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21화 - 사회심리적인......?
“선택자인가?”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건낸질문이었다.
‘역시 S급은 다르다는 걸까……’
아카데미 학생과 현직 헌터는 비교 자체가무의미할 정도였다.
현역만이 얻을 수 있는 경험의 차이가 엄청났으니까.
더군다나 그 상대가 S급의 헌터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초월자의 선택을 받았죠. 혹시 그에 대해 말씀하시려는 건가요?”
다소 가시가 돋힌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그에 관해서 묻는게 실례라는 건자네도 잘 알지 않나?”
“……”
나는 말 없이 그를 응시했다.
“확실히 다르군. 전에도 느꼈던 거지만, 눈 앞에서 봐도 믿기지가 않아.”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자네를 보고 있다 보면 말이지……”
그는 자신의 테이블에 놓인 에스프레소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 끝을 흐렸다.
“…일개 학생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거든. 분명 가진 능력은 학생인데, 느껴지는 기운은 10년 이상의 현직 헌터 같단 말야.”
“과찬이십니다.”
다소 사무적인 태도로 나는 그의 말을 받아쳤다.
‘대체 뭘바라고 이러는 거지……?’
이진명이나 되는 사람이 그저 감탄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아직 1학년의 학생에게 먼저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그 속에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의미였다.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지는 말지. 무리한 요구사항이 있어서 부른 건 아니니까.”
“결국요구사항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아니. ‘요구’가 아냐.”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안’이라고 해야겠지. 받아들이든, 거절하든 그건 전적으로 자네 마음이야. 그 결정으로 인해 달라지는 건 전혀 없다고 약속하지.”
“……”
그에 나는 잠자코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자그마한 잔에 담겨 있던 에스프레소를 한 입에 마시며 말을 꺼내들었다.
“우리 두 아들…… 아니지. 정확히는 현진이 녀석만 그렇다고 해야겠지. 작년에도 꽤나 문제를 일으켰더군.”
“정학 위기였다고 들었죠.”
“그랬어.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직접 손을 써서 둘을 유급시켰다. 아마 1학년반에서 같이 봤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찍혀 있던 둘이 유급당했다는 사실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단지 정신차리라는 의미에서 그런 것만은 아냐. 사실은지금을 위한 포석이라고 해 둬야겠지.”
“포석이라고 하신다면……?”
“그게 바로 본론일세. 우리 아들의 교육을 부탁하고 싶어서 말이지.”
“……예?”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이게 무슨 개떡같은 소리야?’
교육을 부탁해 달라니?
아들의 처우에 대해 손속이 잔인했다느니, 접근하지 말라느니 하는 말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침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자네라면 똑바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 S급의 현직 헌터를 상대로 조금도 숙이지 않을 정도이니까.”
“……”
“자네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나? 솔직하게 대답해 보게.”
나는 잠시 미간을 좁혔다.
그가 말하는 ‘주변 사람’이라 함은 당연히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의미할 것이다.
조금 더 간다면집사까지도 포함될지도 모르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대답했다.
“솔직히, 사람 보는 눈이 좋아 보이지는 않더군요.”
“뭐……?”
그에 그는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핫! 정말 대단하구만! 철혈금강에게 그런 독설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학생이라……!”
“개인적인 감상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아냐, 아냐! 아주 좋아! 내가 원했던 건 그런 솔직한 대답이었거든!”
그는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눈에 눈물이 고이고, 얼굴이 새빨개질 만큼.
‘아니, 이 양반이 왜 이래…? 뭐야, 이거. 무섭다고……’
내가 알던 그의 모습과 전혀 다른 이면에 나는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한참이나 웃음을 터뜨리던 그는, 이내 조금은 어두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S급의 현직 헌터…… 그래, 아주 대단하지. 세계에서 알아줄 만큼 높은 직위에, 부와 권력. 강한 힘. 정상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아니겠지.”
“그렇죠.”
“그런 내가, 얼마나 노력했을 것이라 생각하나?”
그의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피나는 노력을 하셨겠죠. 뼈가 깍이는 고통과 살을 베어내는 고역을 버텨내셨을 것이고요.”
그게 어떤기분인지 겪어 본 나였기에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는 그저 시간적인 우위였을 뿐.
더 위로 나아가는 것은 순전히 내가 했던 노력의 결실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남들보다 더 피나게.
S급의 위치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사람으로서의한계를 몇 번이나 넘어서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랬지. 그만큼 힘든 길이었지만 나는 그 길이 즐거웠어. 스스로를 채찍질할 때 마다 조금씩 더 강해지는…… 반 발자국 만이라도 더 올라가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보람을 느꼈지.”
‘이 양반도 만만찮은 변태구만.’
다소 진지한 내용의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기야……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중에 안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멀리 갈 것도 없이 현화쌤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이진명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즐겼던 거야.”
“즐긴다는게 잘못됐다는 말씀이십니까?”
“뭐든지 과하면 문제가 되는 걸세. 나같은 경우는 그 때문에 주변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거지.”
그는 비어버린 조그마한 잔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아래로 내리깐 그의 눈에는 아쉬움과 안쓰러운 감정이 섞여 있었다.
“아내는 정략결혼 상대였어. 두 아들 역시도 어릴때 관심을 주지 못했지. 아니…… 주지 ‘않았던’ 거야.”
“후회하고 계시는군요.”
“그래. 나는 내가 녀석들을 교육시킬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괴물이나 때려잡을 줄 알지, 아들의 교육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군.”
그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을 철혈금강이었지만, 그 역시도 결국에는 자식때문에 속 썩이는 아버지였다.
“녀석들이나, 아내나…… 내 말에 거역하지는 않아. 압도적인 힘의 차이는 결국 그런 거거든.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 보다, 완벽하게 순종을 연기하는 것에 불과해.”
“그런데 그걸 굳이 제게 부탁하시는 이유는 뭐죠?”
그가 해서 안된것을 내가 해서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그보다 약했고, 유급을 당했다고 해도 같은 학년인 이상 순순히 따라와 줄지도 의문이었다.
‘거기다가, 만에 하나 꿍꿍이가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고.’
교육을맡겼다가 가혹행위나 폭력 등의 이유를 들어 나를 물먹일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다.
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그의 말이 전부 진심이라는 확신 역시도 할 수 없었으니까.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능력도 충분하고, 가지고 있는 분위기에서도 연륜이 느껴지고.”
“연륜이라뇨……”
이 양반아,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물론, 속에 든 건 좀 아재스럽긴 하지만.’
“입에 발린 말이 아닐세. 처음 봤을 때는 혹시나 하는 감정도 있었지만, 오늘로서 더 확신이 들었거든. 자네라면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을 걸세.”
“갑작스럽다는 건 아시죠?”
“그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해 주겠네. 원한다면 백지수표나, 스킬북의 제공도 가능하고.”
“……”
“교육 방침에 대해 관여하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지. 후드려 패든 뭘 하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소리야. 다만……”
“다만…?”
“실력을 키워 준다면 더 좋겠지만, 그보다는 인성교육을 위주로 해주길 바라네.”
*
“……넌 대체 뭐하는 놈이냐?”
훈련장에 들어서자 운성은 그렇게 물었다.
이진명 회장과의 용무를 마친 후, 그에게서 급하게 전화가 왔던 것이다.
간단하게 사정설명만 했던 것이 바로 10분 전의 일.
이진명의 집사가 나를 아카데미로 데려다 주자, 나는 곧바로 훈련장으로 직행했다.
“이진명 회장이나 되는 사람이 독대를 요청했다니…… 너, 학생 맞냐?”
“맞는데요.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에요?”
그 말에 그는 대답 대신 패널을 가리켰다.
그 속에는 두 개의 토마호크를 신들린 듯 휘두르고있는 한아름의 모습이 보였다.
“10분 전부터 애가 돌변했어. 왜 이러냐, 얘?”
“네…?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도끼를 쓰면 될 거라고 한 것도 너잖아? 짚이는 거 없어?”
“없는데요……?”
그렇게 대답하던 나는 화면의 한쪽에 표시된 음소거 마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소리 켜 봐도 돼요?”
“후회 안 할 자신 있으면.”
“……”
불안한 감정을 안은 채로 나는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차단되었던 소리가 켜지며 훈련장 안쪽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꺄하하핫! 더 가까이 들어와!! 내 안의 악마를……!]
뚝-
“……”
“……”
“그……”
“……?”
“…아니……”
“……”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정운성을 바라보다가, 다시금 패널을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고생하십쇼!”
“어딜 도망가냐!”
“……젠장.”
자연스레 자리를 벗어나려던 나는 그의 손에 목덜미를 붙잡힐 수밖에 없었다.
“저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그래도 네 의견이었잖아? 가서 좀 어떻게 해 봐. 진정을 시키던지.”
“아니…… 운성 쌤이 하면 되잖아요?!”
내 말에 그는 시선을 피했다.
“솔직히…… 엄두가 안 난다.”
“……”
아니, 이 선생님이?
당신 근접전투 과목 담당자잖아!
답답한 마음에 나는 그를 다그쳤다.
“아니, 쌤이 엄두가 안나면 어떻게 해요! 잔말 말고 들어가요, 내가 패널 보고 있을 테니까!”
“잠깐……! 야, 너무한 거 아니냐?! 너도 공범이잖아!”
“쌤은 쌤이잖아요!”
“……너 두고 봐라.”
결국 그는 마지못해 훈련장의 문고리를 잡았다.
내가 훈련 프로그램을 종료시키자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뭐야?! 어디 갔어! 죽은 자의 한계다, 이거야?! 앙?!”
쿵……
“……”
잠시 열렸던 문 사이로 들려온 살벌한 목소리.
나는 팔에 닭살이 돋는 것을 느끼며 패널을 바라보았다.
“스킬의 부작용이라도 되는 걸까……?”
어제 감지를 통해 알아본 그녀의 스킬 이름은 ‘광전사의 길’.
사용 무기가 도끼로 나와 있었기에 그것을 추천한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덕에 스킬을 습득하게 된 듯 했다.
어제 10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녹초가 되어버렸던 그녀가 저 정도로 도끼를 휘두르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그게 성격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였던가……?’
간혹 스킬 중에는 그런 것들이 있기도 했다.
워낙에 종류가 넘쳐나다 보니 그중 하나라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보통은 원래 성격에서 조금 바뀌는 수준이지만……’
설마하니 본래 성격과 정반대로 작용할 줄이야.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였다.
한쪽에서 전화 벨이 울린 것은.
훈련을 위해 따로 보관해 둔 한아름의 휴대폰이었다.
[I DID MY TIME! AND I WANT……]
뚝-
“……”
소울이 넘치는 드럼소리와 기타리프.
그리고그와 어우러진 스크리밍을 듣던 나는 나도 모르게 전화를 끊었다.
……어쩌면 감추고 있던 욕망이 드러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그로부터 얼마 후, 본래 정신을 되찾은 한아름은 거듭 사과를 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아무래도 스킬이 발동되는 동안 일시적인 성격의 변화였던 것 같다.
운성은 식은땀을 닦아내며 패널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어쨌든 성과도 있었고, 단점을 보완할 방법을 찾았다면 그걸로 된 거니까.”
“네에……그래도 정말 죄송해요.”
푹 숙인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스킬은 오늘 습득하게 된 거냐?”
“네! 저도 갑자기 스킬이 습득돼서 깜짝 놀랐어요! 더군다나 A급 스킬이더라구요!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자,잘됐네.”
‘사실 내가 말해 준 거지만.’
굳이 그걸 짚어주지는 않았다.
“아, 그러고보니 어머니 전화 오셨던데.”
“응……? 전화?”
“조금 전에 왔었거든. 그……”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한아름.
잠시 망설이던 나는 솔직한 감상을 표했다.
애초부터 사람관계에 그리 자신은 없었다.
둘러대는 건 내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벨소리에 영혼이 넘치더라.”
“……!”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은 귀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집어들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오늘 훈련한다고 했잖아? 왜 하필 지금 전화를 한 거야아……”
잠시 후 복도에서 엄마에게 투정부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비메탈을 듣는 모범생이라……’
그래, 헤비메탈 좋지.
때로는 상황을 긍정적으로‘만’ 봐야 할 떄가 있는 법.
살아 온 세월을 통해 배운 인생의 교훈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