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6화 - C클래스
“이런 썅!”
자신에게 통보된 입학 배정 결과를 바라보며, 은서현은 욕설을 내뱉었다.
“내가 C급이라니?! 은가람 그 병신만 아니었어도!”
그의 머릿속에는어제 자신과 합을 맞췄던 은가람의 얼굴이 새겨지고 있었다.
‘아니, 합을 맞춘 것도 아니었잖아, 그건!’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괜한 오지랖을 떨어서 창피를 준 것도 모자라, 자신의 등급까지 떨어뜨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A급으로 올라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겐 그만한 실력이 있었고,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대체 그놈은 뭐하러입학지원을 한 거냐고?! 그렇게 개인플레이 할거면 월영으로 오지를 말던가!”
여느 아카데미가 다 비슷하기는 하겠지만, 특히나 월영은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곳이었다.
입학 시험이 2인 1조로 치뤄지는 것 역시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그는 마음 한 편이 편치 못했다.
물론, 그의 오지랖이 상당히 거슬렸던 것은 맞았다.
그러나그 행동의 결과만 따져 본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기분은 나빴지만 처음에도 그녀석 덕분에 공격을 피했고…… 1대1의 상황을 만들어 준 것도……’
무엇보다, 그가 있었던 덕분에 경기를 이길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도저히 버리지 못하는 그였다.
‘어쩌면 그냥 표현하는게 서툰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짝!!
“아니지, 내가 뭔 생각을 하는 거야?! 하여간, 이런 것 하나 하나도 마음에 드는게 없어!”
괜히 애먼 곳에 화풀이하는 은서현이었다.
*
“상태 창.”
[은가람]
근력: 45 (897) 민첩: 47 (931)
마력: 35 (707) 체력: 34 (675)
초월 권능: 이기적인 선택자
보유 스킬: 감지(C), 현혹(B)
봉인 스킬: 그림자 검날(S), 그림자 이동(S),외 43개.
누적 제약_95%
분명 어제의 경기로 인해 스테이터스는 확연하게 올라 있었다.
사실 수치만을 따지고 본다면 어엿한 C급 헌터 지망생이라고봐도 무방하겠지.
더군다나 보상으로 B급 스킬까지도 얻었으니 꽤나 쏠쏠한 보상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내심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C급이라…… 한동안 은발 꼬맹이와는 안녕인가?’
사실 어느 정도 짐작가는 이유는 있었다.
보나마나 그 아줌마겠지.
진명그룹의 사모라면 이런 일이 벌어져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하기야, 눈 앞에서 두 아들을 그렇게 밟아놨으니 어지간히도 속이 쓰렸을 거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를 밟으려 들텐데.
그런 부류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회귀 전에도 수없이 봐 왔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 자기가 이길 때까지 덤벼들겠지.’
그런 사람들에 대한 대처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다신 기어오르지 못하게 철저히 밟아놔야겠네.”
지렁이도 꿈틀거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건 확실하게 밟지 않았기에 그럴 뿐.
압도적으로 눌러버린다면 제 아무리 진명그룹이라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쪽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좋은 건 오히려 이쪽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기대하면서 나는 웃음을 흘렸다.
“겸사겸사 제약도 풀고…… 아주 파란만장한 학창시절이 되겠구만.”
*
화창한 아침 햇살과 싱그러운 아침 공기.
참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와 봄의 향긋한 내음~!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는 것에 대한 설렘!
“쟤 아냐?”
“쉿…! 조용히 해!”
“……”
──당연하지만, 그딴 건 없다.
등교한다고 그런 붕 뜨는 기분을 느끼거나 설렘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가어떻게 된 사람이겠지.
아카데미라고 뭐 다르겠나?
참새 소리도, 봄의 내음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도시.
그 빈자리를 다른 학생들의 말소리가 대신 채웠다.
심지어 아침햇살조차 퀴퀴한 비구름에 가려져 쌀쌀한 공기만이 가득한 아침이었다.
“……거, 등교하기 딱 좋은 날이구만.”
괜시리 그렇게 중얼거려 본다.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 끝에 불을 붙였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허파를 잠시 들렀다가 허공으로 흩어져 갔다.
“어우, 담배냄새……”
“어제 봤잖아? 이기적인 놈의 끝판왕인거…”
“야야, 듣겠다.”
등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B클래스 부터는 기숙사 생활을 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단순히 내가 등교하는 시간이 늦어서 그런게 더 크겠지.
그런데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내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꽤나 쏠쏠하겠구만.’
감지 스킬을 통해 확인해 본 이들중 제대로 헌터 구실을 할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굳이 그런 사람들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제약을 푸는데 이용하는게 이득일테니까.’
안 그래도 거리를 두고 있던 이들이 더 멀찍이 떨어진다.
일부러 헛기침을 흘리거나 아예 나를 앞질러 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안좋게 볼 때마다, 소소한 보상이 하나 둘 들어왔다.
[스테이터스 증가_근력+1(영구)]
[스테이서트 증가_체력+2(영구)]
‘담배를 피고 있는데 힘과 체력이 늘어나다니. 이게 바로 창조경제인가?’
그런 생각에 실없이 웃음을 흘렸다.
새로 구한 자취방에서 아카데미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
담배의 절반이 타들어갈 즈음 나는 월영의 정문에 도착해있었다.
“거기, 잠깐.”
“응……?”
그리고 자연스레, 교문 앞에서 나를 막는 이가 있었다.
짧게 쳐 올린 머리카락과 한쪽에 난 스크래치가 눈에 띄는 남자였다.
“월영은 흡연 금지구역이다.”
“아아.”
그제서야 그의 한쪽 팔에 시선이 갔다.
‘선도’라는 글자가 쓰여진 완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월영에는 선도부란 것도 있었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저런구린 완장을 아직도 쓰냐.’
그래봐야 그리 힘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도 아닌 주제에 선도부라는게 있는게 이상했지만, 교칙을 위반할 것 까진 없었기에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정문에서 딱 한 걸음.
약 1미터 정도의 거리를 둔 채로 나는 다시 한 모금을 들이켰다.
보다못한 선도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흡연 금지구역이라고 했을텐데?”
“네, 알아요.”
“알면서도?”
“전 지금 월영 밖에 있는데요.”
“……”
엄밀히 따지면 ‘교내’는 아니잖아?
어쩔거야?
어차피 성인들도 다니는 아카데미인 만큼, 교문 근처 몇 미터내 흡연금지같은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문제될 건 없었다.
‘겁나 민폐인 건 맞지만 말이지.’
그러나 그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고스란히 내 힘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미간을 좁힌 채로 나를 바라보는 그를 두고, 나는끝내담배를 끝까지 태웠다.
“그럼! 고생하십쇼.”
“……건방진 놈.”
그리고는 당당하게 교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은서현을 어떻게 구슬려야 할까?
앙칼진 그 꼬맹이와 어떻게 접점을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방금 전까지 가지고있던 고민중 하나였다.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날 껀덕지가 있어야 나중에 친분이라도 쌓던 말던 할 테니까.
분명 그는 A클래스나 못해도 B클래스로 배정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어?”
“……뭐야.”
바로 지금, C클래스의 3반 교실문앞에서 똥 씹은 표정의 그와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니가 왜 여기에 있냐?”
“……쯧!”
내 질문에 그는 팍! 소리가 날 정도로 얼굴을 구기더니, 이내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하여간 저놈의 성격이 문제라니까.”
나이가 어리니 별 수 있겠냐만은.
옅게 웃음을흘리며 나는 소란스러운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
“……”
“……?”
뭐지?
시간이 멈추기라도 했나?
분명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잡담이 가득하던 강의실이, 한 순간 차가운 정적에 휩싸였다.
마흔명 정도의 학생들이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일제히 내게 시선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대놓고 살기를 쏘아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아니, 그런 놈들이 조금 더 많았다.
‘이거, 꽤나 오랜만에 받아보는 시선들이네.’
회귀 이전에도 늘이랬었지.
한결같이, 입학 때 부터 졸업때 까지 변하지 않던 시선들이었다.
시간에서 자유로웠던 만큼, 남들보다는 몇 배나 빠르게 성장했던 나였으니까.
‘모난 돌이 정 맞는건 어쩔 수 없구만.’
새삼 향수를 느끼며 나는 내가 배정된 자리, 즉 왼쪽 열 가장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 때 까지도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단 한 사람, 자그마한 목소리로 투덜거린 꼬맹이를 제외하고는.
“염병, 똥폼잡고 있네.”
그리고 나는 그에 똑같이 맞받아쳐 줬다.
“시끄럽다, 꼬맹아.”
그에 그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나를 쏘아본 것이다.
그의 입에서 걸쭉한 험담이 흘러나왔다.
“꼬맹이?! 지난 번에도 그렇고 너 한 번 뒤져보고……?!”
하지만, 그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뭣들 허냐, 자리에들 앉어라~”
“……”
때마침 교사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사실 온 걸 보고 던진거긴 하지만.’
서현은 한동안 씩씩대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 일단 우리 신입생들? 고등학생도 있을 거고 성인도 있을건디…… 잘 부탁들 헌다. 나가 느그반 담임 한진우여.”
“큽……!”
“풋……”
구수한 그의 사투리에 여기저기서 웃음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한진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거 지금 웃는건 좋은디 수업중에는 집중들 허자? 어차피 큰 도움이 될랑가는 모르것지만 말이제.”
“네에~”
그는 가지고 온타블렛을 교탁 위에 올려두며 간단하게 교실 안을 훑었다.
“간단하게 인사헌다. 나는 한진우고, 이 반 담임이여. 그래도 C클래스 올라왔다는 건 어느 정도의 마력적합도는 있다는 것이긋제?”
그렇게 말하며 그는 칠판에 커다랗게 자신의 이름을 썼다.
“일단 뭐 학기 시작이라 구면인 아들도 있을 것이고, 어색하기도 할 거인디, 뭐 다 알만한 사람들이니까 바로 수업 들어가니께. 자기소개는 쉬는시간에 알아서들 혀라.”
“네.”
잠시간 웃고 있던 입학생들은 그의 말에 저마다 자신의 타블렛을 꺼내들어 필기 앱을 켰다.
드물게 아날로그방식의 공책과 필기구를 꺼내드는 이들도 보였다.
“아, 그라고 내는 충청이랑 전라도 섞였으니께 어디 사투리냐고 물어보지덜 말고.”
한 가지 까먹었다는 듯이 덧붙이는 그의 말에 다시금 교실에 웃음기가 서렸다.
“그라믄… 오늘은 헌터로서 가장 먼저 알아야할그……뭐시기냐… 게이트랑 마력에 관해 먼저 시작할건디 우선 게이트란……”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었고-
“흐아암……”
맨 뒷자리에 있던 나는 곧바로 머리를 책상에 파묻었다.
교사의 구수한 사투리를 자장가 삼아, 나는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잠들었을까, 나는 한진우의 부름에 눈을 떴다.
“람…? 은가람 학생~”
“풋…!”
“웃지마, 야…”
“엉……?”
잠에 절여진 눈을 간신히떠서 시선을 올리자, 바로 앞에 서있는한진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수업 거의 끝나가는디, 숙박비는 내고 주무시는가?”
“아…… 좀 피곤해서요.”
“한시간 내내 숙면을 취하드만. 이론은 다 알고 그라는 거겠제?”
약간 비꼬는 듯한 그의 말에 나는 눈을 비비며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론적인 부분이야 다 알만하죠.”
“혹시 칠판에 쓴 문제 한 번 풀어볼라는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칠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던전브레이크의 여파와 그에 대한 원리가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뭐, 그러죠.”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으로 향했다.
여전히 잘 떨어지지 않는 눈커플을 비벼대면서.
그리고는 반쯤 감긴 눈으로 칠판의 문제를 풀어나갔다.
‘뭐야, 간단하네. 밝혀진 지 10년이나 된 이론을……’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거의 다 써갈 즈음, 나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는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 10년…?’
그리 어렵지만도 않았던 문제.
그에 신나게 답을 써내려가던 것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실수했다!’
풀이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