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39화 - 은서현과 은서연 (39/114)



〈 39화 〉39화 - 은서현과 은서연

“안심해. 적어도 난 너희들을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뭐?”

“그래도 도망가면 곤란하니까, 잡아두긴 해야겠지? 여러가지로 물어볼 것도 있을 거고.”


그렇게 말을 건내는 은가람을 바라보며, 박상재는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꺼내 든 것인지순간이동 스크롤이 쥐여져 있었다.


“멍청한 자식……! 우리가 순순히 잡힐 성 싶으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뒷세계에서만큼은 두려울 것이 없는 코사 노스트라였다.

헌터 협회의 출현 이후 급격하게 세력이 줄어든 다른 세력들에 비해, 본래의 영역을 유지한 것도 모자라, 점차세력을 늘려 가고 있는 것이 바로 코사 노스트라였으니까.

비록 말단에 속한 그들이었지만, 지원받는 자원은 꽤나 쏠쏠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순간이동 스크롤 역시도 그 중 하나였다.

“돌아가면 네놈에 대한 것 부터 낱낱이 보고하도록 것이다!”


기세등등하게 외치며, 그는 자신의 손에 쥔 스크롤을 찢었다.

후우웅……


“……?”


──아니, 그러려고 했다.

“신풍.”


한 줄기의 옅은 바람이 불기 전 까지는.

“이게 어떻게 된……?”

그의 손에 쥐여져 있던 스크롤이, 어느새 한진우의 손에 쥐여져 있었다.

언제 그가 움직였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말 그대로 바람과 같은 보법.

그가 자랑하는 스킬 중 하나인 ‘신풍’이었다.

“어디, 또 있나?”

“……큿…!”


인상을 찌푸리는 그들을 두고, 은가람은 조금 전 부터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쪄 있는 매니저형에게 다가갔다.


“형, 먼저 돌아가세요.”

“뭐……뭐? 가람아, 너……”

“설명은 다음번에 해 드릴게요. 지금은…… 그리 좋은 장면은  나올 거라서요.”


헌터 생활을 질리도록 해 왔던 은가람이었다.

타워까지 등반했던 그에게 있어서 사람이 죽는 광경은 그리충격적이지 않았지만, 아직 일반인이라고  있는 헌권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가람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너도…… 조심해.”

“네.걱정하지 마세요.”

“진우 쌤, 죄송한데 혹시 매니저 형 좀 데려다줘도 될까요? 아무래도 오늘까지는 위험할 수 있어서……”

그의 요청에 한진우는 뭔가 말을 더 꺼내려다, 이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려. 묻고 싶은 건 많지만……”

“내일 다 설명해 드릴게요.”

“어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냐. 어련히 잘 하긋지.”


그렇게 말을 던진 후, 그는 헌권을 데리고 자신의 차로 향했다.

그들이어느정도 멀어진 것을 확인한 은가람에게 에반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 너희는 누구란 말이냐! 코사 노스트라를 적으로 돌리고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고…?”

이전까지와 달리, 그의 말에서는 옅은 두려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건 네가 알 거 없고.”

“우릴 죽일 생각인가?”

“말했잖아? 나는 너희를 죽일 생각이 없다고. 그렇다고 굳이 살려줄 의향도 없지만.”


“……?”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그의 말에 에반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밖에 없던 텔레포트 스크롤은 이미 사라진 상황.

그렇다고 지금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이미 한 번 지원요청이 되었고, 그에 응한 요원 하나가 보기 좋게 뻗어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는 테일러를 비롯한 다른 인원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여기서는 도망치는게 우선이다. 살아남는 녀석이 있다면…… 반드시 이 녀석에 대한 보고를 빠트리지 마라!’


‘알았어.’

‘알겠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 모습.

그러나 드래곤을 죽였다는 것은 그리 가볍게 볼 사항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빠져나오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말 그대로 드래곤을 일격에 잡았다는 소리.


‘절대로 살려둬서는  될 놈이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망설이지 않고 신호를 보냈다.


탓!
타닷!

그에 맞춰  명의 인원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끄악!!”

퍼억!

“윽……?!”



그러나, 그들의 도주시도는 그리 오래가지못했다.

재빠르게 이준우을 제압하고 테일러를 붙잡은 은가람.

그리고, 에반스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도 없는 칼날에 다리의 힘줄이 베인 상황이었다.

남은 한 명인 박상재 역시도 은서현에게 가볍게 제압되어 바닥에 엎드려진 상태였다.


“이럴……수가…!”

“어디서……”

분명 주변에는 은가람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들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본다면, 은서현 역시도 처음부터 함께 일행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가?

인지 범위에서 사라져 있던 은서현이었기에, 그들은 당연하게도 그에 대한 것을 잊고 있었다.

피가 솟구치는 다리를 쥐며 신음을 흘리는 에반스에게, 서현…… 아니, 서연은 다가가 입을 열었다.

“하나 묻자.”

“무슨…… 헛소리냐…!”

“3년전 런던에서의 일도 너희들의 소행이지? 대체 뭘 하려는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사람이 아닌 인형이 말을 하는 느낌.

등 뒤로 느껴지는 서늘한 오한에도, 에반스는 이를 악물었다.


“우리가 순순히 대답해  거라……”


그러나 그의 말을, 서연은 가차없이 잘랐다.

“아니, 처음부터 기대도  했어. 궁금하지도않고.”

“……뭐…?”

그는 자신의 손에 쥐여진 칼을 들어올렸다.


“잠……!”


푸욱-!

그리고는 가차없이, 에반스의 목에 그것을 꽂아 넣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깔끔한 살인.

어느정도 그 상황을 예상하고 있던 은가람이었기에, 그는 따로 서연을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끽해봐야 말단일 거고…… 털어봐야 나올 건 없지.’


굳이 영양가 없는 녀석들을 심문하는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서현이 하고픈대로 놔 두는게 낫다고, 그는 판단했다.

“나는 말했다? 죽이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굳이 살릴 필요도 없다고- 그렇게 덧붙이며, 그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한 걸음씩 자신에게 다가오는 은서연을 바라보며, 테일러는 얼굴을 새하얗게 굳혔다.

“으……으아……!”


에반스의 피가 새빨갛게 점철된 얼굴.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그의 표정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마치 사신이 다가오는 듯한 그 모습에 테일러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조차 못했다.

그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자,잠깐만! 말할게!  말할테니까 제발……!”

하지만 그것은 의미없는발버둥에 불과했다.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스걱-

네 명의 인원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모든 이들이  한 번의 손짓에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이다.

그만큼 서연의 손속은 잔인하면서도 깔끔하고, 망설임 없이 예리했다.

“……”

자신의 몸을 질척하게 적시는 붉은  속에서, 서연은 그저 가만히 그렇게 서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하아……  많이 가는 꼬맹이라니까.”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던 은가람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평소라면 꼬맹이란 단어에 즉각적으로 열을 올렸을 녀석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소년.

그를 바라보며, 은가람은 나지막이물었다.


“넌 대체 누구냐?”

“……”


“잡아먹으려는 거 아니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은가람은 완전히 경계를 푼 상태는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그에게 있어서,  앞의 소년은 그가 알던 ‘은서현’이 아니었으니까.

최근들어 어느정도 다듬어지기는 했어도 자신의 적의나 살기를 완전히 숨기지는 못하던 서현이었다.

그러나 조금 전, 그에게서는 아무런 살기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애초부터 ‘사람을 죽인다’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인지가 없는 듯했다.


은가람을한참동안 응시하던 소년이, 조용히입을 열었다.


“……너라면 말해 줘도 괜찮겠지.”

“일단 칭찬으로 들을게.”


매사에 날카롭고 과격한 서현과는 전혀 다른 말투.
전혀 다른 분위기.

한 없이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은서연. 서현의…… 내면 인격이야.”



*



“그러니께…… 허… 고거  복잡하구먼.”


다음날, 은가람의 설명을 들은 한진우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걸 뭐 우째 할 수도 없고……”

어제의 일이야 어떻게 되었든, 정황을 따져 봤을 때 은가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가 작정하고 덤벼들었다기 보다, 코사 노스트라 쪽에서 먼저 수를 써 온 것이었으니까.

현진이 그에게 어느정도 영향을 받고 있는 만큼, 은가람의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란디…… 워째 날 불렀댜? 너가 만날 그리 찾는 현화 쌤……”

그렇게 말하던 그는 차현화의 자리를 바라보고는고개를 끄덕였다.

“맞제이…… 휴가 갔구만.”

“그렇다고 회장님을 부르려니 혹시나 꼬리를 자르고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다음으로 가장 믿음이 가는게 진우쌤이었으니까요.”

그의 대답에 한진우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나가? 대체 우째 그래 되는 겨?”

사실상 그가 해 준 것이라고는   없었다.

한 학기도  가르치지 못했고,그에게 건냈던 말이라고는 그리 좋은 말도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있었던 수업 역시도 은가람은 수업 내내 퍼질러 잤었다.

은가람은 옅게 웃으며 설명했다.

“얼마 전에 제가 물었던 거 기억하세요? 헌터의 등급이나 강한 정도에 관해서요.”

“아아…… 뭐, 그렇기도 혔제이.”

실기 평가를 앞두고 있던 날.

대뜸 그에게 은가람은 질문을 던졌었다.

자신은 A급 헌터로서 얼마나 강하냐고.
A급이면 같은 A급 헌터를 얼마나 상대할 수 있냐고.

‘확실히…… 그  어느정도의 수라면 상대할 수 있다고 대답허긴 혔지.’

같은 등급이라고 해도  실력이 동일한 레벨인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도 힘의 차이가 확실히 존재하며, 자신은 A급 중에서도 중상위권에는 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대답한 기억이 있었다.


“고작 고거 믿고  야밤에 나한테 콜을 때려부린 거여? 내가 생각보다 약했으면 우짤라 그랬어?”

“그것도 있고…… 처음에 현화 쌤한테 저를 소개시켜 준 것도 진우쌤이었잖아요?”

“응……? 그랬등가…? 아, 그렸지?”

입학 첫날.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수식을 꺼내들었던 은가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듯이 써내려가던  역시도.

“보통이라면 말도 안되는 바보같은 이론이라고 생각했을텐데…… 진우 쌤은 그걸 그냥 넘기지 않으셨으니까요. 사실 그 때부터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어요. 진우 쌤은  강한 사람이겠다- 하고요.”

“흐흠……그,그렇구먼…”

익숙하지 않은 칭찬에 그는 괜히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은가람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것도 있고…… 혹시나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엉……? 뭘 말여?”

“……”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은가람은 결국  그랬던 것 처럼, 정공법을 택했다.

“몇 년 전 있었던 참사. 그것도 어쩌면 코사 노스트라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거든요.”


“……”

진우는 잠시 입을 다물고 은가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닐겨. 나도 그때는 사방팔방 찾아봤지먼…… 코사 놈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캤응게.”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네요.”


“하아…… 하지만 만약 니 말대로 놈들이 인공적으로 던전브레이크를 일으킬 수가 있다면……”

분명 말도  되는 가설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말했다.

“어느 정도는 생각해 보마.”

“네.”

은가람은 용건이 끝났다고 여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막 교무실을 나가려던 그를, 한진우는 다시금 불러세웠다.

“그리고, 마.”

“네?”

“어저께도 말혔지만, 그따구로 설치고 다니지 말어?! 한 번만  뒤지니 마니 혔다간……  때는 나가 니 대굴빡으로…”

“닷짜꾸리 혀 불랑게!”


“닷……! 이,이런 시방 미친놈이?!”

 뜬 채로 자신의 대사를 뺏긴 한진우.
그를 향해 웃음을 터뜨리며 은가람은 도망치듯 교무실을 나섰다.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확! 기냥! 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노무 자슥아!”


복도 너머로 한진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지만, 은가람은 이미 전력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하여간, 저,저 또라이 새끼……”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한진우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입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아…… 이라믄  되는디…… 괜히 정붙여 불면 나만 힘들어 진단 말여,이 문디야……”

그래도 은가람 정도라면.

은가람이나 은서현, 한아름이나 이현진.
그 놈들 정도라면……


왠지 괜찮을 것 같았다.



*

보기 좋게 한진우의 대사를 뺏은 은가람.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기던 그는, 계단 쪽 코너를 돌다 누군가와 마주쳤다.

툭-

“앗… 미안…”
“……”


정확히는, 부딪혔다는 것이 맞겠지만.

그로서도 경황이 없었기에 평소라면 진즉 기척을 느끼고 피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그의 표정에, 미묘한 감정이 감돌았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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