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23화 - 예절 주입
까만 정장을 빼입은 세 명의 사내에게 현진이 끌려오기까지는 채 8분이 걸리지않았다.
나름 A클래스 1반인 현진을 간단하게 데려온 걸 보면, 현직 헌터겠지.
분한 표정으로 훈련장에 잡혀온 녀석은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내가 왜 너따위 놈한테……!”
자신을 붙잡은 팔을 거칠게 떨쳐버리며 녀석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세 분은 가보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나는 정장의 남자들에게 감사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준 후, 그들을 내보냈다.
“너 말야! 건방지게 굴지 마! 아무리 아버지가 부탁했다고는 해도 내가-”
퍽-!
“끄으윽……!”
일단은 예절 주입부터.
녀석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리며 복부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는 녀석에게 다가가 나는 입을 열었다.
“말로 해서는 안될 새끼구나, 너?”
“지랄……마!”
짜악-!
이번에는 뺨.
꽤 아플 거다.
있는 힘껏 후렸으니까.
녀석은 순간 사태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벙 찐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빡치냐? 꼬와?”
“이런 썅……!”
“꼬우면 니가 강해지던가.”
따악!
이번에는 뒤통수.
사실상 이 상태에서 공포감만 불어넣어 준다면 고분고분해 질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한쪽 팔을 못 쓰고 있는 상태인 만큼 그 무력감은 더 클 것이고.
그러나 나는 일부러살기를 피워올리지 않았다.
‘지금은 무서워 할 때가 아니거든. 오히려 더 빡쳐줘야지.’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눌러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었으니까.
살살 성질을 긁어대는게 지금 필요한 작업이었다.
“돈이면 다 될줄 알았지? 설마하니 아버지가 이렇게 뒤통수 칠 줄도 몰랐을 거고.”
“닥쳐!”
“말 싸가지부터 고치시구요.”
따악!
다시 한 번 녀석의 뒤통수를 후렸다.
녀석은 꽤나 아팠는지, 아니면 지금의 상황이 분했는지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우냐? 울어?”
“안 울거든?”
“고작 그걸로 울 거면서 왜 자꾸 덤비냐? 별 거 없으면서 왜 그렇게 유세야?”
“……”
“왜 말이 없어? 팔 부러진 상태로 당하니까 분하냐? 내가 비겁한 것 같아?”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며, 녀석은 이를 빠드득 갈아댔다.
“치아건강에 안좋으니까 이 좀 그만 갈고. 그렇게 원하면원하는 대로 해 줄게.”
“뭐……?”
“그 팔, 일 주일이면 낫지? 아니, 너네 집안 생각하면 삼 일이면 나으려나? 일 주일 있다가 붙어. 그러면 자신 있냐?”
“웃기지 마! 내가 고작 팔 하나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그럼지금 붙어볼래? 어차피 질 거 아니까 핑계라도 깔겠다는 거야, 뭐야?”
그건 또 싫었는지 녀석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 너도 갑작스럽겠지. 그러니까 내기를 걸자. 일 주일 후에, 네가 나를 이기면 교육 같은거 없던 일로 할게.”
“……후회하게 될 거다.”
“대신, 그 때도 지면 깔끔하게 인정해라. 안 그러면 더 후회할 테니까.”
녀석은 이 제안을 무시하지 못 할 것이다.
이진명 본인이 시킨 만큼 도망갈 수도 없을 거고.
“그럼, 오늘은 가 봐.”
그렇게첫 날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났다.
*
일주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그간 했던 것이라고는 논문을 쓴다던가…
현화쌤 연구실에서 일을 돕는다던가……
혹은 술식에 대한 이론을 공부한 것 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빡치네……’
일 주일동안 한 거라곤 논문작업 뿐이라니.
어쩌다 내 신세가 이렇게 됐나 한탄해 봐도 이미 늦은 후였다.
‘현화 쌤…… 나중에 톡톡히 받아낼 겁니다.’
훈련장에서 먼저 기다리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렴 월드 크래스의 마법사이자 기술자인 만큼 먹고 튀지는 않으시겠지.
끼익……
그 때, 굳게 닫혀 있던 훈련장의 문이 열리며 현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의 손에는 그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도가 쥐여져 있었다.
“안 도망갔네?”
“너 따위가 무서워 도망갈 줄 알아?”
“그럴 줄 알았지.”
건성으로 대답하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1교시 시작하자.”
“웃기고 있네. 넌 지난 주에 했던 말을 후회하게 될 거야.”
“그건 보면 알겠지.”
잠시 후, 훈련장 마이크가 켜지며 운성 쌤의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아. 이미 알고 있겠지만, 한 쪽이 패배를 인정하기 전까지다. 스킬 및 무기 사용 자유. 위험하면 내가 개입할 테지만…… 그럴일은 없겠지. 그리고!]
“……?”
[적당히 해라, 은가람.]
“네~네~.”
당연히 적당히 할 생각이었다.
그게 녀석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시작.]
삐이이익-
대결의 시작을 알리는신호음이 들리고, 이내 현진의 기도가 판이하게 바뀌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내심 감탄을 흘렸다.
‘흐음…… 어지간히도 분했던 모양이네.’
부상으로 몸이 성치 못할 텐데도 단단히 벼르고 있던 모양이다.
짧은 기간동안 녀석은 엄청나게 성장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흐아압…!”
탓-
쿠우우웅……!
무겁게 진각을 밟은 후, 빠르게치고 들어오는 공격.
날카로운 예기를 두른 도가 사선으로 그어져 왔다.
스아악-!
“어이쿠, 위험해라.”
간단하게 그것을 피해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도결이 꺾이며 내 목을 날아들었다.
명백한 살수였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고 그에 대응해 나갔다.
‘진심으로 죽이고 싶었나 보구만.’
죽여버리겠다는 말만 귀에 딱지가 않도로 들어왔지 않았던가.
그 말 하나 만큼은 뼛속까지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말은 함부로 내뱉는 것이 아니다.
책임을 질 수 없다면 더더욱.
나는 슬슬 반격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아아!”
촤아악-!
목 끝을 노렸다가 다시금 급격하게 활로를 바꾸는 도.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나는 녀석의 머리를 후렸다.
퍽!
“너무 직선적이이야.”
“지랄!”
스악-
퍽!
“거기에 감정이 너무 격해지면서 동작이 커졌어.”
“닥쳐! 닥치라고!”
스르릉! 촤아앙!
퍽!
“동작이 커지면 그만큼 빈틈도 커진다.”
현진의 공격을 피하고 곧바로 녀석의 머리나 귀를 노린다.
같은 패턴의 그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결국 녀석은 폭발했다.
“젠장,젠장!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릴 거야!”
분한 듯 손을 부르르 떠는녀석.
그가 쥔 도신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응축되었다.
‘저건 맞으면 조금 아플지도……?’
물론, 맞아 줄 생각은 없지만.
앞서와 달리 폭발적인 속도로 따라붙는 녀석.
그의 손에 쥐여진 도에서 육중한 파공성이 울려퍼졌다.
쿠르르르릉……!
마치 공간을 베어내듯, 횡으로 그어지는 그의 도.
이번만큼은 쉽게 피해낼 수 없었다.
“뒤져버려!”
“이런-!”
콰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이 훈련장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방금 건 나쁘지 않았어?”
“?!”
녀석의 뒤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손을 휘둘렀다.
따악!
“씨발…!”
욕을 뱉어내는 녀석을 향해 나는 차갑게 물었다.
“네가 왜 날 못 이기는지 알아?”
“……”
“물론, 네가 지난 번에 비해 크게 발전한 건 맞아. 다만, 문제에 대한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못해서 그런 거야.”
“문제……? 문제라고?!”
“이것 봐. 가장 첫 단추부터 안 돼 있잖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그 문제를 인지하는데 있어. 지금은 네가 나보다 부족하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게 먼저라고.”
“……”
내 말에 현진은 복잡한 감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도 얻어맞아서 그런지 녀석의 얼굴은 팅팅 부어 있었다.
“자, 이쯤에서 졸업 조건을 알려줄게. 네가 졌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쳇.”
아마 인정 안 할 수가 없을 거다.
무기 하나 쥐지않은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얻어터졌으니까.
그런 녀석에게 나는 솔깃한 제안을 하나 건냈다.
“졸업 조건은 크게 두 가지. 네가 나를 이기는 날이 오거나, 혹은 내가 졸업시킬 마음이 들었거나. 둘 중 하나라도 충족되면 곧바로 졸업이야. 어때, 쉽지?”
“건방진 새끼……!”
마지 못해 그렇게 중얼거리는 녀석.
나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그리고는 교육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살기를 피워 올렸다.
탓-!
후우욱-
“……?!”
빠르게 녀석에게 접근한 나는 망설임 없이 녀석의 팔을 붙잡아 손목을 살짝 비틀었다.
“큿……!”
챙강!
그의 손에 쥐여져 있던 도가 바닥에 떨어져 내리자, 나는 곧바로 주먹을 들어 녀석의 복부에 꽂아넣었다.
퍽!
“끄으윽……!”
털썩.
“자, 그러면 그 전까지는 내가 니 스승이다, 이 자식아. 말 싸가지 안 고치면 벌 받는 거야.”
“……제기랄…!”
“어허, 스승님 앞에서 제기랄이라니!”
따악!
나는 곧바로 응징에 나섰다.
“말 싸가지부터 고치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을까, 응?”
“으아아악!”
퍼억! 퍽!
짝!
퍽……!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경쾌한매타작 소리가, 한동안 훈련장을 가득 채웠다.
*
“집에가서 꼭 돌려 보고.”
“알았어………요…”
“일단 말투는 그걸로 합격이라 해 둘게.”
살짝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저 정도면 양반이지.
훈련장에 녹화된 영상을 그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하며, 나는 그렇게 수업을 마쳤다.
‘역시 예절 주입엔 매가 딱이지.’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이 되려면 쳐맞아야 한다고.
조금은 누그러진 녀석의 어깨를, 나는 한 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이야. 숙제검사 같은 건 없으니까 알아서 잘 따라오라고.”
“……네.”
복잡한 감정을 안은 채로 녀석은 발걸음을 돌렸다.
아마 속에서 내적갈등이 말이 아닐 거다.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현혹 스킬이 풀로 가동되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나름 스트레스도 풀었고! 속이 다 시원하네.’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는 내 곁으로, 운성 쌤이 다가와 말했다.
“너 좀 무섭다.”
“네? 제가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라.”
가슴에 손을 얹고 3초간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모르겠는데요?”
“악마같은 녀석……”
“칭찬이죠? 감사해요.”
“……”
그는 무언가 더 말을 하려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장난스레 한 번웃어준 후,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이진명이다.]
“네, 학부모님! 오늘 첫 수업 끝났습니다!”
[……고생했다. 입금하지.]
“아, 그리고……”
[……?]
급하게 끊으려는 그를 나는 붙잡았다.
“녀석, 오늘 많이 힘들었을 테니까 고생했다고 한 마디는 해 줘요.”
[……알았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하나의 문자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이진명_ 님께서 2,000,000 원을 이체하셨습니다.]
역시 피로에는 금융치료가 직빵이다.
*
“어…?”
“뭐야? 네가 왜……”
“쌤이 여기 왜 계세요?”
그로부터 며칠 후, 평소처럼 훈련장을 방문한 세 명, 은가람과 은서현, 그리고 한아름은 낯선 누군가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여? 나가 여 있으믄 안되는 이유라도 있당가?”
“……운성 쌤은요?”
한아름의 질문에 그는 은가람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 슨생은 지금 좀 바쁘지라. 어떤 자슥 때문에 허구헌날 A클래스 훈련장에 드나들고 있걸랑.”
“아, 진짜요~? 누군지 참 대단하네.”
“너 말이여, 너! 니가 이현진 그노마 한테 바람을 불어넣은 거 아녀!”
“그래서 그런 거였어요? 설마 그럴 거라고는 전혀 몰랐죠~”
“하아……”
태연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하는 은가람의 말에 한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관절 나가 전생에 뭔 짓거리를 혔길래……’
A클래스에 있는 학생들 정도면 개인 훈련장이나 사설 훈련장을 찾기 일쑤였다.
사실 그 이전에 실력에 자신있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었고.
지금 눈 앞에있는 은서현이나 은가람처럼 A클래스임에도 매일같이 훈련장에 드나드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란디 갑자기 현진 금마가 와……?’
평생 훈련장에는 발도 안 들일 것 같았던 사람이 바로이현진이었다.
실력도 나름 출중했지만, 워낙에 자신감이 넘쳐났다.
좋은 징조이기는 했으나,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을 그는 지울 수 없었다.
“먼저 하고 와. 우리는 그 다음에 들어가면 되니까.”
“응. 고마워.”
그가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한아름이 먼저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휴대폰 진동으로 바꿔놨어?”
“해,해 놨어!”
“그래. 열심히 해.”
“……?”
난이도를 2단계로 맞추며한진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휴대폰 진동이 뭐가 중요한 걸까.
그런 그를 향해, 은가람이 넌지시 충고를 건냈다.
“아, 선생님. 훈련장 안쪽에 소리 뮤트시켜 주세요.”
“엉……? 건 또 뭔 말이여?”
“안 하시면 후회하실 걸요.”
“……?”
영문을 모른 채로 그는 화면을 주시했다.
자신이 가르치는 반에서 이론적으로는 압도적인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
실기점수는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평소의 수업태도 역시도 우수하고 교우관계도 좋으며 성격도 좋은, 말 그대로 모범생 그 자체의 제자.
그런 한아름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다는 말일까?
그렇게 망설이던 그는 바로 다음 순간, 훈련장 안에서 들려온 소리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한아름이 자신의 스킬을 발동한 직후였다.
[크후우……!]
“……?”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그로울링 섞인 숨.
그리고……
[시작해 보자고! 이 개자-]
뚝-.
“……”
“제 말 맞죠?”
자신이 뭘 들은 걸까.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한진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