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24화 - 트라우마 (24/114)



〈 24화 〉24화 - 트라우마

“기말고사가얼마 안남았다. 놀지들 말고.”

“네에!”

“기말 실기는 모의 던전 클리어니까 다들 긴장하는게 좋을 거다. 중간고사랑은 다를 거야.”


그 말을 끝으로 강의실을 나서던 정운성은 뭔가 생각났다는  뒤를 돌아보았다.

“……야, 저놈 깨워 봐라.”


한쪽에서 세상 모르고 퍼질러 자고 있는 학생을 가리키는 그.

그의 근처에 있던 학생이 그를 흔들어 깨웠다.


“가람아.가람아……?”

“으음…… 왜…?”

“쌤이 너 부르셔.”

“우으…… 뭔데 그래…?”

잠에 찌든 눈을 간신히 뜨며 그는 정운성을 바라보았다.


“넌 잠시 날  따라와야겠다.”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는 강의실을 나섰다.

그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은가람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또 뭐야, 대체.  자고 있었는데.”

“하여간 문제아라니까?”
“조용히 해라, 꼬맹이.”

“뒤진다?!”

대뜸 시비를 걸어 오는 은서현을 사뿐히 무시한 그는 흐느적흐느적 몸을 움직이며 복도로 나섰다.




“무슨 일인데요……?”

A클래스 건물의 교무실은 C클래스에 비해조금 더 넓었다.

가장 많은 학생들이 분포되어 있는 B클래스와 비교해도 그리좁지 않은 정도.

“무슨 일이냐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

운성은 은가람에게 종이  장을 건내며 물었다.


“이건 또 무슨 말이냐?”

“아…… 이거요?”


그제서야 은가람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다.

“말그대로인데요? 딱히 문제는 없지 않나요?”

“……”

그가 건낸 종이는 합숙 훈련에 관한 허가서였다.

일 주일간 아카데미 외부로 나가 훈련을 진행한다는 내용.

당연하게도  기간동안 출석처리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너희들끼리? 교사를 동행하지도 않고?”

“네.”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은가람은 대답했다.

그에 정운성은 턱! 하고 이마를 짚었다.


‘하아……  하필 우리반으로  거야.’

물론 그의 나이 역시도 꽤나 젊은 편이었다.

눈 앞의 은가람과 비교해서 그리 차이도 나지 않을 정도로.

자신 역시도 아카데미 학생 시절 기회만 보이면 놀러다니고 싶기는 했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당당한 거 아니냐고?’

동행 교사 없이 가겠다는건 누가 봐도 놀러가겠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것도 기말고사를 앞둔 지금같은시기에.


“기말평가가 얼마 안 남은 건 알지?”

“잘알고 있죠. 그러니까 특훈하러 가는 거지.”

“……골드 코스트로?”

호주의 골드코스트.

관광명소로 너무나도 유명한 장소였다.

그런 곳에서 훈련이란  가능할지 조차 의문이었다.

“그 이전에 학생들끼리의 특훈이란  통과될 리 없잖아!”

지극히 당연한 그 사실을 설명하자 은가람은 잠시 미간을 좁혔다.

“그래도  알았는데……흐음……”

“교사가 동행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전문적인 훈련기관에서 교육을 받을 때 뿐이야. 물론, 그 경우도 그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종이를 접었다.

어차피 되지 않을 것에 억지부리는 모습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은가람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 제대로 된 공인 증명서가 있으면 되는 거죠?”

“뭐?”

“거기에 교사까지 동행하면 당연히 가능한 거구요?”


“……일단은 그렇긴 하다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정운성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은가람이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일단은 공인이면서,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기술자가 있거든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기술자…? 호주에 그런 사람이 있던가?”


“아뇨? 지금은 없어요.”

“그럼 말이 안 되잖아!”

“우리가 데려가면 되죠.”

“내 말은 그러니까!! ………잠깐만.”

정운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 설마……?”

“그 설마가 맞을걸요?”

세상 해맑은 표정을 짓는 은가람.


그러나 정운성의 눈에는 여지껏 봤던 그 어떤 미소보다 영악하게 비쳤다.


‘뱀의 눈이야…… 저건 사람의 탈을 쓴 뱀이라고.’


*


“으으……으…!”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식은땀을 흘리는 소년.

그의 얼굴에서는 ‘공포’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단 한 순간에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좁디 좁은 공간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과거에  번 있었던 가물가물한 기억이, 어렴풋한 트라우마가 되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제…제기랄…!”


주변에서 ‘천재’ 소리를 듣는 그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키에 맞지 않는 의자에 구속된 채로, 손에 땀이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는  만이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해소할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대체 왜……어째서…!’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간간히 흔들림을 동반하는 의자.

끊임없이 고막을 괴롭히는 소름끼치는 소음과, 서늘한 공기.


영문도 모른  잡혀 온 곳에서, 그는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그런 그의 귓가에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후후후……”

소년에게 있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목소리.

자신을 잡아 온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아니, 행동대장 정도 될까.


‘염병할!’


돌이켜 보면, 첫 단추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상종하는 게 아니었는데.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둘러싼 이들이 사악한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야…… 찍어.”

그것은 소년이 최근 들어 봤던 말 중 가장 공포스러운 말이었다.


“하지 마…! 씨발, 하지 말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년은 저항했다.

지금  순간이, 그는 죽도록 싫었다.

할 수만있다면 당장이라도 아카데미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발버둥을 짓밟듯, 한쪽에서 기분나쁜 소리가 들려 왔다.

찰칵!


“야, 이 바보야. 누가 사진 찍으래?”

“현진이도 뭘 모르네~! 이럴 땐 동영상을 찍어야지!”


상냥하지만  편으로는 웃음기가 가득 담긴 소녀의 목소리.

뒤이어 동영상 촬영음이 은서현의 귓가에 들려왔다.

“미친 놈들아, 하지 말라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소리치는 그였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을 터뜨릴 뿐.

“푸하하핫! 야, 너네 너무 즐기는 거 아니냐?”

“그러는 쌤이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요?”

“당연하지! 지금이 아니면 요녀석의 이런 귀여운 모습을 언제 또 보겠냐?”

“귀엽다고 하지 마!”

두 눈 꼭 감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은서현.

지금 그들은 3만피트 상공에서 날아가고 있었다.


“이 건방진 놈. 고작 비행기 따위를 겁내는 주제에 말야!”

“이현진, 깝치지 마. 막상 붙으면 이길 자신 없잖아.”

“왜 나만 가지고 그러세요, 진짜!”

“그러니까 뇌절 좀 하지 마. 뭘 이런 걸로 진지하게 서열을 정리하려고 드냐?”

은가람의 말에 현진은 고개를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쳇…… 비행기도 우리 그룹 껀데. 지는 딱히 해 준 건 없으면서…”

“들린다.”

“……요.”


최근 며칠 동안 조금은 가까워 진 건지, 툴툴대면서도 꼬리를 내리는 현진의 모습에 한아름과 차현화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서현이는 비행기 타 본 적 없었나…?”


한아름의 질문에 서현은 질끈 감았던 눈을 한쪽만 실낱같이 떠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닥쳐……!”

사실 한  타 본 경험은 있었다.

그러나지금 그에게그를 설명할 여유는 없었다.


태연한 얼굴로 한아름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조금 아까운데. 이런 경치는 쉽게 볼 수 없잖아.”

“……”


그건 그녀의 말이 맞았다.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가히 가관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경치를, 은서현은 비행기에대한 공포 때문에 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눈을 떠서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무슨 바보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딱 한 번만. 뒤늦게 후회하는 것 보다는 낫잖아?”

“……”

그에 은서현의  눈이 부르르 떨렸다.

창 밖을 바라보고 싶은 욕망과, 과거의 기억에 잠재된 두려움이 치열하게 공방을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착륙할  까지 뜨이지 않을 것만 같던 그의  눈이 조금씩 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와아……”

발 아래로넓게 펴진 흰색의 구름과 그를 장식하는 붉은 햇살에, 그는 절로 감탄을 흘렸다.

조금 전의 두려움이 무색하게도, 그의  눈은 있는대로 커져 창 밖의 경치를 하나하나 새겨넣고 있었다.

“그렇지? 막상 보고 나니까 별로 안 무섭지?”

“이런 건…… 살면서 처음 봐.”

3년 전  날.

 때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구름이라고는 머리 위에만 있을  알았다.

그 위를 날아다닌다는 것이, 아직 어린 그에게는 마냥 신기하게 다가왔다.

“하여간 꼬맹이는 꼬맹이라니까. 그게 그렇게 무섭냐?”

장난기 가득 담긴은가람의 말에 은서현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받아쳤다.

“윽……! 무서웠던  없거든?!”

“없기는? 바로 5분 전까지 벌벌 떨었던 주제에?”

“아니거든! 아니라고!”

“그래~?”

빠득빠득 우기는 그에게, 은가람은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그 화면에는 식은땀까지 흘려 가며 떨고 있는 은서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촬영되어 있었다.

소리까지 고스란히 담긴 동영상의 형태로.


“으아아악!! 씨발, 지워! 지우라고!”

“이런 귀중한 데이터를 왜 지우냐? 우울할 때마다 돌려  건데.”

“죽여버린다!?”

“어어? 여기서 칼부림을 한다고? 잘못했다가 무게중심 엇나가서 추락해도 모른다?”

“……!”


칼을 꺼내들었던 은서현이 그 자리에 굳었다.

그는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이며, 조심스레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걸  속고 있냐.”

“야!”


다시 한 번 기내에 웃음이 가득 찼다.

“그런데 형님.”

“왜?”

“저 여자는 왜 데려온 건데요?”

은서현의 앞쪽 자리에 앉아있는 한아름을 가리키며, 현진은 조심스레 물었다.

“C클래스, 그것도 3반이라면서요? 여기랑 조금 안 맞는 거 아니에요?”


현재 은가람이 대동한 인원은 5명이었다.

동행교사인 차현화를 제외한다고 치면, 학생들 중 A클래스가 아닌 사람은 한아름이 유일했다.


따악!

“아야!”

그의 질문에 은가람은 현진의 이마에 딱밤을 먹이며 대답했다.

“너, 그놈의 등급으로 사람 나누는 버릇 좀 고치라고 했어, 안 했어?”

“……했지.”

“했지?”

“……요. 아니, 그래도… 딱히 재능이 있지도 않았잖아요? 거기다……”

거기까지 말하던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중간 실기 평가라던지, 입학 실기라던지…… 최하점이었다구요?”

“네가 그 점수는어떻게 알고 있냐?”

“어? 어… 그,그게…”

“아주 그냥 아카데미 시스템이 개판으로 돌아가는구만.”

그렇게 말하며 그는 다시  번 현진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판에 박힌 점수가 다가 아니야. 사람은 변하고, 발전하는 거라고.”

“아무리 변해도 한아름이 저를 이기는 날은 안 올  같은데요.”

“그 말, 책임질 수 있냐?”

“……네?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요?”


묘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이현진은 오한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은가람은 뭔가 사악한 생각을 품고 있다고.

그리고 그의 감은 정확했다.


“직접 보면 알겠지. 아름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말야.”

“……왜 경험담처럼 들리죠?”

“경험담이 맞으니까.”

“거짓말!”


이현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은가람을 돌아보았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은가람은 자신의 형인 현성보다도 강했다.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한 위치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그가 한아름에게 두려움을 느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겪어 봐. 그럼 알게 될 거야.”

그러나 은가람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렇게 현진의 불안감을 가득 안은 채로, 비행기는 상공을 갈랐다.


*


“야, 자냐?”

모두가 잠든 시각.

차현화는 조심스레 은가람을 불렀다.

그에 은가람이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대답했다.


“아직 안 자요.”

“잠시 이야기좀 하자.”

“그러죠.”

그렇게 둘은 발소리를 죽인 채로 기내의 식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쪽에만 불을 켠 현화가 테이블에 앉자, 은가람 역시도 맞은편에 자리했다.


“내가 부를 거란 거, 알고 있었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죠.”

“난 가끔 네가 정말 학생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그에 은가람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번 여행…… 목적이 뭐야?”

목소리를 내리깔며 묻는 그녀의 질문에 은가람은 예상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역시 선생님이라면 알 것 같았어요.”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고?”

“네.”


그에 그녀의 표정이 무섭게 돌변했다.

“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미쳤니?”

“그럴 리가요.”

“아직 제대로 확인조차 되지 않은 파장이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확인되지 않은 파장.

그것을 현화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녀의 재능과 그녀가 가진 독보적인 기술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 파장이 어떻게 돌변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운이 좋다면 그저 새로운 하급의 게이트 하나가 출현하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언젠가 그랬던 것 처럼 대형 게이트가 던전브레이크를 일으킬 가능성도 충분했던 것이다.

한진우의 모습이 떠오른 그녀가 지금처럼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그녀에게, 은가람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 걱정은  해도 돼요. 문제는 분명 생길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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