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먹 레이디스 둘의 증세는, 현재 진행형으로 거세지고 있답니다.?223회
개막의 소식223.
라피스의 도착 소식 자체는, 에우드가 와이즈를 통해 어제 쪽지로 전달했다만.
기본적으로 교수들 사이에선, 아카데미의 정보가 더 빨리 도니까.
어제 답장에 따르면, 쪽지를 받았을 땐 이미 둘도 그것을 알아챈 상황이었다 한다.
참고로 와이즈는 어제 쪽지 배달을 마친 후, 곧장 삼남매의 전서를 들고 포에닉시안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출발한 야간 퀵 배송 부엉이다.
“도련님이 괜찮아 보여서 그 무엇보다도 다행입니다…….”
“그러니까요…….”
슈가와 제시카 모두, 별일 없어 보이는 에우드의 얼굴을 보곤, 가슴을 살짝 쓸어내렸다.
둘 다 정말로 걱정을 많이 했던 걸까.
게다가 눈 밑도 살짝 퀭하기까지 했다.
“제시카하고 슈가, 둘 다 잠 많이 못 잔 건가요……?”
“아, 그, 그게- 아하하하.”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 잠이 살짝 안 와서 그만……. 부끄럽게도 저도, 제시카도, 잠을 설쳐버렸습니다.”
에우드는 둘의 걱정이 너무 고마우면서도, 괜히 걱정하게 해버린 게 정말 미안했다.
“돌아가시면 꼭 푹 주무셔야 해요. 그리고…… 정말 저 때문에 죄송해요.”
레니안느를 무릎에 올려놓은 채, 에우드는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막내 도련님의 이런 걱정 가득한 사과를 들으면, 두 여성도 잠자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을까.
오늘은 돌아가면, 도련님의 말에 따라 코오 잠을 청해야겠지.
이어서 에우드는 자신이 챙기고 다니는 포션 몇 개를 서둘러 꺼내 전해줬다.
곧, 슈가는 들어올 때부터 들고 있던 바구니를 카운터 위에 올렸다.
뭔가 싶어 에우드가 냄새를 맡자- 웬걸. 도시락 바구니였다.
무려 점심을 싸 와준 것이다.
“오늘은 여유가 생겨서. 도련님, 아가씨들의 식사를 오랜만에 준비했습니다.”
“와아아…!”
확실히, 슬슬 점심시간에 가까웠긴 했다.
에우드도 점심을 어떻게 때울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가져와 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슈가는 무심하면서도 뿌듯한 표정으로, 에우드에게 도시락 내용물을 보여줬다.
예전에 아나트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차곡차곡 쌓아둔 샌드위치와 과일들이었다. 간단하지만, 정성이 돋보이는 도시락이다.
들어보니, 이미 누나들과 멤버들이 있는 아지트 쪽에도 다녀왔다고.
먼저 둘이서 아지트에 도시락을 전달해주고, 에우드 쪽에 이렇게 온 것이다.
누나들 쪽엔, 셀레나의 식사량을 고려하여 정말 잔뜩 가져다준 모양이다.
메이드 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는 만큼, 슈가는 오늘 비번일 텐데.
이렇게 비번날에 몸소 도시락을 챙겨주는 게 참 고마웠다.
다만-
“사, 사실, 원래 도서관은 음식물 반입 금지지만요…….”
“앗.”
에우드가 조심스레 전한 말에 슈가가 충격.
이어서 통한의 표정을 짓는다.
업무를 정말 잘 수행하는 슈가다만. 도서관의 규칙은 상정 외의 사태였던 것 같다.
……뭐, 괜찮을 거다!
어차피 이용객도 없고.
학생회도 오늘은 전체적으로 바쁘다.
실제로 음식물 반입 금지라곤 하지만, 가끔 몰래 들고와서 먹는 아이들도 있었고.
뒷정리는 꼼꼼히 해야겠지만.
그래도 만약 들킨다면, 그때 가서 열심히 사과하자 싶었다.
“포에닉스 샌드위치…….”
레니안느는 저번 연휴 때 먹은, 마리 수제 샌드위치를 떠올린 건지.
에우드의 무릎 위에서, 기대감을 담아 몸을 붕붕 흔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꼬리를 살랑살랑거리는 수인족 같았을까.
슈가의 요리는 마리와 매디에게서 배운 거니까.
레니안느의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주리라.
네 사람은 도서관 내부의 살짝 넓은 테이블로 이동했다.
혹시나 모를 이용객을 대비해, 입구가 잘 보이는 자리를 선정했다.
“-교수 숙소도 어젯밤부터 꽤 난리라니까요. 평소엔 ‘우후후’, ‘와하하’ 하시던 교수분들이, 그 공주님 왔다는 거 들으니까 전부 흥분하셔서.”
“특히 남성 교수분들이 꽤 열정적이셨죠. 교수 숙소 직원분들도, 오늘 거리에 많이 나가신다고 합니다.”
“검술 담당인 남성 교수분들 다섯은, 아예 팀을 이뤄서 거리에 가자는 말까지 하시더라고요.”
“……다섯 분끼리 팀을 꾸린다니, 왠지 헌터 팀 같네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에우드 도련님. 아, 검사 다섯이면 밸런스는 깨진 거지만요!”
“후방 지원이 부족해.”
헌터 교본 원칙상, 검사 및 전위 전사들은 한 팀에 2~3인 배치할 것을 강조한답니다.
공주를 보러 가는 데에 당연 밸런스는 필요 없다만.
제시카와 슈가의 말을 들어보면, 학생이든 교수든 라피스에 대한 반응은 비슷한 것 같았다.
아카데미의 교수들 대부분은, 귀족 아이들을 태연히 상대할 만큼 꽤 강단 있는 이들이 많은데.
그런 교수들까지도 동심으로 되돌려버리는 게 참 신기하기도 했고…….
또 대단하다고도 여겼다.
물론 라피스의 이야기가 나오자, 레니안느 쪽은 살짝 언짢아졌다만.
괜히 심통을 부리듯, 샌드위치를 콱 입에 넣는다.
그래도 곧 맛있었는지 표정을 풀어버린다. 이어지는 고속 완식.
레니안느가 맛있어하는 것에, 슈가는 어깨를 몰래 으쓱했다.
그리고 둘에게서 교수들의 이야기를 더 듣던 중.
에우드는 디에스 쪽은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있을지 조금 궁금해졌다.
“디에스 교수님 쪽은 어떤가요?”
에우드도 샌드위치 하나를 만족스럽게 완식한 후, 그것을 물었다.
“-디에스 님은, 현재 라피스 공주님과 동행하고 계십니다.”
“넵, 오늘 하루 라피스 공주님하고 같이 움직이실 예정이에요.”
“네? 동행?”
의외의 답변에, 에우드는 잠깐 눈을 휘둥그레 떠버렸다.
“그게…… 교수 측에서, ‘최상위 귀족’이면서도 ‘라피스 공주님과 면식이 있는’ 인물은, 현재 이 아카데미에서 디에스 밖에 없으니까요.”
10대 귀족은 학생 중에도 다수 있지만.
이번 학기 교수진 중에서 10대 귀족 신분을 가진 건 디에스 뿐.
아니, 애초에 10대 귀족인 교수 자체가 드문 일이니 말이다.
어쨌든 이번 상황의 급작스러움.
베르네이와 학생회의 조력 요청.
10대 귀족으로서 가진 책임과 의무 등.
이런 여러 이유로, 디에스가 라피스의 동행인이 되었다고 한다.
제시카는 슈가가 깎아준 과일을 먹으며 말했다.
“디에스는 또 라피스 공주님하고도, 예전에 크고 작은 인연을 맺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라피스 공주님이 어젯밤에, 학장님을 통해서 부탁하신 모양이에요.”
디에스가 라피스와 아는 사이-
이건 디에스에게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이기에, 에우드도 살짝 놀랐을까.
디에스의 집사역이자 교수이기도 한 엘토도, 오늘은 둘의 보좌를 위해 함께 움직이는 중이라 한다.
하긴. 지금 라피스 옆에는, 그 성질 더러운 난쟁이 한 명뿐이니까. 호위는 될지언정, 보좌는 되지 않겠지.
뭐…….
일단 예정대로면, 내일 수인어 강의가 끝나고 평소처럼 도서관에서 만날 테니까.
그때 묻거나 할 수야 있으니까. 너무 깊게 생각하진 말자 싶었다.
에우드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샌드위치 하나를 집었다.
훈제 생선과 허니 머스타드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는, 다를 때보다 그 새콤달콤함이 각별하게 느껴졌을까.
이후 서로서로 식사에 잡담을 곁들이고,
또 레니안느 작가님의 동화책에, 슈가 독자님이 이번에도 대호평을 아끼지 않는 등.(동화책 배포 얘기도 다시 나왔다.)
그런 식으로, 느긋한 점심시간을 거의 끝낼 무렵이었다.
똑똑똑-
도서관의 문으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넷이서 이제 막 식사 흔적을 싹 치운 터라, 순간 놀라버렸을까.
그래도 환기까지 했고. 완전 범죄를 이뤘기에 별문제는 없었다만.
그보다 노크라니.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자유 출입이니까, 그런 격식은 차리지 않아도 되는 데 말이다.
에우드는 어느새 또 자신의 무릎에 앉으려던 레니안느에게 양해를 구한 후, 문을 향해 오도도 걸어갔다.
아 물론, 무릎에서 내려온 레니안느는 이미 에우드에게 꼭 붙어서 따라왔다만.
덜컹-
“넵, 그냥 들어오셔도 되는-”
“-에우드 님, 안녕하세요!”
“왁.”
문이 열리자마자 들려온 것은 또래 소녀답게 활기찬 목소리.
그리고 눈앞에 있는 것은-
건강함이 한껏 담긴 녹색 머리칼에, 종이뭉치를 꼭 쥐고 있는 소녀였다.
“-아!”
낯이 익다 싶더니.
이틀 전, 심심했던 체르니가 도서관에 왔을 때. 그때 ‘사브나크 일대기’라는 책을 빌려 갔던 소녀였다.
사실 서로 통성명은 안 했다만.
대여 처리를 하던 중 에우드도 이름을 봤었다.
분명 이름이-
“라이니, 씨였죠?”
“우와?! 그새 제 이름 기억해주셨어요?!”
“아, 그게- 대여할 땐 이름을 확인하니까요. 어쩌다보니.”
“와, 대박!! 에우드 님, 기억력 완전 좋으시네요!?”
“아, 그, 그 정도까진 아닌걸요.”
에우드의 설명을 듣자, 라이니는 더 꺅꺅 소리를 냈다.
그때도 활기차다 싶었다만.
오늘 다시 보니 상상 이상으로 더욱 활기찼다.
에우드에 대한 쓸데없는 공포심이 더 사라져서인가.
음, 좋은 현상이다.
에우드로선 이런 공포감이 조금씩 주는 게, 정말 바라마지 않는 일이었다.
포에닉스는 무서운 곳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라이니의 활기찬 모습에 잠시 압도되어, 순간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만.
잘 보니, 다른 여학생들 둘이 라이니의 뒤에 있었다.
그것도 꽤 식겁한 표정으로.
“아, 제 친구들이에요!”
“야, 라이니 얘 진짜……! 좀 적당히 해야지……!(속닥속닥)”
“진짜 저질렀어, 얘……! 포에닉스 리더한테까지 엄청나게 친한 척해버렸어……!(소근소근)”
“어, 잠깐 옆에 계신 분은-”
“-히이익, 레니안느 심 메트리!?”
“어라?! 레, 레니안느 님도 계셨네?!”(라이니)
“……?”(레니안느)
게다가 옆에 있는 레니안느를 보곤 한 층 더 놀란다.
방금까지 활기찼던 라이니도, 레니안느를 알아채곤 움찔.
아니 뭐, 어제 학생회의 반응에서 봤듯이.
레니안느도 일반 학생들에게는 충분히 공포의 대상이니까.
그리고 세 소녀의 반응에, 레니안느는 어째서인지 에우드의 등 뒤로 몸을 꼬옥 숨겼다.
자신을 보고 기겁하는 모습에, 혹시 조금 불만스러웠던 걸까.
에우드는 세 소녀가 레니안느에게 겁먹지 않도록(또 자신에게 겁먹지 않도록),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런데 라이니, 오늘은 무슨 일인가요? -아. 저번 ‘사브나크 일대기’의 반납이라면, 바로 처리해드릴게요.”
“아, 넵! -아니지아니지, 그게 아니라!”
레니안느에게 잠시 정신이 팔려있던 라이니는,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저었다.
라이니는 두 여학생의 앞장을 서, 도서관 내부로 들어왔다.
두 여학생도 조금 머뭇머뭇하면서도, 라이니를 뒤따랐다.
“-사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부탁인가요?”
“이거예요! 그리고 사브노크 일대기는 아직 다 못 읽었어요!”
“그랬군요, 하긴, 기간은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밝다, 밝아.
괜히 에우드도 힘이 날 것 같았을까.
곧, 라이니는 품에 들고 있던 열댓 장 정도의 종이뭉치를 보여줬다.
‘아카데미 소식지’였다.
근데 분명 아카데미 소식지는 ‘아가타 포리티’라는 귀족 학생의 파벌- ‘신문부’에 의해 발행된다고 했는데.
“라이니, 신문부셨나요?!”
“네? 에이, 아뇨아뇨. 전 소속 없는 일반 학생이에요!”
“그럼-”
“이건 신문부 친구들한테 부탁받아서 가져온 거예요~! 신문부도 오늘 바빠서요!”
라이니가 밝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듣자 하니, 신문부가 라피스를 쫓아 광장으로 인원을 돌리느라, 많이 바빠졌다고.
때문에 멤버들과 친분이 있는 라이니에게 조력을 부탁했다나.
아, 덧붙여 같이 온 두 여학생은 그냥 따라온 것뿐. 딱히 신문부라던가 조력자는 아니라 한다.
에우드는 이 소녀가 참 친구가 많아 보이는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신문부 쪽까지 도움을 요청할 정도면, 정말로 발이 넓어 보였다.
듣기로는 신문부의 경우, 귀족 파벌치곤 격식은 크게 안 차리는 곳이라 한다만.
……되새겨보니.
이전에 아나트가, 거긴 생각 이상으로 말썽을 피우는 쪽이라 했는가.
물론 이미 반쯤 문제아로 찍힌(반쯤이라 믿고 싶다) 에우드니까. 별말 할 처지는 아니다만.
소식지 이야기를 듣고는, 에우드도 입구 근처에 게시판이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이런 소식지의 허가 및 게재 또한 사서 업무라고 치오카에게 배웠었다.
게재되는 소식지 한 장.
게재되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여분 소식지 한 장.
이렇게 두 장을 받아야 한다고 했나.
에우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라이니에게서 소식지를 두 장 전해 받았다.
겉보기엔 이전 포에닉스와 메트리, 그리고 그리피너가 파벌 대전을 할 때 나왔던 소식지와 비슷했을까.
하지만 내용은, 그때와 달리 파벌 대전에 관한 게 아니었다.
그것은-
“뱅퀴시……?”
어느 대회에 관한 정보였다.
“-아앗!? 뱅퀴시! 드디어 소식지가 배포된 거군요!?”
살짝 멀리 떨어져 상황을 보던 제시카가, 뱅퀴시라는 단어에 놀라 목소리를 크게 내버렸다.
“넵! 이제 곧 열리는, 뱅퀴시의 소식지예요! -으으응!? 잠깐, 헬 제시카 교수님도 있었어?!”
“엥?”
곧바로 라이니에게서 들려온 ‘헬’의 칭호에 한 번 더 놀란다만.
“헬 제시카야……!”
“시험, 과제, 모두 지옥 난이도로 낸 사악한 교수!”
“아, 아니, 그, 난이도가 심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건 다 분별력과 학생 여러분들의 지식함양을 위해서……! 아, 진짜!!”
라이니를 비롯한 세 소녀도, 미궁 이론의 수강생이었던 모양이다.
셋 모두, ‘헬’의 칭호를 가진 여성(?)에게 전율했다.
‘헬 제시카’.
‘바이퍼 디에스’와 함께 지옥 난이도로 쌍벽을 이루는, 아카데미의 사악한 교수다.
뭐, 두 명의 악명 높은 교수는 둘째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