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마검사 도련님-226화 (224/264)

?226회

개막의 소식226.

그리고 사프라의 비공정이 제2 도서관 위를 지나간 후.

라이니와 그 친구들은, 재차 남은 소식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동하기로 했다.

“에우드 님, 고생하세요~!”

“고, 고생하세요!”

“파, 파이팅!”

“아, 넵. 파이팅할게요.”

다행히 라이니의 두 친구도, 에우드에 대한 공포는 많이 줄어든 듯했다. 소녀들의 응원에, 에우드도 손을 살짝 흔들어 감사를 전했다.

에우드가 착실히 응원을 받아주자, 라이니와 아이들 모두 헤헤 웃어버린다.

물론 셋 다 여전히, 에우드에게 꼭 붙어있는 레니안느에겐 다소 겁을 먹고 있다만…….

그래도 다행히 레니안느 쪽에서-

“잘 가, 셋 다. 나중에 보면…… 서로 인사하기.”

“!!!”

-라고, 에우드의 뒤에서 빼꼼 나와 인사해준다.

레니안느도, 자신의 신분으로 남에게 쓸데없이 압박을 주는 아이는 아니고.

같은 학년의 아이들이 자신에게 겁먹는 건, 그리 바라지 않았으리라.

덕분에 라이니와 소녀들 모두, 표정이 살짝 풀린 채 인사를 받아버렸다.

포에닉스 누님들 못지않게 미인에다가 귀여운 레니안느니까.

이렇게 수줍게 인사하면, 남자든, 여자든, 차마 버티지를 못한다.

레니안느도 또 살짝 부끄러웠는지, 금세 에우드의 뒤로 몸을 꼭 숨겼다.

그리고 라이니 쪽 인원이 모두 나가고 조금 뒤.

“-그럼, 저는 이 소식지를 아가씨들 쪽에도 전해드리겠습니다.”

라이니가 호의로 준 여분의 소식지를, 슈가가 착실하게 챙겼다.

“고마워요, 슈가. 원래라면 제가 직접 가고 싶긴 한데…….”

“도련님은 현재 본분에 충실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마 지금쯤, 아지트쪽에서도 도시락도 다 먹었을 테니까.

도시락 바구니를 되찾으러 가면서, 함께 전해주고 오겠다고.

마침 와이즈도 포에닉시안에 가 있는 터라, 어떻게 소식을 전달해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에우드로선 정말 고마운 도움이었을까.

제시카 또한 슈가와 함께 움직인 후, 숙소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교수가 학생하고 너무 같이 있으면, 아까처럼 다른 학생들이 놀랄 수 있으니까요.”

제시카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자, 슈가가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겁니까.”라는 표정이 되어버렸다.

“제시카, 뭔가 엄청 잘못 짚고 말씀하시는 거 같습니다만. 아까 그 여학생들이 놀란 건, 다름 아닌 ‘헬 제시카’가 있어서 놀란 겁니다만.”

“겍.”

“현실을 직시하시길, 헬 제시카 교수님.”

“아, 그 헬은 좀 그만 붙여달라니깐요?!”

“헬 제시카…….”

“믿었던 도련님까지 말해버렸어?! 진짜, 너무해요, 에우드 도련님!”

“앗, 저번부터 입에 묘하게 착착 달라붙어서, 저도 모르게……!”

귀여워하는 에우드 도련님까지 ‘헬’이라고 불러버리자, 제시카가 다시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제시카의 반응과는 정반대로-

“헬 제시카……. 난 그거 개인적으론 마음에 들어.”

“엥.”

“헬의 칭호. 그거 악의 여간부 같아서 멋져……!”

“악의 여간부?!”

에우드의 옆에 꼭 붙은 레니안느는, 눈을 엄청나게 반짝반짝 빛냈다.

“동화책의 적으로 쓰기 정말 좋을 거 같아……. 제시카, 다음 작품에 써도 돼?”

“노노노놉-! 절대! 절대 안 돼요!”

레니안느의 간곡한 부탁에, 제시카는 전력으로 거절을 전했다.

“치이이…….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응? 제시카, 부탁할게…….”

“응? 부탁할게~ 라니요, 레니안느 님?! 애교부려도 안 돼요! 제발! 내 흑역사가 늘어나는 건 이젠 그만!”

제시카 올데그랑트. 흑역사가 많은 여성이다.

“차라리 ‘바이퍼 디에스’를 넣어주세요! 상식적으로 ‘헬’보단 ‘바이퍼’가 더 악의 축 같지 않나요?!”

“자기가 들어가기 싫다고, 디에스 님을 팔기입니까. -레니안느 작가님. 저도 개인적으로 헬 제시카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벌써부터 다음 동화책이 기대되는군요.”

“꼭, 꼭 내 작품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으로 만들게, 슈가 독자님.”

“아니아니, 뭘 둘이서 갑자기 합의하는 거예요?! 그만?! 서로한테 꾸벅꾸벅 고개 숙이면서 작가와 독자 사이에 유대감 형성하는 거, 그거 그만해주세요?! 여기 지금 소재가 되기 직전인 제시카가 상처를 받고 있다고요?!”

만약 헬 제시카가 레니안느의 동화에서 나오면…….

설마 그 상대는, 스토리의 주된 주인공인 ‘투구의 난쟁이’일까.

……근데 정작 그 투구의 난쟁이 모티브는 에우드다만.

뭐, 제시카랑 달리 에우드는 이미 포기한 상태다.

의외로 그 투구의 난쟁이 동화도 엄청 재밌고.

그러고 보니 대작가는, 예로부터 인간관찰로 소재를 찾는다고 했나. 예전에 드로와가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근데 아까도 레니안느와 한참 동화책을 읽어서인지.

에우드는 자신도 모르게, ‘악의 여간부 헬 제시카 편’이 흥미진진 기대돼서, 침을 꿀꺽 삼켜버렸다.

“-도련님도 흥미진진해진다는 분위기를 내시면 어떡해요?!”

“흐힉.”

역시 헬 제시카.

악의 여간부다운 날카로운 눈치입니다.

결국 제시카는 슈가와 나갈 때까지, “헬 제시카 출현시키면 안 돼요?! 제발!”이라고 울상으로 외치면서 떠났다.

그리고 제시카와 슈가까지 도서관에서 나가고, 다시 둘밖에 남지 않은 그때.

레니안느가 에우드의 소매를 꼭꼭 당겼다.

“-에우드, 자리에 앉아주라.”

“응? 아, 응.”

에우드는 레니안느의 말대로 카운터에 가, 살포시 의자에 앉았다. 곧바로, 레니안느가 에우드의 앞치마 위에 몸을 폴짝 던졌다.

레니안느 전용, 일일 에우드 소파가 순식간에 재완성되었다.

이어서 레니안느가 손에 쥐는 건- 연습용 노트와 연필이었다.

스스스스슥-!

“레니안느, 설마-”

“-러프. 바로 헬 제시카 디자인에 들어갈 거야.”

제시카의 울상은 이미 안중에도 없는 건지.

어느새 에우드의 무릎에 앉아, 순식간에 열중 모드.

빈 노트 위에다가 연필을 휘적휘적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짠. ‘헬 젯시카’.”

“우와아아…… 아, 젯?”

“응응. 젯.”

몇 분 뒤 레니안느 작가님의 손끝에서, 어느새 사악하고 흉악한 불의 마법사, ‘헬 젯시카’가 완성되었다.

그렇다. ‘헬 제시카’가 아닌 ‘헬 젯시카’.

이름을 살짝 바꾼 건 배려인지. 아니, 레니안느의 취향일지도.

레니안느가 콧김을 퐁 내쉬었다.

설정상, ‘불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뤄, 수인족 및 엘프족을 괴롭히는 마왕군 간부라나.

‘잠깐, 근데 수인족과 엘프족을 괴롭혔다는 설정은……. 아!’

엄청난 악명을 가진, 그리고 아카데미 5대 불가사의(명예)에도 해당하는, ‘불지옥의 마술사’랑 비슷했다.

아, 물론 제시카 주장으론, ‘경우를 아는 정의의 편’이라고 한다만.

“레니안느, 혹시 제시카한테 불지옥의 마술사 이야기도 섞은 거야?”

“응? 섞었다니?”

에우드의 질문에, 레니안느가 갸웃했다.

“아니, 이 헬 젯시카랑, 예전에 들었던 ‘불지옥의 마술사’랑 행적이 비슷해서-”(에우드)

“그건 당연한 거-”(레니안느)

“잉?”

“……응?”

…….

왠지 모를 침묵이 돌았다.

“앗.”

곧, 레니안느가 눈을 살짝 껌뻑인 후,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응. 그 둘을 섞은 거야, 에우드.”

“그렇구나…….”

레니안느의 대답에 에우드가 납득.

레니안느는 고개를 앞으로 한 후,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까.

제시카가 가진 흑역사의 비밀을 지켰다는 느낌일까.

……뭐가 됐든, 레니안느의 다음 작품은 정해져 버렸다만.

비밀은 지켜줬음에도, 제시카의 흑역사는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수 시간 뒤.

“학생회 일 끝내고 겨우 돌아왔어요, 에우드 님- 어머, 레니안느 님도 계시네!?”

“치오카 선배, 고생하셨어요.”

“우오오.(레니안느, 매우 열중)”

사가가가각!

치오카가 학생회 일을 끝내고, 제2 도서관에 올 때까지.

레니안느는 에우드의 무릎 위에서 열심히 헬 젯시카를 추가로 그리고 있었다.

* * *

“에우드 님, 요 사흘간 정말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아뇨아뇨, 감사를 받을 필요는 없는데…….”

치오카까지 돌아오고서 모든 사서 일을 끝내고.

또 오늘 마지막으로 반납된 책까지 전부 정리한 후.

치오카는 에우드에게 거듭 감사를 전했다.

솔직히 벌칙으로 시작한 일이니까.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만.

그래도 치오카는 거듭 에우드의 손을 꼭 잡고 인사해줬다.

곧 치오카는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 아까 돌아왔을 때 가져온 가방을 호다닥 들고 왔다.

“맞다, 이건 오늘 외부 업무 중에 몰래 사 온 과자예요! 괜찮으시면, 누님분들이랑, 또 파벌 분들이랑 나눠 드세요!”

“와아……!”

치오카가 가방에서 꺼낸 건 고급스런 과자 상자였다.

케인즈의 상품은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과자 장인들의 브랜드.

아마 파벌에 플로라가 있는 걸 고려하여, 색다른 브랜드를 챙겨준 것 같다.

확실히, 에우드도 거의 못 먹어본 과자 브랜드였다.

다만 에우드로선 벌칙 기간이 끝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선물까지 받으면, 에우드가 되려 미안하다.

때문에 에우드가 우선 예의를 다해, 그걸 거절해보려 하자-

“정말로! 너무 감사해서 드리는 거니까요! 여러 가지로 ‘소재’도 주셨고!”

“그런가요…….”

치오카의 압도적 감사에, 에우드도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겠어요, 치오카 선배. 감사히 먹을게요.”

“넵!”

상대의 진심이 담긴 선물을 너무 거절하는 것도, 귀족으로서의 예의는 아니다.

특히 이런 선물은 사심보다도 감사가 더 큰 것이니 말이다.

‘……근데 어라, 잠깐만. 소재는 뭐지?’

라그나릴의 유리카와 그 소녀들도 그렇고.

에우드는 가끔 여학생들의 말이 잘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었다.

그나마 검은 사자 여학생들의 말은 직관적이어서, 꽤 듣기가 편하다만. 그쪽은 다들 감정적이면서, 또 솔직하니 말이다.

그래도 볼 때마다 장난치는 건, 에우드도 좀 부끄럽다…….

그때마다 또 누나들한테 혼나서, 뺨도 아프고.

그리고 에우드와 치오카가 서로 인사를 하던 사이, 레니안느는 자신이 챙겨왔던 노트나 동화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동화책 참고용으로 꺼내왔던 수많은 책도, 어느새 제자리에 차곡차곡 꽂아놓는다. 장하다, 장해.

그리고 레니안느가 책장 쪽으로 가 있는 사이, 에우드는 치오카에게 살짝 물었다.

“……라피스 공주님 쪽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오늘 업무는 이제 다 끝난 건가요?”

“사실 다 끝났다기보단, 관광만 끝났다고 해야 할까요.”

“관광만?”

일단 라피스의 관광은, 알카라시아 거리에서도 매우 반응이 좋았다고.

라피스 본인도 시민들에게 많이 다가가고.

또 자신을 구경을 온 수많은 시민에게도 싫은 티 하나 내지 않고.

인사를 받아주거나, 짧은 대화라도 정성스레 나눠주거나. 응원에 호응하거나.

관광하는 내내, 정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한 나라의 공주답게’ 움직였다고 한다.

라피스의 방문으로, 알카라시아 거리의 가게들도 모두 성업.

오늘 단 한 번의 방문임에도. 알카라시아에 라피스가 끼친 영향은 역시 거대하다고 해야겠지.

“자국뿐만이 아니라, 타국일 유그라시아에서 그렇게 하시긴 참 힘든데요~ 덕분에 저희도 조금 감동했어요!”

“……그런가요.”

하긴, 따지고 보면 그 ‘고집쟁이 왕족 소녀’보다도 훨씬 왕족다운 행동이니 말이다.

치오카처럼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체르니가 들으면 삐질 수 있겠다만.

그리고 관광 업무를 끝낸 현재.

라피스는 아까 도착했던 ‘사프라 비공정’의 인원들까지 하여, 작은 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고.

기존 스케줄이 상당히 무너졌으니까.

이번 회의를 통해, ‘뱅퀴시 개막 전’까지의 스케줄을 확실히 정립할 거라고 한다.

회의참가자로는, 아카데미 측에선 학장 ‘베르네이 알페일’, 학생회장 ‘하워드 알잭 할란드’.

교수측에선 1급 교수인 ‘카르마 어바인’과 10대 귀족 ‘디에스 엘루 유펠하이넴’.

사프라 측에서는, 라피스 본인과 조정자 라넌큘러스 한 명을 포함한 호위 둘에, 몇몇 측근들.

마지막으로 ‘유그라시아 측’에선- 황금의 기사 크로나스가 참가하기로 했다.

“크로나스 님……?”

“네! 저희 OB이자, 성기사단 단장이신 그 크로나스 님이세요!”

이번 유그라시아 측 호위로서, 비공정에 동승한 ‘황금의 기사’가 바로 그 남자라고 한다.

이전 아카데미 OB이기도 하면서. 그 이상으로 현재는 ‘10대 귀족의 이름도 내려놓은’ 인물이니까.

가장 정치적 쟁점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번 호위로 선정된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어제 그…… 에우드 님과 레니안느 님이랑 충돌했다는 난쟁이 여자아이는 회의에서 빠졌어요.”

“호위 아니었나요? 그런데 어째서-”

이유인즉슨-

“너무 시끄- 아니아니, 조, 조금 활발하다 보니…….”

“…….”

고 녀석이 좀 시끄럽긴 했지.

이건 어쩔 수 없다 싶었다.

“흥, 꼴~ 좋다.”

어느새 책을 다 꽂아두고 온 건지.

가방을 꼭꼭 챙긴 레니안느가, 흥흥 비웃음을 던졌다.

처음으로 보는 레니안느의 귀여운 비웃음에, 에우드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렇게, 에우드의 벌칙 기간은 막을 내렸다.

아마 트루스도 지금쯤 끝났으려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