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회
전야242.
루네에게 ‘세 가지 조건’을 듣고. 또 크로나스를 만나고서 며칠.
에우드의 마지막 시험결과- 신학과 검술이론 필기시험까지 하여, 모든 성적이 공개된 오늘.
밤 9시 정도의 기숙사에서, 에우드는 성적표를 책상 위에 펼쳐두고 안도를 표했다.
다행히도.
정말로 다행히도.
D는 없었다.
뭐, 애초에 누나들 말대로 괜한 걱정을 한 거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노력했는걸!
에우드의 안도에, 방에서 이리저리 혼자 놀고 있던 와이즈가 에우드의 머리 위로 올라탔다.
“구우우?”
“얌마. 지금 시험 점수에 여운을 느끼고 있는데.”
“구우.”
살짝 무게감 있는 와이즈의 몸이, 에우드의 머리 위에서 뒤뚱.
에우드는 그런 와이즈를 잡곤, 자신의 무릎 위에다가 앉혔다.
참고로 며칠 전 같이 온 레이지는 누나들이 데려갔다.
와이즈가 편지를 가지고 돌아올 때, 레이지도 예비 피리를 가지고 함께 왔다.
포에닉스 저택에는 레이지의 예비 피리가 세 개 있는데, 그중 하나를 가레스가 보낸 것이다.
누나들 쪽에도 전서구가 필요할 것이라 여겨-
정확히는, ‘와이즈와 같은 전투 서포터’가 필요할 것이라 여겨 함께 보냈다고 한다.
지금은 티아나가 그것을 불어, 레이지의 ‘주인’이 된 상태였다.
그냥 정한 건 아니었고, 이번 뱅퀴시에 참가 안 하는 인원이기에 티아나가 맡기로 한 것이다.
셀레나는 조금 아쉬워하긴 했다만, 동생들에게 양보할 줄 아는 장녀니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삼남매 중 가장 전투력이 떨어지는 건, 티아나인 게 사실이니까.
셀레나도 레이지라면, 여동생을 확실히 지켜줄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당연하다만, 피리의 본체는 여전히 리퀴아에게 있기에 주인이 바뀌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임시 주인이라고 함이 옳다.
그래도 레이지는 티아나가 임시 주인이 되는 것에 불만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상으로, 이 또한 주인의 의지를 따르는 거라 여기는 것 같았을까.
그렇기 때문인지 3년 전부터도, 자신의 주인과 친한 포에닉스를 열심히 도와오기도 한 것이리라.
역시 베테랑 몬스터.
주인에 대한 충성심도, 또 그 책임감도 남다르다.
누구랑 다르게 말이야.
“구룩!?”
“뭐, 임마!”
덕분에 또 생각을 알아챈 와이즈와 투닥투닥할 뻔했다만.
뭐, 그만큼 에우드와 와이즈의 마음이 통한다는 거긴 하다.
뒤이어 에우드는, 성적표와 함께 오늘 학생회관에서 가져온 종이를 확인했다.
뱅퀴시의 신청서 다발.
파벌 리더가 대표로 내기로 되어있는, 포에닉스 파벌의 참가 신청서였다.
개인 신청서와 파벌 신청서가 따로 나뉘어 있는 건, 참가자가 속한 ‘소속’을 확실히 하기 위함이라 했나.
그것 또한, 예선에서 어떠한 요소가 된다는 모양이다.
에우드는 다른 파벌 리더들과 달리 신청서를 많이 받진 않았다.
포에닉스 참가자는 네 명이니까.
지금 테이블에 올려둔 신청서도, 에우드 것을 포함해 단 네 장에 불과했다.
피르티 말에 따르면, 다른 파벌 리더들은 기본 열 장. 많게는 스무 장까지 받아갔다고.
규정상 전부 밝힐 순 없었다만, 그 외에도 상당한 힘을 가진 개인 참가자들 또한 여럿 있었다고 귀띔해줬다.
사실 피르티 쪽에선 조금만 더 말해주려다가, 뒤에서 하워드가 “크흠.” 소리를 내버려 말을 멈췄다만.
……혹여나 피르티, 혼나지 말았어야 할 텐데.
어쨌든 그만큼, 예선부터 난전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해야겠지.
이번 학기 마지막 대행사인 만큼, 상당한 파란이 예상되고 있다.
덤으로 라넌큘러스 후보- ‘신동 에이트리’의 참가까지 확정됐으니까.
귀족 학생이든, 일반 학생이든, 그 긴장의 정도는 상당하리라.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참가 학생’에 해당하는 이야기.
다른 학생들은 일주일 뒤 펼쳐질 대회에 긴장보단 기대를 더 품고 있다.
아무리 400명 이상이 참가한다 해도, 참가치 않는 학생은 그보다 더 많으니까.
인간, 수인, 엘프, 난쟁이 할 것 없이, 상당수의 비참가 학생들은 이번 뱅퀴시를 어떤 식으로 즐길지 고민하고 있으리라.
개중에는 아예 플로라처럼, 뭔가 계획을 짜 한몫 잡아보려는 이들도 있었고.
현재 플로라는 뱅퀴시 참가자들 못지않게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
그 ‘가짜 플로라 인형’ 일도 있고.
또 전서구를 수차례 보내고 받고 하고 있었다.
아마 소일과 여러 케인즈 상회 중역들에게 보내는 것일까.
플로라 참모님의 행동이니까, 에우드도 그저 응원할 뿐이다만.
티아나와 드로와도, 저마다 참가하지 않는 만큼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다.
티아나의 경우, 에우드와 셀레나의 전투 훈련을.
드로와는 프란시느의 보조를 착실히 해주고 있다.
그리고 아나트는- 요 한동안, 자주 너덜너덜해져서 돌아오곤 했다.
그렇다고 개인행동은 아니었고. 매번 일이 끝나면 바로 파벌에 합류한다.
뭘 하는지는, 이미 파벌 인원들에게 말해주기도 했으니까.
다들 아나트가 하는 일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하진 않았다.
뭐, 피곤해 보이는 모습 대해선 걱정했다만.
분명 아나트도 아나트 나름대로, 이번 대회에 크게 걸고 있는 거겠지. 1학년 때 참가하지 못했던 만큼 더더욱.
그렇게 자신을 포함한 참가자 넷의 신청서에 리더 사인을 새긴 후. 그것을 책상 위에 차곡차곡 정리할 때였다.
똑똑똑-
방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대에 올 사람이면 이젠 별로 없는 데.
……뭐, 누나들이 있긴 했다만.
그래도 지금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누나들의 것은 아니었다.
‘한쪽’은 확실했지만, 다른 한쪽은 조금 애매한- 많이 접촉하지 못한 기척이다.
그렇게 와이즈와 함께 고개를 갸웃한 후, 에우드가 문을 열자-
덜컥-
“에우드 군~!”
“엄마야, 깜짝이야.”
적흑의 머리칼을 꽁지머리 형태로 묶은 성격 좋은 선배-
악시우스였다.
게다가 역시나, 악시우스만이 아니었다.
“므아아아.”
“라다루스!”
익숙했던 다른 하나의 기척- 라다루스도 있었다.
라다루스는 악시우스의 팔짱에 꼭 잡혀 아동바동.
오늘도 귀여운 금발이, 자유를 갈구하듯 찰랑인다.
뭐, 에우드를 보곤 곧바로 반갑게 눈을 반짝였다만.
“아, 에우드 님! 그리고- 와이즈다~!”
“흐구룹.”(와이즈, 흠칫)
또 에우드의 품에 와이즈도 있다 보니, 거기에 한층 더 눈을 반짝인다.
와이즈는 라다루스에게 붙잡히면 꽤 과하게 귀여움을 받으니 말이다.
거기에 위기감을 느낀 와이즈는, 서둘러 에우드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에우드의 다리 뒤로 몸을 숨겼다.
그렇다. 포에닉스 도련님 배리어다.
살짝 도망치는 느낌의 와이즈에게, 라다루스는 조금 아쉬움을 보였다.
라다루스의 머리칼은 살짝 젖어있는 게, 아마 이제 막 씻고 나온 것 같았을까.
“막 샤워를 끝냈더니, 방에 찾아오신 악시우스 님한테 바로 붙잡혔거든요…….”
에우드의 생각이 맞았는지.
목욕용품의 달달한 냄새가 나는 라다루스가, 에우드에게 쓰게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신가요, 악시우스 선배? 라다루스까지 이렇게 붙잡고.”
라다루스야, 원래 학기 초부터 에우드의 방에 꼬박꼬박 놀러 왔다만. 악시우스가 이렇게 찾아오는 건 처음이다.
아니 뭐, 라다루스를 빼면 남자 방문자도 많이 없다만.
있어봤자 가끔 칼투스와 검은 사자 남학생들 정도다.
에우드가 여전히 어리둥절한 느낌으로 있자, 악시우스가 씨익 웃었다.
“‘로비’에 있자니, 에우드 군이랑 라다루스가 안 보여서. 혹시나 해서 부르러 와 봤지!”
“로비?”
“그 반응을 보니 역시 몰랐나 보네! 찾아오길 잘했어~!”(휙!)
“왁!”
악시우스는 팔을 휙 뻗더니, 라다루스처럼 에우드를 캐치.
그리곤 큰형님다운 움직임으로, 두 동생을 붙잡아 단숨에 복도로 끌고 온다.
“-이제 곧 공개될 거거든, ‘뱅퀴시의 예선 방식’이! 눈치 빠른 녀석들은 이미 로비에 모여있다고!”
“???”
“아, 맞다. 그런 예정이 있었다고 했죠……!”
악시우스의 말에 에우드는 어리둥절을, 라다루스는 잊고 있었다는 듯 느낌표를 퐁 띄었다.
* * *
악시우스의 말대로였을까.
로비에는 이미 많은 학생이 모여있었다.
아카데미에 처음 입학했을 때가 떠오르듯, 곳곳의 소파나 의자, 테이블엔 ‘세력’에 따라 학생들이 앉아있다.
일반 학생들도 점차 ‘소문을 들은 듯이’ 모여들고 있었다.
대부분 아마 ‘친구’나 ‘선후배’들끼리 앉은 듯하다.
인원은 상당했다만.
가뜩이나 거대한 아카데미 기숙사의 로비니까, 그들 모두 수용하는 데엔 무리는커녕 여유가 넘친다.
아침에도 항상 이 정도 대인원이 이동하긴 하고.
그래도, 평소보다 그 분위기가 다르다는 게 확 와닿았다.
무엇보다도-
“아하하, 요즘엔 대놓고 시선이 느껴지네요.”
악시우스의 팔에 함께 붙잡혀 쫑쫑 걷던 라다루스가, 재밌다는 듯 그것을 말했다.
시선- 요 한동안, 에우드만 느끼고 있던 건 아니리라.
중견 규모 파벌의 ‘견제’를 느끼는 시선.
그리고- ‘적대적 시선 또한’.
“학기 초엔 괜히 간만 보다가, 나랑 에우드, 그리고 트루스 녀석한테 주목의 기회를 다 뺏겼으니까. 게다가 ‘밑’으로는, 다스트랑 우리 라다루스의 영향력도 상당해지고 있었고~”
두 소년을 여전히 꼭 잡은 악시우스가 키득키득 웃었다.
라다루스의 영향력- 그건 라다루스가 학기 시작 전부터 미리 해오던 ‘라그나릴의 추후 연금술 사업을 위한 밑준비’를 말하는 거였다.
유리카를 비롯한 여러 세력 및 국가의 파벌 멤버들- 그들의 도움을 받아, 라다루스는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늘리고 있었다.
지난번 지옥 기간, 에우드가 미궁 이론을 라그나릴에게 강의해줄 때, 라다루스와 유리카가 그것을 알려줬다.
다스트 또한- 비공식적인 파벌 간 알력 싸움을 다수 벌여(학생회는 그것을 흔히 패싸움이 부른다), 시비를 건 중견 파벌 여럿을 짓눌러버렸다는 듯하다.
연휴 중 일어났던 ‘다섯 도시 동시 습격 사건’ 및 ‘지옥 기간’ 때문에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
현재 아카데미의 영향도는, 대부분 10대 귀족 파벌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10대 귀족이 모든 주목을 받는 상황이 답답하겠지. 중견 파벌들은, 재학 중엔 아카데미의 주목을 자신들에게 끌고 오고 싶어서 안달일 텐데.”
특히나 이 아카데미에서의 중견 파벌은, 대부분 ‘10대 귀족 워스레인’에 소속된 파벌. 혹은 황금의 기사들을 싫어하는 ‘왕도 귀족 파벌’이다.
다스트 쪽 ‘이가리트 가문’의 경우 워스레인 세력이다만.
그 외 다른 10대 귀족- 그리피너, 메트리는 아예 ‘파벌 세력의 수장’이며, ‘라그나릴’은 메트리 세력이다.
포에닉스는 중립인 한편, 홀로 메트리나 그리피너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리도 마음에 안 들면, 파벌 대전이라도 걸어주면 좋을 텐데요. 하위 파벌이 상위 파벌에 대전을 거는 것엔, 별다른 제한이 없으니까요~”
라다루스가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대전을 걸어만 준다면, 무슨 규칙이든, 대가로 뭘 걸던지 간에, 바로 상대해서 털어줄 텐데.”
얼굴은 언제나처럼 귀여운 미소년 라다루스다만.
분위기가 상당히 무서웠을까.
대체 누군가요!
대체 누가 우리 미소년 라다루스를 이렇게 만든 건가요!
물론 에우드도 거기에 동의하긴 한다만.
그리고 에우드가 주변의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던 중-
“우왓! 에우드 님이다!”
“역시, 에우드 님도 내려오셨네……!”
로비 2층의 난간. 일반 학생들 그룹에 섞여 있는, 라이니와 마나가 에우드에게 반갑게 눈을 반짝였다.
바로 라다루스와 함께 악시우스에게 붙잡혀있는 걸 보고 흠칫 놀랐다만.
에우드는 괜찮다는 듯, 멀리 둘을 향해 손을 살짝 흔들었다.
……덕분에 잠시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 라이니와 마나를 보고 살짝 소란이 벌어진 것 같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조금 미안했다.
그 이외에도 상당한 파벌들이 로비 곳곳에 보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눈에 띄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두 파벌이 있었다.
트루스와 레이안느, 그리고 삼측근- 이리나, 올테라, 앨리스가 선두에 선 메트리 파벌.
그리고 다스트을 필두로, 여러 2학년 이상의 베테랑으로 구성된 이가리트 파벌.
그 두 파벌은 아예 로비 중앙에서, 양옆으로 퍼져 앉아있었다.
벌써부터 기 싸움이라도 하는 건지.
당연히 저쪽도, 세 사람이 오는 걸 알아챘다.
다스트는 지난번 시험 때처럼 악시우스를 보며 “으엑.” 소리를 내버렸고.
트루스의 경우-
“오, 에우드랑 라다루스도 내려왔네. 다들 안 오길래, 아예 부르러 가볼까 생각-”
“-에우드다아아아.”
“얘, 레니안느~? 오빠 지금 말하고 있었는데~! 레니안느~?”
단숨에 에우드에게 호다닥 달려간 레니안느를 보며, 무안하게 여동생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때, 다른 쪽에서도 여러 인원이 나타났다.
“에우드! 어라, 부르러 가려 했는데!?”
“막둥이, 벌써 내려와 있었어.”
“누나들도 왔-우왑.”
“에우드다아.”(꼬오옥)
출입증을 막 목에 맨 티아나와 셀레나도, 이제 막 여자 기숙사 쪽에서 내려온다.
프란시느와 드로와, 그리고 아나트도.
이어서, 조금 황홀한 표정인 라그나릴의 누님들 또한.
플로라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포에닉스 파벌도 전원 온 건가?!”
“아냐, 그 케인즈의 후계자가 안 보여.”
“라그나릴 파벌은 여자 기숙사에서 모두 내려왔어!”
“10대 귀족 파벌들이 로비에 집결하는 건가……!”
술렁술렁-!!
이번 학기 최대 세력들이 마주한 것에, 기숙사 전체가 크게 술렁여간다.
뭐, 누님들은 곧장, 에우드에게 꼭 붙어 어리광 피우는 레니안느를 보곤 눈을 부릅떴습니다만.
덕분에 에우드도 괜히 술렁술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