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32화 - 코사 노스트라
“아아……그 때의 일 말인가.”
자신의 서재에 찾아온 두 명의 학생.
은가람과 이현진의 말에 이진명은 침음을 흘렸다.
그는미간을 좁히며 은가람에게 말했다.
“그 소년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조금 힘들지.”
“왜죠?”
“이미 몇 번이나 언론에 말했지만…… 나는 그 때 일을 기억하지 못하니까.”
“기억하는 부분만이라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
그의 요구에 이진명은 가만히 은가람을 바라보았다.
최근 들어 조금씩 변화해 가고 있는 이현진의 모습.
자신이 해내지 못 한 것을, 은가람이라는 이 소년은 보란듯이 해내고 있었다.
그가 가진 힘도 그랬지만, 그 생각 역시도 평범한 사람과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찾아 올 정도라면 분명이유가 있을 텐데……’
수업을 빼는것은 좋지 않다.
편법을 부리지 말고 똑바로 살아가라.
자신의 두 아들에게 몇번이나 해 왔던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같은 경우는 다르다고, 그는 생각했다.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는 것.
그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함을, 그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잠시간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갑작스레 그 때의 일을 묻는 이유가 있겠지?”
다소 위협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
그러나 은가람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현진의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이진명과 이현진이 동시에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게는 동료의 배신을 알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두 번이나 녀석은 저를 배신했고, 또 잠시 후 다시금 돌아왔죠.”
“그것은 시스템을 통한 정보였나?”
“네, 맞습니다.”
그의 대답에 이진명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그로서도 어느 정도 짐작가는 스킬이있었으니까.
“때문에 저는 아침부터 녀석을 찾아가 제가 가진 ‘감지’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더라구요.분명 상태는 정상이라고 뜨는데, 동시에 상태이상에 걸려 있다는 정보창이 뜬 겁니다.”
“확실히 이상하군. 쉽게 넘길 만한 건 아니야.”
보통이라면 대수롭지 않게넘길 만한 정보에도, 이진명은 진지하게 그를 받아들였다.
“정신 지배 관련 스킬일 수도 있겠어.”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온 겁니다. 아직 저로서는 스킬의 숙련도가 낮아 자세한 정보를 알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렇군.”
그제서야 어느 정도 납득한 이진명.
그는 자신의 아들, 이현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잠시 후, 그의 두 눈에 묘한 안광이 스쳤다.
그리고……
“확실히 정신지배 계열의 스킬이다. 처음 보는 형태인 걸 봐서 고유능력이나 선택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군.”
“시전자를 알 수는 없습니까?”
“아쉽게도, 내 능력 밖의 일이다.”
그렇게 설명하며 그는 자신의 의자에 몸을 기대 앉았다.
그리고는 의자를 돌려 서재 뒤쪽의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아침을 시작한 도심의 풍경이 그의 두 눈에 드리워졌다.
그리고……
-매 번 이런 귀찮은 일에만 부르는군.
-하하, 그래도 이진명 헌터님이 계시면 훨씬 빨리 끝나지 않겠습니까?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
..
.
-……이게, 어떻게 된……거지…?
영국 런던의 풍경이, 그와 잠시 겹쳐 보였다.
비록 거대한게이트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래도 생기가 넘쳤던 풍경.
그가 잠시 한눈을 팔았을 뿐인데, 그 근방에는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게이트도, 헌터도, 빌런도……
그 무엇 하나 남아나지 않은 황량한 평야만이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짐작 가는 녀석들이라면…… 그 놈들 밖에 없지.’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에게 다가섰다.
“현진아.”
“왜,왜요?”
의아하게 묻는 현진.
그런 그의 턱을, 이진명은 한 손으로 툭- 때렸다.
“……잠시 자라.”
살짝 부딪힌 것같음에도 정신을 잃어버리는 현진.
이진명은 집사를 불러 그를 다른 방으로 옮긴 후,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코사 노스트라 놈들. 분명 그 놈들 짓이겠지.”
그에게 있어서도 그리 추억할 만한 과거는 아니었다.
본래 시칠리아에서 시작된 마피아 조직.
게이트의 개방 이후, 그들의 세력은 조금씩 커져, 영국에까지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당시 게이트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헌터 협회와 전투를 벌였던 것 역시 그들의 짓이었다.
“분명 전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분명 협회 측이 우세한 상황이었고, 당시에는 나 역시도 참전해 있었기에 우리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지.”
그러나 어느 한 순간, 그는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 그저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라고 치부했지.”
“그게 문제였군요.”
“그래. 아마정신지배 계열의 스킬이겠지. 그 순간에 내가 보고 들은것을 고스란히 전해 줬을 거야.”
“그래서……”
현진을 기절시킨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같은 스킬이라면, 현진의 시야 역시도 그들에게 전송되고 있을 수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사태의 원인은 내게 있었다.”
“무슨 말씀이시죠?”
“녀석들이 내 힘을 이용해 상황을 정리했다는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녀석들은 지금이라도 현진을 조종할 수 있다는 소리지.”
“……!”
그에 은가람은얼굴을 굳혔다.
잠시라고는 하나, S급의 신체를 조종했다는 것.
결코 만만하게 볼 녀석들이 아니었다.
“그럼…… 지금 현진의 상태로는……”
집사가 위험한 것이 아닐까.
아직 학생이기는 해도, 그는 엄연히 A클래스였다.
일반적인 집사가 상대할 만한 실력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진명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집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네?”
“그는 내 스승이었거든.”
S급 헌터인 이진명의 스승.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 이 건물에서 은가람과 이진명, 둘을 제외한다면 아마가장 강한 사람이 바로 그일 테니까.
“그러면 현진의 몸에 들러붙은 놈을 제거할 수는 없을까요?”
방법이 없다면 모를까,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빨리 제거하는게 안전했다.
그에 이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스킬을 제거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지. 바로 그 사건 때문에 내가 ‘간파’ 스킬을 익힌 것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하지만일단은 그대로 둘 생각이다.”
“……예?”
의아하게 묻는 은가람.
만약 지금까지 했던 이진명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위험했다.
어느 순간에 자신의 통제권을 잃고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진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쪽에서 그렇게나온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이용하실 생각이시군요.”
“아직 깊이 파고든 것 같지는 않으니 많은 정보가 새어나가지는 않았을거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은가람에게 제안했다.
“같이 하겠나?”
*
그로부터 며칠 후, 기말고사 필기 시험날이 다가왔다.
중간고사때와 마찬가지로 진행되는 필기시험.
띄엄띄엄 앉은 학생들을 향해, 정운성은 입을 열었다.
“다들 조용히 해라. 시험지 돌린다.”
손에 쥐여진 종이 뭉텅이를 분리하며 그렇게 말하는 그.
그러나 그 사이에서 손을 드는 사람이 있었다.
항상 다른 이들과 다르게 눈에 띄는 녀석.
은가람이었다.
“왜, 또?”
심드렁한 표정으로 묻는 그에게, 은가람이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는 저희도 같은 시험지 받는 거, 맞죠?”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중간 시험때 저랑 은서현만 이상한 시험지를 받았었거든요. 혹시나 이번에도 그런가 싶어서요.”
“……그럴 일 없다.”
그렇게 대답하며 정운성은 자신의 손 끝으로 분리해 뒀던 시험지를 조용히 덮었다.
‘현화 선생님, 이번에는 안 통할 것 같네요.’
속으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아무렇지 않게 같은 시험지를 돌린 후, 시험의 시작을 알렸다.
“시험 시작한다. 눈 돌리지 마.”
*
[그러…… 평소… 말좀 잘…… 그랬냐?]
[……니, 내가 뭘!]
[뭐얼?]
[……요!]
마치 자신의 두 눈으로 보는 듯한 시야.
한참동안 그에집중하던 사내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들키지 않은 건가?”
다급하게 이진명 회장에게로 향하는 그들을 보며 영락없이 들켰다고 생각한 그였다.
갑작스레 이진명이 숙주를 기절시켰기에 더 그랬다.
‘이진명이 이를 알았다면 분명 지우려 들었을 텐데……?’
여전히 자신의 스킬은 건재했다.
누군가 탐지한 흔적도 전혀없었고, 해제하려 하지도 않았다.
‘아직 선명하지 않으니…… 다른 대화를 내가 넘겨짚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깨어난 이현진에게 건내는 은가람의 말을 들어보면, 들킨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후우…… 운이 좋았구만? 하마터면 들키는 줄 알았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다시금 숙주의 시야를공유했다.
[대체얼…나답답……면 …들내미 뺨을 후리……?]
[뭐라… 거야?!……요?! …도 나름 잘 하고 …었거든요?]
[그래, 그거 맞……절한 너도 참 대단하……는 하더라.]
[우이씨……! 진짜 …만 갖고 그래!]
‘역시 아니야. 괜히 긴장했네.’
자신의 스킬이 들켰다면 이런 대화가 오갈 리 없다고 생각했다.
혹여나 상대가 알아차리고 역정보를 보낼 가능성도 있었지만, 일개 1학년 학생이 그 정도의 심리전을 걸어 올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계획에는 차질이 없으니 상관없겠지.”
조금 찝찝하기는 했지만, 이런 구질구질한 것 까지 보고하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자신을 꽤나 무시하는 그들이었다.
이 이상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가 생길 리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해결하면 될 것이다.’
상대는 기껏해야 이제 갓 입학한 아카데미의 1학년생.
제 아무리 발버둥쳐 봐도 자신의 상대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 그였다.
*
“네에?! 왜요?”
“그럼, 녀석이눈 시퍼렇게 뜨고 사기치지 말라고 하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줬어야죠!”
“그러면 그 녀석이 몰랐을까요?”
“……”
운성의 말에 현화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알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는 대놓고 이상한 답변을 싸질러 놨겠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의 성격이 모난 것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어디 모나다 뿐인가?
아마 ‘성격’이란 걸 형체화 시킬 수 있다면 매끈한 면이 단 한 군데도 없을 것이다.
“하아…… 알겠어요. 무리한 부탁 드려서 죄송해요.”
결국 그녀가 먼저 사과를 건냈다.
터덜터덜 연구실로 돌아간 그녀는 먼저 도착해서 쇼파에 앉아있는 은가람을 발견하고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꼭 그랬어야만 했니?”
“기말고사 고생했다고 먼저 해 주면 안돼요?”
“고생했냐?”
“안했죠.”
“……”
하여간 말이나 못 하면 얄밉지라도 않지.
그런 생각으로 은가람을흘겨보는 현화.
그러나 그런 것에 눈썹 하나 까딱할 은가람이 아니었다.
“오늘은 커피 없어요?”
“맡겨놨냐?”
“논문 쓰러 왔는데요?”
“……코스타리카 볼캐닉 어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두를 뒤적거렸다.
잠시 후, 연구실에 고소한 커피 향이 가득 찼다.
자신의 잔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현화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하아…… 이런 게 행복이지 않을까? 자그마한 내 연구실 안에서 조용히 맛있는 커피를 즐기는……”
“뭐,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들하니까요.”
“……”
의외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은가람.
현화는 의외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런 애늙은이 같은 소리에 공감해주다니, 의외다?”
“애늙은이 같다는 건 아시네요?”
“그래! 이게 바로 평소 네 모습 아냐? 그리고 나 안늙었다 맞을래?”
이제는 어느정도 적응이 되어 나름 무덤덤하게 말하는 차현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은가람은 옅게 웃음을흘렸다.
“그런데 웬일이냐? 네가 스스로 논문 쓰러도 오고.”
“웬일이냐뇨? 마치 제가 도망이라도 다닌 것 처럼 말씀하시네요?”
“아니었어?”
“맞지만요.”
“얼척이 없네.”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는 차현화.
은가람은 잠시 자신의 커피를 음미하다, 소파에 등을 기대 천장을 바라봤다.
“뭐어…… 사실 맞는 말이니까요. 행복이라고 하는 게, 꼭 세상의 정상에 서야만 있는 건 아니더라구요.”
“……꼭 해 본 것 처럼 이야기하네.”
“제가 이상했던 점이 한두번인가요?”
“항상 나사가 빠져 있긴 했지.”
솔직하게 말하는 차현화.
은가람은 소파에 기대 있던 몸을 세워 테이블 위로 여러 장의 종이를 꺼내들었다.
얼마 전 까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논문들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전에 못 드렸던 거, 드려야겠네요.”
“아! 나도 까먹고 있었어!”
“말하지 말걸.”
“그러니까 말야. 머리 좋은 돌대가리 맞잖아?”
그녀의 말에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은가람은 눈 앞에 시스템 창을 띄워 올렸다.
그리고는 5개 남아 있는 오각수의 뿔 하나와 오각수로부터 드랍된 재료들 몇 개를 집어 차현화 쪽으로 밀었다.
이내 그녀의 눈앞에 그것들이 떠오르며, 현화의 인벤토리로 차곡차곡 정리되어 들어갔다.
“땡큐!”
“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어느 정도는 더 지원해 드릴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럼 뿔 하나만 더……”
“어느 정도라고요.”
“……쳇.”
아쉬움에 혀를 차는 그녀.
자신의 인벤토리에 쌓여 있는 재료 목록을 둘러보는 그녀에게, 은가람이 입을 열었다.
그의 손과 눈은 테이블 위에 놓여진 논문에 고정된 채였다.
“선생님, 혹시 나중에 시간 되세요? 유럽 쪽에 가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