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41화 - 일상의 변화 (41/114)



〈 41화 〉41화 - 일상의 변화

[그래, 사실 별 볼일 없어. 아무튼, 미안했다. 난 가 볼게.]

“흐음……”

S클래스의 빈 강의실을 독차지한 채로, 한주희는 생각에 잠겼다.


“희한한 놈이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데  안 싸우지?”


애초부터 ‘안 싸운다’라는 선택지는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힘이 있으면 겨뤄 보는 것이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렇다고 겁 먹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이제까지 그녀가 마주해 왔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강한 사람이라고는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나마 힘이 비등하다고  수 있는 S급의 다른 학생들마저도 자신의 할 일만 하기 바빴던 것이다.

 외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피하기 급급했다.

상식을 벗어난 힘.

그것을 손에 쥔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호감도, 호기심도 아닌……

두려움.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놈은 조금 달랐단 말이지.”

두려운 감정이 느껴졌던 것은 맞았다.
하지만 자신의 힘에 대한 공포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그냥 그녀라는 사람 자체를 꺼려하는 듯한 느낌.

어쩐지…… 자신을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한동안 고민에 빠져 있던 그녀는 다시금 입매를 말아올렸다.


“이거, 갈 수록 흥미가 돋네……? 나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남자라.  몸이 저려온다고……!”



*

“으에엣취!…… 어우…”


벌써 환절기가 오기 시작하려나.
갑자기 오한이 들며 재채기가 흘러나왔다.


[왜 그래? 감기 걸렸냐?]

“아니에요. 그냥  코가 간지러워서……”

수화기 너머로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그녀를 다시금 붙들었다.


“아니, 근데 갑자기 발표라뇨!? 쌤, 거기 간  그…… 놈들 족치러 간 아니었어요?!”

베네치아에서 걸려 온 국제전화.

그렇게 따지고 들자, 현화는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 그,그것도  겸… 겸사겸사지, 뭐?]

“솔직히 말 해요. 까먹고 있었죠!”

[아,아니거든?! 착실히  준비하고 있거든?!]

“그럼 내일 당장 출발해도 되는 거죠?”


[……]

내 말에 그녀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아,  진짜!”

[미안해! 그치만…… 그래도 모처럼인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했다.

전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케히빈 마법회는 그 영향력이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곳에서 얼마 전 있었던 방벽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면  그대로 세상이 발칵 뒤집어  게 뻔했다.

‘케히빈의 업적을 기리는 케히빈 마법회에서 케히빈 이론을 부정하는 꼴이니……’


내가 고민에 빠져 있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현화 쌤은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일단 코…… 아무튼, 그놈들이 먼저 움직이기 전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할 만한  없잖아? 그러니까 미리 와서 먼저 논문을 발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야! 거리도 그리  편이 아니니까, 정 안되면 나 혼자라도 발표는 진행하면 되는 거고.]

“예에……”

[그리고 이게 제대로 인정받기만 한다면, 너랑 은서현은 S급 확정이란 말야! 그보다더한 혜택이 어디있겠어?! 물론 세계 각지에서 러브콜을 받기도 할 거고!]


당연히 월영에서도 그건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겠지.

혁명적인 이론이 월영 아카데미의 학생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 퍼지면 월영의 위상은 하늘로 치솟을 테니까.

‘수업을 핑계로 빠져나갈 구멍도 없는 건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상황좀 보고요.”

[뭐, 아직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으니까! 생각해 봐!]

“네.”

내 대답을 채 듣지도 않고, 그녀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아마 다시 그놈의 논문에 머리를 박으러 간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아카데미 정문을 나섰다.


오늘은 조퇴였다.



*


“솔직히…… 아직은  모르겠어.”

“역시 그렇군요.”

조금은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매니저 형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약하게나마 두려움의 감정 역시도 담겨 있었다.


“물론, 헌터가 아니면서 시스템 창을 발견했다는게 놀랍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래도 조금 망설여지네.”

“어쩔 수 없죠. 아무래도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단지 며칠 전의  때문만이 아니었다.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현실적으로 말해서, 막연하게 느껴지는 그것들은 생각보다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 앞의 현실을 살아가는게 더 급급했다.

월급은 적어도 정규직의 직장.
힘들게 구한 그 자리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서른 살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 그렇겠지.

그 심정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 역시도…… 회귀 전에는 망설였으니까.’

이보다 더 극단적인 상황.
주변 사람들이 눈 앞에서 죽어가던  상황에서도 나는 망설였었다.

매니저 형이라고 크게 다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조금은 아깝네요. 제가 보기에 매니저 형은 재능이 있으시거든요.”

“그래……?”

“네. A급은 보장되었다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요.”


그가 습득할 수 있는 A급 스킬은 벽력권.
아마 진우 쌤과 비슷한 무투 계열의 스킬일 것이다.

그 날 밤 진우 쌤을 불렀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때 잠재력을 느꼈을 수도 있고.’


만약 매니저형이 진우 쌤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시너지는 엄청나겠지.

그러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봐야 본인이 원해야 하는 거지.’

스스로 하기 싫다면 어쩔  없었다.

나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잔을 비우며 일어났다.


“그래도 혹시나생각이 바뀌시면 꼭 말해 줘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전부 도와드릴 테니까.”

“그래. 고맙다.”

“아 맞다. 그리고……”

“……?”

나는 왼손에  시계를 몇  눌러, 그의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

금액은 천만원.

그를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크게 뜨였다.

“전에 제가 입힌 피해에 대한 거에요. 이자도 조금 붙였구요.”

“너…… 아니, 이 큰 돈을 어떻게……”

그의 말에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말했잖아요? 헌터는 제 천직이라고.”



*

아카데미의 수업이 끝난 시각.

해는 여전히 지평선에 걸쳐져 하늘을 붉게 물들여 가고 있었다.

그런 노을  속에서, 현진은 조용히 검은색의 세단에 올랐다.

며칠동안 그의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색의 안대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회사로 가 줘요.”

간략하게 말하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현진.

그에 늙은 집사의 눈에 잠시 주름이 잡혔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지긋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차를 몰았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가는 차 안에는 늘 그랬듯 조용한 클래식 음악만이 은은하게 정적을 채워 나갔다.

이내 진명그룹의 본사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현진은 곧바로 아버지의 집무실로 향했다.

회장의 아들이라는 신분 때문인지, 그를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빠르게 눈을 굴리며 주변을파악하는 그.

그는 이진명의 집무실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아빠! 잠시 들어가도 돼요?”

“……”

돌아온 것은 침묵.

현진이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안쪽에서 이진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거라.”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의 앞에는 안색이 좋지 않은 이진명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냐.”


“아빠…… 괜찮으세요?”


곧바로 자신의 용건을 건내려던 현진은, 아파 보이는 아버지의 안위부터 살폈다.

그것이,  자연스러웠으니까─


그런 그를 향해, 이진명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뭘 새삼스레 묻는 거냐? 내가 죽어가고 있던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지? 또 말썽이라도 피웠나?”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현진은 이진명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입을 열었다.

“저…… 잠시 여행을 갔다오려고요.”

“여……쿨럭! 여행?”

“네. 가급적이면 유럽 쪽으로……”


이진명은 미간을 좁히며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고민한 끝에 물었다.

“거기엔 뭣 하러 간다는 말이냐?”

“아무래도 한국에만 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릴 것 같아서요. 마침 기말도끝났으니 한동안 머리라도 조금 식히려고 합니다.”

“형은?”

“형은…… 안 간다고하더라구요.”


거짓말이었다.

처음부터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진명은 그에 관해 캐묻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끄덕일 뿐.

“혼자 가는 거냐?”
“네.”

“이왕 갈 거라면…… 친구들이라도 데려 가거라. 어차피 그 정도 돈은 충분하니까.”

“네……? 아니,  그러셔도…”


두 손을 저으며 사양하던 현진이었지만, 이진명은 단호했다.


“그 정도라도 해야 내가  안심하고 보낼 수 있지 않겠냐?”

“……네. 알겠어요.”

“알았다. 나가 봐라…… 몸이 좋지 않으니 좀 쉬고 싶구나.”


“네.”

의자에 몸을 기대는 이진명.

현진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잠시 후, 현진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이진명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전 가지  좋아 보이던 그의 혈색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예, 회장님?]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국으로 직접 데려갈 생각이군.”

[……알겠습니다.]

짧은 대답과 함께, 상대는 전화를 끊었다.

*



‘이진명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숙주를 통해 이진명의 모습을 확인한 에이전트는 의아해 하면서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거야 말로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상태는 꽤나 위중해 보였다.

기침을 가린 그의 손 너머로 붉은 피가 흘러나온 것을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던 것이다.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수익이 더 들어올지도 모르겠구나……!”

그의 입매가 있는대로 말아올려졌다.

자신의 계획은 이미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친구를 데려가라고 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야 얼마든지 허용수치 내였다.

“뭐, 그런 놈들이야 적당히 가까운 녀석들 두어 명 데려가면 될 일이고……”


끽해봐야 아카데미 학생이자신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터.


경계 대상 1호였던 차현화조차 지금은 휴가를 떠난 상태였다.

하늘이 돕는다고밖에 생각할  없었던 것이다.

“이제…… 이제 조금이면 된다.”

칙칙한 어둠 속에서,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

“기말 결과 나왔다. 있다가 확인들 혀라.”


“네에.”

중간고사때와 마찬가지로, 한진우는 시험지 한 뭉텅이를 교탁 위에 올려두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아…… 그리고, 오늘은 조금 특별한 소식이 있다.”

“네?”
“특별한 소식……?”

“전학생이라도 오나요?”

“전학생 머리로도 닷짜꾸리 하시나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실없는 농담에 한진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잡것들이,선생을 가지고 놀라 카냐?! 확 기냥……”

물론,이미 질릴 대로 들었던 레파토리였기에 주눅이 드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전학생 같은게 아녀. 오늘도 다른 반으로 이동되는 학생이 있구마.”

“네?”

“누,누구지……?”


그제서야 학생들은 의아한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봤다.
내심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오늘 당장 바뀌는  아녀. 바뀌는  다음 학기부터니께…… 남은 시간동안 서로 사이좋게 잘들 지내라. 지난 번 처럼 험악하게 보내지덜 말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한 학생을 앞으로 불러세웠다.

중간고사 때 필기만점을 받았던 학생.
은가람과 은서현과 함께 필기 공동 1등을 했던 한아름이었다.


“이번에도 필기 만점에…… 실기 점수가 확 올랐더만. 재능이 있는 편인가벼?”

“하하…… 가,감사합니다.”

한진우의칭찬에 그녀는 수줍은 듯한 목소리로 고개를 숙였다.

‘……쪼매 적응이 힘들구만.’

물론,  내면에 데스메탈을 좋아하는 과격한 영혼이 잠들어있다는 것을, 한진우는 잘 알고 있었다.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며그는 소란스러운 반을 진정시켰다.


“자자, 어차피 아름이야 재능이 있어서 그랐던 기고. 재능 하나 없는 니들은 전혀 해당 없는 야그니께 괜히 기대같은  갖지들 말그라잉?”

당연하게도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우우우!”
“쌤 진짜 한결같이 너무하시네요!”

“이게나라냐!”

“조용히들 혀, 이 자슥들아! 아름이는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들어가고.”

그에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던한아름.

간략하게 ‘남은 시간동안이라도 잘 부탁한다’고 말한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어차피 아직 학기가 끝나지 않은 지금.

작별인사를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자, 그라믄…… 오늘은 실드와 방벽에 관해 수업할낀데……”


그렇게, C클래스의 일상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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