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25화 - 휴가 말고 특훈
“문제는 있을거에요.”
오히려 문제를 확신하는 은가람.
현화는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대체 왜? 아니, 그 이전에 너는 어떻게 안 거야?”
“글쎄요. 감이라고해야 할까요? 발생하는던전은 B등급으로 클리어 자체는 문제가 없을 거에요. 다만 그 직후에 던전브레이크로 이어진다는게 특이점이죠.”
던전 브레이크?
말도 안 됐다.
클리어를 했는데 던전이 터져버린다니?
적어도 그녀가 가진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리도 없는데.’
애초부터 ‘B급 던전이 할만하다’는 말 자체가 일반적인 아카데미 학생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소리였지만, 그런 사소한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알기로, 은가람은 아무런 이유 없이 일을 벌일 사람은 아니었다.
“너, 던전브레이크가 뭔지는 알고 있는 거지?”
“당연하죠. 던전의 힘이 수용한계치를 넘어가게 되면, 그 내부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던전이 파괴되는 거잖아요?”
명료한 그의 대답에 현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거기에 던전이 파괴되면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건 덤이고. 그런데 네 입으로 방금 말했잖아? 수용 한계치를 넘어서야 하는 거. 던전이 클리어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해?”
던전을 클리어하게 되면 던전의 힘은 급격하게 약해진다.
헌터들이 목숨을 걸고 던전을 클리어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가만히 놔 두게 되면 몬스터가 성장하고 진화하여 던전 브레이크를 초래하게 되니까.
그러나 은가람은 단호했다.
“하지만 가능해요. 그리고, 분명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구요.”
“근거는?”
“경험에 의거한 감이죠.”
말도 안 되는 그의 대답에 현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말해줄 수 없다는 거네.”
“뭐, 그렇죠.”
“그러면 그거야 그렇다 치고. 직접 찾아가는 정도면 그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 뒀다는거지?”
은가람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 정도도 준비 안 했겠습니까? 현화 쌤은 그에 관해 작성할 보고서와 논문 걱정만 해 주시면 됩니다.”
“잠깐만! 대체 뭘하려고 그러는 건데?”
“선생님한테만미리 말해줄게요. 전………”
*
“우으으…… 쌀쌀해라. 호주는 더운 나라 아니었어?”
“……”
몸을 부르르 떠는 한아름과,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은서현.
이현진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호주는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인 거지. 겨울이 안 추운 건 아니야. 우리나라가 지금 여름에 접어들고 있었으니까, 지금 여기는 초겨울인 거지.”
“그,그런 거였어……?”
“제기랄……”
은서현은 속았다는 표정으로 은가람을 노려보았다.
노골적으로 살기를 보내는 그.
그러나 은가람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언젠간 복수한다, 진짜……!’
속으로 이를 가는 은서현.
정작 그로 인해 은가람의 근력이 또 성장했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조금 전 공항을 나선 은가람일행은 전부 반팔을 입고 있었다.
누가보더라도 여름 패션.
그것도 초겨울의 날씨에 심지어 해가 뜨기 직전의 시간임을 감안한다면 안 추울래야 안 추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신체능력이나 스킬로 어느정도 견딜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일반인이었다면 벌써부터 덜덜 떨고 있을 상황이었다.
“자 그럼 일단은 숙소로 가자.현진이가 따로 차량까지 준비했다고 하니까, 그 때까지만 버텨.”
“네에……”
“…쳇.”
현화의 설명에 한아름은 시무룩하게 대답했고, 은서현은 낮게 혀를 찼다.
잠시 후 그들의 앞에 서는 작은 벤하나.
히터가 빵빵하게 틀어져 있음에 소소한 감사를 느낀그들은 그렇게 숙소로 향했다.
*
“다들 기상, 기상! 눈 떠!”
아침 9시.
숙소에서잠이 든 지 채 3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은가람은 확성기까지 사용해 가며 학생들을 깨웠다.
“아아…… 뭐야. 오늘은 좀 쉬게 냅두지…”
“냅두지? 퍼뜩퍼뜩 안 일어나냐?너도 다시 눕지 말고 일어나, 은서현.”
“하아……”
잠에 반쯤 취해 있던 그들은 은가람의 재촉에 못 이겨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빠르게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밖으로 나와. 해가 중천에 떴어, 이것들아.”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밖으로 향하는 은가람.
그에 반쯤 몸을 일으키던 은서현과 이현진, 그리고 한아름은다시금 이불을 덮었다.
“일어나라고!”
“젠장할…”
물론 그를 예상한 은가람의 일갈에 다시금 잠을 쫓을 수밖에 없었지만.
“……엄마 같아.”
“나도 그 생각 했어.”
한아름의 말에 이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개인 숙소의 앞에 모인 그들.
차현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에 은서현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잠깐만, 그 여자는 왜 안 나오는데?”
“그 여자라니, 현화 쌤?”
“그래! 우리는 다 깨워놓고 정작 교사가 안 나오면 어쩌자는 거야?”
“현화 쌤이 깨운 거 아닌데? 내가 깨운 거지.”
“뭐……?”
“그리고, 야. 불쌍하지도 않냐? 나이를 생각해 드려야지. 노인 공경할 줄을 몰라.”
“……”
그에 일행들은 묘하게 납득하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가 들었다면 그대로 열불을 토할 말이었지만.
“우리 여기 놀러 온 거 아니잖아? 기말 평가 생각해서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할 건 또 뭐 있다고…”
“그건 꼬맹이 말이 맞아. 우린 딱히 상관 없잖아?”
“꼬맹이? 뒤질래?!”
그들의 말이 맞기는 했다.
천재 소리 듣는 은서현도 그렇고, 이현진 역시도 또래 나이 중에는 꽤나 비범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가 A반에 있는 이유는 단지 집안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은가람은 단호했다.
“그래서, 나랑 싸워서 이길 수 있겠냐?”
“……”
“이현진, 너는 내 수업 졸업할 생각 안해? 그리고 자연스레 말 놓는다?”
“아,아니! 이건 실수잖아!……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은가람을 바라보며 이현진은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아무튼, 너희한테 안좋을 거 없으니까 잔말 말고 따라 와. 이번주가끝나면 선물도 준비되어 있으니까.”
“선물……? 기념품이라도 사 가는 거야?”
한아름의 질문에 그는 그저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세 명은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또 음흉한 수작 부리고 있구만.’
그걸 알더라도 어쩔 수 없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운 그들이었다.
*
“헉…!허억……구엑…! 크헉…!”
“쉬지 마, 쉬지 마! 여기서 멈추면 더 못 뛴다!”
“하지……만……우어억……컥…!”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한아름.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은서현과 이현진, 그리고 차현화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신의 체력이 나름 괜찮은 편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다…… 나는 선생이라서…”
애초부터 훈련 대상에 들어있지 않은 차현화는 더 그랬다.
아마 그녀가 같은 학생의 신분이었다면, 지금 한아름의 자리에 있는 것은 자신이었을 테니까.
벌써 하늘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하루 종일 뛰었다.
그것도 ‘선착순’이라는 규칙을 둔 채로.
“대놓고 자기만 유리한 규칙 아니냐?”
“그러니까. 상종하는게 아니었어……”
“그러게 너희들은 대체 전생에 뭘 잘못했니…”
일반적인 선착순 달리기라면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른다.
한 번 악을 써서 뛰면 끝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선착순의 거리는 무려 5km였다.
그것도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 위에서.
아무리 헌터 지망생이라고 해도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말 그대로 선착순.
먼저 들어온 사람만 쉴 수 있고 그 다음부터는 다시 한 바퀴를 더 돌아야만 했다.
‘그런 거리를 간단하게 뛰어버리다니…… 진짜 사람이 아니잖아.’
지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은가람을 바라보며 이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그는 지금4바퀴째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등급을 차치하고서라도 괴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오케이, 골인! 수고했어.”
“구어어억……!”
하루 종일 달려야 했던 한아름은 결승점에 도착하자마자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었다.
헛구역질이 절로 나오고 다리가 자신의 다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 동안이나 숨을 고르던 그녀는 현화의 부축을 받아서야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다들 고생했어. 너희들을 위해 손수 맛있는 저녁을 차려 뒀으니까, 밥 부터 먹자.”
“네에에……”
다리가 풀려 휘청휘청 숙소로 돌아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은가람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고작 이거 뛰고 지치다니…… 앞으론 더 힘들텐데.”
그리고 그말을 들은 4명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악마같은 놈…!’
*
그로부터 삼 일 후, 아침 일찍부터 은가람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아직은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상황.
그는 지난 이틀간 그랬던 것 처럼, 숙소 거실에서 확성기를 들고 돌아왔다.
[아아-.]
밖에서 간단하게 테스트를 해 본 후, 그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은서현과 이현진, 한아름은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일어났어요!”
“일어났어!”
“나도 안 자고 있다!”
“……좋구만?”
‘좋기는 개뿔이!’
하루라도 늦잠을 자면 안되는 걸까.
현장학습이라고는 하지만, 장소가 장소인만큼 나름 휴가를 기대했던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속으로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건 다시 하기 싫어……’
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그들이 하루 종일 달리기만 했던 그 다음 날.
‘선착순’의의미는 조금 다르게바뀌어 있었다.
가장 먼저 뛴 사람이 쉬는게 아니라, 가장 늦게 기상한 사람이 뛰는 걸로.
이현진이 하루종일 고통받는 것을 본 그들이었기에 확성기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았던 것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먹고 훈련 진행할 거야.”
“엉…?”
“웬일로?”
“가람아, 어디 아픈 거야?”
“왜, 뛰고 싶어? 결국 입으로는 싫다고 하면서도 몸은 솔직-”
“아냐!”
“아닙니다!”
혹여라도 마음이 바뀔 새라 그들은 빠르게 이불을 정리하고 거실로 향했다.
여느 때와 같은 진수성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수저를 들며, 은가람은 입을 열었다.
“다들, 이틀동안 능력치가 많이 늘었지?”
“……네.”
“그건 그래. 그만큼 힘들긴 했으니까……”
“인정하긴 싫지만말이지.”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대답을 들으며, 은가람은 현화에게 감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현화 쌤.”
“뭘 이정도로.”
“……?”
“갑자기 뭔 소리야?”
그에 의아해하는 세 명.
분명 뛰고 구른 건 자신이었고, 그걸 시킨 건 은가람이었다.
현화가 한 것이라고는 자신들이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선텐을 하던가, 식사를 대접해 준 것 밖에 없었던 것이다.
“너희들이 지금 먹고 있는 아침을 포함해서, 그 재료들이 어떤 재료들일 것 같냐?”
“응…?”
“그냥 고기에 야채…… 밥… 아냐?”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그냥 음식이 아냐. 무려순수마력공정을 거친 값비싼 재료들이란 말씀!”
그에 일동은 경악했다.
“뭐?!”
“그,그런 비싼 걸……”
“아무렴, 고작 이틀 구른 걸로 능력치가 오르겠니? 그 짓거리를 적어도 한 달은 반복해야 스텟이오르는데.”
“……하긴…”
납득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현진이 물었다.
“뭐야, 이것도 우리 아빠가 준 거야?”
“……”
“……요?”
“아냐. 이건 현화 쌤이 직접 준비해 준 거라고.”
그제서야 그들은 현화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던 중,은서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솔직히 의외야. 이렇게 요리를 잘 할 줄이야.”
빠직-
현화의 이마에 혈관마크가 하나 돋아났다.
그리고 이어진 현진의 말에, 그것은 두 개로 늘었다.
“아줌마잖아. 당연한 소양이라고.”
“저,저기…… 그만 두는게 좋을 것 같은데…”
한아름이 둘을 말렸지만, 불쌍한 두 소년에게서 그런 눈치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같은일이었다.
“뭐가? 틀린 말 했어?”
“그건 꼬맹이 말이 맞잖아?”
차현화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 아니,광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희들…… 죽고싶은 거구나?”
“……어?”
“아,아니… 제 말은 그게아니라요…!”
“그래, 마력 저항력도 헌터에게필수적인 스탯이긴 하지?”
화르르륵-
그녀의 양 손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마법사.
그것이 눈 앞의 차현화라는 사실을 간과한 그들은, 그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자,잠깐만! 죽일 생각이야?!”
“선생님! 잠시만요, 잠깐만!”
“으……은화방벽!”
“그건 마법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방벽이란다, 서현아!”
콰아아앙!
쾅!!
골드코스트의 어느 해변가에서, 뜨거운 불길이 한동안 주변을 밝혔다.
그런 광경을 바로 코앞에서 관람중인 은가람과 한아름.
은가람의 방벽으로 한 없이 평화로운 공기 속에서, 한아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쟤네들…… 바보일까?”
“바보 맞을 걸. 눈치라는 걸 기대하면안 되지.”
“하긴……”
그 말에 십분 공감하는 한아름이었다.
*
“오늘은 대련을 할 거야.”
“……쿨럭.”
“쿨럭……켁…”
새까맣게 그을린 몸으로기침을 내뱉는 은서현과 이현진.
둘을 무시하며, 은가람은 그렇게 선언했다.
“중간 점검 정도라고 생각하고, 격하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적당히들 해. 무기는 가져 온 훈련용으로 사용하고.”
“알았어~!”
그의 말에 한아름만이 해맑게 대답했다.
“그럼 우선…… 나랑 붙어보고 싶은 사람, 손.”
당연히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여기며, 은가람은 그렇게 말했다.
“……응?”
그러나 있었다.
조용히 손을 드는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