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17화 - 이해하기 힘든 놈들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야?”
해가뉘엿 뉘엿 져 갈 즈음.
세상 모르고 잠들어있던 서현이 잠에서 깨어났다.
“왜겠냐? 누구누구가 대책 없이 달려들었다가 그 꼴 난 거지.”
“……”
분명 깨어나면 난동부릴 줄 알았는데, 웬일로 녀석은 말이 없었다.
말 없이 현화쌤의 연구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녀석에게 나는 입을 열었다.
“너, 이진명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서냐?”
“……”
녀석은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이 놈도 이유 없이 여기 온 게 아니었구만?’
나 역시도 그렇기는 했지만, 아마 녀석은 다른 뭔가가 있는 듯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내 질문에 녀석은 미간을 좁히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한참 동안이나 망설이던 녀석은 뒤늦게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있어, 그런 게.”
“말하고 싶지 않다면 굳이 캐묻지는 않을게. 대신, 다음부터 그러진 마.”
그렇게 당부만 해 둔다.
어차피내가 알아봐야 크게 도움될 것 같지도 않았고.
“……쳇.”
녀석은 짧게 혀를 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곤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현화쌤 연구실.”
“현화…? 너랑 친한 그선생?”
“그래. 여기로 데려와 준 것도, 혹시나 몸에 이상 있을까 봐 준 것도 현화 쌤이야.”
내 설명에 녀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한쪽 구석에 앉아 잠든 현화 쌤을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와 현화 쌤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왜?”
“……”
한참동안 눈알을 굴리던 녀석이 조용히 물었다.
“……나이차가 너무 심하지 않냐?”
“와아, 넌 입으로 똥을 싸는 재주가 있구나?”
“아, 너도 나이가 많았지?”
“미친 꼬맹이일세?”
“뭐? 꼬맹이?! 이 노친네가?”
다사다난했던 실기 평가 날이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
실기평가 날로부터 일 주일 후.
한창 시끌시끌한 교실 안을 들어서며, 한진우는 학생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의 손에는 한 뭉텅이의 종이가 쥐여져 있었다.
“자자, 다들 조용히들 혀라. 대글빡 뽑아불기 전에.”
어느정도 교실이 조용해진 후 그는 그제서야 교탁에 기대서며 입을 열었다.
“자, 오늘은 중대발표가 있것십니다잉? 과연 그 중대발표가 뭐실까?”
“시험결과요?”
한 학생의 말에 그는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소리질렀다.
“그려! 자, 교탁 위에 올려둘터이니 있다가 확인들 허시고? 실기평가 점수도 같이 적혀 있으니께 잘들 숨기고.”
“숨기다뇨?”
“와? 당당혀? 자신이 있나벼? 어디 보자…… 확인 들어가것습니다잉? 따라라란……따라란… 쿵작짝쿵작짝…”
“……”
흥얼거리며 시험지를 넘겨보던 그는 질문한 학생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27점이네? 27점이여?”
“풉…!”
“푸하핫!”
“아 쌤!”
얼굴을 붉히는 한 학생과 웃음을 터뜨리는 나머지 학생들.
다시금 소란스러워진 교실을 진정시키며 한진우는 말했다.
“그라고, 오늘 본론은 따로 있제잉. 은가람, 그리고 은서현.”
“……?”
“뭐야?”
갑작스런 호명에 딴청을 피우고 있던 둘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둘이는 일단 앞으로.”
그의 말에 은가람과 은서현이 교실 앞으로 나가 섰다.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서자 교실 전체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한진우는 반을 훑어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뭐어…… 솔찌기 말혀서 아쉬워 하는 사람이 있겄냐만은, 오늘로 이 둘은 다른 반으로 가게 됐구마. 인사 나눌 사람들 있는가?”
“……”
혹시나 해서 그런 말을 건낸 한진우였지만, 입을 여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너그들도 징하다, 참. 사회 생활좀 잘 허지 그렀냐?”
“뭐,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요.”
“이딴 녀석들이랑 내가 뭐하러?”
태연하게 넘기는 은가람과 대놓고 독설을 내뱉는 은서현.
‘우째 한 달이 넘어갔는데도 친구 하나 없나……’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때, 교실의 가운데서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엉……? 이,인사하는 겨?”
정작 말을 건냈던 한진우조차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의 물음에 손을 들었던 여학생, 한아름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인사라기보다…… 둘은 어느 반으로 가게 되나요?”
“하아……그려, 기대한 내가 병신이여. 이 둘은 A클래스 1반으로 가게 됐구마.”
“A클래스……?”
“거기다 1반이라고?”
“하긴…… 그 정도이긴 하지.”
“여기 있는게 이상했어.”
그 때까지 조용하던 교실이 그제서야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뭐, 혹시 다른 질문들 있는가?”
“아뇨.”
“그려, 그럼…… 둘이는 이번 시간 마치면 짐들 싸고.”
말을 끝낸 한진우는두 사람을 다시 돌려보냈다.
“자, 그럼 오늘은 가장 기본적인 뭐시기냐……서테이터서 창에 관해 야그해 볼낀데…”
“스테이터스 창이요?”
“아따,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좀 알아 드셔! 조사불기 전에. 아무튼 이 술식은 너그들이 앞으로 숨쉬듯……”
그가 그렇게 수업을 재개하려던 참이었다.
쾅!
“……?”
교실 앞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수업에 난입한 불청객을 알아본 한진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 처자는 뭐 저리 무식한 힘만 세다냐…? 저 또 눈 돌아가부렀네, 저거.’
차현화였다.
“은가람! 그리고 은서현! 데려갈게요!”
“그려. 언제는 물어보고 데리고갔당가?”
“거기 둘! 허리 업!”
“……”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은가람과 은서현을 가리키는 그녀.
그에 은가람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은서현은 아니었다.
“뭐,뭐야?”
“아, 잔말 말고 따라와.”
“잠깐, 나는 왜?!”
“그건 가서 보면 알겠지?”
괜히 버텨 보는 은서현이었지만, 결국 은가람의 손에 끌려 나가는 그였다.
등장했던 것 만큼이나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진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평생 저 셋을 이해하는 날이 오긴 할랑가 모르것네……’
이제는 체념의 경지에 이른 한진우였다.
*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감도는 서재.
자신의 자리에서 양 손으로 턱을 받친 채로, 이진명은 미간을 좁혔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후에 봤던 한 학생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분명 가진 능력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았건만……’
상대의 능력치를 알아볼 수 있는 ‘간파’ 스킬.
당시 그 스킬로 알아본 은가람의 스테이터스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데 그 능력치가 증가했단 말이지……?’
심사 도중, 은가람의 능력치는 확실한 증가를 보였다.
헌터가 전투중에 성장하는 경우는 꽤 있었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증가폭이 심했다.
‘거기다그가 가진 분위기…… 도저히 이해할 수가없군.’
S급의 현직 헌터로서 웬만한 산전수전은 다 겪은 그였다.
전투 중에 갑자기 스킬을 습득하는 경우도 봤고, 은가람처럼 급작스럽게 발전하는 것 자체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런 그에게, 은가람의 존재는 뭔가 이질감이 들었다.
한참동안 고심에 빠져 있던 그는 서재의 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집사, 잠시 안쪽으로.”
“예.”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며 한 노인이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말이지.”
집사는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헌터가 자신의 역량을 넘어서는 기운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흐음…… 뭔가 있으셨던 모양이군요.”
자신을 응시하는 이진명의 시선에 집사는 잠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약자가 강한척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일시적으로 능력치가 증가하거나, 혹은 전투 중 급성장을 이루는 것 역시도 몇 번이나 봐 왔죠.”
“그거야 그렇겠지.”
“허나 ‘기운’이라 함은 곧 가진 힘과 그 경험에서 자연스레 몸에 배는 것입니다. 자신의 역량을 넘어서는 기운을 가지는 건…… 적어도 제 부족한 식견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흠……”
일목요연한 집사의 설명에 이진명은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녀석에게서 느껴진 기운은 절대로 일개 학생의 것이 아니었단 말이지……’
같은 S급 헌터로서도 간파 스킬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은가람이 힘을 숨기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하면 할 수록 이해하기 힘든 존재.
그에게 있어서 은가람은 마치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간 듯한 모습이었다.
“……알겠다. 이제 나가 봐라.”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중하게 인사를 건낸 집사는 조용히 그의 서재를 나섰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은은한 음악소리만이 서재 안을 가득채워갔다.
잠시 후, 이진명은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은가람이라…… 이해할 수가 없는 녀석이군.”
*
“자.”
“……?”
연구실에 도착하자마자 현화는 두 묶음의 종이를 내밀었다.
각각 4장씩 묶인 종이에는 똑같은 술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의아한표정으로 받아드는 은가람과 은서현.
현화는 기대에 찬 눈으로 그들을 보챘다.
“뭐 해? 얼른 전개해 봐.”
“……갑자기요?”
“내가 왜?”
“아, 잔말 말고 빨리! 너희라면 할 수 있잖아?”
“흐음……”
다소 억지스러운 그녀의 말에 은가람은 의심쩍은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술식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야 할 수 있기야 하지만…… 이거, 학생에게 이런 걸 부탁하는 것 자체가 규격 외 아닌가?’
본래가진지식이 있는 만큼 그에게는 어렵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어린 서현에게는 부담되는 양.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과 달리, 술식을 읽어내려가던 은서현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뭐야, 고작 이런 것 때문에 부른 거야? 이 정도야 간단하지!”
“당연하지! 간단하게 만들려고 얼마나 힘을 썼는데?”
한동안 잠잠했던 건 그 때문이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은가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화의 말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간단하게 만들려고 했다 치더라도, 그걸 당연한듯 받아치는 서현 역시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여간이 재능충들……’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며 그는 빠르게 술식을 훑어내려갔다.
“뭐…… 그리 어렵지는 않은……어? 잠깐만…”
“왜? 왜왜? 발견했어? 알아챘니?”
“쌤, 너무……”
“맞아! 전에 네가 썼던 바로 그 이론을 활용한 거거든?! 어때? 획기적이지 않아? 신박하지?!”
“아니, 너무 가깝거든요?!”
“……”
테이블 위에 올라타다시피 한 그녀를, 은가람은 필사적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은서현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나이차.”
“조용히 해라?!”
“아, 그래서 어떻냐고?!”
탕!
답답한 마음에 두 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는 차현화.
그녀의 두 눈에 감도는 광기를 확인한 은가람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전에 제가 썼던 그 이론……”
“그렇지?!!”
“아 쌤, 쫌!!”
다시금 들러붙는 그녀를 밀어내며그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과물이 뭔데요? 그 정도는알려줄 수 있잖아요?”
그의 질문에 현화는 이상한 것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는 풀면 알 수 있잖아? 뭐야, 또 돌대가리 모드야?”
“풋…!”
“은서현, 웃지마라…?”
옆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꼬마를 잠시 노려봐준 후, 그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겁나 불안해서 말이죠.”
“아, 그건나도 마찬가지야. 광기가 느껴지거든.”
“광기라니? 마치 내가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 너네?”
“……”
“……”
일순간 둘은 드물게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미친 것 같은데’-라고.
“아무튼! 위험한 건 아니니까 일단 해 봐! 전개하고 나면 깜짝 선물을 줄 테니까.”
“오, 이번엔 어떤 찹니까? 아니면 커피?”
“……”
‘선물’이라는 말에 은가람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은서현 역시도 내심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글쎄? 아마 그것보다 더 유용하지 않을까 싶은데.”
“하겠습니다!”
“뭐… 어쩔 수 없네.”
그렇게 둘은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그들의 손 끝으로 빠르게 모여드는 마력.
마치 두 눈으로 보듯 그 마력을 관찰하던 현화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둘 다 물리 계열 학생으로 알고있는데…… 재능 하나는 진짜 타고난 천재들이구만.’
잠시 후, 은가람과 은서현의 몸에서 발현된 마력이 술식을 따라 움직이며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학생만큼 정교한 패턴의 은가람과 다소 거친마력패턴을 가진 은서현.
전혀 다른 성격의 두 마력이 거울처럼 똑같은 모양을 그려내더니, 각자의 몸에 흡수되며 안정을 되찾았다.
제대로 술식이 발동된 것이다.
“3분 가량인가…? 역시 우수하네, 둘 다.”
간단하게 감상을 끝낸 그녀는 연구실 한쪽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러니까, 움직이지들 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