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9화 - 차현화
“정말?! 맞지!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지?!”
덥썩!
어깨를 잡으며 그렇게 물어 오는 그녀.
마주한 그녀의 눈에서 ‘이성’이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완전히 눈이 돌아간 것 같았다.
소름끼치는 듯한 광기에 나는 떫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기는 한데요?”
“이번에 입학한? 필기시험 만점??”
“네…그렇죠…?”
“잘 됐다! 따라와!”
“???”
내 대답을 들은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손목을 끌고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간단하게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
‘어…?’
─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뭐야, 이 사람?’
*
“필기 만점이라고…?”
“그런게 가능한 일이었나……?”
은가람이 차현화의 손에 끌려간 후, 남은 2반의 세 명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신입생 중 은가람이라는 녀석이 현진을 두들겨 팼다는 사실은 들었으나, 그가 설마하니 필기 시험을 다 맞았을 줄이야.
복잡한 감정이섞인 표정으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거기다 조금 전의 그 위압감은 대체 뭐였지?”
“솔직히 현성이나 한주희도 어느 정도의 위압감을 뿜을 수는 있었지만 그거랑은 완전 다른 차원의 것이었지.”
“야,야, 말 조심.”
한주희를 언급하는 그의 말에 다른 두명이 그를 말렸다.
“또 어디서 듣고있으면 어쩌려고?”
“너 그러다 진짜 어디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쫄지 마, 키 안 커 새끼들아.”
“에휴, 답 없는 새끼.”
조심성 없는 그의 말에 한숨을 내쉬는 둘.
그런 둘을 향해, 처음 한주희를 언급했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녀석이지만 이용할 가치는 충분한 것 같지?”
“그건 그래. 괜히 C반인게 아닌 것 같더라. 너무 순진했어.”
“나이를 헛 먹었다니까? 힘만 세면 뭐해? 정작 머리가 헛똑똑인데.”
“그게 우리한테는 좋은 거 아니냐?”
“그렇지, 킥킥…!”
“보아하니 현진 그놈이랑 사이가 좋아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우리가 손해 볼 건 없는 거지.”
의도대로 되어간다는 생각에 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
[감지할 수 없음]
‘뭐라고…?’
이제껏 본 적 없던 메시지에 나는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C급에 머물러 있는 감지 스킬.
그렇다고 해도 보통은대략적인 정보는 파악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손목을 끌고가는 여성의 경우, 감지할 수 없다는 일관된 메시지만이 떠올랐던 것이다.
‘보통 사람이 아냐…!’
체형으로 봤을 때 근력이 그리 높은 수치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내 손목 근처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생각해 본다면 아마 모종의 마법으로 나를 구속했을 터.
그러나 무슨 수를 쓴 것인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저력을 알 수 없는 상대였기에,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일단은 가서 이야기하자. 여기서 이야기하자면 길어.”
“저……수업 시작했는데요?”
“이미 수업 빼먹고 있었잖아?그리고 그런 거, 어차피 배워 봐야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
물론 맞는 말이긴 한데, 분명 선생일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일까……?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나는 그녀의 손에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5분 정도를 걸었을까, 우리는 C클래스 건물의 한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교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교실이라기보다는 연구실에 더 가까워보였다.
“자, 일단은 앉아. 차라도 내 줄까? 커피?”
한쪽에 마련된 접대용 소파에 앉으며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럼…… 에스프레소로 한 잔…”
“미안한데 여기에 에스프레소 머신은 없어. 그냥 핸드드립으로 해 줄게.”
단호하게 말한 그녀는 책상 한 쪽에서 드리퍼를 꺼내고 원두를 준비했다.
잠시 후, 교실 안에는 고소한 커피향이 진득하게 차올랐다.
“자, 마셔.”
“감사합니다.”
가볍게 인사를 건낸 후 나는 그녀의 말을 먼저 기다렸다.
“그래서…… 뭐 때문에 부르신 거죠?”
그녀는 한쪽에서 꾸깃꾸깃한 종이 한장을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이거 때문이야.”
“이건……방벽소년단 공개 콘서……”
탁!
콱콱콱!
내가 첫 번째 줄을 다 읽기도 전에 그녀는 전광석화로 종이를 낚아채 주머니 안쪽으로 우겨넣었다.
그리고는 이내 다른 종이를 꺼내 내게 건냈다.
“이,이거야 이거!”
“……”
다급하게 내밀어진 종이에 다시금 시선을 던졌다.
다행이 이번에는 제대로 된 용건인 듯했다.
“그거, 네가 쓴 것 맞지?”
“……무슨 소리신지…? 이건 제 글씨체가 아닌데요?”
“당연하지! 쓴 건 진우쌤이니까! 근데, 그 수식은 네가칠판에 썼던 것 맞잖아! 아냐?”
‘이게 결국 이렇게 되네.’
설마 이런 것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이 있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복잡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현재로서는 밝혀진 이론을 뒤엎는 수식이었으니까.
‘보통 욕을 안 들어먹으면 이상한 수준인데…… 한진우도 그렇고 이 사람도 평범하게 볼 수는 없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대답에 앞서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쪽은 대체 누구신지…?”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아, 내 정신좀 봐! 내 소개도 안 했구나?”
“……”
“내 이름은 차현화라고 해. 월영의 입학 필기시험의 출제자이기도 하고, ‘일단은’ 여기서 일하고 있는 교사지.”
“……네?”
그리고 나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교사라는 사실이야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이름이었다.
차현화.
그게 누구의 이름이던가?
다른 헌터에게 관심이 없던 나라고 해도 모를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름이었다.
현시대를 대표하는 기술자, 엔지니어이자 동시에 마법사.
마법학과 회로, 그리고 공학 전 분야에 선을 두세 획 정도 그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대체 왜 이런 누추한 곳에……’
물론, 월영이 한국에서는 꽤나 대표적인 헌터 아카데미 중 하나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녀의 레벨이라면 세계 정상에서도 모시지 못해 안달일 정도.
이런 곳에서 교사나 하고 있을 위인이 아니었던것이다.
‘회귀 전에는 없었는데……그 이전에 월영을 나간 건가?’
아니면, 단순히 내가 눈에 들지 않아서 몰랐을 수도 있다.
아까 2학년의 삼인방 역시도 모르는 눈치였으니까.
‘생각해 보면…… 차현화는 연구광이라고 했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만…’
그녀는 내게 건낸 커피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커피부터 마시고 이야기하자. 그 편이 더 나을 테니까.”
“……혹시 여기에 무슨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건 아니죠?”
“내가 그정도로 악질은 아냐! 그리고 그거, 에디오피아 산 원두에 최고급 마력 로스팅을 거친 원두라고? 안 마시면 후회……”
“감사합니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잔을 들이켰다.
마력 로스팅을 거친 원두는 일반적인 원두와는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섭취자의 신체능력은 물론이고, 마력의 향상에도 충분한 도움을 주기에 최하급이라고 해도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것이다.
‘근데 최상급이라면 마다할 이유가없지.’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반 잔을 마셨음에도 체내의 변화가 체감될 정도였다.
“자, 그러면 이제는 대답해도 되지않아? 그 공식…… 네가 떠올린 거야?”
“흠…… 조금 복잡하긴 한데, 일단은 맞아요.”
잠시간 고민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사실 가설이라고 해야 할지…… 그냥 넘겨짚은것 뿐이에요. 증명된 것도 아니구요.”
“무슨 말이야?”
“게이트마다 흘러나오는 고유 파장이 있잖아요? 마력적합성이 있는 헌터만이 마물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으니까 혹시 마력 방어막 같은게 있지 않을까, 하고 추측했을 뿐이죠.”
물론, 사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게이트의 고유파장이 그 내부의 마물에게 투명한 장막을씌워준다는 것은 몇년후 차현화 본인이 증명한 사실이었다.
‘그걸 나는 어쩌다보니 주워먹었을 뿐이고.’
정작 그걸 증명해 낸 당사자가 내게 그걸 물어보고 있으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그런 티를 낼 필요는 없다.
나는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뭐……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거 알아요.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증명된 마력파장에 관한 이론을 몇 개나 엎어야 하잖아요? 그냥 망상에 더 가깝……”
“아냐!!”
“아이, 깜짝이야.”
갑작스레 소리치는 현화의 목소리에 나는 몸을 움찔 떨었다.
“오히려 반대라고, 반대! 이걸입증할 수만 있으면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마물에 대한 사실이 드러나는 거란 말야! 앞서나온 이론들이 잘못됐으면 잘못됐겠지!”
“…하지만 케히빈 공식에 의하면……”
“그.러.니.까! 그 케히빈 공식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벌써 나온지 2년은 지난 이론이잖아!! 너 돌대가리야?! 천재야, 바보야? 둘 중 하나만 해!”
“……”
거 말 한번 심하게하시네.
테이블을 가로질러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대며 말하는 차현화를, 나는 그런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이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후우…… 미안. 나도 너무흥분했네.”
“괜찮아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는 커피잔을 비웠다.
“그런데 정말로 전 잘 몰라요. 그냥 떠오르는 대로 끼워맞췄던 것 뿐이라……”
“진우쌤 말로는 자신있게 나와서 신나게 풀어제꼈다고 하던데?”
“그야…… 수업 내내 잤으니까… 민망해서 그랬죠. 암만 생각해도 쪽 주려는 것 같아서.”
물론 그것도 거짓말이지만.
그에 현화는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그냥 떠오르는대로 휘갈겨 쓴게 이 이론이란 말야? 너 돌대가리 맞아?”
“……아닌데요?”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뭐,이 사람 눈에는 다 멍청이로 보이긴 하겠지.’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다시금 변명을 늘어놓았다.
“분명 이건 제가 쓴 거긴 한데… 이 이상 모든걸 증명하라고 한다면 그건 못해요. 말씀드렸다시피 전 천재가 아니라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천재인데?”
“아니, 조금 전에는 돌대가리라면서요.”
“그것도 맞고.”
“……”
당연한 소리를 하듯이 말을 내뱉은 그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건 그냥 넘어갈 만한게 아냐. 말 그대로 마법의 역사에 한 획을 거하게 그을 수 있는 거라고? 만약 이게 제대로 증명되기만 한다면……”
“……?”
“인공적으로 마력 적합도를 늘일 수 있는 방법도 알 수 있을지 몰라.”
*
“저기…서현아. 일단은 같은 조니까……”
“염병할! 싫다니까?! 내가 너희같은 머저리들이랑 뭣하러!”
“마,말이 좀 심하잖아?”
“그래서 뭐?! 꼽아? 붙어 볼래?!”
“……”
이것으로 벌써 세 번째.
이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앞에는 서현과 한 조가 되기로 했던 두 명의 학생이 불만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희도 할 만큼 했어요. 근데 보라구요!”
“저 녀석은구제불능이라니까요?! 나이가 어려서 넘어가려고 해도 정도가 있지……!”
“하아……그래, 너희들이 무슨 죄가 있겠니.”
결국 다시금 문제는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한 달 후면 있을 실기 평가에서 서현과 조가 되기로 했던 학생들이 끊임없이 인원 변경을 부탁했던 것이다.
차라리 두 명이서 하고 말지- 라는 일관된 의견을 제시하면서.
결국 그녀는 서현을 따로 불러야만 했다.
“후우……서현아.”
“……왜요.”
“이런 식으로 나오면 넌 헌터가 되기 힘들다는 거…… 알잖아?”
“그래도 싫습니다.”
단호한 그의 대답에 이현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재능이 너무 뛰어나도 문제구만…’
나이에 맞지 않는 재능.
그녀가 보기에 서현은 현재 3반에서 가장 우수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바로 그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의 협력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다면서.
“그러면 어떻게 하고 싶니? 실기 평가 안 볼 거야?”
“……”
“이런 식으로 나오면 선생님이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혼자서는 실기평가 못 보는거 알잖아.”
타이르듯 건내는 말에 서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그러면 이건 어떨까? 우리 반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던 학생이랑 붙여주는 거야. 필기든, 실기든 말야. 그것도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