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34화 - 제대로 놀아 보자!
“어우 멀미나……”
“서울 근처도 아니고 대관령이라니……”
버스에서 내린 월영의 학생들은 노랗게 뜬 얼굴로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이번에는 여기인가…? 부산 쪽이었다면 조금 나았을 텐데.”
거기는 한 번 가 본 적이 있었으니까.
자신이 막헌터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를 떠올리며, 은가람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서 은서현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 하러 여기까지오는 거야? 그냥 근처로 가면 될 것을……”
“어쩔 수 없지. 이런 던전은 갯수가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냥 아무 던전이나 가면 되는 거 아냐?”
“위험한 소리 하네? 우리가 가는 던전은 이미 검증이 끝마쳐진 던전들 뿐이야. 아무렴 학생한테 일반적인 던전을 깨라고 하겠냐?”
오래 전 부터 꾸준히 관리가 되어 안정성이 보장된 던전.
그런 던전만이 교육용으로 가용 가능했다.
“한 번 이렇게 이용하고 나면 리젠되고 관리하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매 년마다, 그리고 아카데미마다 장소가 다르지.”
“그러면 갯수가 부족하지 않나?”
“국내에는 총 372개가 있으니까 아마 부족하지는 않을 거야. 뭐, 매일같이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훈련기관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덧붙이는 은가람의 귀에, 한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대체 우예 살아왔길래 그딴 쓰잘데기 없는걸 다 알고 있다냐?”
“이런 쪽에 흥미가 조금 있어서요.”
“그려…… 어련하시긋지.”
이제는 그에게서 상식이란 기준을 포기한 한진우였다.
“뭐…… 알아서 잘들 허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조심들 혀라. 암만……”
거기까지 말하던 한진우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목소리를 줄였다.
“…오각수를 후드려 팼다고 혀도, 삐끗하면 뒤지는게 헌터들이니께.”
그의 말에 은가람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고마워요, 쌤.”
“뭘 고마벼? 즈그 반을 배신때리고 A반으로 도망간 주제에……”
“크흠…! 삼각…큼! 뿔……크흠!”
“……워매, 이놈의 자슥 눈치 주는 거 보소~?”
“장난이에요.”
질린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진우에게 그는 웃음을 지었다.
어이 상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한진우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은서현이 대뜸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삼각수의 뿔은 어떻게 가공해야 하는 거야? 제대로 가공하는 곳이 있기나 해?”
따지듯이 말하는 은서현.
은가람에게 사과의 의미로 선물을 받은 그 역시도 삼각수의 뿔이 흔한 소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 봐도 그의 주변에서는 그런 고급 소재를 가공할 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기말고사 이전에 새로운 무기를 얻을 것이라 기대했던 그였기에 실망감은 더 컸다.
“아아, 하기야…… 쉽게 찾기는 힘들겠지.”
“그러면 아무런 의미 없는 거잖아!”
“정 가공할 곳을 못 찾으면 매물로 내놓으면 되잖아? 팔면 아마 적어도 4~5천은……”
“내가 호구냐? 그걸 내다 팔게?”
“그러니까.”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은가람.
그에 할 말이 없어진 은서현은 그를 잠시 노려보다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 자존심만 세 가지고는.’
아직 어려서 어쩔 수 없는 걸까.
그래도 그런 녀석의 모습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던 은가람이었다.
“괜히 힘 빼지 말고 잘 가지고 있어. 기말 끝나면 내가 좋은 대장장이한테 데려다 줄 테니까.”
“……데려다 준다고?”
“그래. 그 사람, 지금 외국에 있으니까.”
“또 어딘데?”
말투는 여전히 짜증스러웠지만, 속으로 느껴지는 기대감을 그는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은가람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묘하게 빛나고 있던 것이다.
‘아직 어리긴 어리구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아직 언제인지 확정된 건 아니지만, 아마 기말 끝나고 얼마 안 되서 갈 거야.”
그런 그들의 대화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예? 형님, 외국 나가십니까?!”
“저희는요? 저희는 안 데려가나요?”
“아 깜짝이야.”
돌아본 곳에는 한동안 마주치지 못했던 2학년의 세 명이 서 있었다.
“뭐야, 너네?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
“저희도 좀전에 왔죠.”
“그나저나, 얼굴 보기 왜이렇게 힘들어요?”
“맞아요! 항상 갈때마다 안 계시더라구요.”
“아니, 우리 반에 너희가 왜 찾아와……?”
황당한 표정으로 묻는 은가람.
그에 경재석이 서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너무하십니다! 저희가 그렇게 싫으셨나요?”
“그래. 귀찮아.”
“그렇게 대답하실 줄은 알았지만 막상 들으니 또 감회가 새롭네요.”
“……”
상처가 된다는 것도 아니고, 감회가 새롭다니.
‘이녀석들도 정상이 아냐.’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정작 자신 역시도 ‘정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사실을, 그는 인정하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는 처음 받았던 질문에 대답했다.
“한동안 외국에 있었거든.”
“외국에요? 그런데 이번에 또 나가시는 거에요?”
“그래. 나갔다 왔는데 문제가 있었어서. 다시 가는 거야.”
“문제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은가람 형님에게 문제를 안기다니.”
“대체 무슨 일이었길래요?”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 그들을 향해 은가람은 간단하게 대답을 일축했다.
“너무 알려고 하지 마. 다친다.”
“헉……!”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는 3인방.
그들은 자기들끼리 머리를 맛대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가정사에 대한 거 아닐까?’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왜, 보통 저 정도로 강한 사람이 가질 만한 문제라면 그것밖에 없잖아?’
‘오오, 일리 있다!’
“일리 있기는, 개뿔이 있다! 다 들리거든, 이 자식들아?”
따다닥!
“아윽!”
그는 빠르게 세 명의 머리에 딱밤을 먹였다.
그에 머리를 틀어쥐면서도 그들은 베시시 웃어 보였다.
“뭐가 그렇게 좋냐, 너희들은? 이번에 기말은잘 준비하고 있긴 해?”
그의 질문에 세 명의 표정이 다시금 바뀌었다.
정말이지 감정의 변화가 급변하는 기이한 녀석들이라고, 은가람은 생각했다.
“그야 당연하죠!”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후후……”
“이번에는 문제 없이 1반으로 올라갈 테니까요!”
비장한 표정으로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들을 바라보며 은가람은 내심 속으로 감탄했다.
‘짜식들…… 그래도 나름 노력은 많이 했네?’
지난 중간고사때보다 한층 발전된 세 명의 기도를 알아챈 것이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다면 1반으로 올라가는데는 문제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깝치지들 말고, 정신들 챙겨. 괜히 그러다 또 실수하지들 말고.”
“넵!”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발, 제발! 귀찮으니까 좀 너희 반으로 가라. 너희 2학년 아니었냐? 왜 여기까지 와서 유난들이야?”
“하핫!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도록하겠습니다.”
“형님도 실기 힘내십쇼!”
은가람의 축객령에 그들은 깍듯하게 인사를 남기고는 2학년 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은가람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회귀 이후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저 녀석들에게 현혹 스킬을 사용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은가람이었다.
“이제 끝났냐?”
“엉…? 아, 맞다.”
그제서야 서현과 같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은가람.
“너 아직도 있었냐? 왜 몰랐지?”
“당연하지. 저 놈들 왔을 때 부터 기척을 지우고 있었으니까.”
“왜?”
“너처럼 되기 싫어서.”
“……현명하네.”
은서현의 발 빠른 대처에 그는 솔직한 감상을 전했다.
“그 스킬, 나한테도 좀 전수해 줄 수 없냐?”
“미안한데 이건 고유 스킬이라.”
“이기적인 꼬맹이.”
“그게 내 잘못이냐?! 그리고 꼬맹이라고 하지 말라니까!”
금세 열을 올리는 은서현.
그렇게 기말고사의 실기시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
던전의 입장은 총 5번.
정확하게는 5개의 영역을 따로 공략하는 형태였다.
일정량의 공략도를 두고 던전의 클리어 유무를 결정한다거나, 횟수에 따라 그 영역을 지정할 수 있다는 것 역시도 교육용 던전의 특징 중 하나였다.
본격적인 심사에 앞서 자신에게 배정된 조를 확인하고 있던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그런데 이번에는 왜 학년별로 안 나누나요?”
앞서 같은 학년, 그리고 같은 반에서 합을 맞춰 보았던 만큼 그런 의문을 가진 학생들은 꽤나 많았다.
“학년으로 나눠 버리면 인원이 너무 적어. 그리고, 실전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 위한 것도 있고.”
“실전이요?”
“나중에 헌터가 돼 보면 알 거야. 같은 팀원 중에는 선배도 있을 거고, 까마득한 후배도 있을 수 있으니까.”
“흐음……”
교사의 말에 학생들은 저마다 미간을 좁혔지만, 그 이상으로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없었다.
“자, 다들 준비해라. 1조 먼저 들어갈 테니까.”
“네에!”
덩치가 큰 교사의 인솔 아래에, 백여 명의 학생들이 몸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그들 중에는 2학년의 경재석과 최하림, 그리고 목연우 역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역시도 긴장하고 있기는 했지만, 다른 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감정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클리어의 유무보다, 압도적인 활약으로 반드시1반으로 올라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스슷……
화아아앙!
잠시 후, 주변을 울리는 중후한 소리와 함께 게이트가 개방되었다.
“자, 그러면 1조! 공략 시작!”
“옙!”
그렇게 1조의 공략이 시작되었다.
*
“나름 나쁘지 않게 하고 있는데?”
“그러게. 꽤 괜찮네. 아직한참이나 멀었지만.”
먼저 들어간 1조의 상황을 바라보며, 은가람과 은서현은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 옆에 있던 이현진 역시도 한 마디를 거들었다.
“그래도 나름 A반인 녀석들이니까요.”
“그렇지. 저런 놈들이라도 일단은 A반이니까.”
그렇게말은 하지만, 은가람은 내심 기특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하면 될 녀석들이 맞다니까.’
채 한 학기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그런 시간동안 저 정도로 발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왜 저렇게 다급하지?”
은가람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분명 실력이 는 것은 맞았지만, 지금 그들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훨씬 다급하고 초조해 보였다.
‘저러다간 제 풀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은데……’
중간고사 때는 그래도 자신의 페이스를 잘 유지하던 그들이었기에 은가람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냅둬. 알아서들 잘 하겠지.”
“그렇겠지?”
“아니라면 그냥 저게 쟤네들 한계인 거고.”
1조의 공략은 약40분 정도가 걸렸다.
다행이 낙오되거나 도중 하차하지는 않았지만, 공략이 끝난후 녀석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허억……헉…”
“진짜 뒤질 뻔했네……”
“으아…… 힘들어라…”
은가람은 기진맥진한 녀석들에게 가서 물었다.
“너희들 괜찮냐? 왜 그래?”
“그게……저희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이번에 잘 해야 올라갈 것같아서요……”
“뭐야, 그런 거였어…? 아직 멀었구만.”
그의 말에 셋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 열심히 했는데…”
“지난 번 보다 더 못한 것 같은 느낌이……”
풀이 죽은 녀석들에게 격려의 말을 보내는 은가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한 노력이 보였기에 한 마디 건낼 수밖에 없었다.
“아냐, 지난 번 보다 훨씬 낫긴 했어. 다만…… 다음에는 조금 진정하고 하는게 좋겠지. 실전이었다면 그런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위험할 수 있거든.”
스스로의 한계를 인지하고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 역시도 전투에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다.
특히나 한 순간의 방심으로 목숨을 잃는 것이 헌터라는직업인 만큼 더 그랬다.
“이번에 한계를 알았으니까, 다음번에는 조금 더 나을거야. 너무 풀죽지는 마. 그래도 점수는 잘 나올 것 같으니까.”
“그렇겠죠?”
“그래, 짜식들아. 또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가서 쉬어.”
“넵!”
“감사합니다!”
“하여간……”
금세 기운을 차린 그들은 그렇게 물러갔다.
녀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은가람을 향해, 사라져 있던 은서현이 나타나며(?) 말했다.
“넌 대체 어쩌려고 그러냐?”
“응? 뭐가?”
“뒷감당 할 수 있겠어?”
“……”
생각해 보니 그러네.
괜한 말을 했던 걸까.
뒤늦게 후회하는 은가람을 바라보며, 은서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에휴……대체 뭘 원하는 건지.”
“나도 그걸 잘 모르겠다.”
“그게 인생이지.”
“……이제 14살 먹은 꼬맹이가 못하는 말이 없네.”
“뒤진다?”
그렇게 1조의 평가가 간략하게 막을 내리고, 잠시 후 2조의 입장을 알리는 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조, 준비해라. 너희들은 두 번째 에어리어로 간다.”
월영 아카데미에서 치르는 두 번째 실기 시험.
‘이번에는 꼼수 없이 제대로 해 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은가람은 몸을 풀었다.
은서현과 이현진, 은가람 세 명이 포함된 2조.
이윽고 게이트가 개방되며, 그들은 던전 두 번째 에어리어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 제대로 한 번 놀아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