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1화 - 다 죽여버릴 생각이거든
『시간의 선택자』─
말 그대로 시간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선택자.
나는 그것이 최강의 능력이라고 확신했었다.
수많은 초월자들 중 『시간』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라고 여겼으니까.
실제로 그 능력을 바탕으로 나는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탑의 클리어를 눈 앞에 둔 지금.
이 모든 악몽을 끝내버릴 기회가 바로 눈 앞에 있었다.
현존하는 헌터 중 가장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고, 그랬기에 혼자서도 충분히 마지막 층을 클리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아래층까지, 그래 왔으니까.
“허억…!크헉…!젠장……!”
그러나 그것은내 착각에 불과했다.
스스로의 시간을 가속할 수 있는 능력.
그로 인해 남들과는 확연히 다른 성장속도를 가질 수 있다는 이점과, 그를 넘어서 탑의 공략을 그 누구보다 빠르게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확실히 엄청난 강점이기는 했다.
하지만 혼자 강해지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리석은 인간. 결국 네 자신을 죽이는 것은, 스스로의 오만과 자만이다.]
“빌어 쳐먹을……!”
입에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애초부터 ‘동료’의여지를 두지도 않았던 주제에.
처음부터 자기 멋대로이기 바빴던 초월자들이 아니었던가?
비록 그것이 눈 앞의 마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차피 나는 혼자였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외면하기 바빴던.
헌터를시작한 지도 어느덧 17년이다.
내 손길을 받아준 곳은 없었다.
그저매몰차게 무시하고 짓밟아버리기 바빴지.
서로 협력해야만 하는 타워의 공략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 미친 놈들은 하나같이 나를 죽이려고만 했을 뿐, 힘을 합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지.’
처음 헌터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달랐다.
그 때는 꽤나 좋은 동료들도 있었고 나를 따르던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비현실적으로 빠른 내 성장 속도를 따라오기 힘들었다.
타워를 공략할 정도의 헌터라면,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자신의 자부심을 깨부수는 듯한 내가 그리 곱게만은 보이지 않았겠지.
결국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강해졌고,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왔다.
그깟 동료들,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만큼 나는 강해져 있었으니까.
‘그게 뭐가 나쁘냐고!’
악착같이 발악하는 나를 바라보며, 상대는 혀를 찼다.
[쯧쯧… 어리석은 녀석. 그래도 혼자서 여기까지 올라 온 것은 확실히 놀라울 정도군.]
“엿이나…… 쳐먹어라……!”
[마지막 유언이 그런 것이라. 그 패기 또한 나쁘지 않다만…… 이제 죽어라.]
마지막 선고를 내리는 상대를향해, 나는 힘겹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것이 내가 살아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었다.
더 이상 싸울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나마 이점이었던 초월자의 권능도 이미 한계까지 사용한 후.
결국 이것이 마지막임을, 나는 직감했다.
푸욱-!
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사방에서 날아 든 응축된 마력이 내 몸을 파고들었다.
생각했던 것 만큼 큰 고통은 없었다.
아니면, 단지 내 몸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걸까.
[인상깊었다, 인간]
‘염병 떨고 있네……’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리고 서서히꺼져 가는 내 시야가, 순간 멎었다.
“……?”
죽은 것이 아니었다.
[여어.]
“뭐…야…?”
눈 앞에,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말을 걸어왔다.
아니, 그것이 나를 선택한 시간의 초월자임을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녀석의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여기서 너도 죽는구나.]
“그래서…… 시비 걸려고 왔냐?”
[그럴 리가.]
“……”
고개를 저은 그는 작게 말을 이었다.
[과거를 돌리고 싶어?]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와서 지랄은…… 언제는 못한다고 하더니.”
내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는 그.
[……지금은 가능해.]
그렇게 대답한다.
[어차피 네가 죽는 시점에서 난 끝난 거고…… 이왕 이렇게 된 거면, 내 마지막 힘을 써서 너를 돌려놔도 상관은 없겠지.]
“끝났다니……?”
내 말에 그는 옅게 웃어보인다.
[어른들의 사정이란다. 그래서, 해 볼래? 능력치의계승까지는 힘들지만, 다시 선택자가 되게 손을 써 줄 수는 있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뭐…… 어떤 초월자가 널 선택할지는 정할 수 없지만 말이지.]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상관없다.”
밑져야 본전.
능력치야 다시 키우면 그만이었다.
한 번겪어본 일들인 만큼, 다시 부딪힌다면 클리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거기에 선택자라는 어드밴티지까지보장되어 있다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전에 하나만 묻자.]
“……?”
[너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필사적인 거야?]
“……”
나는 입을 다물었다.
타워를 오르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타워를 오르는 이유가 있었다.
[죽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큰 힘을 가지려고? 그것도 아니면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까짓거, 마지막인데 이녀석에게는 말해줘도 되겠지.
나는 비릿한 미소로 대답했다.
“엿같은 초월자 놈들을 다죽여버릴 생각이거든.”
[……풋.]
잠시 말을 아끼던그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나지막히, 말을 내뱉었다.
그것이내가 기억하는 녀석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그러면 잘 해 보라고. 나름 정들었던 선택자.]
정지했던 시간이 다시금 흐르기 시작한다.
[『시간의 초월자』가 마지막 권능을 개방합니다.]
*
“…요…? 저기요!”
“허억?!”
다그치듯한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몸을 떨었다.
반사적으로 눈을 들어 앞쪽을 바라본다.
‘……어?’
어딘가 많이 익숙한 풍경.
매일같이 봐 왔던 장소.
꽤나 고급진 복층의 건물과 분위기 있는 조명의 카페 안.
나도 모르게 멀쩡한 가슴을 내려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내가 헌터로 일하기 전…… 정확히는 선택자가 되기 이전에 일했던 카페였다.
포스기 모니터에 2027년 9월이라는 날짜가 떠올라 있었다.
내가 24살일 때.
아직 헌터에 대한 건 생각조차 하지 않던 시기였다.
‘진짜로 했잖아……? 이 정신나간 초월자 녀석……’
옅은 웃음을 흘리며 나는 상태창을 띄워 올렸다.
[은가람]
근력: 27 민첩: 27
마력: 21 체력: 20
보유 스킬: 없음
‘역시 능력치 계승은 없네.’
그 녀석도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제 아무리 초월자라도 만능은 아닌것 같았다.
‘그래도 상태창을 띄울 수 있는게 어디야?’
아직 제대로 아카데미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말야.
간단하게 개인정보를 훑어보던 나는 무언가의 부재를 깨달았다.
‘초월권능이…… 없네. 진짜로 사라졌구나.’
그놈의 어른들의 사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 녀석도 나와 함께 사라져 버린 모양이다.
하는 짓거리 하나하나가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미운정이 들었던 걸까,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야! 주문 안 받냐고?!”
한창 사색에 빠져 있는데, 조금 전 나를 깨웠던 목소리가 다시금 나를 불렀다.
그제서야 내가 카페 안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알바가 뭐 이래? 일 똑바로 안해? 나 참…… 내가 누군지 알고?”
“……”
온 몸을 명품으로 떡칠한 여성.
축 처진 볼살을 부들부들 떨며 짜증을 부리는 그녀에게 나는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주문 도와드릴까요?”
순간 열이 뻗쳤지만, 최대한 상업적인 미소로 답했다.
어쨌건근무시간에 딴 생각 한 건 맞으니까.
“아까부터 주문한다니까, 무슨 헛소리야?정신머리 안 챙겨?”
……근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지?
그런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참자.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잖아?’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다스리며 나는 주문을 받았다.
‘오늘 시프트 끝나면 당장 때려쳐야지.’
그런 생각을 삼키며.
어차피 서비스업은 적성에도 잘 맞지 않았다.
예전에야 꿈도 없었고, 돈은 필요했으니 어쩔 수 없이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처음에야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내가 이 곳에서 얻어간 것은 거지같은 인간관계가 전부였다.
‘매니저 형을 제외하면 사장도, 다른 직원도 엿같기는 매한가지였지.’
정에 고파 있던 당시에는 그 사실을 외면했었다.
그렇게라도 받아들여지고 싶었던 시기였으니까.
‘이게 뭔 궁상이람.’
그렇게 사색에서 빠져 나온다.
“일단 빙수 하나랑, 저…… 흑당 버블 밀크티 제일 큰걸로 하나 주고, 음……”
그녀의 말에 나는 포스기로 시선을 떨궜다.
[빙수]
[오더 스탑]
케익을 둘러보는 그녀에게 나는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빙수 시즌은 8월 말까지여서 지금은……”
“왜? 지금은 안돼?”
말 좀 끝까지 듣지?
“……네, 지금은 안되세요.”
전혀 다른 생각을 삼키며 그렇게답한다.
그에 그녀는 자신의 지갑을 열어 5만원짜리 지폐 네 장을 내게 내밀었다.
“자, 이거면 되지?”
“네……?”
“팁 줄테니까 좀 해 줘. 할 수 있지?”
“죄송합니다. 이미 시즌이 끝나서 불가능하세요.”
팁이고 자시고 재료가 있어야 만들든 말든 하지, 이 아줌씨야.
나라고 안 받고 싶겠는가?
20만원이 땅 파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뭐 해? 안 받고? 너 내가 누군지 몰라? 하여간 서민들이란……”
“……”
결국 내 인내심은 바닥났다.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씨발.”
“뭐?”
얼 빠진 표정으로 되묻는 그녀.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앞치마를 거칠게 벗어던졌다.
“엿 같아서 더는 못 해먹겠네.”
“어,어디서 손님한테…!! 너 짤리고 싶어?!”
“못 들었냐? 관둔다고, 이딴 알바.”
“사장 누구야?! 사장 나오라 그래!”
“백날 불러 봐라? 나오나.”
애초부터 사장은 얼굴도 잘 비추지 않았다.
그나마 여기까지 참은 것도 매니저 형 때문이었지만……
밑도 끝도 없이 진상을 다 받아줄 마음도 없었다.
이미 여기서 나갈 마음을 먹은 이상, 겁날 건 없다.
“손님 무,무슨 일이십니까?”
소란을 들은 것일까, 위층에 있던 매니저형이 다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하! 참. 무슨 일이고 자시고! 이 버러지같은 알바생 뭐야?! 이딴 태도로 여기서 장사하려고 들어?!”
저자세로 나오는 매니저형의 태도에, 진상의 콧대가 한층 높아졌다.
“대체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냐고! 당장 무릎 안 꿇어? 둘 다!!”
진상의 막말에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는 매니저 형.
나같은 알바야 수 틀리면 그만두면 끝이지만, 그는 그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수습하고자 하는 것이겠지.
‘그래도……’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 일을 계속할 마음이 없었다.
차가운 어조로, 나는 입을 열었다.
“저, 알바 때려 칩니다.”
“뭐……?”
멍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는 그.
애써 그를 외면하며, 나는 진상녀에게 다가갔다.
“돈 많으면 다 멋대로 될 것 같지?”
“뭐,뭐?”
“인생 그딴 식으로 살지 마라. 확 줘패고 싶은거 참고 있으니까.”
씹어내뱉듯 그렇게 말하자, 진상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뒤쪽에서 매니저형의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미안해요. 이 빚은 나중에 어떻게든 갚을게요.’
유일하게 잘해 준 매니저 형한테 이런 짓을 하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나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카페를 나섰다.
“……?”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카페 밖으로 나섰을 때, 나는 전혀 다른 공간에 와 있었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지만, 분명 그 자리에 있던 문은 사라지고 없었다.
“설마……”
그렇게 중얼거리는 내 말에 답하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진짜 이기적이다? 아주 마음에 들어.]
새하얗기만 한 공간 속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별로 놀라지 않네?]
“초월자?”
[이야, 그런 것도 알고 있어? 정말 대단한데? 평범한 녀석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야?]
제대로 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왠지 박수를 치고 있을 것 같았다.
‘손을 써 준다더니……’
설마하니 벌써부터 이런 만남이 성사될 줄이야.
처음 시간의 초월자를 만났을 때는 이런 식의 대면이 아니었기에 살짝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내 미소지었다.
어쨌든 될 놈은 된다, 이거지.
그는 거리를 좁혀왔다.
마치 상품을 품평하기라도 하듯, 그는내 주변을 맴돌았다.
[잠깐만…… 음……? 어라…?]
다시 한 번 찬찬히 나를 뜯어보는 초월자.
잠시 후, 그는 혼란스러운 어조로 내게 물었다.
[넌 대체…… 정체가 뭐냐? 왜 다른 초월자의 흔적이 남아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