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37화 - 서렌치는 패작러를 엿먹이는 방법
에반스를 비롯한 총 6명의 인원.
그 중에서도 2명은 아직 아카데미의 학원생임에도, 그들은 던전의 공략을 진행시켰다.
아카데미에서의 시험때와 비교해 본다면 상당히미친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그리 긴장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당연하겠지. 지들도 안에 뭐가 들었는지 잘 알 테니까.’
아직 상위 던전을 공략하기는 힘이 부족한 상태임에도 은가람이 나선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던전의 공략은 꽤나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역시 인공던전이었군.’
그리고 그의 예상은 확신으로 자리잡았다.
게이트의 규모 자체가 A급인 것은 맞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맞을 ‘예정’이었다.
성장을 빠르게 가속화시킨 던전.
지금은 할만하지만, 이후로 난이도가 높아지게 되는 던전이었다.
‘그리고 그 수치에 도달하면 균열이 일어나도록 설계했겠지.’
게이트를 넘어선지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은가람은 그에 대한 대부분의 것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젠장…… 어쩌죠?”
무리 없이 진행되는 던전 속에서, 박상재가 조용히 물었다.
혹시라도 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영어를 사용한 질문이었다.
“어쩔 수 없지. 너무수월하게 두진 말고…… 그래도 아직 학생이니까 의욕이 충만한 건 어쩔 수 없잖아?”
“저러다 제 풀에 지쳐 떨어질 때 까지 기다리면 돼. 정 안되면…… 보스룸 앞에서 우리가 먼저 포기해 주면 되고.”
“적당히 잘한다고 해 주면 어련히 듣겠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에반스 일행들은 더 초조해 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저 놈들 뭐죠…?”
“협회에서 보낸 놈들이 아닐까요…?”
“아냐. 그럴 놈들을 우리가 모를리 없잖아?”
보스룸까지 도달하는데는 지금부터1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거의 막바지에 달하는 공략임에도 월영의 두 학생들이 지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이러다간……”
자칫 잘못해서 보스룸을 열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말을 내뱉으려던 테일러였지만, 에반스의 살기 어린 시선에 입을 닫았다.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우리 손으로 클리어해 버리면 된다. 그 대신…… 저 녀석들과 밖에 있는 놈도 같이 죽여버려야지.”
“우리가 보스를 잡을 수 있을까요……?”
“저 멍청한 놈들이 희생해 준다면야…… 못할 것도 없지.”
힘들게 설계하고 만들어 낸 던전을 곧바로 없애 버린다는게 아깝기는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괜히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고 해 버리면, 추후에 협회에서 의심을 살 수도 있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코사 노스트라와의 관계는 숨겨야 한다. 그게 최우선이야.”
비장한 표정으로, 에반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
‘오케이, 접수 완료!’
에반스와 테일러, 그리고나머지 두 일행들은 예상했던 대로 코사 노스트라 놈들의 끄나풀이었다.
‘조금 이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좀 힘들어 보이네.’
당장에 그들을 휘어잡을 약점이 없었다.
보안에 꽤나 철저한 그들인 만큼, 목숨으로 위협할 수만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럴만한 실력이 아직까지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막막한 건아니었다.
이미 이 던전을 망가뜨리는 것 만으로도 꽤나 열받을 테니까.
‘거기다 네 명의 요원들까지 죽어버린다면 놈들도 약오를걸?’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저 녀석들, 확실히 맞아. 관련된 놈들이야.”
“……고마워.”
조용히 말을건내자, 은서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의 몸에서 미세한 살기가 흩어져 나온다 싶더니, 이내 한 순간에 사라졌다.
“……?”
예상하지 못했던 작은 변화에 그를 돌아봤지만, 그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묵묵하게 던전의 공략에 힘쓸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채 10분이 지나기도 전에 우리는 보스룸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정말 힘드네요.”
“안 지치시나요?”
과하게 지친 기색을 보이며, 박상재와 이준우가 그렇게 물었다.
“아뇨? 전혀요. 조금 김새네요.”
그렇게 대답하자 그들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래, 꽤나 열받을 거다.
자존심까지 구기며 말하고 있을 텐데.
하지만 나는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 줄 생각따위, 전혀 없었다.
“이거……큰일이네요.”
“……?”
에반스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안쪽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만만치 않아요. 자칫 잘못하다가 다 죽을 수도 있겠는걸요……?”
그리고 그의 말에, 옆에 있던 테일러가 열심히 바람을 잡기 시작했다.
“설마, 이제까지 마주쳤던 적들이 유난히 약했던 게……”
“네. 아마 그럴 거에요.”
“보스에게 마력이 집중되어 있던 겁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히는 네 명.
‘염병들을 떨고 있네.’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아마 내가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어로 대화를 나눴겠지만, 아쉽게도 다 알아들었으니까.
나는 그들의 고민을 싸그리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에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문은 열어 봐야 하지 않겠어요?”
“가람씨…… 그러다 다 죽을 수 있어요.”
“저희는 안 죽어요.”
“……”
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실 대놓고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어디 한 번 떠 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유능한협회 헌터님들이 계신데 설마 우리를 못 지켜주시겠어요? 이제까지도 잘 지켜주셨잖아요~!”
“……아아, 그,그렇죠.”
잠시 끌어올렸던 적의를 곧바로 풀어버리는 그들.
‘하여간, 알기 쉽다니까.’
이런 놈들한테 일을 맡긴 코사 놈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안됩니다. 지금 B급 헌터이신 박상재 헌터와 이준우 헌터가 많이 힘들어 하셔서…… 이 이상의 공략은 아쉽지만 무리일 것 같아요.”
“네? 설마 협회 헌터님들께서 겁을 집어먹으신 건가요……?”
“그게 아니라 전략적인 후퇴라는 겁니다. 지금 당장 클리어하지 않아도, 조금 더 인원을 갖춰서 오는게 안전해요.”
“사람 목숨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테일러가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사실 그것이 정상적인 판단이기는 했다.
“그러니, 돌아갑시다.”
결론을 내리듯건내는 에반스의 말과 함께, 눈 앞에 자그마한 창이 떠올랐다.
[에반스_외 3명이 던전 공략을 포기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포기하시겠습니까?]
“……”
답은 정해져 있었다.
[두 명이 반대했습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노기어린 에반스의 말.
좋아 보이던 그의 인상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아, 제가 보기엔 죽을 것 같진않아서요. 일단 부딪혀 보려고 하는데요?”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니까요?”
“그러면 운이 없는 거겠죠.”
내 말에 그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러면 저희는 나갈 겁니다. 정말 두 분이서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맞는데요.”
“지금 그 말…… 상당히 무례한 발언인 건 아시나요?”
네 명의 기운에 조금씩 적의가 감돌기 시작했다.
[에반스_가 당신에게 적의를 보냅니다.]
[박상재_가 당신에게 적의를 보냅니다.]
[제약 해제_5%]
[현재 누적 제약 해제_17%]
슬슬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더 긁을 필요는 없겠지.
나는 거만한 자세로 한쪽 벽에 몸을 기댔다.
“글쎄요, 사실을 말한 것 아닌가?”
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내가 의도했던 대로, 내가 기댄 벽은 보스룸의 문이었다.
그그그긍……!
“어엇…?!”
“야,야!!”
“이런, 미친……!”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 보스 룸.
에반스 일행의 얼굴이 새하얗게 물들어갔다.
“이런 젠장…! 이제는 정말 위험합니다! 빨리 나가자고요!”
“이대로 있다가 다 죽을 생각입니까?!”
다급하게 입을 여는 그들을 향해, 나는 쐐기를 박아 넣었다.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는 ‘영어’로.
“이상한 말을 하네요. 어차피 우리 둘 다 죽일 생각 아니었어요?”
“……!”
“미친……!”
[에반스_외 3명이 당신을 적으로 인식했습니다.]
[모든 스테이터스 증가_100(20분)]
[새로운 스킬 제약 해제_섬살(A)]
눈 앞에 떠오른 시스템창과 함게, 네 명의 몸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쏟아졌다.
“어이구, 이 무서운 살기 봐라. 이제야 저희를 죽일 마음이 드셨나 보네요?”
“건방진 놈……! 처음부터 다 알고 있던 거냐!”
“우리가 너같은 놈 하나……!”
테일러가 그렇게 말을 꺼냈을 때였다.
[크아아아아아……!!!]
새까만 어둠으로 가득 찬 보스룸의 안쪽에서, 깊은 포효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제기랄……!”
“깨,깨어났는데……. 어떻게 하죠?”
“쯧……!”
잠시간 고민하던 에반스.
금방이라도 내게 덤벼들 것 같았던 그는 입매를 말아올리며 말했다.
“그래, 정 원한다면 알아서 잘상대 해 봐라. 그래봐야 죽기밖에 더하겠지만.”
“글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하잖아?”
“멍청한 놈! 저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입만 살아가지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신의 눈 앞에 시스템 창을 띄워 올렸다.
던전 공략의 포기를 다시 한 번 진행한 것이다.
이번에는내게 메시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네놈들도 그렇고, 밖에 놈도…… 아마 지금 쯤이면 차갑게 죽어있겠지.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아 좋겠어?”
“뭐라고……?!”
“후훗! 말 그대로다. 밖에도 우리 요원이 한 명 와 있거든. 코사 노스트라를 너무 우습게 보지 않는게 좋단다, 애송아.”
“그래봐야 이미 늦었지만.”
그렇게 말을 남긴 후, 그들은 곧바로 던전에서 모습을 감췄다.
쿵…
쿠웅……!
마치 기다렸다는 듯, 주변을 크게 울리는 진동소리.
그것은 점차가까워 지고 있었다.
“어우, 이제야 나갔네. 뭔 놈들의 엉덩이가 이렇게 무거워?”
나는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서현에게 입을 열었다.
“서현아, 먼저 나가 봐.”
“너는 어쩌고?”
“나 혼자서는 아마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거든.”
“……”
그에 녀석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 있던 일행은 괜찮은 건가?”
“아아, 걱정하지 마. 어차피 못 죽일 테니까.”
“……?”
“내킨다면 네가원하는 대로 복수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밖에는 ‘증인’도 와 있을 거거든.”
“그런가……”
잠시 그렇게 중얼거리던 녀석 역시도 이내 던전에서 퇴장했다.
녀석이 사라진 자리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작게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갑자기 말투가 왜 저래?”
말투 뿐만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사람 자체가 바뀐 듯한 기분.
“뭐, 나가 보면 알겠지.”
그렇게 대충 마무리 지은 나는, 여전히 어둡기만 한 보스룸 안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모든 동료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모든 스테이터스의제약 해제_던전 클리어시까지.]
“역시 이게 좋지.”
온 몸을 가득 채우는 마력에 나는 입매를 말아 올렸다.
“자, 그럼…… 어떤 놈인가, 확인 해 볼까나~?”
손에 쥔 단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나는 그 안으로걸음을 옮겼다.
보스 룸 안쪽으로 들어서자 몸을 찌르는 진득한 살기.
방 안을 밝히는 푸른 빛의 횃불.
그리고……
[하등한 인간 주제에…… 여기까지 왔는가! 너의 어리석음을……!]
“아, 시끄러워.”
[……뭐…?]
귀청을 때리는 목소리를, 나는 가볍게 끊었다.
“뭐야, 그렇게 겁을 집어먹길래뭔가 했더니, 그냥 큰 도마뱀이잖아?”
[도마뱀?! 한낯 인간 주제에 고귀한 드래곤을……]
“아아, 시끄럽고. 맨날 뭐만 하면 고귀하니 뭐니…… 아주 그냥 염병들을 떨어요.”
[……죽어라!]
푸화아아악!
정면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공간마저 녹일 듯한 불길.
지옥의 염화.
하지만 그런 거창한 수식어 따위, 이미 내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타워의 고층으로 올라가면 말 그대로, 큰 도마뱀일 뿐이었으니까.
거기에는 널리고 널린게 저런 드래곤들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나는 내가 애용하던 스킬을 전개했다.
“그림자 검날.”
손 끝에서 뻗어진 날카로운 그림자가, 레드 드래곤의 심장을 가차 없이 꿰뚫었다.
[어……어떻게……?]
“어떻게긴, 짜샤. 파충류 놈이 인간 님의 생각을 이해하겠냐?”
사라져 가는 놈의 몸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말을 던졌다.
[던전의 보스를 쓰러뜨렸습니다.]
[기여도_100%]
[모든 스테이터스 증가_30]
[레드 드래곤의 심장_을 획득하였습니다.]
[드래곤의 이빨_을 획득하였습니다. (10)]
[드래곤 의 뼈_를 획득하였습니다. (14)]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던전에서 퇴장합니다.]
아이고, 맛 좋다.
*
“젠장……! 어,어떻게 알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에반스는 입에서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던전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자신이 불러 둔 요원이 아니었다.
아니, 그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은 상태.
그들을 맞은 것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