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26화 -내 안의 악마?
“이거…… 맞지?”
자신들의 눈 앞에서 일렁이는 마력파장을 바라보며 두 눈을 크게 뜨는 남자들.
그의옆에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얼굴의 절반에 문신을 한 그는 입매를 말아올리고 있었다.
“분명하다. 이런 행운이 우리에게 찾아들 줄이야.”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기분.
그들이 바라보는 파장은 분명 게이트의 징조였다.
그것도 자신들의 수준에 걸맞는 B급.
“설마하니 우리 영역에 이런 돈줄이 들어올 줄은 몰랐는걸?”
그들은 작은 세력의 범죄조직이었다.
본래 이탈리아계 호주 마피아인 ‘오노라타 소치에타’로부터 떨어져 나온 약소 조직으로 최근에는 헌터 협회에 대비해 다수의 헌터까지도 영입한 상태였다.
“B급이면 저희 애들로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이대로 간다면 아무래도 내일 오전 중으로 게이트가 열리겠군.”
“이걸로 금전적인 문제는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군요.”
게이트가 열리고 헌터 협회가 자리잡으면서 과거의 범죄조직은 점차 그 세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헌터’라는 것이 흔해진 세상.
더 이상 총과 칼은 절대적인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협회에서 가만히있겠습니까?”
걱정스레 묻는 말에 문신을 한남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가만히 안 있겠지. 아마 당장에라도 헌터들이 찾아들 거다.”
“……괜찮을까요?”
“문제 없다. 어차피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은 우리니까. 먼저 공략을 시작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 던전의 소유권은 자연스레 우리에게 돌아오는 거고.”
물론, 그가 걱정하는 것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헌터 협회에는 다양한 능력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가진 기술력 역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어쩌면 벌써부터 낌새를 눈치챘을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도 쪽수가 있지. 조금만 시간을 끄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차피 걔네들은 양지에서 사는 놈들…… 법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만큼 우리가 더 유리해.”
그리고 공략이 끝난 후 부터는 그로부터재화를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압박이 심하다면 적당한 가격에 소유권을 팔아버리면 그만.
“그리고 기회를 봐서 가능할 것 같으면…… 그대로 던전 안에서 죽여버리면 그만이지.”
던전 안에서의 살인.
증거도, 증인도 존재하지 않는 살인은 그들에게 범죄가 아니었다.
내일 누가 찾아들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그들은 그렇게 미소지었다.
*
“너……제정신이냐?”
자신있게 손을 든 누군가를 향해, 은서현은 그렇게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에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당연하지!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다고?”
“……”
그렇게 대답하는 한아름을 바라보며, 은가람과 이현진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할 리 없는 존재를 보는 기분.
비유하자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같은 느낌이었다.
짝짝짝…
그러나 은가람은 감탄의 박수를 보냈다.
“대단한데? 확실히 엘리트는 남달라?”
“헤헤……”
“강한 상대에게서 배운다.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패배를 두려워 하지 않는 모습은 아주 좋아. 정말로, 흔치 않거든.”
강자에게 강하게, 그리고 약자에게는 약하게.
지극히 교과서적이고 단순한 말이었지만, 정작 그것을 따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너희도 좀 본받아라, 이 화상들아.”
괜히 시선을 피하는 은서현과 이현진에게 현화가 한 마디 내뱉었다.
여전히 그녀의 말에는 가시가 돋혀 있었다.
“하지만, 아름이의 의견은 기각이야.”
“뭐? 왜!”
“나랑 붙는 건 다음이거든. 오늘은 선약이 있어.”
그렇게 말하며 은가람은 이현진을 바라보았다.
“자……잠깐만, 진짜로?”
“그럼 내가 장난같냐?”
“아무리 그래도 조금 위험하지 않아? 평범한 C클래스3반이라면 진짜로 죽어버릴 수도 있어! 내가 의도한 게 아니라도!”
그의 말은 위협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A반과 C반은.
혹여라도 오해를 살까 억울한 감정으로 호소하는 그에게, 은가람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상관없으니까 해야지? 그리고 네 발언은 조금 위험하지 않아? 자꾸 그렇게 반말하면 내가 진짜로죽여버릴 수도 있어? 의도하고 말야.”
“……”
대놓고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는 은가람.
안쓰러움마저 느껴지는 이현진의 어깨를, 은서현과 차현화가 조용히 다가와 두드렸다.
“고생해라. 제자 생활이든, 이번 결투든.”
“그렇게 당당하던 현진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그것이 더 그를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
숙소의 근처에 위치한 유료 훈련장.
우리는 하룻동안 훈련장 전체를 빌린 상태였다.
“자, 그럼 1경기, 준비됐어?”
[나야 뭐 늘 준비만전이지.]
[나도 준비 됐어, 가람아!]
“그래. 아름이는 시작할 때 스킬 사용하는 거 꼭 잊지 말고.”
내 말에 그녀는 대련용 도끼를 쥔 손에 힘을 불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 그래. 너도 정말 열심히 해 봐.”
[영혼 좀 불어넣고 말해요!]
현진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나는 경기를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화면을 바라보는 현화 쌤에게 주의를 주는 것을 잊지 않고.
“쌤…… 마음 단단히 잡아요.”
“응? 뭐가?”
“아뇨, 아니에요.”
아직 그녀도 아름이의 진면목을 본 적 없었으니까.
삐이익-
이내 낮은 부저음과 함께대련이 시작되었다.
[하아압!]
빠르게 먼저 치고 들어가는 이현진.
그리고, 그에 맞서 한아름은 조용히 자세를 굳혔다.
두 개의 토마호크를 들어 간신히 현진의 도를 막아낸다.
그에 굴하지 않고 곧바로 이어지는 현진의 공세.
“확실히 아름이가 최근 노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현진한테는안 될 것 같은데.”
“그거야 그렇겠죠. 이기고지는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중요한 건 그를 통해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이길 수 있다면 그건 덤이고.
확실한 건, 한아름은 이번 경기를 통해 엄청나게 발전하리라는 것이었다.
이기건, 지건.
‘그리고, 사실 경기를 져도 심리적으로 이길 수는 있거든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화면을 응시했다.
여전히 그녀는 스킬의 사용 없이 현진의 공격을 풀어나가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났다.
그러나 다소 힘겨워 보이는 모습.
나는훈련장의 마이크에 내 스마트폰을 가져다 댔다.
“응…? 뭐 하는 거야?”
“아, 문명의 힘을 조금 빌리려구요.”
“뭐……?”
얼마 전 들었던 멜로디…… 아니, 그게 멜로디가 맞나 싶기는 한가 싶었던 한아름의 벨소리.
나는 곧바로 그 곡을 찾아냈었다.
“기술 참 좋아요? 노래만 들려 줘도 알아서 제목까지 척척 찾아 주니까.”
나는 검색창에서 그 노래를 부른 밴드를 찾아, 적당한 곡을 재생했다.
[어……?]
[뭐야, 이건?]
시작은 비교적 잔잔하게.
훈련장 안을 조금씩 울려퍼지는 일렉기타의 소리에 둘은 잠시간 멈춰섰다.
그리고,몇 마디 후 이어진 소울 넘치는 기타리프와 드럼 소리에 한아름의 기도가 급변했다.
[Undo these chains, my friend……]
[뭐야, 이 노래는……?]
[……]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이현진.
그리고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리듬을 따라 발 끝을 움직이는 한아름.
평소 같았으면 대련에 집중하라고 한 마디를 던졌겠지만, 나는 일부러 말을 아꼈다.
전투 중 딴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직접 겪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STEP INSIDE!]
힘찬 그로울링과 함께 노래의 후렴구가 시작되었고─
[덤벼봐, 이 개자식아!!]
[으아악?!]
이현진은 마주할 수 있었다.
한아름의 내면에 숨어 있던 악마(Devil)를.
“……진짜 깬다.”
“말했잖아요? 마음의 준비 철저히 하시라고.”
“넌 대체 무슨 악마를 만들어 낸 거냐…?”
“제가 만든게 아닙니다. 본인이 숨기고 있었을 뿐……”
스마트폰에서 재생되는 잔혹한 뮤직비디오를 바라보며 차현화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허억…… 헉……”
“여, 고생했다?”
잔뜩 지친 얼굴로 숨을 몰아쉬는 이현진.
그의 상대였던 한아름은 경기장 한가운데 뻗어 있는 상태였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승자는 이현진.
나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그에게 말을 던졌다.
“그래서, 어땠냐? C클래스의-”
“형니임……!”
정정한다.
지친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를 고스란히 드러낸 얼굴이었다.
녀석은 나를 붙든 채로 울먹였다.
“아,악마를 봤어요…… 저는 악마를 보았다구요!”
“뭐…… 틀린 말은 아닐지도.”
선곡 한 번 절묘했네.
곡의 제목을 떠올리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야야, 정신 챙겨 임마.”
뺨을 툭툭 치며 나는 그를 진정시켰다.
“언제는 뭐? C클래스는 왜 왔냐느니, 죽여버릴지도 모른다느니 하더만?”
“……저럴 줄은 몰랐죠. 저렇게……”
“그러니까 말했잖냐.”
그렇게 말하며 나는 웃음을 흘렸다.
“……역시 사람이 아니었어.”
그리고 경기를 관람하던 은서현은, 몸을 부르르 떨며 그렇게 덧붙였다.
“너도 나중에한 번 해 볼래?”
“……”
녀석은 말 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쓰러져 있는 아름이를 부축해 온 현화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진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그런 걱정을 전혀 모른 채로, 한아름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
휴양지에서의 특훈이 진행된 지 벌써 나흘째.
이른 아침부터 월영 아카데미 소속의 다섯 명은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아름이 은가람에게 묻자, 옆에 앉아있던 이현진이 움찔 몸을 떨었다.
“……현진이 넌 또 왜 그래?”
“아,아무것도 아냐.”
그에 나머지 일행들은 피식- 웃음지었다.
“세상 넓다는 걸 이제서야 느꼈나 보지.”
운전대를 잡은 채 그렇게 말하는 현화.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은가람이 뒤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이 사실 메인 요리야.”
“메인 요리?”
“현화 쌤이랑 내가 준비한 ‘선물’이 있는 곳이거든.”
“선물?”
선물이라는 단어에 한아름의 표정에 기대가 가득 찼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은서현과 이현진 역시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래. 아주아주 마음에 들 거야.”
“드디어 휴양을 즐기는 거야? 나 서핑 배워보고 싶었어!”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러면?”
“가 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대답하며 은가람은 웃음지었다.
세 명의 얼굴에서 기대감이사라지고 실망감과 두려움이 조금씩 차올랐다.
은가람의 저 웃음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그들은 너무도 잘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달렸을까.
그들은 고대하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 드리운 광경에 세 명의 학생들은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하아……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자조적으로 한숨을 내쉬는 은서현.
“그러니까……아니지, 가람아? 아니라고 말해 줘……”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아름과-
“선물은요……? 선물… 내 선물 돌려줘요……”
마찬가지로 눈 앞의 상황을 외면하고 싶은 이현진.
그런 그들의 앞에는 발생 직전의 거대한 게이트의 입구와,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십수명의 험악한 남자들이 있었다.
“이 정도면 한 10분이면 되겠죠?”
“그 정도도 안 걸리지 않을까? 한……으음… 6분…42…41초 후 정도면열릴 것 같은데.”
“역시 정확하시네요.”
“학생이면서 그런 걸 아는 니가 더 이상하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니?”
“네, 전혀요.”
마치 하나의 미술품이라고 관람하듯 게이트를 바라보는 둘.
그런 그들의 앞에, 한 사내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머리를 완전히민 채, 얼굴의 절반에 문신을 한 남성이었다.
“뭐야, 당신들은?”
호주 억양이 강하게 들어간 영어.
그에 은가람이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냥 저 던전을 공략하려고 온 것 뿐이야. 크게 신경 안 써도 돼.”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이 게이트는 우리 거다. 물러서지 않으면 네 모가지를 저 앞에다 걸어 주마.”
“아아, 소유권은 관심 없어. 그냥 ‘학생’의 신분으로, 견학만 하려고 하는 건데…… 그것도 안될까? 원하면 각서까지 써 줄게.”
“하! 우리가 너네 말을 어떻게 믿고?”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말하는 남자에게, 현화가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이 정도면 믿을 수 있을까? 원한다면 정당한 값을 지불할 수도 있는데……”
물론, 그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 워…원하는 게 뭐야?!”
“견학이라니까? 소유권 따위, 관심 없어.”
그리고 그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머지 세 학생은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야? 재수 없게 영어는 또 왜 저렇게 잘해?’
‘현화쌤이야 그럴 수 있지만…… 가람이도 유학파였어?’
‘그건 아니야. 출국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직접 알아 본 거니까 확실해.’
‘근데 저 유창한 영어는 대체 뭐냐고!’
‘낸들 아냐!’
타워를 오르기 전 이미 S급을 달성했던 은가람.
헌터 생활을 17년이나 해 온 그였기에, 해외로 나가는 일도, 타지에서 생활하는 일도 많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척 봐도 범죄에 연류되어 있을 법한 인상을 지닌 상대.
그러나 그런 ‘사소한’것 보다, 파면 팔 수록 나오는 은가람의 능력이 더 충격적인 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