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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4화 - 무릎을 구부린 건 (4/114)



〈 4화 〉4화 - 무릎을 구부린 건

“그렇다는 말씀은,입학을 거부하라는 말씀이신가요?”


한창 필기시험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월영의한쪽 교실에서는 입학 시험의 심사관을 맡은 세 명의 교사가 누군가와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꽤나 살찐 뚱뚱한 몸에 값비싼 명품으로  몸을 칭칭 감은 여성.


진명그룹 회장의 아내였다.

그녀는 교사  명이 준비해 온 초콜릿을 입 안에서 우물우물 씹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반대요…?”
“무슨 일이 있어도 입학시켜.그 이전에 실기시험에서 먼저 손을 봐야지.”


세 명의 교사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누군지도 모를 ‘은가람’이라는 학생에게 연민을 느끼며.

‘교장쌤이 아시면 큰일인데……’

월영의 교장, 김경원은 이런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와친한 이진명 회장도 마찬가지.

그러나 교장은 한동안 케히빈 학회에 머물고 계셨고, 이진명 회장은 본래 겉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개 교사인 그들로서는 당장 어찌할 방도가 없었는 것이다.


“그러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좋아. 뭐, 그 부분이야  누구보다 인재인 우리 아들내미가  해주겠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나도 알아.”

교사의 아부에  뜨는 기분을 느끼며, 그녀는 또 한 조각의 초콜릿을 입으로 던져넣었다.

승리자의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로, 그녀는 입학 지원자의 명단을 훑어내려갔다.

“아,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네?”
“어차피 조를 짤 거라면 같이 들어갈 팀원은  녀석으로 해.”


살찐 손가락으로 명단을 가리키는 그녀.

그 손 끝에는 ‘은서현’이라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14살짜리 꼬맹이인데, 제대로 가족도 없는 애야.”
“그 말씀은……”
“적당히밟기 좋은 희생양이라는 거지.”

사실 처음에는 그저 같은 성씨를 가진 것이 아니꼬왔을 뿐이었다.

거기에 나이도 어리고.

제 아무리 은가람이 강해도, 이런 어린애를 데리고 뭔가를 할 수는 없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교사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만족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앞으로 진행될 실기시험이어떻게 진행될 지 전혀 알지 못한 채.



*



현성과 현진은 지금의 시간을 즐기기라도 하듯, 가소로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인 현성은 아예 팔짱까지 낀 채로 우리를무시하는 중이었고.

“야야, 둘이 싸우지 마라. 어차피 둘  좁밥인건 거기서 거기니까.”

“저, 개자식이!”


명백한 현진의 도발에 자존심  서현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몸을 일으켰다.

“이딴 녀석이랑 똑같이 보지 마! 너희 둘 쯤이야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풋……!”
“퍽이나 그러겠다, 꼬맹아~?”

비장한 표정으로 내뱉는 그의 경고에, 현성은 웃음을 터뜨렸고 현진은 노골적으로 비꼬았다.

어디 할 테면 해 보라는 의미.


아마 여기서 가만히 둔다면 꽤나 재미있는 경기가 펼쳐질 것이다.

서현의 말이 그저 허세가 아니라는 사실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랬다간 내 점수가 위태해진다는 말이지?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애꿎은 서현에게 입을 열었다.


“이딴녀석?!  꼬맹이 새꺄, 내가 그래도 너보다는 낫거든?”

그리고, 즉각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동료_서현의 분노를 감지합니다.]

*

“뭐야? 굳이 저기서 왜……”
“은발 애는 나이가 어리니까 그렇다고 쳐도, 저건 그냥 철이 덜  것 같은데?”
“거 봐, 필기 다 찍고 나온 거라니까.”

적이 아닌 팀원과 말싸움을 벌이는 은가람을 보며,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압도적으로 빠른 시간에 필기시험을 끝낸 만큼 기대를 걸었던 그들.
그런 그들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변의 힐난을 감지합니다.]

[제약 해제_0.8%]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은가람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아직 아니야… 조금만 더!’


비록 그 정도가 적기는 했지만, 분명 제약의 해제가 있었다.
0.8%라는 지극히 낮은 정도.

그러나 그것도 본래의 수치를 생각하면 꽤나 쏠쏠하다고 할  있었다.

[은가람]
근력: 37 +7 (897)  민첩: 34 +7 (931)
마력: 21 +5 (707) 체력: 32 +5 (675)

지난 3달간 죽어라 노력한 끝에, 분명 마력을 제외한 나머지 스탯은 일부 성장세를 보였었다.

그리고 바로 조금 전, 0.8%의 제약해제로 거의그간의 고생에 버금가는 수치가 올랐던 것이다.


‘그렇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돌아온 수치에 은가람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젠 좀  아프겠지.’

조금 전에는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느낌이었지만, 아마 앞으로는 조금 다를 것이다.

조금씩 더 맞아 가면서 제약을 조금씩 풀어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를 향해, 은서현이 씹어발기듯 말을 내뱉었다.

“꼬맹이…? 지금 꼬맹이라고 했냐, 이 새끼야?! 내가 너보다 못하다고?!”


고작해야 14살밖에 되지 않은 그의 몸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쏘아져 나왔다.


‘어후, 역시 재능충은 다르구만?’

아직 완벽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그의 살기는 나름 절제되어 있었다.

관람하는 사람까지 절로 위압감이 드는 현성, 현진 형제와 달리, 은서현의 살기는 은가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끼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놈의 괴팍한 성격만 어떻게 하면 될지도 모르겠는데……?’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던 현진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은가람이 아닌, 은서현을 향한 것이었다.

타앗-

쐐애액!

마찬가지로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그의 공격.
단지 속도 뿐만이 아니라, 그에 실린 역도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공격에 은가람은 오히려 입매를 말아올렸다.


그리고……

“착각하지 마! 너같은 녀석은………!!”

탓!
퍼억!

망설임 없이, 은서현의 오금을 걷어찼다.
그의 무릎이 맥없이 접혔다.

휘청!

“큿?! 씨발,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그 자리에 주저앉듯이 땅을 짚은 은서현.


그러나 바로 그덕에 현진의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음을, 그는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그런 그를 향해 은가람이 말을 내뱉었다.

“그러게 똑바로 피해야  것 아냐?!”
“썅! 네가 아니었어도 충분히 피했거든?!”

“잘도 그러겠다?”

“개자식이……!”


다시금 말다툼을 시작하는 둘.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다른 지원자들은 은가람을 손가락질하기 시작했고, 현진은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너희 뭐, 코미디 찍냐?!”


“너 때문이잖아, 꼬맹아.”
“쯧……!”

곧바로 비꼬는 은가람과 인상을 잔뜩 찌푸리는 은서현.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현진은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자,또 간다~? 이번에도  피해봐?”

탓- 후와악!
퍼어억!


“크윽?!”
“이런, 썅…!”

단순하고도 저돌적인 공격.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그의 공격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마치 사냥꾼이먹잇감을 유린하듯, 은서현과 은가람에게 번갈아가며 쇄도하는 공격.


평범한 사람은 반응하기조차 쉽지 않은 속도로 연달아 공격이 이어졌다.

은가람과 은서현의 몸에 상처가 하나 둘씩 늘어갔다.

특히나 은가람은  심했다.


‘오늘 또 송장 하나 치우겠구만……’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심사를 맡고 있던 교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진명그룹 사모님의 압박을 받은 참이었다.

본래라면 이즘에서 경기를 중단시켜야만 했지만, 여전히 경기가 속행되는 이유는 그래서였다.

‘실기시험 전에 측정했던 마력 적합도도 상당히 높게 나왔고…… 잠재력이나 소질은 엄청날텐데.’

그는 이래봬도 꽤나 경력이 있는 헌터였다.

특히나 격투 계열의 스킬을 다수 가지고 있는 만큼, 그는 누군가의 움직임을 보면 대충 그의 저력을 짐작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은가람과 은서현은 꽤나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그 잠재력이 빛을 발하지 못했을 뿐, 제대로 다듬기만 한다면 S급을 노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필기 만점자라니…… 그런 게 가능했단 말야?’


비록 헌터계에서는 비교적 상식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는 했지만, 이제까지 만점자는 단  명도 나온 적이 없었다.

몸이 쓰레기라 한들,  머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회에 기여할  있을만한 인재라는 소리.

그러나 그 인재는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태였다.


진즉에 결판났어야  경기가 길어진다는 것은, 단지 그의 전투감각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지고 놀다 죽이겠구나……’


벌써 몇 번이나  왔던 광경.


헌터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에서 부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꽤나 흔한 일이었다.

개중에는 중상을 입는 이들도 있었고, 아예 불구가 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이긴 해도, ‘사고’로 인해 죽는 사람도없잖아 있었다.


그것이 정말 ‘사고’가 아니라는 것 쯤은 웬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을 정도.

비참할정도로 계속되는 일방적인 구타를 바라보며, 그는 오늘이 그런 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에게서도 아쉬운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니, 그것은 한숨에 더 가까웠다.


“에휴……”
“불쌍하긴 한데…”

“좀 알만하긴 하다, 그치?”

“자업자득이지 뭐. 저 꼬맹이는 뭔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하게 상황만 바라본다면 불쌍한 것은 맞았지만, 앞서 은가람이 보여줬던 행태가 있었던 만큼, 자업자득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제는 은서현과 은가람이 이길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들지 않았다.

처음에야 혹시나 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현진과현성 형제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죽지만 않으면 다행.

그런생각이 절로  만큼, 현진은 둘을 압도하고 있었다──


[주변의 조롱을 감지합니다.]
[동료의 분노를 감지합니다.]

[당신을 향한 동료의 신뢰가 낮아집니다.]

──아니, 압도하는 것 처럼 ‘보였다.’


상대를 유린하는 쾌감에 젖어버린 현진은, 은가람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공격을 퍼부었을까, 만신창이가 둘을 바라보며 현진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약간은숨이 찬 모습.

본래 계획이라면 벌써 경기가 끝났어야 정상이었다.


‘새끼들…… 생각했던 보다 더 오래 버티네?’


그는 애써 여유로운 모습을 가장하며 말했다.

“야야, 어차피 같이 덤벼봐야 안될 것 같은데 이렇게 하자. 먼저 나한테 무릎꿇는 녀석은 내가 특별히 심사관님께 잘 말씀드려 줄게. 어때?”

“미친 소리!”

대놓고 자신의 연줄을 사용하겠다는 그의 말에, 은서현이 발끈했다.
그러나 그는 서현의 일갈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대신, 늦는 쪽은 여기서 철저하게 짓밟아버릴 테니까, 선택 잘 해? 선착순이야~”

손 뼈마디를 꺾으며 말하는 그의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던 현성도 거들었다.

“까먹고 있는 것 같은데, 현진이 말고 나도 있다.  생각해라.”

“……”

그에 은서현은 아무런 말 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염병할, 오늘 일진 한번 더럽네……!’

월영에 들어온다면 좋지 않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건,  역시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이런 몰골을 당할 줄은 몰랐다.


‘고유 능력을 섣불리 사용할 수도 없고…… 하여간 저 얼빵한 녀석만 아니었다면, 이까짓 놈 정도는…!’

자신보다 더한 상처를 입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은가람을 노려보며, 그는 혀를 찼다.

그래도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철이 든다고 하는데,  인간만큼은 도저히 구제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지, 그는 미미하게 떨며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은가람.

‘하필이면 저 놈이랑 같은 조가 돼 가지고…!’


말 그대로 없느니만 못한 동료.

생각하면 할 수록, 은가람을 향한 그의 분노는 점점 커져만 갔다.

은가람이 중간중간 오지랖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어느정도 비등한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어차피 재학생들을 상대하는 경기인 만큼,  이길 필요까지도 없었다.

‘그렇다고 저딴 쓰레기들한테 무릎을 꿇을까보냐!’


이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버티리라.

그가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때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은가람이 입을 열었다.

“정말…… 무릎을 꿇기만 하면… 되나요……?”

“저 미친 새끼……!”


아예 전의를 상실한 패배자의 모습.

은서현은 빠득- 하고 이를 갈았다.


결국 글러먹은 놈은 끝까지 글러먹은 것이다.


떨리는 몸을 끌고 현진의 앞까지 걸어가는 은가람을 바라보며, 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푸하하! 아오, 이 띨빵한 새끼…… 역시 이럴  알았다니까? 그러게 서민 주제에 왜 까불어, 까불긴?! 어?!”

“……”

“후우……걱정 마, 약속은 지켜 줄 테니까! 무릎만 꿇어! 그리고 어디 잘못했다고 개처럼 빌어 봐,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치욕스러운 그 상황 속에서도 은가람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말 없이……

그저 조금씩 낮아져만 갔다.

“……병신같은 새끼.”

무릎을 꿇으려는 그 모습에 얼굴을 구기는 은서현.


진심으로 내뱉은 그 말 한마디가 은가람에게 끼친 영향을,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동료가 당신을혐오합니다.]

[제약 해제_1.2%]
[누적 제약 해제_5%]

[일시적 제약 해제_34%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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