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27화 -배반
“형님, 괜찮을까요?”
던전의 내부로 들어서며 묻는 부하.
그 질문에 문신의 남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괜찮아. 그 여자만 아니라면 어차피 피래미들이겠지.”
“하지만……”
“일단은 써먹을 수 있는 만큼 써먹자고. 어차피 던전을 끝낼 때 까지는 한 배를 탄 상태니까.”
B급 던전이면 어느 정도 난이도는 있는 편이었다.
물론 자신들끼리만 해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혹시나 죽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는 법.
총알받이가 늘었다고 생각하면 편했다.
그런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은서현은 은가람에게 물었다.
“쟤들 무슨 대화 하냐?”
“아무것도 아냐. 그냥 잘해보자는 거지, 뭐.”
그의 옆에서 한아름 역시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착한 대화로는 안 들리는 것 같은데……”
“방언이 좀 섞여서 그래.”
“그런가…?”
“근데 현화 선생님은 왜 안 데려오신 건가요?”
이현진의질문에 은가람은 걸음으르 옮기며 대답했다.
“그 쌤은 밖에서 조금 하실 일이 있거든.”
“하실 일이요……?”
“음…… 사태 수습이라고 해야 할까?”
던전 브레이크는 분명 벌어진다.
정확한 시점은 던전을 클리어한 직후.
자신들이 찾아오지 않았어도 상황은 똑같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은가람이 구태여 찾아온 것은 헌터로서의 사명감따위가 아니었다.
‘그래도 직접 가져가는게 마음 편하지.’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쏟아져 나오는 ‘각수(角獸)’들과, 그들에게서 드랍되는 하나의 무기.
그것이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냥 적당히 도와주면서 몸만 잘 사리면 돼. 어차피 그럴려고 온 거잖아?”
“그건 맞긴 한데……”
“형님이그렇게 말하면 뭔가 좀 무섭거든요.”
“응? 내가 뭘?”
그걸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걸까.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은가람을 바라보며 그들은 같은 생각을 품었다.
*
투욱- 콰아앙!
탓!
“이현진!”
“넵!”
스르르릉- 촤앙!
은가람이 놓친 몬스터를 현진의 도가 깔끔하게 베어냈다.
곧이어 달려드는 세 마리의 몬스터는은가람과 한아름, 그리고 은서현이 각각 맡아서 처리해 나갔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 빛을 보이기 시작하는 합.
조금씩 지쳐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은가람은 입을말아 올렸다.
“조금만 더 버텨! 혹시라도 무리일 것 같으면 곧바로 말하고.”
“허억……헉…! 누가 무리라는 거야! 무시하지 마!”
“저도… 아직은 버틸 수 있어요!”
“나도 아직 더 싸울 수 있어!”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던전의 마지막도 그랬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의 체력 역시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
‘슬슬 준비해야겠구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손에 쥔 단도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들의 전투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마피아 쪽의 사람들은 미간을 좁혔다.
“저 녀석들…… 꽤 하는데?”
“학생이라고 해서 무시했더니, 이대로는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어.”
“형님, 어떻게 하죠?”
수군거리는 그들을 향해, 문신의남자가입을 열었다.
“아직 아냐. 최대한 힘을 빼 놓은 다음에 노리면 되겠지. 클리어 직후에 일을 벌여도 늦진 않아.”
지금 섣불리 이빨을 드러냈다가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될 확률이 높았다.
저 정도의 실력이라면 죽자고 달려들었을 때 입을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사람대로 잃고, 던전은 던전대로 클리어를 못하게 되는 격.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어차피 얼마 안 남았다. 저쪽에서 원하는 건 고작해야 단검 하나 뿐이니까…… 확실한 쪽으로 가자고.”
그렇게 그들은 던전의 마지막을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
쿠우웅……!
그그그긍……
던전의 공략이 진행된 지도 어느덧 세 시간.
이제는 체력도, 준비해 온 물약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입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제…… 드디어 마지막이군…!”
무거운 마찰음과 함께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석벽.
그 너머가 던전의 마지막 보스룸이었던 것이다.
“와, 이게 보스룸이야?”
학생들로서는 처음 마주한 그 모습에 은서현과 이현진, 그리고 한아름은 입을 벌렸다.
캄캄한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서늘한 공기가 그들의 뺨을 스쳐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은가람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
“선물은 여기까지야. 어땠어?”
“……뭐?”
이제 클리어가 코앞인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황당한 표정을 짓는 세 명을 향해, 은가람은 조금씩 살기를 피워올렸다.
말아올려진 그의 입매가 평소와 다르다는 사실을, 그들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너희는 그만 돌아가 줬으면 좋겠다는 말이지.”
“자,잠깐만! 가람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난 아직 싸울 수 있어!”
“나도 마찬가지라고!”
“저도요!”
그러나 은가람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상한 말을 하네? 내가 왜 너희같은 녀석들이랑 보상을 나눠야 해?”
“……어…?”
“이 정도까지 해 줬으면 됐잖아? 그러니까 이 이상 욕심부리지 말고 물러나라, 이거지. 안 그러면 저 쪽의 아저씨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그게 무슨……?”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이현진.
때마침 은가람의 뒤로, 네 명의 남자들이 와서 섰다.
은가람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 현진아. 조금만 더 잘 알아보지 그랬어? 내가 영어를 이렇게 잘 하는걸 알고도 의심이 안 가디?”
“서……설마…!”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던 거야.”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듯, 네 명의 사내가 그들을 애워싸기 시작했다.
“너 이자식……! 이런 식으로…!”
“현화 쌤이 알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글쎄? 나도 정말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죽어버릴 텐데?”
그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
속았다-
뒤늦게서야 그 사실을 눈치챈 세 명이었지만, 그들로서는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체력도 체력이었고, 확연한 수적 열세와 힘의 차이를 극복할 방법이 차마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있는 힘껏 저항해서 살아남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제기랄, 죽여버리겠어!”
“그래, 힘 내.”
노골적으로 비꼬는 은가람.
가장 먼정 움직인 것은 은서현이었다.
다른 이들이 반응하기 힘들 속도로, 은가람을 향해 접근한 것이다.
그의 손에 쥔 나이프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의 칼날이 은가람의 목에 닿는 순간─
파앗!
“……어?”
“뭐, 뭐야!?”
“이 놈들…… 어디로 사라진 거지?!”
세 명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증발하듯 자취를 감췄다.
*
‘에휴……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던전 안쪽의 상황을 지켜보며, 현화는 작게 한숨을내쉬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며칠 전, 비행기에서 들었던 은가람의 말이 재생되고 있었다.
*
“선생님한테만 미리 말해줄게요. 전…… 녀석들을 배신할 생각입니다.”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번에 발생하는 던전은 B급이에요. 그 중에서도 그리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구요. 하지만…… 막상 던전브레이크가 터지게 되면 그 세 명은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안 들을 걸요? 그 때면 한창 자신감이 고취되어 있을 테니까. 그리고 아시잖아요? 던전에서 그런 무모함이 얼마나 위험한지.”
“……”
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게이트의 발생은 도착하자마자 당장 이루어지는게 아니었으니까.
며칠간의훈련을거치고 나면 그들은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납득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넌?”
“저야뭐……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고기방패들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고기방패……?”
*
처음에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었다.
아직 그 장소에 도착한 것도, 게이트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아는지도 의문이었고.
그러나 그에 대한 사실을 은가람은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제가 나오기 전 까지 이 비밀은 꼭 지켜주세요!’ 라고 당부의 말을 덧붙일 뿐.
“뭐…… 녀석이 좀 이상하긴 해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일을 벌일 녀석은 아니니까.”
애써 잡생각을 지워버리며 그녀는 조금씩 마력을 끌어모았다.
지금 그녀가 하려는 일은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었다.
게이트 밖에서 그 내부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소리로밖에들리지 않는 것이었으나, 그녀가 가진 지식과 능력이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이것도 사실 은가람 그녀석 덕이 크긴 하지만 말이지……!’
얼마 전 은가람이 증명해 낸 공식의 덕이 컸다.
본래라면 몇 년 후 자신이 증명해냈을 공식이었으나, 그녀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잠시 후-
파앗!
“죽여버리겠어……!”
“……?!”
“어……?”
걸걸한 은서현의외침과 함께 세 명의 모습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뭐야?여긴……”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어리둥절해 하는 세 명을 바라보며 차현화는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심해. 여긴 게이트 밖이니까.”
“현화 쌤?”
“이,이럴 때가 아냐! 은가람, 그 놈은……!”
“알아. 너희를 죽이려고 들었던 거. 수상한 점이 있기는했지만 설마하니 그럴 줄은……”
그렇게 그녀는 거짓말을 내뱉었다.
‘나는 할만큼 했어. 수습은 알아서 잘 해 보라고, 머리 좋은 돌대가리.’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놈들은…… 놈들은어디로 간 거지?!”
당황하는 대머리를 바라보며, 나는 낮게 혀를 찼다.
“쯧……! 도망갔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군.”
“뭐라고! 이런 미친 새끼야!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대놓고 그들을 죽이려 들었던만큼, 그것이 실패하게 되면 돌아오는 여파가 너무컸다.
나는 그들을 안심시켰다.
“뭐가 문제지, 제임스? 그저 방해물이 사라졌을 뿐이잖아?”
“뭐가 문제냐고…? 이야기가 다르잖아!”
“걱정 마. 어차피 고작해야 학생 세 명일 뿐이야. 소리없이 죽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놈들이라고. 그런 놈들의 말을 협회가 진지하게 들어 줄 것 같아?”
“……”
녀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녀석들을 죽일 생각이 없었으니까.
대신……
[한아름이 실망했습니다.]
[이현진이 배신감을 느낍니다.]
[이현진_외 3명이 당신에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조건부 제약 해제_50%]
[이 수치는 대상이 진실을 알기 전까지 유효합니다.]
[일시적 제약 해제_10%(던전 클리어시까지)]
[스테이터스 증가_근력_50(던전 클리어시까지)]
.
.
.
길게 이어지는 메시지창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현화 쌤이 바람 잘 잡아주고 있구만.’
혹시라도 눈치채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 그런 일은없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이렇게 된 이상, 빨리 클리어하고 나가서 놈들을 죽이는게 낫지 않아?”
“쯧……! 이번 일이 끝나도 네놈에게 돌아갈 보상은 없을 거다.”
“약속한 건 주셔야지?”
“……그것 외에는 몬스터의 손톱 하나 못 가져갈 줄 알아!”
눈 앞에 계약서를 팔랑거리며 말하자, 그는 인상을 팍- 구기며 보스 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감히 내 영토에 발을 들이다니……]
“대체 어떤 놈이지…?”
“다들 긴장해라!”
보스룸안으로 들어서자, 서늘한한기와 함께 방 안에 횟불이 둘러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4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거인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흐림두르스라…… 꽤 오랜만에 보네.”
거대한 두 개의 도끼와 함께 냉기를 다루는 종족.
타워의 아래쪽에서야 꽤 흔한 몬스터였지만, 던전에서는 그리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 몬스터였다.
[죽음을 맞이해라, 건방진 인간 놈들!]
“다들 피해!”
콰아앙!
흐림두르스가 거대한 도끼를 내려찍자, 그로부터 날카로운 얼음이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몸을 피하지 못한 두 명이 그 얼음의 송곳에 꿰뚫리며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제기랄……! 다들 흩어져서 공격해라!”
다급하게 지시를 내리는 그들의 리더, 제임스.
나는 그런 전투광경을 약간 떨어진 곳에서 여유롭게 관람했다.
간간히 날아오는 공격을 한 손으로 가볍게 파훼시키면서.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제임스의 악에 바친 목소리가 내 귓가로 날아들었다.
“이런 개자식아! 넌 왜 안 싸우는 거야!”
“응? 나도 싸워야 하는 거였나?”
“협조하지 않겠다면너부터 죽여줄 줄 알아!?”
그의 말에 나는 웃음을 참아내며 말했다.
“알았어, 화내지 말라고.”
그렇게 나 역시 전장에 참여했다.
그리고─
툭!
“으악?! 이런 개-”
퍼걱!
“아이고,실수~!”
“미친 새끼야!!”
푸확!
당연하게도, 제대로 싸워 줄 마음은 전혀 없었다.
본래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것 보다, 이런 식으로 살살 긁는게 더 빡치는 법.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눈 앞에 여러 개의 메시지창이 줄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