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15화 - 실기평가
친부모님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버림받았다.
[돌연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작해야 머리카락이 새하얀 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제대로 말을 떼기도 전에 선택을 받은 나는, 그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나를 길러준 것이 현재의 부모님이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엄마는 오히려 우리 서현이가 대견한데?]
[하지만…… 다들…]
[그 녀석들은 질투하는 것 뿐이야. 그리고 네 머리가 어때서? 이렇게 이쁜 은발인데?]
그들은…… 내게 있어 세상의 전부였다.
A급의 헌터였던 부모님.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위험한 거 아냐…?]
[걱정 마~! 이래봬도 헌터 협회잖아?]
[그럼!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단다.]
[그래도……]
[무엇보다 S급 헌터까지 함께 가니까,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헌터 협회의 연락으로 유럽으로 향했던 날.
그것이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서현이도 같이 갈 거야!]
[저…정말?]
[이번에는 며칠씩 집을 비우게 될 테니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장소.
처음으로 나가 본 해외였기에 나는 설렘을 가득 안고 그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그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광경.
거대한 마력의 뒤틀림과 함께, 그 근방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그곳에 있던 수천명의 사람들은그 자리에서 증발했다.
그리고……
[헌터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가족 분들의…… 애도를 표합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아…아니죠? 분명 S급 헌터가 같이 왔다고……]
절대로…… 부모님이 죽었을 리 없다고.
[……유감입니다.]
그 날, 내 세계는 무너졌다.
*
“많이 발전했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들에게 다가서며, 나는 그렇게 말했다.
“후우…당연하죠, 헤헤.”
“저희도 놀고만 있던 건 아닌걸요?”
“이게 다 가람이 형님 덕분이죠.”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뭔가 있었던 걸까.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내게, 경재석이 대답했다.
“형님이 저희를 바로잡아 주셨잖아요.”
“이제는 환경 탓하지 않고 저희 힘으로 올라가려고요.”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혹이란 스킬, 생각보다 더 좋잖아?’
당시에 내가 건냈던말은 그저 명분에 불과했다.
그저 그들이 나를 적으로 돌리지 않도록 적당히 밑밥을 깐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그 말 한 마디에 영향을 받아 이 정도로 성장할 정도라니……’
어쩌면 이 녀석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괜찮은 놈들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평가 조, 올라오세요.]
잠시 후, 돌아온 우리 차례에 나는 은서현과 함께 시험장 위로 올라섰다.
내 손에는 두 개의 단도가, 은서현의 손에는 하나의 단검이 쥐여져 있었다.
“C클래스 3반, 은가람과 은서현입니다.”
앞서 다른 조가 그랬듯, 간단한 자기소개를 끝내자 곧바로 시험이 시작되었다.
주변의 환영마법진에서 마력이 흘러나오며 시험장이 숲 속 한 가운데로 변했다.
그리고 눈 앞에 네 마리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의 피부와 사람 절반 정도의 키를 가진 마물.
등급으로 따지나 위험도로 따지나 최하급이라고 할 수 있는고블린들이었다.
‘다들 부러워서 난리 나겠구만?’
심사관이라면 다르겠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보이는 광경은 똑같은 시험장에서 고블린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가장 쉬운 상대 중 하나인고블린이 튀어나왔으니 다들 운이 좋다고 생각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지.’
묘하게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무작위로 상대가 선정된다고는 하지만, 진명이라면 충분히 그 대상을 조작할 수 있었을 테니까.
[평가 시작합니다.]
이내 평가가 시작되었다.
심사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몸을 날렸다.
*
“야야, 저 사람……”
“응? 뭐가……헉!”
“그 사람 맞지?”
은가람과 은서현의 평가가 막 시작했을 즈음, 시험장에서는 적지 않은 소란이 일고 있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거구의 사내 때문이었다.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 않은 채 심사관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 그는 심사에 집중하고 있는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지금은 심사중이니……어어…?!”
“헉! 회…회장님?”
“고생하는군.”
190의 큰 키와 탄탄하게 단련된 몸.
비즈니스 정장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그가 가진 저력을 가리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의 곁에는 그의 아내인 숙현과 두 아들이 거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
“회장님 내외분께서 이곳엔 무슨 용무로……”
“저 녀석이 은가람인가?”
“예…예?”
교사의 질문을 가볍게 무시한 그는 막 고블린에게 달려드는 학생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네, 맞습니다.”
“그렇군. 이번 심사는 내가 맡도록 하지.”
“하,하지만……”
“문제있나?”
조심스레 이의를 제기하려던 교사를 바라보는 그.
날카로운 두 눈동자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나왔다.
“아닙니다! 여기, 평가 패널입니다.”
“난이도 조절 시스템은?”
“그,그건 아무래도 학생의 안전과 형평성……이,이쪽입니다.”
소심하게나마거절을 해 보려던 그였으나, 다시 한 번 그를 덥치는 살기에 그는 태도를 바꿨다.
그의 눈 앞에 있는 것은 진명그룹의 회장, 이진명.
비록 그가 이끄는 진명그룹은 그리 거대하지는 않았지만,그 당사자만큼은알아주는 인물이었다.
전 세계에서 몇 안되는 S급의 현직 헌터.
『철혈금강』의 이명을 가진 자가 바로 그였으니까.
아버지의 말에 끽 소리 못하는 교사를 바라보며, 현진과 현성은 거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들은 각각 한쪽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한 상태였다.
“이제 저놈은 끝이지.”
“제 아무리 날뛰어 봐야 S급 헌터 앞에서는 어린애지.”
입학 첫날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은가람이었다.
일개 서민이 자신의 주제도 알지 못하고 나대는 것이 역겨웠다.
그런 그에게 두 번이나 처참하게 깨졌으니 오죽하겠는가.
더군다나 지금은 그로 인한 부상 때문에 실기평가를 보지도 못하는 상태.
이번에야말로 그 가증스런 놈의 콧대를 꺾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은 흥분해 있었다.
그런 두 아들의 대화를 귓등으로 흘리며, 이진명은 조금씩 평가의 난이도를 올렸다.
‘우선은 가볍게 네 단계.’
그의 입장에서 ‘가볍게’라고는 했지만,실질적으로 따져 본다면 터무니없는 정도였다.
C클래스 3반의 수준에서 난이도를 4단계나 높인다면 A클래스 학생과 같은 레벨의시험을 치르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필기가 아닌 실기였기에 학생의 목숨이 위험할 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차가운 눈으로 시험장 안의 두 학생을 응시했다.
*
후우웅-
공기를 가르는 육중한 파공성에 은서현은 빠르게 몸을 굴렸다.
쿵!
간발의 차로 오크의 도끼가 그가 있던 자리를강타했다.
채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그는 다시 한번 몸을 날리며 근처의 적을 찔러갔다.
푸욱!
“크어어어억!”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녹색의 끈적한 피.
한 마리의 오크가 쓰러지기도 전에서현은곧바로 단도를 뽑아 몸을 날려야만 했다.
후욱-
퍽!
그리고 그가 있던 자리를 스치며 몸이 찔린 오크를 반토막내는 도끼.
서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제기랄! 이게 뭐냐고!”
“크읏…! 말 할 시간 있으면 한 마리라도 더 잡아!”
“안 그래도 그럴……!!”
타앗!
콰지직!
함께 싸우는 은가람의 사정 역시도 그리 좋지 않았다.
미간을 좁히며 분주하게 양손을 놀리는 그.
그가 지나간 자리로 녹색의 피가 연속해서 흩뿌려졌다.
‘결국 이렇게 나온다는 말인가?’
본래라면 그리 어려울 것 없는 시험이었다.
고블린 4마리 정도라면 혼자서도 3분이면 충분했으니까.
그랬기에 이번에는 불필요한 권능의 사용 없이, 순수 자신의 전투력으로 시험을 이끌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체 그건……’
그러나 평가가 시작된 지 채 1분이 되지 않아 그는 거대한 뭔가의 접근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A급 현역 헌터…… 아니, 어쩌면S급의 존재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고작해야 오크나 고블린이 그런 존재감을뿜을 수는 없어. 그렇다면 바깥일 건데……’
사실상 심사가 시작된 이후로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상황이었기에 지금은 알 길이 없었다.
확실한 건, 그 직후 시험의 난이도가 급변했다는 사실.
누군가의 개입이 있다는 소리였다.
‘이대로는 조금 위험한데……’
처음 출현했던 고블린들은 이미 진즉에 처리했지만, 여전히여섯마리의 오크가 남아 있었다.
확연한 체격의 차이와 수적 열세.
제약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아슬아슬한 수준이었다.
‘지금 정도라면 겨우겨우 버텨낼 수는 있어. 문제는 그 다음. 어쩔 수 없는 건가…!’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만큼 안심하기는 일렀다.
여기서 난이도가 조금이라도 더 높아진다면 그 때는 정말로 위험했다.
은가람은 낮게 혀를 차고는 몸을 던졌다.
*
‘믿을 수가 없군.’
심사관의 자리에서 둘을 바라보고 있던 이진명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네 단계를 끌어올린 난이도.
C클래스에게 있어서 생명이 위험할 정도라는 사실은 이진명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를 강행했던 것은, 현재 A클래스에 있는 자신의 아들 둘을 일방적으로후드려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대로, 은가람과 은서현은 꽤나 능숙하게 상황을 풀어나가고 있었다.
‘만난 지 채 3개월이 되지 않는 기간동안 저 정도의 호흡을 보여준다라…… 거기다 개인의 능력 역시도 웬만한 A급에 못지 않군.’
특히나 은가람은 더 그랬다.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당황하는 기색도 적었고, 그의 움직임에서는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제 갓 입학한 학생에게서 이 정도의 능숙함이라…… 어지간한 현역 헌터도 저 정도의 움직임을 보이기는 힘들텐데.’
저 정도의 인재라면 자신의 두 아들이 당해낼 수 없는 것도 납득이 갔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맞기만 할 정도라고 보기는 힘들군.’
비록 두 아들의 인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들의 실력이 낮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둘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 채로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고 왔다는 건, 이보다 더한뭔가가 있다는 의미였다.
‘아직도 힘을 숨기고 있어. 저 정도의 움직임을가진 이가 이 정도에 밀릴 리 없다.’
조금 더 난이도를 높여 봐야 할까.
그런 생각에 그가 패널을 조절하려던 순간이었다.
은가람의 움직임에 변화가 있었다.
“음……? 뭐 하는 거지……?”
멀쩡하게맞춰가던 호흡이 틀어지기 시작하는게 눈에띄게 보였다.
급박한 전투 상황 속에서 은서현과 조금씩 마찰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아, 둘의 호흡이 틀어지기 시작했군요.”
“사실 입학 실기때도 똑같았었죠…?”
“역시 반학기 동안은 바뀌지 않네요.”
“……”
주변에서 한 마디씩 던지는 교사들의 말에 이진명은 말 없이 미간을 좁혔다.
분명 그들의 견해가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얼핏 보면 단지 팀워크가 부족해서 손발이 엉키는 것 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이건 그런게 아냐. 의도적으로 호흡을 흐트리고 있어.’
그의 눈에는, 은가람이 의도적으로 팀워크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대체 왜지?’
잘 풀어나가고 있는 전투를 망칠 이유가 전혀 없을 텐데.
‘뭘 숨기고 있는 거냐…! 어디 한 번 보여봐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난이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