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회
개막의 소식227.
“에우드, 그럼 나 이제 돌아갈게.”
치오카의 배웅을 받으며 제2 도서관에서 나온 후.(남은 뒷정리는 치오카가 해주겠다고 한다.)
레니안느는 동화책 가방의 가방끈을 꼭 쥔 채, 에우드에게 꾸벅 인사했다.
평소보다도 레니안느가 가방을 쥐는 힘이 강해 보이는 게, 아까 완성시킨 ‘헬 젯시카’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걸까.
……음, 나중에 제시카가 그 헬 젯시카 완성본을 봤다간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만.
그래도 완성도는 에우드가 봐도 꽤 좋았습니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군요.
다만 어제 레니안느가 몸을 떨었던 걸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이제 씩씩해 보인다만…….
에우드도 약간 걱정이 남긴 했다.
“괜찮겠어, 레니안느?”
“응. ……이제 괜찮아.”
에우드가 그런 걱정을 살짝 담아 묻자, 레니안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걸 보니,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그리고, 바보 오빠가 에우드 너무 방해하진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오늘은 이제 자제할래.”
“아하, 트루스가.”
……사실대로 말하면.
이제 와서 에우드를 방해 안 했다고 하기엔- 거의 한나절을 에우드의 무릎 위에서 보낸 레니안느입니다만.
뭐, 에우드도 자칫 지루할 수 있던 사서 업무가, 덕분에 즐거웠고.
레니안느에 대한 걱정도 많이 풀렸으니 상관없긴 하다.
또 에우드처럼 반쯤 공포의 대상(?)인 레니안느가, 라이니 쪽 일반 학생들과도 인사를 나눴으니까.
오히려 오늘은, 에우드로선 레니안느가 제2 도서관에 잘 와줬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떠올리며 에우드가 키득키득 웃고 있자, 갑자기 레니안느가 어제처럼 에우드를 꼬옥 안았다.
에우드는, 여전히 레니안느의 행동이 참 예측 안 된다 싶었다.
그래도 에우드한테 붙어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는 것이, 뭘 해달라는 건지는 이해됐을까.
“쓰담쓰담 해줘-.”
“네이네이.”
에우드는 어제도 해줬던 것처럼.
또 아까까지 무릎 위에 앉혔을 때 해줬던 것처럼, 레니안느의 머리를 꼼꼼히 쓰담쓰담해줬다.
“이걸로 됐어?”(쓰담쓰담)
“……응, 후훗.”
레니안느는 에우드한테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쓰담쓰담을 1분 정도 받고 나서야, 레니안느는 만족했다는 듯 에우드한테서 떨어졌다.
“에우드, 그럼 나중에 봐아아.”
“응, 조심히 가, 레니안느. -아, 헬 젯시카 편 완성되면 알려줘.”
“물론이야, 에우드 독자님. 슈가 독자님한테도 알려줄 거니까.”
“어라, 나까지 독자님!? ……맞다, 제시카한텐 당분간은 비밀로 해야 해……?”
“응, 헬 젯시카한테는 비밀로 할게……!”
에우드의 말에, 레니안느가 자그만 엄지를 척 올렸다.
그런데 잠깐 레니안느 양, 틀렸어요.
모델이 된 교수님은, 헬 젯시카가 아니라 제시카랍니다.
명칭에 조심하도록 합시다,
곧 레니안느는 팔을 붕붕 흔들어 인사하곤, 에우드와는 반대 방향으로 쫑쫑쫑 걸어갔다.
방향을 보아하니 제1 도서관.
아무래도 오빠 트루스가 끝나는 걸 마중 나가려는 것 같다.
트루스한테는 자주 바보 오빠라고 한다만. 그래도 또 챙겨줄 줄도 아는 레니안느였다.
그리고 레니안느가 저 멀리서 한 번 더 에우드에게 손을 흔들어줄 때쯤이었을까.
에우드는 괜시리 똑같이 오빠를 바보라고 부르는 키루미나와, 그 오빠 사울드를 떠올렸다.
그 늑대 남매의 골은, 언제쯤 회복되려나…….
뭐, 일단 키루미나가 아지트에서 나오고부터 시작해야겠지.
* * *
레니안느와 헤어진 후.
에우드는 치오카에게 받은 과자를 들고, 아지트로 향했다.
과자를 받은 김에 바로 나눠 먹자 싶었다.
뱅퀴시에 대해서도 이야기는 해야 하고.
선물용 과자의 무게는 의외로 묵직.
그것에 대해 아까 에우드가 치오카에게 물어보자-
(“셀레나 님, 먹성이 좋으시다고 하니까요!”)
-라고.
피르티에게 셀레나의 먹성에 대해서도 자주 들었던 모양이다.
케인즈 상회랑 겹치지 않게 하면서, 첫째 누나의 일까지 배려받을 줄은. 여전히 살짝 낯뜨거우면서도 고마웠다.
아지트 근처에 도착하자, 다행히 불은 켜져 있었다.
혹시나 이미 엇갈리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약간 안심했다.
보통 이럴 땐 아지트에 가기 전에, 와이즈에게 미리 아지트를 확인해달라거나, 쪽지를 보내달라거나 하니 말이다.
와이즈가 돌아오려면 아직 하루 정도 더 필요하니, 어쩔 수 없었을까.
까칠한 부엉이다만, 없을 땐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흥.
일단 목검이 부딪치는 소린 안 들리는 게, 셀레나도 프란시느도 현재는 쉬거나 연습을 끝낸 것일지도.
에우드는 살짝 빠른 걸음으로, 포에닉스 아지트를 향해갔다.
그리고 도착한 아지트에서는-
“아, 어서 오세요, 에우드 님! 하워드 님의 벌칙은 끝난 건가요?!”
“우왓.”
금발 미소년이 에우드를 맞이해줬다.
-가 아니라.
라다루스가 해맑게 웃으며, 폴짝폴짝 뛰며 에우드를 맞이해줬다.
기품과 귀여움이 팍팍 뿜어져 나오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동생뻘 소년.
……덕분에 왜 여기 있는지는 둘째치고, 에우드도 모르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버렸을까.
“우오아아, 에우드 님, 간지러워요~!”
“라다루스, 어떻게 여기 계시는 거예요? 오늘 외출 나가는 거 아니었나요?”
그리곤 이어서 남동생을 대하듯, 몸 곳곳이나 옆구리를 꼭꼭 간지럽히며 장난쳐준다.
“우하햑, 간지럽다니까요~! 흐아아, 네엡, 마침 방금 거리에서 돌아왔었어요~. 히이이.”
에우드가 장난을 멈추자, 라다루스가 가쁜 숨으로 키득키득 웃으며 답해줬다.
생각해보니 아까 치오카도 ‘라피스의 관광 업무’는 끝났다고 했고. 오는 길에 종종 학생들이 돌아오는 것도 보였다.
아마 하나둘 기숙사로 돌아오는 시간이라 해야겠지.
“돌아왔는데, 마침 누님한테서 편지가 도착했더라고요.”
“카밀라 님한테서?”
“네! 아, 그리고 작은 선물도 보내주셨어요! 게다가 누님이 또, 여러분한테 쓴 편지도 같이 보내주셔서, 이렇게-”
그리고 라다루스가 편지를 찾기 위해 오도도 테이블 쪽으로 향한 바로 그때였다.
우다다다다!!
이번엔 우다다다 발소리가 위에서 생기발랄하게 들려온다.
발소리의 규모는…… 둘!
오는 건가!
“-에우드, 에우드 왔구나!”
“에우드으으-”
곧, 2층 계단에서 나타난 티아나와 셀레나가, 1층의 에우드를 발견하곤 단숨에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응, 티아나 누나, 셀레나 누나, 방금 돌아왔- 엉?!”
둘 다 계단을 안 사용하고, 에우드를 향해 폴짝 뛰어내렸다.
“와아악?!”(에우드)
“오오오?!”(라다루스)
“――!!”(셀레나, 티아나)
콰당!
우당탕!
순식간에 발생한 두 누나의 2층 높이 다이빙에, 에우드가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힘이 좋은 에우드라도, 상황이 급작스러워 완전히 버티는 건 힘들었을까.
결국, 사이좋게 셋이서 바닥에 데굴떼떼굴이다.
“둘 다 뭐 하는 거야, 위험하게…….”
“우헤헤.”
“벌칙 고생했어.”
뭐, 누나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에우드를 반긴다만.
카펫을 깔아둔 바닥 위에서 뒤엉켜 얼굴을 맞대고, 둘이서 막둥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장난이 심하다 싶었다만. 이런 애정 어린 행동 덕분에, 에우드도 차마 뭐라 하기 힘들었다.
“응? 그런데 이건 뭐야?”
그리고 곧, 예정대로 셀레나의 식탐 센서가 작동한 건지.
에우드가 가져온 과자 선물 상자에, 셀레나가 한껏 흥미를 보였다.
“과자 선물이야. 치오카 선배가 다 같이 먹으라고 오늘 선물로 주셨어.”
“치오카가……! 좋은 아이네.”
셀레나는 에우드의 뺨에다, 자신의 뺨을 찰싹 비비면서 말했다. 갓구운 빵처럼 몰랑몰랑한 뺨들이 쭙쭙 맞붙는다.
조금 뒤, 플로라와 프란시느도 1층 거실에 왔다.
“어머, 에우드 님 오셨군요!”
“에우드 님, 고생하셨어요……!”
다과용 트레이를 들고 있던 것이, 아무래도 다들 급탕실에 있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라다루스만 1층에 있다 싶었다.
게다가 함께 내려온 라다루스 네 여학생 선배 두 명까지 빼꼼.
“에우드 님, 오랜만입니다.”
“에우드 님, 오늘도 활기차시군요.”
“아하하……. 안녕하세요.”
이어서 바닥에 뒹구는 에우드를 발견하곤, 둘 다 꾸벅꾸벅 인사를 전했다.
뭐, 누나들에게 파묻혀 있는 에우드로선 약간 부끄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만. 그래도 함께 인사를 착실히 받아간다.
드로와와 아나트는 아직 각자의 용무가 남아있는지, 아지트에 보이지 않았다.
* * *
카밀라가 보내준 건, 현재 활동 중인 ‘아드란’의 명물 찻잎이라고.
편지를 보낼 겸, 그것을 라그나릴 파벌 몫에 더해 포에닉스 파벌 몫까지 같이 보냈다 한다.
저번 ‘야시용 포션’도 그렇고, 이전부터 카밀라는 편지를 보낼 때면 꼭 뭔가를 챙겨주니까 말이다.
귀족적인 예의라 하지만, 에우드로선 다소 미안하기도 했다.
사실 그만큼 카밀라가, 포에닉스 삼남매를 친동생 라다루스 못지않게 동생들처럼 여긴다는 거니까. 그만큼 이쪽도 받는 것이 예의임은 안다만.
이야기를 돌려.
아까 슈가가 아지트에 전해주고 갔다는 뱅퀴시 소식지.
그리고 또 라다루스 쪽에서 따로 확보한 소식지와, 카밀라의 편지.
다들 그것들을 테이블에 올린 후, 간단한 다과회를 가지고 있었다.
“뱅퀴시 소식은 저희도 확인했답니다.”
“지금 기숙사에도 조금씩 소란이 퍼지고 있어요.”
라다루스와 동행한 소녀들- 3학년의 ‘이비’와 ‘밀렌’이 그것을 말해줬다.
거리에서 라피스를 보고 한껏 가슴 벅차 돌아온 학생들은, 이번엔 저마다 뱅퀴시 소식을 보고 놀라고 있다고.
“뱅퀴시 대회……. 일단 개막은 2주 후라…….”
“참가는 역시 자유네요. 근데- ‘이번 시험 및 과제에서 D 이하를 받지 않은 학생’에 한해서…… 라고요?”
티아나와 플로라는 그것을 보며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뽀샥뽀샥 과자를 먹던 셀레나가, 그것을 꿀꺽 삼킨 후 말했다.
“뭐랄까, 의외의 조건이네.”
“귀빈들이 많이 오시니까요. 사실상 그건 무늬만 있는 최소 조건 같은 거예요.”
셀레나가 띄운 물음표에, 라다루스가 쓴웃음으로 답해줬다.
“하워드 님 말로는, ‘무투 대회도 좋지만, 최소한 할 건 해라!’라는 의미라나요.”
자동으로 머릿속에 하워드의 목소리가 울리는 걸 보니, 에우드도 좀 글러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최근 하워드에게 많이 혼났다는 거지…….
어쨌든 이 ‘D학점 이하’라는 건 최소 요건.
참가 학생들에게 ‘최저한도의 교양’을 갖출 것을 상기시키는 목적이라고.
아무리 아카데미가 인재의 보고라고 해도 말이다.
결국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그런지, 너무 급박한 스케줄과 난이도에 시험을 놔버리는 학생도 종종 있으니까.
‘리퀴아 님도 예전에 데우트 님한테 F를 받았었다고 했지…….’
그건 사실, 학생 때부터 헌터 활동을 시작한 리퀴아의 출석률 때문이다만.
그리고 이렇게 성적 조건이 걸린 덕인지, 공식적으로 뱅퀴시 참가 신청서를 받는 건 일주일 뒤라고.
성적이 발표되고, 그것의 정정 기간까지 고려한 것이다.
이후 참가 희망을 밝히는 학생들은, 개인 혹은 파벌로서 학생회에 서류 제출하게 되어 있었다.
“그럼…… 뱅퀴시의 총 참가 인원은 몇 명 정도려나요.”
플로라는 어느새 빈 노트 하나를 꺼내, 여러 가지를 적고 있다.
비전투계열인 플로라는 뱅퀴시에 참가 의지가 딱히 없었다만.
그래도, 이런 부분에선 포에닉스 참모로서의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는다.
“우선 졸업반은 제외해야 하니까요.”
“아, 하긴요. ……그럼, 전체 재학생 중 먼저 2할은 빼고 고려해야 하는 거군요.”
이비의 말에 따르면, 대회에 따로 규정된 것은 아니다만.
애초에 졸업반- 즉 마지막 5학년인 학생들은, 너무 바빠서 참가할 틈이 없다고.
무투 대회에 나갔다가 부상을 입거나 스케줄이 꼬여, 마지막 졸업 논문을 진행하는 데 막히기라도 하면 더 문제라고 한다.
그렇기에 사실상 졸업반은 참가대상에서 제외.
그리고 거기서 추가로, 플로라나 드로와 같은 비전투 학생들을 빼면-
“여러 사정이나 개인 판단으로 빠지는 인원까지 고려하면, 뱅퀴시의 참가를 희망하는 인원의 수는-”(이비)
“매번 약 400 중후반 정도로 수렴된다고 합니다.”(밀렌)
“400명……!”
솔직히 많이 참가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