어안는 사람들의 말로는 그리 좋지 않더라. 그냥…… 그렇다고.”
멋쩍게 말하며 그녀는 먼저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바라보며, 은가람은 누군가가 겹쳐 보였다.
늘 티격댔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있어서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 줬던……
그런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