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라와 에우드에 이어, 함께 사과하는 것 같았다.?241회
세 가지 조건다행히 15년 전 그 마차 트레일러째로 가져온 정수된 물은 낭비되진 않았고.
케인즈 상회 산하의 연금술사들에게, 포션 재료로 활용해달라고 공급해줬다나.
연금술에선 순도 높은 물 또한 중요한 재료니 말이다.
그런 소일의 배려에, 케인즈 산하 연금술사들 모두 감격하고 더욱 케인즈와 자신들의 연금술 활동에 노력을 거듭했다는 이야기- 로 끝났답니다.
잘됐구나, 잘됐어.
뭔가 많은 게 감춰진 해피엔딩이지만.
근데 참, 에우드는 크로나스의 이미지가, 들었던 것과는 꽤 다르다 싶었다.
성당기사단의 단장임에도, 그 행동이나 말투는 소박하고 차분. 성격도 좋았다.
에우드의 ‘크로나스 이미지’는, 과거 가레스에게 들었던 ‘크로나스의 학창시절’이니까. 이미지가 편향적인 건 어쩔 수 없었을까.
한 번 종교적 설교가 시작되면, 멈출 수 없다고 했지.
리퀴아는 아예 그런 덕분에, 생각지도 못하게 종교적 지식이 풍부해졌다고 했고.
그래도, 가레스는 크로나스의 이야기를 에우드에게 전해주면서도, 나쁜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가레스 또한 크로나스의 인품을 인정했다는 이야기이리라.
“정말, 가레스 선배랑 닮았군요.”
“……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에우드는, 그게 자신을 보고 하는 말임을 뒤늦게 이해했다.
루네도 키득거리며 크로나스에게 동의했다.
“당돌한 것도 닮았지. 솔직히 나랑 베르네이는 친아들인 줄 알았다니까. 숨겨뒀다든가 해서.”
“……가, 가레스 선배가 진짜로 숨겨놨으면, 로로나 님한테 그냥은 끝나지 않을 테니, 그럴 일은 없지만요.”
놀랍게도. 가레스와 로로나의 관계는 크로나스도 잘 아는 것이었나 보다.
심지어 살짝 떨고 있고.
“황금의 기사 중 넷이 덜덜 떠는 로로나 님이란……!”
화끈거렸던 얼굴을 겨우 식힌 플로라도 거기에 감탄을 전한다.
“로로나 님이면…… 아, 마안을 가지고 계신다는 에우드의 어머니시군요.”
“네, 포에닉스의 슈퍼 레이디이시죠.”
또한 저번 포에닉시안 몬스터 습격에서도, 선봉에 서서 싸웠던 마담이십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델베르크 오라버니가, 에우드네 어머니한테 멱살 잡혀서 집어 던져졌다고 했는데…….”
“-잠깐잠깐잠깐잠깐. 어머니가요!?”
지금 이게 무슨 소린가.
황금의 기사와 케인즈 상회의 회장도 모자라, 현왕의 멱살을 잡았다는 건가!?
게다가 집어던졌다고!?
“델베르크 그 자식은 멱살 잡혀도 할 말 없어! 로로나한테 원망 살 일 많이 했을 테니까!”
“멱살 잡히는 거로 끝나면 다행이죠, 현왕님은.”
심지어 루네와 크로나스 둘 다 납득하고 있다.
괜찮은가, 이 나라의 왕권.
* * *
어쨌든 양 가문 따님들을 위한 분유값이라던가.
포에닉스의 마담이 왕권을 위협했다던가,
그런 살벌씁쓸한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이 자리에 앉은 뒤부터는, 서로 쉽사리 막 접촉하기 어려워졌으니까요. 가레스 선배와 소일 선배의 자식분들 근황도 들었지만. 역시 직접 찾아갈 수는 없으니…….”
크로나스는 조금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리퀴아도 예전에 포에닉스 저택엔 거의 10년 만에 오는 거다고 했다.
황금의 기사들끼리 너무 친하게 지내면, 그것 또한 견제의 대상이 되니까.
서로서로 일정 거리를 둔 것이다.
물론 행사 같은 데나, 공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일은 많았겠지만.
또 크로나스라고 아예 못 찾아온 건 아니고.
티아나와 셀레나, 그리고 플로라가 아기였을 때- 그땐 학생 신분이었던 덕에, 여러 번 찾아갔다고 한다.
즉, 양자인 에우드 말곤 다들 아기 때 크로나스를 본 것이다.
당연히 아기 때 기억이다 보니, 기억할 리는 없다만.
플로라도 거기에 꽤나 놀란 눈치였다. 모르는 사이에 황금의 기사를 한 명 더 봤다는 거니까. 놀라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리퀴아 선배가 3년 전에 포에닉스에서 머무른다고 하셨을 때, 그땐 꽤 부러웠죠. ……지금은 그 뒤로, 행방을 감추셨지만.”
“……리퀴아 님.”
“정말-”
에우드가 조금 침울하게 리퀴아의 이름을 입에 담자, 크로나스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황금의 기사 중, 제가 유일하게 예배에 부르지 못한 분이었는데……!”
“???”(에우드, 플로라)
생각지 못한 말이 들려왔다.
“가레스 선배도 제가 예배 때 자리를 수십 번 준비해, 끝내 포기하고 참석하셨습니다만. 리퀴아 선배는 끝까지 제 예배에는 오지 않았죠……!”
아쉬워하는 부분이 꽤나 의외였다.
‘근데 아버지도 예배에 가셨구나…….’
포에닉스 가문은 기본적으로 무교니 말이다.
뭐, 가레스도 후배의 성원(수십 번의 자리 준비)에 못 이겨, 자리에 몇 차례 참석해준 것이리라.
“근데 리퀴아는 다른 예배는 가끔 나갔어. 네가 예배를 맡을 때만 안 간 거라고?”
“그래서 조금 아쉬운 겁니다……. 돌아오시면,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제 예배에 참석하셨으면 합니다. 제가 직접, 신앙의 길로 이끌고 싶습니다.”
30대라곤 생각 못 할 깜찍한 자세로, 크로나스는 양손을 쥐며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크로나스 또한, 리퀴아의 무사를 절대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리퀴아의 능력 믿는 것이다.
“-맞아요, 에우드도!”
“아, 넵.”
“꼭, 가레스 선배와, 로로나 님과, 누나들과 함께. 제 예배에 후에 와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플로라도! 꼭!”
“으, 으왓! 네!”
“마이어 신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가르침을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해주시- 아얏!”
“얌마, 애들 겁먹잖아. 그리고 남의 도서관에서 갑자기 종교권유야, 성기사단 단장이라는 놈이.”
“권유가 아니라…… 아쉬워서…….”
루네에게 또다시 뒤통수를 맞은 크로나스는, 억울하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
눈빛이 달라졌다.
분명 마음 편안할 정도로 소박했던 눈빛이, 방금 엄청난 기세로 빛났다.
신성 인챈트? 저게 바로 신성 인챈트인가?
순간 에우드는, 가레스가 크로나스에 대해 말한 면모들이 이해됐을까.
다행히 그래도 옆에 루네가 있었으니, 그나마 브레이크가 걸렸다만.
“-체르니 님도. 또 트루스도, 악시우스도 예배에 나와주니까, 에우드랑 플로라도 와줬으면 해서…….”
“어라, 체르니 전하도 예배에 참석하시나요?”
“그렇죠, 왕족은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예배에 자주 참석해야 하니까요.”
“근데 트루스도 참석하는 건가요……! 악시우스 선배도……!”
“둘 다, 데우트 님과, 솔렌 님을 따라 가끔 참가하죠. 아, 최근엔 학업 때문에, 많이는 못 오고 있습니다만.”
하긴, 아카데미와 왕도 성당교회와의 거리는 꽤 된다.(직행열차가 있긴 하다만.)
그렇기에 아카데미와 알카라시아에도, 예배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고.
아, 다만 레니안느는 별로 참석 안 했다고 한다.
참석해도, 주로 트루스와 그 형들이 자주 참석한다나. 레니안느 다운 이야기긴 하다.
이쪽에 관해선 전부 처음 듣는 이야기라, 에우드도 역시 상당히 생소했다.
“저와 같은 황금의 기사들의 아이들이. 제 예배에 모두 참석해준다라- 그것만큼 멋진 일은 없을 겁니다.”
“어차피 황금의 기사 중 자식이 있는 건 셋밖에 없잖아.”
루네의 말대로.
가레스, 솔렌, 데우트- 가정을 꾸린 건 이 셋이 끝이다.
“아, 잘됐네. 이참에 너도 결혼이나 해라.”
“전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루네 님……. 그 이전에, 신성에 삶을 바치기도 한 몸이고. 결혼한다면 리퀴아 선배 먼저죠.”
“리퀴아는 여전히 짝사랑 중이라 안 돼.”
“아, 저번에 좀 진행됐다곤 들었는데요.”
“어, 진짜!? 리퀴아의 조안 짝사랑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냐?!”
“그 정도까진 아니라곤 하지만요. 그래도 가능성은 보였다고 합니다.”
“잠깐만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짝사랑!? 그 이제까지 온 모든 혼담을 거절하는 리퀴아 님이!?”
리퀴아의 짝사랑- 조안을 여전히 짝사랑한다는 이야기는, 의외로 아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체르니는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눈을 반짝였다만.
이따가 이야기해줘야 할까.
조금 뒤, 크로나스는 자신의 회중시계를 보며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이런. 너무 시간을 잡아먹었군요.”
크로나스는 아이들과 루네에게 가볍게 인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일어나게?”
“네, 너무 자리를 비우면 지크 그 녀석이 잔소리할 테니까요.”
“책은?”
“지하 2층까지 확인해 본 후 고르려고 합니다.”
“하긴. 이 1층엔 신학 도서가 별로 없긴 하지. 아, 기다려. 지하 2층 내려가는 길 알려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루네.”
루네는 자그만 몸으로 의자에서 폴짝 내려와, 크로나스의 앞장을 섰다
그리고 크로나스는 루네의 뒤에서 후드(성당기사단의 로브라고 한다)를 다시 쓰곤, 아이들을 봤다.
“가까운 시일에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생각지 못하게 바로 만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에우드. 플로라.”
“저, 저야말로 반가웠습니다, 크로나스 님.”
분유값 이야기에 이어서 재차 시작된 에우드의 꾸벅꾸벅에, 크로나스가 쓴웃음 지어버렸다. 함께 인사를 하던 플로라와 체르니도, 키득키득 웃어버린다.
“그럼 나중에 또 보죠. 당분간 볼 기회도 많을 테니까요. -뱅퀴시, 응원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크로나스는 루네의 뒤를 따라 지하 2층으로 향했다.
“-맞다맞다.”
크로나스와 루네가 지하 2층으로 가는 것을 보며, 플로라가 뭔가 떠오른 듯 체르니 쪽을 봤다.
“전하는 뱅퀴시 참가하시나요?”
“엑. 참가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가뜩이나 정체를 감춰야 하는데…….”
“에엥, 그런가요.”
플로라의 말에 체르니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에우드도 이미 통신을 나누면서 들은 이야기다만.
수많은 사람이 한 번에 보면, 인식저해 효과가 꽤 감소한다나.
-아마 머더 메이지의 인식저해 또한 마찬가지겠지.
때문에 그런 초대형 무대에는, 지금의 체르니로선 나설 수 없다는 이야기다.
에우드로선 저번에 잠깐 추격전을 벌였을 때, 전투능력이 상당한 건 느꼈으니까.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만.
“-실은 알고 보니, 그냥 오늘 공개된 결과 중에 D가 나왔다던가! 그래서 못 참가하는 거죠~?”
“그럴 리 없잖아요! 오늘 공개된 건 전부 A+였거든요!?”
플로라가 농담으로 놀리자, 체르니는 재빨리 자신의 품에서, 오늘 받은 시험지 두 장을 꺼냈다.
체르니 말대로, A+라는 글씨가 붉은색으로 자랑스레 적혀 있다.
역시 노력파 왕족 소녀.
면학에도 열심히 힘을 쓰는 소녀다.
……근데 어째서 품에서 고이 접은 시험지가 나오는 걸까.
에우드도 플로라도,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에 체르니도 뒤늦게 히끅.
얼굴이 점점 빨개진다.
상황을 파악한 플로라가 씨익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자랑하고 싶으셨구나!”
“으앗!”
“그냥 말씀하시지, 언제든지 칭찬해드렸을 텐데!”
“아, 아니에요! 그, 그래! 이건 어쩌다가 실수로 가져온……!”
“우리 전하, 열심히 하셨네요! 우쭈쭈!”
“으아아아, 그게 아니라!!”
실은 반쯤 자랑하고 싶었던 것도 맞으니까.
체르니도 차마 플로라에게 제대로 따지진 못했다.
부끄러움에 아등바등하면서도, 플로라에게 쓰담쓰담을 받는다.
에우드도 그런 체르니를 보곤-
“잘 하셨네요, 체르니 선배. 우쭈쭈.”
“흐, 흐지마요오오……!”
함께 쓰담쓰담.
체르니는 살면서 처음으로, 또래 친구들에게 열심히 쓰담쓰담을 받아버렸다.
* * *
그리고 루네의 뒤를 따르던 크로나스는,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슬쩍 안도를 표했다.
“체리니아 전하한테 또래 친구가 생기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아직 인정은 안 한다만. 이미 델베르크의 목표는 웬만큼 달성했다고 봐야지.”
“체리니아 전하의 외톨이 기질은, 왕가에서도 유명한 숙제였으니까요.”
선왕의 늦둥이로 태어난 나머지, 살짝 붕 뜬 존재였으니 말이다.
원래라면 체르니도, 왕가에서 직속으로 교육을 받는 게 맞다.
그럼에도 굳이 아카데미에 온 건, 체르니가 자기 입장을 평소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 지금 투닥투닥거리는 걸 보면, 크로나스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만.
그런 중, 루네는 크로나스의 오른팔을 살짝 봤다.
“잠깐, 크로나스 너…… 손 저릿한 거 아냐?”
“아.”
루네의 말에, 크로나스도 자신의 오른손을 들었다.
오른손-
아까 에우드의 검과 충돌했던 부위다.
“심한 충격은 아닙니다. 애초에 에우드도 꽤 적당히 해준 거 같고요.”
마치 방금까지 무거운 물건을 든 것처럼, 약간 힘이 빠진 것 같았을까.
물론 황금의 기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은 사태다만.
“그런 너도, 네 본래 힘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 정도로 힘을 드러내는 건, 저도 ‘7대 던전’에 들어갈 때 말곤 없습니다.”
크로나스는 살짝 힘이 빠져버린 오른손을 쥐며 말했다.
“근데 역시 정말 대단한 인재네요. 선배들이 말한 대로야.”
“그렇지?”
“이번 뱅퀴시, 이번 10대 귀족 세대 아이들 누구도 방심 못 하겠어요. 물론 다들 방심할 아이들은 아니지만.”
모처럼 만에 직접 관람하게 된 이번 뱅퀴시에, 크로나스는 기대를 감출 수가 없었다.
* * *
그리고 시간은 흘러, 재학생들의 모든 성적이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