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11화 - 정당방위였는데요?
투화악!
압축되는 공기가 터져나오는 듯한 소리.
정면을 향해 날아드는 주먹은 꽤나 매서웠지만, 제약이 어느정도 풀린 지금으로서는 그리 위협적인 공격은 아니었다.
빠르게 자세를 낮춰 그것을 피해낸 나는, 곧바로 체중을 실어 상대의 늑골에 주먹을 꽂았다.
퍼억!
콰드득!
“크흡……!”
그 자리에서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는 그.
나는 곧바로 땅을 박차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런 니미…!”
“죽여버려!”
조금 전의 충돌이 신호탄이라도 된 마냥 한꺼번에 덤벼들기 시작하는 이들.
‘세 명 뿐이라…… 아직은 할만하지!’
훅-
퍼억!
“끄악!”
왼쪽에서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며, 동시에 오른쪽 녀석의 다리를 걷어차 바닥으로 무너뜨렸다.
“개새끼가!”
툭- 콰앙!
이어서 정면에서 달려드는 녀석의 중심을 흐뜨려 바닥에 매다꽂는다.
바닥에 금이 가며 피를 토해내는 상대.
아마 일반인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A반인데, 이 정도로 죽지는 않겠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죽지 않는 선에서는 마음껏 날뛰어도 상관없다는 거겠지.
“저…저게 뭐야?!”
“으아악!”
“뭐…? 야, 어디 가는 거야!!”
또 다시 세 명이 바닥에 드러눕자, 현진과 현성을 제외한 나머지는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추격해서 잡아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지만……’
지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
당장에말을 퍼뜨릴 사람이 없다면 그것도 곤란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두 명, 현진과 현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망치는 녀석들이야 상관없지만, 너희는 좀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지?”
*
“대체…… 저 놈은…”
“사람이아니야……”
일방적으로 두 사람을 압도하는 은가람을 바라보며, 목연우와 최하림, 그리고 경재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금 전,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였다.
은가람의 기세에 압도되고 있던 것이다.
“이런……제기랄!”
콰아아- 파앙!
“어익후, 위험해라.”
퍼억! 퍽!
현성의 손 끝에서 터져 나온 공력을 가볍게 피해내며 은가람은 반격을 계속해 갔다.
이어서 날아드는 현진의 공격 역시도 그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못했다.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같은 놈이……!’
목연우는 자신이 한참이나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저 공부만 잘 하고 힘만 센 바보가 아니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순전히착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다 알고서 그랬던 거였어.’
현진 정도라면 자신이 상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형인 현성이 상대라면…?
아마 가능성은 전무할 것이다.
같은 나잇대에서 호적수를 찾기 힘든 현성이었으니까.
‘그런 현성과 현진이 전력을 다하고도압도당하는 상황이라…… 이런 녀석은 한주희 이후로 처음인데…’
가히 충격적이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두 눈을 빛냈다.
최하림과 경재석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한주희보다도 강한 녀석일지도……’
‘절대로 적으로 둬서는 안될 사람이야!’
이미그들의 머릿속에서 은가람의 배신은 지워진지 오래였다.
그것이 그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끝내 알지 못했다.
*
C반의 신입생이 현진과 현성을 때려눕혔다─
지극히 간단한 그 소문은 빠르게 아카데미 내로 퍼져나갔다.
상당한 수의 아카데미 학생들이 그 사실을 접하는 데까지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하아…… 나가 대체 뭔 잘못을 혔길래 인생에 이런 시련이 오는겨…”
한진우는 눈 앞의당돌한 학생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거시기… 물론 그, 현진 금마가 좀 얼라기는 하지만 말이제. 이라믄 피차 곤란하다 이거여.”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아……”
그걸 알고 있으면서 저렇게 당당한태도는 뭐란 말인가.
한진우는 십 년 동안 쉴 한숨을 오늘 안에 몰아쉬는 기분이었다.
그런 그의 기분을 알 리 없는…… 아니, 알아도 전혀 신경쓸 리 없는 은가람은 해맑은 표정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정당방위였잖아요? 저도 어쩔 수 없었다구요. 증인도 있고 말이죠.”
“내 말은…! 하아……”
바로 그게 곤란한 점이었다.
차라리 증인도 없고 증거도 없었다면 그냥 눈 앞의 문제아에게 가벼운 징계,이를테면 교내청소따위의 잡일을 시키고는 진명그룹에 생색이라도 내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놈이 명확한 증거와 증인을 내세우고 있으니, 그것조차 쉽지않다는 것이었다.
‘아니제… 증인이 없어도 임마라믄……’
부조리한 징계를 곱게받을 리 없지.
그걸 빌미삼아서 깽판을 더 부린다면 모를까.
아직 채 하루도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그가 어떤 사람인지 뼈저리게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진명그룹의 압박이 적지 않겠죠?”
“그걸 알고 있으믄 쪼매 참아주지 그렸냐……”
“그런데 진명그룹이 갑질을 많이 하는 편인가요?제가 알기로 월영의 교장쌤은 그런 거싫어하실 텐데.”
“……”
은가람의 질문에 한진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낮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하아…… 그 교장쌤이 최근에는 학회 일로 바빠가 잘 안오신댜.”
“이진명 회장은요? 그 사람도 그런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S급 헌터, ‘철혈금강’의 칭호를 가진 이진명.
은가람의 기억에 그는 꽤나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오히려 답답할 정도로 융통성 없어서 열받았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진명 회장님은 아녀. 문제는 그짝 사모님이제.”
“네?”
“이진명 회장은 이런 짜잘한 거 신경 안 쓴다, 이거여. 자기 강해지는게 그 뭣보다 중헌 사람 같던디…… 물론, 나도 직접 만나본 거이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말이제.”
“흐음……”
‘그래도 아내나 아들들의 말을 무시할 사람은 아닐텐데.’
은가람은 질문을 이어나갔다.
“선생님 말이나 저희들의 말은 사모님이 잘 안들어줄까요?”
태연한 표정으로 묻는 은가람을 보며, 한진우는 버럭 화를 내려다 다시금 속으로 삭혔다.
결국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또 한 번의 한숨이었다.
“하아……아야, 그짝 사모가 우리같은 넘들 말을 듣기나 할 리 없제이? 당연한 소리여.”
“그래도 진우 선생님은 교사시잖아요?”
“아무리 교사라도말이여! 여기는 월영 ‘헌터’ 아카데미여, 고등학교가 아이라! 결국 진명이라 하믄 월영에서……”
“그러면 현화쌤 말이라면요?”
“……뭐여?”
예상치 못했던 이름에 한진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은가람을 바라보았다.
“현화 쌤이라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요.”
“……”
그는 미간을 좁히고 은가람을 바라보았다.
‘물론 ‘차현화’라고 한다면 유명하기는 하지만…… 요즘에 현화쌤을 아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은데……’
월영의 학생들 조차도 ‘그냥 조금 별난 선생님’으로 알고 있거나, 아예 월영의 교사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런 사실을 입학한 지 갓 하루도 안 된 학생이 알고 있다는 것이 진우는 의아했다.
“현화 선생님이라믄…… 조금 야그가 다를 수도 있제.”
결국 그는고개를 끄덕였다.
“허지만, 현화 쌤이 뭐더러 그런 수고를 혀? 겉보기는모르지만 말여, 그 쌤은 월영의 S급 학생한테도 눈길 한 번 안 주는 사람이여. 사람으로도 안 보는 양반인디……”
“글쎄요, 제가 말하면 조금 다르지 싶은데요.”
“……”
진우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바로 두 시간 전, 그를 찾겠답시고 뛰쳐나간 현화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랐던 양반이 정작 당사자가 여 있는디 뭣을 허고 있는지 모르겄네…’
결국 그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그의 손을 떠난 스케일이었다.
“하아……그려. 너 알아서 혀. 난 인자 모르것으니께. 짐이나 미리 싸 놓든가혀야지.”
“짐은 안 싸셔도 될 거에요.”
신세한탄을 하는 그를 향해 한 마디를 던지며 은가람은 교무실을 나섰다.
그가 나간 문을 잠시간 바라보던 한진우는 의자에 몸을 푹 기대며 낡은 천정을 바라보았다.
“근디 정말 우째 된 녀석인고……”
헌터 아카데미에는 나이가 정해져 있지 않다.
학년의 개념은 존재했지만, 그것이 곧 나이와 직결되는 일반적인 고등학교와는 달랐다.
1학년에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있을 수도 있고, 3학년에 15살의 꼬맹이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잘 없단 말이여?’
오히려 나이 어린 신동이나 천재의 경우가 더 흔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것도 20대 중반 이후로 뒤늦게 헌터 아카데미에 진학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 와서 준비한다고 한들, 이미 가망은 없었으니까.
‘근디 어짜 점마는 24살을 쳐묵고도…… 결국 재능은 재능이란 말인겨?’
현진과 현성을 흠씬 두들겨 팬 후, 병원까지 보내버린 장본인.
아직 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한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 그것도 A클라스 1반의 학생 둘을 그렇게 떡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C클래스 3반의 학생이.
“아이, 근데 저런 천재가 뭔 잘못을 혀서 우리 반에 있냐는 말여?! 아오 답다배 미치긋네!”
듣는 이 없는 교무실에서 홀로 머리를 쥐어뜯는 한진우였다.
*
시간은 꽤나 빠르게 흘렀다.
현진과 현성에게 예의를 주입시킨 후,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그 소문은 전 아카데미로 퍼져나가게 되었고, 현화 쌤의 도움이 있었기에 진명그룹에서도 큰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런 화려한 입학 첫날 이후로, 정말 불행하게도 내게 시비를 걸어오는 이는 없었다.
잘못 말한 것 아니냐고?
아니다.
‘불행하게도’ 가 맞다.
‘좀 살살 했어야 했나……?’
요주의 인물인 그 둘을 살짝 밟아놓고 나면 그들을 중심으로 다른 녀석들이 또 싸움을 걸어 올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씩 제약을 풀어나갈 생각이었고.
하지만 그 이후,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문제거리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물론…… 완전히 발을 뺐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지만…’
진명그룹의 규모로보건데, 절대로 거기서 포기할 녀석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놈들이 곱게 개과천선할 것 같지도 않았고.
‘뭐, 기다리다보면 알아서어련히 찾아 오겠지.’
가장 유력한선택지는 아무래도 실기 시험이겠지만.
드르륵-
“자자, 조용히들 허고 자리에 앉어라.”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한진우가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한 뭉텅이의 종이가 쥐여져 있었다.
“오늘 시험인거 몰랐던 사람 읎제? 어제도 말 혔으니께.”
“네에~!”
“뭐…… 그래 봐야 짜달시리 기대같은 건 안 허니께, 편하게들 쳐. 허구헌날 말허지만, 느그들은 헌터가 될 인재는 아인께.”
“아 쫌, 쌤!”
“진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늘은 그런 말 안하면 안돼요?”
첫 날과 달리 어느 정도 친해졌기 때문일까, 한진우의 폭언에 학생들은 야유를 보냈다.
“다들 조용히 혀! 거 대글빡을 뽑아갖고 닷짜꾸리 혀불기 전에.”
그에 버럭 화를 내는 한진우였지만, 그의 그런 말에 상처를 받는 녀석은 이제 없었다.
“눈까리 굴러가는 소리 들리면 고자리에서 조사불랑게, 조심들 혀라잉?”
어느 정도 반이 조용해지자, 그는 한 명씩 시험지를 나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