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펠하이넴 차기 수장의 손바닥도, 로로나 못지않게 참 매워 보인다.?231회
참가표명231.
그리고 디에스와 엘토가 나간 도서관 구석에서, 에우드는 잠시 숨을 한번 들이 내쉬었다.
강의 시간인 만큼, 현재 제2 도서관엔 사서- 치오카가 없는 상황. 치오카는 평일엔 3시 이후부터 사서 일을 한다고 하니 말이다.
디에스도 조금 일찍 돌아갔고, 약간 덩그러니 놓인 기분일까.
아마 한 3, 40분은 에우드 홀로 있게 되리라.
-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만.
“(지긋)”
에우드는 아까부터 느껴지는 시선에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왁?! 들켰어!”]
[“에우드가, 우리 위치 정확히 알았어! 감이 좋아!”]
[“이미 한 번 우리를 알아채서인가 봐~”]
“너네들…….”
도서관의 한쪽, 책장 사이사이.
루네가 있는 그 지하도서관에서 머무는 픽시 중 셋이 발랄하게 앉아있었다.
실은 어젯밤부터 이어지고 있던 일이었다.
어제 ‘뱅퀴시’ 소식에 대해, 포에닉스 파벌 모두 아지트에서 이야기를 대부분 나누고서.
방에 돌아와, 평소 약속대로 밤 10시에 진행하는 체르니와의 통신 중. 그때부터 발견됐으니까.
([폴폴폴폴(픽시 셋이 날갯짓하는 소리)])
(“체르니 선배……. 갑자기 픽시 애들이 제 방 창문 앞에 있는데요……?”)
(“[아- 으으으음, 마음에 든 사람 생길 때 그러니까……. 저번에 루네가 말했듯이 몇 번 놀아주면 만족하고 떠날 거예요.]”)
(“에에엑.”)
(“[그, 그래도 장난기 있을 뿐, 다들 순수하고 좋은 아이들이니까, 너무 뭐라 그러진 마세요…….”])
체르니 말로는, 해 될 거는 없으니까 그냥 받아주라나.
게다가 지하도서관 밖에서도 에우드에게 접촉했다는 건, 루네가 픽시들에게 허락한 것일 터라고. 즉, 막아보려 해도 이미 늦은 거라 한다.
([“문 열어~!”])
([“체리니아랑 통신하고 있는 거, 다 알고 있는걸!”])
([“그리고 체리니아는 통신 기대하고 있는 거, 우리 다 알고 있는걸!”])
([“알고 있는걸!!”])
([“뭔, 뭔 소릴 하는 거야, 이 날파리 요정들이 진짜!?”])
([“와아, 체리니아 말 심해!!”])
([“까칠이, 까칠이, 까칠이-!!”])
([“너네는 내일 보면 다 딱밤이야……!”])
([“히이이이이.”])
……해가 안된다고요?
뭐, ‘해’를 직접 당하는 거 같은 체르니의 말은 둘째치고.
실제로도 귀여운 장난만 치니 말이다.
갑자기 머리를 땋아준다던가, 몸을 미끄럼틀로 쓴다던가.
결국 어제도 에우드가 창문을 열어주자, 에우드가 통신하는 동안 방에서 조금 놀다가 나갔다.
그것도 에우드가 따로 챙겨놨던 육포까지 몇 개 집어먹기까지.
와이즈가 있었다면 육포에 대한 상실감을 느꼈을지도.
근데 분명, 기숙사에도 포에닉스 저택처럼 특유의 ‘보안 마법’이 있을 텐데. 체르니에게 거기에 대해서도 괜찮나 물어보자-
([“패밀리어들은 몰라도, 픽시들은 ‘볼 수 있는 게 많아서’ 보안을 잘 피해다녀요…….”])
([“보안은 장식이지!”])
([“기숙사 보안 정도는 식은 수프!”])
([“식은 수프-!”])
이래서야 거의 ‘은밀 첩보 특화’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을까.
그렇게, 어제도 찾아왔던 세 명의 픽시들은 어느새 에우드의 근처로 폴폴폴 날아왔다.
이어서 노트를 펼쳐둔 책상 위에 한 명.
에우드 머리 위에 한 명.
마지막으로 에우드 손 위에 한 명.
각자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자리를 하나씩 잡아간다.
특이한 것이, 픽시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도 그 무게가 훨씬 가벼웠다.
지금 손에 픽시 하나가 앉아있음에도, 에우드에겐 손가락만 한 솜인형 하나를 얹은 느낌이다.
그 ‘재봉사 소녀’가 3년 전 만들었던, 케인즈 인형 머리핀 정도의 가벼움이다.
또 최근 알게 된 신기한 점이라면, 이 아이들 모두 외관에 차이가 있다는 거겠지.
개성이 있고, 머리 스타일도 다르고, 요정 특유의 하늘하늘한 옷이라던가, 날개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즉, 사람과 정말 다를 것 없는 것이다.
각자 개체에 차이가 있고, 이름 또한 존재한다.
어제도 에우드에게 놀러 왔던 이 아이들의 경우-
각자 이름이, ‘푸푸’(책상 위). ‘나나’(머리 쪽). ‘카카’(손 위)였다.
다만 현재 루네 쪽에 있는 픽시들의 총 개체는 기본 50명은 넘는다고 하니까. 바로 다 외우기는 역시 힘들겠지.
“그런데 무슨 일로 왔어?”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다시 확인하고, 에우드는 픽시들에게 그것을 물었다.
이 아카데미에 픽시가 있다는 건, 아카데미 관계자들 모두가 안다만.
픽시들 자체가, 다른 학생들이나 교수 앞에는 별로 나오기 싫어한다고.
뭐, 픽시들 또한 에우드만큼이나 기척을 잘 느끼니까.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먼저 도망갈 테니 걱정은 없을 거다.
[“체리니아 피해서 왔어!”]
[“체리니아 딱밤 무서워!”]
[“아파~”]
이것들이, 왜 왔나 했더니.
어제 체르니가 통신으로 말한 딱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체리니아는 현재 지하도서관 쪽이라고 한다.)
참 픽시들 모두, 행동하는 게 예전 누나들 같아서 에우드도 귀엽게 보이긴 했다.
푸푸, 나나, 카카 모두, 톡톡 튀는 것이 말괄량이다.
물론, 현재의 티아나와 셀레나라고 해서 말괄량이가 아니란 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3년 전 누나들을 보는 기분이 드는 덕인지.
에우드도 픽시들이 장난을 쳐오면, 적당히 받아줄까 싶었다.
[“근데 에우드야말로 뭐해?”]
[“노트다, 노트.”]
푸푸와 카카는 각자 책상과 손 위에서 다리를 흔들며 그것을 물었다.
나나는 이미 에우드의 머리를 땋기 시작했다.
근데 지금은 방이나 지하도서관이 아닌 밖이므로, 머리를 땋아선 곤란하다.
에우드는 날개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나나를 잡아, 책상 위로 올려뒀다.
강제로 옮겨져서일까. 나나의 뺨이 뿌우 하고 부푼다.
나나의 긴 생머리가, 인형처럼 퐁퐁 찰랑거렸다. 뭐, 원래 인형 사이즈다만.
[“7대 던전…… 아! 알겠다, 야설이지!?”](카카)
[“우와아, 관능 소설이야~?”](푸푸)
[“-야설! 관능!”](나나)
“콜록콜록!”
곧바로 들려온 카카와 푸푸의 야설 러시에, 금세 삐진 게 풀렸다만.
물론 정작 에우드는 사레들린 기침을 한동안 해야 했다.
“왜, 왜 거기서 갑자기 야설이야?”
[“저번에도, 루네의 야설을 찾았다고 하길래.”](카카)
[“그거 이제 진짜 레어한 건데~ 운이 좋았어, 에우드!”](푸푸)
에우드가 콜록콜록거리자, 픽시들 모두 키득키득 웃었다.
들어보니, 루네의 야설- 어흠어흠.
루네의 소설은, 예전 유그라시아 귀부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나.
루네는 취미로 쓴 거라고 했다만.
신간마다 예약자가 속출하고, 팬들도 넘쳐났다는 듯하다.
루네가 젊었던 시절(지금은 외모가 젊다 못해 어리다만), 귀족사교계엔 숨겨진 독서회- ‘루네 살롱’이라는 게 있었을 정도라고.
물론 그때의 팬들은, 현재 다들 나이가 상당하니 말이다.
다들 사교계의 뒷선으로 물러나고, 은퇴하다 보니, 이제는 거의 옛말이라 한다.
그래도 한편으론, 그들 대부분이 숨은 팬으로서 루네의 복귀와 생존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상, 픽시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루네의 야설에도 ‘이 내용’이 꼭 들어있으니까! 혹시나 해서~!”](카카)
아기자기한 회색 단발을 흔들며, 카카는 에우드의 오른손 검지를 강제로 펼치더니 그것을 말처럼 올라탔다.
덕분에 펜을 잡기 힘들어져, 에우드가 살짝 난감해하던 그때.
에우드는 방금 카카가 한 말에, 약간의 의문을 감지했다.
“……잠깐잠깐, 근데 꼭 들어있다니?”
[“응?”]
“방금 ‘이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 게 무슨 소리야?”
[“당연하잖아, ‘7대 던전’이야기지~!”](푸푸)
[“던전!”](나나)
“……엥?”
픽시들의 말에 에우드가 잠시 멍해졌다.
또다.
또다시 지금,
엄청나게 가벼운 분위기로,
엄청나게 지나치기 어려운 말이 나왔다.
“-그 소설에 7대 던전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들어있어~! 루네는 항상 자신의 글에, 자기가 알아낸 7대 던전의 이야기를 몰래 넣으니까!”](푸푸)
[“특히 그 ‘오베론&티타니아’ 얘기엔 의외로 꽤 많이 들어있어!”](나나)
“아, 아니아니-”
들으면서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
분명 에우드도 대충이긴 하지만 훑어보긴 했었고.
그 이상으로- 아루&메루에다가…… 포에닉스 파벌 여성 멤버 전원이, 그 소설을 읽었다.(애초에 남자는 에우드 혼자다만)
정독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있어도, 소설을 본 사람은 상당히 많은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7대 던전’이라는 단어는 누구도 본 적이 없었을 거다.
특히나 정독한 누나들과 페리아- 셋 다 에우드가 개인 조사를 이어가는 걸 알고 있으니까. 뭔가 발견했으면 분명히 에우드에게 말해줬으리라.
근데 아무 말도 없었다는 건-
‘셋이서 정독했음에도 발견하지 못했다’가 아닌가.
그러자 픽시들이 갸웃하면서 말했다.
[“혹시…… 에우드, ‘비밀 읽기’하는 법 몰라?”](푸푸)
“비, 비밀 읽기?”
[“어, 어라, 이거 설마-”](카카)
[“-실수했다! 당연히 거기까진 읽은 줄 알았는데! 카카, 나나, 전원 입단속!”](푸푸)
[“루네한테 혼난다!”](카카)
[“입, 꼬옥!”](나나)
에우드가 ‘비밀 읽기’라는 것에 물음표를 띄우자, 픽시들이 순식간에 손으로 입을 꼭 막았다.
“아니, 뭐야!? 너네가 말 꺼내놓고선 말하다가 말면 어떡해!?”
[“으으읏.”](픽시 일동)
에우드로선 당연히 답답한 상황이었을까.
갑자기 그 야설에 ‘7대 던전 내용’이 있다는 건 뭐고, 또 비밀 읽기라는 건 대체 뭔가.
픽시들도 자신들이 조금 너무했다는 건 알고 있는지.
카카, 푸푸, 나나,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난처하게 입가를 오물오물.
방금 말한 “루네한테 혼난다.”-
루네가 아직 에우드에겐 7대 던전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그런 의미겠지.
픽시들에게도 입단속이 되어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단서를 모르고 있던 거면 몰라도.
이렇게 듣고 그냥 넘어가기는 힘들다.
그때였다.
뚜벅뚜벅- 웅성웅성-
“!!”
[“우와앗. 사, 사람 온다!”](카카)
[“좋, 좋아! 도망쳐어어어~!”](푸푸)
[“도망~!”](나나)
“-아, 이 녀석들 진짜!?”
[“에우드, 나중에 또 봐~!”](픽시 일동)
밖에서 발걸음과 대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자마자, 픽시들은 이때다 싶어 하며 도망갔다.
저번 새벽에 아지트에서 도망칠 때처럼, 열어둔 창문을 통해 순식간에 폴폴폴 날아 가버린다.
아니 뭐, 쫓기야 할 수 있다만…….
역시 거기까지 하긴 좀 그랬을까.
그보다 밖에도 학생들이 있을 텐데. 창문으로 뛰쳐나가면, 금세 소문이 다 퍼진다.
“‘눈 마주치면 순식간에 기절’이, 도서관에서 뭔가 저지르고 뛰쳐나왔다-”같은 느낌으로 퍼지겠지.
특히 현재, 라피스 같은 타국의 요인들까지 와 있는 만큼, 행동 가짐이라든가, 품위라든가, 그런 게 위험할 수 있다.
……그 이상으로 아마 누나들에게 혼난다.
“하아, 어째야 하나 이거…….”
뭐가 됐든, 그 관능 소설에 정보가 있다는 건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단서.
한편 또 꽤 답답한 단서에, 에우드는 픽시들이 날아간 창문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지금쯤 누나들의 가방 혹은 책꽂이에 있을 수기를 떠올리며, 에우드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뒤이어 카틀레야의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자, 11시를 조금 넘었을까.
오늘은 라다루스가 살짝 늦게 끝날 거라 했으니, 아마 40분 정도 후에 누나들이 먼저 도서관에 올 테지.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건, 누나들에겐 비밀로 개조된 회중시계의 흔적.
루네가 만들어낸, ‘현재 마법기술로는 따라 하기 힘든 매직 아이템’의 흔적이었다.
‘역시, 한 번 더 말은 해봐야겠어.’
루네에게 어떻게 해야 정보를 들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에우드는 회중시계의 바늘을 수초 간 바라봤다.
물론 누나들의 방패역과 뱅퀴시의 준비.
게다가 체르니 쪽 호위 일도 있는 이상, 각각의 밸런스는 잡아야 한다만…….
(“마법. 문명. 세계의 비밀. 속물적으로 말하면, 셀 수 없는 금전 가치까지. 가득가득, 가득- 축복으로 가득한 그 장소를……. 그런 던전을, 누군가는 신처럼 여기게 되는 거죠.”)
며칠 전 라피스와 나눴던 ‘던전에 대한 대화’ 때문일까.
에우드는 조금 더 정보를 손에 쥐고 싶었다.
곧, 도서관 문이 경쾌하게 열렸다.
아까 들렸던 발소리의 주인들이리라.
“-다행이다! 오늘도 계셨어! 자, 내 말 맞지!?”
“왁, 깜짝야.”
열리자마자, 픽시들 못지않은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가에서 고개를 돌리자, 거기 있는 건- 어째 요 며칠 자주 보는 거 같은 일반 학생, 라이니였다.
“우와, 라이니. 오늘도 오셨네요.”
“에헤헤, 어쩌다 보니~ 뭐, 오늘은 목적이 전혀 다르지만요!”
라이니는 녹색 앞머리를 머쓱하게 매만지며 웃었다.
“그보다, 에우드 님이 ‘오늘도 왔냐’고 하실 입장은 아니면서~!”
“……하긴. 저도 여기에 자주 오긴 하죠.”
에우드도 라이니 말에 딱히 반박할 거리는 없겠지.
가뜩이나 이곳에 자주 들르는데, 쉬는 날 동안엔 사서 벌칙까지 받았으니.
“그럴 줄 알았거든요! 다른 애들한테 살짝 소문도 듣긴 했었고!”
“소문?”
소문이 하도 흉악하다 보니, 이제는 묻기가 무섭다.
뭐냐, 이번엔 또 어떤 소문이야!
“……그런데, 그 뒤에 계신 분은-”
그리고 이제 보니, 라이니 말고 또 한 명이 있었다.
아마 라이니와 같이 일반 학생일, 다홍색 머리의 소녀-
눈에 익다. 그보다, 아까도 봤었고.
“아! 그, 저랑 디에스 교수님 같이 들으시는……?”
“네, 넥!!”
그렇다.
에우드가 앞선 수인어 강의에서 살짝 도와줬던, 실수로 ‘바이퍼 디에스’를 입에 담은 소녀였다.
소녀는 에우드의 물음에, 약간 삑사리 난 목소리로 크게 답했다.
“저, 저기, 정말, 아까는, 그……”
“그?”
“정말 감사했습니다, 에우드 님! 으, 으아아앙……!”
라이니와 함께 온 다홍 머리 소녀는, 울먹울먹거리면서도 착실히 머리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