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3화 - 입학시험
“휘유~ 사람 많다……”
꽤나 규모가 큰 아카데미의 시험장.
엄청나게 몰려든 인파를 바라보며 나는 내심 감탄했다.
17년 전에 봤던 광경을 다시 보게 되니 새삼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내가 입학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였으니 딱히 아는 얼굴은 없겠지만.
“역시 월영은 월영인가?”
결국 내가 온 곳은백골단이 아닌월영이었다.
이미 한 번 입학해 본 적이 있는 만큼 전형도 빠삭하게 알고 있었고, 특히나 월영은 ‘팀워크’를 중시하는 곳이었으니까.
‘거기다 진명그룹의 인맥이 닿아 있는 곳이란 말이지.’
언뜻 보면 미운털 박힌 곳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꼴이니 미친짓으로 보이겠지만, 결국 그건 양심의 가책 없이 트롤링을 할 수 있다는 말.
나는 바로 그 점을 전면 이용할 계획이었다.
흔히 말하는 인맥빨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월영은 확실히 그 영향력이 큰 아카데미였다.
그에 따라 매년 지원자가 넘쳐나기도 했고.
‘어차피 대부분 다 입학은 하겠지.’
적당히 쳐도입학은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다.
다만 하위권에 배치된다면 그 등급이 웬만해서는 변경되지 않는다는게 문제였지.
그리고 F급이나 E급…… 아니, 더 크게 봐서 D급까지는 ‘헌터’라고 스스로를 밝히는 것 조차도 꺼려질 정도였다.
때문에 지난 3개월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만큼 최대한 준비를 해 왔다.
몸이든, 머리든.
가장 큰 수확은, 이 ‘제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어느정도 감을 잡았다는 것이다.
‘아무렴, 내 머리가 어떤 머리인데.’
이것 저것 가능한 만큼 시도해 보기는 했지만, 결국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두가지였다.
우선 첫 번째로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이기적인 행동을 하게되면 권능이 발동한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로, 그로 인한 이득을 효율적으로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내 편’인 것이 좋다는 점이었다.
‘결국 관건은 내 편에게 피해를 끼치면서도 어떻게 빠져나갈지가 문제지.’
내가 성장하겠답시고 빌런이나 마인이 되어버리면 그 후가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초월자의 말대로 자멸하는 꼴.
‘타워의 마지막층까지 갈 사람도 있어야 하고 말야.’
그 방법을 알아낸다고 피토하는 줄알았다.
물론, 정말로 피토할 만큼 구르기도 했지만.
‘진짜 그런 훈련을 살면서 두 번이나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가장직관적으로 전투력을 늘릴 수 있는 것이 다름아닌 근력과 체력이었다.
그런 것이라도 맞춰 주면C급, 운이 좋다면 B급 까지도 노릴 수 있었다.
“뭐…… 이 중에서 제대로 된 헌터노릇을 하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바글바글하게 모여든 사람들을 둘러보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새로 입학하는 사람들의 수준이야 웬만해서는 크게 변동이 없다.
보통 C급이나, 운이 나쁘다면 D급으로 배치받은 후에 차근차근등급을 올리는 것이 정석이었다.
‘매니저형이 응시했다면 B급으로 입학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당장은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뭐, 본인이 그러고 싶다면야 어쩔 수 없지.
아무래도 헌터라는 직업이 안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돌연 누군가가내게 소리쳤다.
“뭐, 이 자식아?!”
“엥……?”
“제대로 된 헌터 노릇을 못해? 지금 내가 C급이라는 거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중얼거렸던가.
나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려 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말은 안했……응?”
그리고 나는 잠시간,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목소리는 들렸는데, 돌아본 곳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뭐지? 귀신이라도 씌인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내 귀에, 다시금 날선 목소리가 꽂혀왔다.
“어딜 쳐다보는 거야, 씨발! 뒤지고 싶냐?!”
“……아.”
“‘아’는 염병?!”
나는 뒤늦게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곳에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아 보이는 소년이 잔뜩 화가 돋힌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귀를 살짝 덮은머리칼은 독특하게도 선명한 은색을 띠고 있었다.
‘은발이라?음…… 일단은 사과가 먼저겠지?’
아무래도 인신공격은 나쁜 거잖아?
비록 이기적인 선택자라고 해도 인성이 터진 것은 아니었다.
이래봬도 그 누구보다 좋은 인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정도이다.
암, 그렇고 말고!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바로 사과를 건냈다.
“미안, 못 봤어.”
“이런 썅!”
진심으로 사과하는 내 말에, 잠시간 분을 삭히던 은발소년은 이내 한 손가락으로 나를 척 가리키며말했다.
“너!”
“응.”
“너어……! 있다가 두고 봐!”
“……”
그런 말만을 남기고 그는 홱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리더니 빠르게 멀어져 갔다.
“허허…… 성격 참 까칠하네. 그나저나 은발이라……”
독특한 머리색이었지만 완전히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회귀 전에도 꽤나 이름을 날리던누군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지만……’
잘은 몰라도, 지금쯤 입학했다면 얼추 시기가 맞았다.
저런 눈에 띄는 은발에, 어린 나이까지 감안한다면 겹칠 사람이 있지도 않을테고.
“친분을 쌓아 두는게 좋으려나……?”
지금이야 어떻든 나중에는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녀석이니까.
빨대를 꽂아 둬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한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따악!
“끄악?!”
별안간 눈 앞에 별이 돈다 싶더니 고개가 앞으로 푹! 숙여졌다.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전력으로 후려친 것이다.
“아오~! 손 아파라! 이 새끼, 이거 완전 돌대가리네!”
“딱 보면 모르냐?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입학원서 낸 놈인데?”
‘시발, 뭐야…?’
나는 화끈거리는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머리를 새빨갛게 물들인 두 명의 남성이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둘은 이미 월영 아카데미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입학생은 아니고…… 월영 재학생이 왜?’
얼굴이 닮은 것을 보면 분명 형제였다.
어딘가묘하게 낯이 익은 그들은 척 봐도 그렇게 좋은 의도로 나를 찾아온 것 같지는 않았다.
“뭘 꼴아? 확! 조져버릴라.”
“넌 우리가 못 찾을 줄 알았지?”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월영인데, 이런 양아치라니.
황당함을 금치 못하는 내게, 둘 중 형으로 보이는 이가 입을 열었다.
“넌 입학하고 나서 보자. 아주 즐거운 아카데미 생활을 안겨줄 테니까.”
“어디 일개 서민 따위가 말이야. 기어 올라도 상대를 보고 지껄여야지…… 어디 우리 엄마한테 싸가지없게.”
‘아하!’
그제서야난 무슨 일이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들 완전 빼다박았네?’
3개월 전 카페에서깽판친 아줌마처럼 살이 찌지는 않았지만, 이목구비에서 닮은 구석을 찾을 수 있었다.
진명 그룹의 사모라는 작자가 결국 내 뒷조사를 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카데미를 지원한 걸 보고 쾌재를 불렀겠구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정확하게 들어맞을 줄 몰랐기에 나는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미소 지었다.
“역시, 그 부모에 그 자식이란 말이 틀리지는 않나 보네.”
그리고는 서슴없이 패드립을 시전했다.
그런 내 말에 발끈하며 동생 쪽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이런, 개새끼가!”
그러나 그런 그를, 형 쪽이 저지했다.
“참아, 현진아.”
“하지만저딴 말을 듣고도……!”
“지금 잘못 행동하면 너 정학이야. 너 찍혀 있는 거 알잖아?”
“……”
오호라, 찍혀있었구만?
제 아무리 진명그룹의 아들이라고 해도 정당한 징계를 벗어나기는 힘들겠지.
‘월영 교장은 인맥으로 사정 봐 주는걸 싫어하는 타입이었지……?’
진명그룹의 회장도 마찬가지.
그렇게 치면 왜 진명의 자식들이 여기서 판치고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자식농사 망했나?’
사모의 행태를 보면 납득이 가기도 했지만.
아무런 말을 내뱉지 못하는 현진을 두고, 이번에는 형 쪽…… 명찰에 ‘이현성’이라고 적힌 녀석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곧 있으면 마음껏 조질 기회가 올 거야. 그 때 실컷 두들겨 패도 상관없겠지.”
“……쳇.”
“그 때 가서도, 지금처럼 웃을 수 있나 보자고.”
내게 그렇게 말하며, 둘은 발걸음을돌렸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학창생활 참 기대되네.”
이전이었다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이 자리에서 짓밟아놨겠지만.
‘조만간 보자고.’
아쉬운 대로 나중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래봐야 1학년 학생.
회귀 전에도 들어본 적 없을정도이니 그리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있지는 않을 것이다.
‘뭐, 끽해봐야 입학시험 조를 조작하는 정도겠지. 두들겨 팬다고한 걸 보면…… 둘이 같이 나오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입학시험이 시작되었다.
*
“저 사람, 그 사람 아냐?”
“그…… 5분만에 필기 다 끝낸 사람?”
“알고보면 현역 헌터인 거 아냐?”
“에이 설마…… 다 찍었겠지.”
필기시험 뒤에 이어지는 실기 시험.
2대 2의 소규모 팀 전투를 위한 경기장에 들어서자,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현역은 현역이었지.’
정확히는 은퇴한 헌터라고 보는게 맞을 테지만.
그러나 그런 나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걱정어린 말을 주고받았다.
“근데 뭘 잘못했길래……”
“저 둘이 같이 나오는 건 드물지 않나?”
“어디 드물다 뿐이냐? 저거 그거잖아, 신고식. 이전까지는 진명 소속 헌터가 나섰었지만……”
“애꿎은 사람하나 또 잡겠구만……”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어떻게 예상을 조금도 빗나가지 않을 수가있냐……’
내 상대로 경기장에 올라온 두 명.
오늘 오전에 내 뒤통수를 후려갈긴 붉은 머리의 양아치 형제였다.
‘그리고 내 팀원으로 선정된 것이……’
“젠장할,하필이면 이딴 놈이랑 팀원이라고?”
“이딴 놈이라니, 말 심하게 하네.”
“거치적 거리지나 마!”
내 옆에 서 있던 것은 마찬가지로 오전에 마주쳤던 은발의 소년, 은서현이었다.
‘대강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이잡히는구만.’
본래라면 입학시험의 상대는 랜덤으로 정해져 있었다.
팀원도 무작위, 상대도 무작위.
하지만 진명그룹의 아들이라면 그 정도쯤은 충분히 조작할 수 있었다.
아마 작정하고나를 밟으려는 생각으로 일부러 같은 팀원도 가장 어린 꼬마로 잡은 거겠지.
더군다나, 내가 기억하기로 회귀 전에도 서현은 진명그룹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 그런 부분 역시도 십분 반영되었으리라.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감사해야 하려나?’
다른 건 몰라도, 은서현을 내 조력자로 둔 것은 그들의 자충수였다.
겉으로는 어려 보일지 모르지만, 그가 가진 역량만큼은 웬만한 성인의 그것을 뛰어넘었으니까.
괜히 어린 나이에헌터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다.
흔히들 말하는 ‘재능충’의 표본이 바로 은서현이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자존심도 센 녀석이니까…… 이번 시합은 어떻게든 이길 수 있겠구만.’
그렇게 생각하며 내게, 현진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침에는 기분 째졌지? 넌 사람 잘못 건들였다고 생각해라?”
“뭐라는 거야? 그런말은 이기고 나서나 말해, 애송아.”
“……진짜로 죽여버리겠어!”
한쪽 귀를 후벼파며 받아치자, 현진과 현성에게서 진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회귀로 인해 약해진 것은 맞았지만, 그 감각까지 무뎌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몸의 긴장을 서서히 불어넣으며 경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내, 명랑한 신호음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삐익-!
타앗, 후우웅!
“!!”
시작과 동시에 눈 앞으로 쇄도하는 주먹.
5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압축하는 그 속도에 나는 고개를 숙여 간신히 그것을 피해냈다.
“잡았다!”
“?!”
그러나 곧바로 뒤이어진 후속타까지 피해내지는 못했다.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가 나를 걷어찬 것이다.
콰앙!!
퍼억!
“끄윽……!”
“이런… 썅! 뭐 하는 거야?!”
현진이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내가 날아간 방향에는 은서현이 서 있었다.
덕분에 나와 정면으로 부딪힌 그는 바닥으로 쓰러지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그딴 공격 하나 제대로 못 막는 주제에 뭣하러헌터를 해?!”
“쿨럭……하이고… 죽것다……”
잔뜩 성질을 부리는 서현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나는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있는 힘껏 걷어찬 것인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후우……”
크게 호흡을 내뱉자 간신히 진정된다.
확실히, 일반인에게 있어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수준.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내심 미소지었다.
‘지금 끝내지 않은게 니놈들의 가장 큰 패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