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회
사서217.
마치 거대한 짐승이 도로에 족적을 남기듯.
레니안느는 에우드와 맞먹는 신체 능력으로, 발 구르기를 단숨에 끝내 달려들었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거대한 창처럼 휘둘러, 눈앞의 여성을 꿰뚫을 기세였다.
“레니안느!?”
“흐응-”
다만 실제로 일어난 건 충돌이 아니었다.
돌진과 동시에 주먹을 매섭게 들었던 레니안느는, 재빨리 행동을 바꿔 에우드를 붙잡았다.
“-와악!?”
“에우드, 이쪽으로 와!”
“어머나.”
이어서 고속으로 도는 팽이와도 같이, 자신을 회전축으로 삼아 에우드를 낚아챈다.
그리고 재빨리 라줄리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레니안느는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자신과 에우드의 몸에 제동을 걸었다.
덕분에 자신보다도 자그만 소녀의 몸에, 에우드가 꼭 안겨버렸다.
회전축(레니안느) 쪽으로 쏠린 탓도 있다만.
그 이상으로 레니안느가, 에우드를 보호하려는 듯 자신 쪽으로 끌어안았다.
잠들어버린 레니안느를 옮길 때 안은 적은 있어도, 이렇게 안겨지는 일은 없었는데. 참으로 묘한 경험이다.
“으음, 뭘 딱히 하려 했던 건 아니었는데요~.”
라줄리는 순식간에 뺏겨버린 에우드를 보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에, 에우드, 큰일 없었어?! 저 여자한테, 혹시 이상한 거 안 당했어?!”
“아, 응. 레니안느 목소리 크게 낼 수 있었구나……!”
“눈, 안경, 코, 입, 좋아, 멀쩡! 다행이다……!”
레니안느는 순식간에 에우드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크게 안도를 내쉬었다.
에우드로선 이런 레니안느는 정말 처음 보는지라 놀라버렸을까.
그러나, 에우드도 마냥 거기에 신경을 쓸 틈은 없었다.
애초에 지금 레니안느는 라줄리를 보고 ‘라피스’라고 불렀다.
라피스.
라줄리가 아닌, 라피스-
라피스 엘런시아 사프라.
“설마……!”
이제 곧 아카데미에 온다고 했던, 사프라 제2 왕녀의 이름이다.
에우드의 당혹스러움에 라줄리는- 아니, 라피스는.
“어머. 아핫, 역시 에우드. 그 표정을 보니 제 이름을 알고 있었군요. 영광이에요♡”
여전히 아까 같은 순수한 웃음으로 에우드를 바라봤다.
‘들켰다’는 아쉬움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던 에우드의 표정을 즐겨간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 레니안느, 뒤에!!”
“?!?!”
“아, 벌써-”
분명 이곳엔 방금까지 ‘세 사람’밖에 없었을 텐데.
“하아, 빨리도 왔네요.”
에우드와 레니안느의 뒤로, ‘어떤 그림자’가 들이닥쳤다.
촤아아아악!!
그것은 작은 몸집의 경장을 입은 전사.
소리도 없이 다가와 검을 휘두르는 전사의 그림자였다.
레니안느도 그 뚜렷한 적의와 기척을 눈치챘으리라.
하지만 에우드를 안은 채로 뒤돌아있던 탓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감히 라피스 공주님을 위협해!?”
“앗-”
“-뭐 하는 새끼야.”
그리고 서둘러 레니안느에게서 빠져나온 에우드가, 들이닥치는 검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
바위와도 같이 내리 찍힌 철검에, 에우드의 주먹이 충돌했다.
검압과 권압이, 서로 반발하듯 스파크를 일으키며 맞부딪쳤다.
그리고 에우드는 단숨에 마력으로 전신을 강화시켜, 그 경도를 강철 이상으로 끌어 올린다.
“뭣?!”
“뒤지려고-!!”
콰가가가각-!
챙그라아아앙!
그리고 충격의 끝에, 에우드의 주먹이 전사의 검을 완전히 압도해버렸다. 검을 산산조각내며, 단숨에 상대를 제압하기 직전까지 간다.
그러나 작은 전사 또한 그대로 당하지 않는다.
검이 붕괴하기 직전. 어느새 뒤에 준비해둔 소검을 뽑아 고속으로 휘두르려 했다.
“이 새끼가-!!”
“크헙?!”
에우드는 재빨리 오른쪽 다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소검을 휘두르던 작은 전사의 몸에 그것을 꽂아버렸다.
퍼어어어어억-!!
―――콰아아아아앙!
에우드에게 복부를 가격당한 작은 전사의 몸이, 저 멀리 나무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교과서적인 낫 모양을 그리며 나무에 박힌 전사를 보며, 에우드도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레니안느, 괜찮아?!”
“우, 우웅.”
에우드의 다급한 물음에, 레니안느는 하얀 머리칼을 통통 흔들며 끄덕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레니안느가 에우드를 걱정하는 구도였는데.
순식간에 서로의 상황이 바뀌어버렸다.
그러나, 아직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흐으읍- 방해하지 마라! 남자!!”
“와, 씨. 방금 건 꽤 강하게 때린 건데 멀쩡하네…….”
자그만 전사의 맷집은 예상 이상으로 대단했다.
나무에 박혔던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전사는 문제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분명 에우드가 상당히 힘을 실어 가격한 발차기였는데 상당히 멀쩡하다.
피해가 아예 없다는 건 아니었다.
경장 곳곳에 박힌 나무 조각이라든가.
복부에서부터 쏠려 내뱉은 각혈은 보인다.
그럼에도 전투 속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을까.
무엇보다 갑옷이 멀쩡하다는 것은, 무구에도 마력 경화를 걸 수 있는 것일 테고.
아까 충돌했던 검도,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전투 능력이 최소 S급에 달하는 존재임이 확실.
그리고 에우드가 적의 가득한 작은 전사의 모습을 자세히 보자-
‘난쟁이족?’
어쩐지 힘이 엄청난 것에 비해 몸집이 꽤나 작다 싶었더니.(물론 그건 에우드나 레니안느도 마찬가지지만.)
아카데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난쟁이 종족이었다.
얼굴이 앳되고 중성적인 것을 보니, 아마 나이 어린 난쟁이였을까.
그래도 성인 이전의 난쟁이들은, 외모로 뭔가를 가늠하기 어려우니까.
확실한 연령이나 성별까지는 알기 힘들었다.
일단 남자아이에 가깝게는 보이긴 하지만…….
작은 몸집에 맞춘 경장 위로는, 짧게 자른 노란 머리와 함께 적개심 가득한 표정이 거칠게 드러난다.
난쟁이 전사는 곧바로 입가의 각혈을 훔친 후, 소검을 치켜들었다.
당연하지만, 당장이라도 에우드와의 충돌을 재개할 기세였다.
에우드 다시 한번 마력 경화를 시킨 주먹을 들었다.
다만 2차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에이트리.”
“!!!”
충돌 직전. 난쟁이 전사- 에이트리는, 라피스의 부름에 눈을 뿅!하고 떴다.
“라피스 공주님! 정말, 왕도에서 말도 없이 떠나면 어떡합니까! 루크 대장이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데요!”
바로 1초 전까지 보였던 적개심을 순식간에 감췄다.
그러더니 라피스 쪽으로 우다다다 달려가, 폴짝폴짝 걱정을 드러낸다.
자신에게 반격을 가한 에우드에 대해선,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까의 레니안느가 마치 작은 토끼 같았다면.
저 에이트리라는 난쟁이는 아예, 이제 갓 세상을 안 새끼 고양이.
우다다, 우다다다를 반복하며, 라피스의 주변을 엄청난 기세로 빙빙 돌아간다.
너무 급격히 변한 분위기에, 에우드와 레니안느도 어안이 벙벙했다.
“정말, 라피스님도 이런 식으로 가끔 쏙 사라지시니까 난감해서- 우갹!”
“그만. 그만. 정숙. 멈추세요. 정신 사납답니다, 에이트리.”
“죄송함다…….”
라피스에게 꿀밤을 맞은 에이트리는, 살짝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편지는 써놓고 갔잖아요? 혹시라도 쫓아올 수 있게, 기록도 다 남겨놨고. 그래서 당신도 이렇게 온 거죠?”
“넵! 루크 대장의 명령에 따라서, 기록을 쫓아 저 먼저 뛰어왔습니다!”
“…….”
미소 사이에 소리 없는 한숨을 섞은 라피스를 보며, 에이트리는 다시 눈을 반짝였다.
“뛰어왔습니다!”
“아, 네. 들었답니다, 에이트리. 어흠.”
라피스가 헛기침을 아주 살짝 했다.
그리고 에우드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그러면. 다시 제 소개를 드릴게요,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
에우드가 라피스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라피스 또한 당연하다는 듯, 에우드의 현재 이름을 기품 있게 입에 담았다.
아까 에우드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줄 때 ‘성’까진 말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미 다 알고 접촉했다는 거겠지.
“‘라피스 엘런시아 사프라’. 사프라 왕국의 제2 왕녀. 이번 유그라시아 방문을 기념해, 이렇게 아카데미에 찾아왔답니다.”
“……이미 알고 계시지만.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입니다.”
그래도 일단 상대 쪽에서 ‘본명’을 말했으니까. 에우드 쪽에서도 본명을 대 인사를 받아야겠지.
하물며 상대는 귀족 그 이상인, ‘영향력이 매우 거대한 왕족’.
게다가 라피스 쪽에선 확실한 예를 갖춰 인사했다.
그렇다면 뭐가 됐든 10대 귀족으로서의 예의를 보여야 한다.
가레스 또한, 거기에 꼭 주의하라고 말했다.
에우드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러면서도 약간의 적대를 담아 라피스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홀로 친히 행차하신 건가요. 저한테 정체까지 감추면서까지 길까지 안내를 부탁하고. 혹시 길도 다 알고 계시던 건가요?”
“무슨 일이라뇨. 이야기하고 싶어서인 게 당연하잖아요? 방금까지도 그렇게 저와 재밌게 이야기를 나눠주셨으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쉽답니다.”
라피스 쪽에서 상처받은 듯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자, 에우드는 괜히 적대하며 말한 것에 죄책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렇지만, 에우드라고 절대 경계를 풀 순 없다.
이 여자는 ‘갈레아 고아원’의 후원자.
우드 갈레아의 과거를 후원하고 있던 여자다.
“뭐, 이미 포에닉스의 막내- 그 불사조, 가레스 알라이트 포에닉스가 선택한 소년에 대해선, 유그라시아 뿐만 아니라 사프라에서도 소문이 파다하니까요.”
“…….”
“얼마나 대단한 아이이기에, 황금의 기사가 양자로 선택한 것인가- 라는 이야기로요. 꼭 한 번 만나서 대화해보고 싶었죠. 그리고 이렇게 직접 대화해보니 정말-”
라피스가 자신의 검지와 중지를, 분홍빛의 입술 위로 황홀하게 올렸다.
“너무나 착하고, 멋진 아이가 맞았네요♡”
‘대화하고 싶었다.’
아까도 비슷한 말을 했던가.
분명, 라피스도 딱히 거짓을 말한 건 아닐 것이다.
……대화하고 싶었던 이유랍시고 말한 것에 대해선, 딱 잘라 진실이라 믿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
라피스는 뭔가 중요한 것을 잊었었다는 듯, 에우드에게로 눈빛을 크게 뜨며 말했다.
에우드는 거기에 주먹을 살짝 쥐었다.
“여기 정원탑까지 오는 길은 정말로 몰랐어요!”
“엑.”
“에우드의 안내가 필요했던 건 사실이니, 그건 오해하지 마세요!”
“아…… 아, 넵.”
아까와 같이 ‘누나’처럼 말하는 라피스에게, 에우드는 자신도 모르게 진이 빠진 목소리로 답해버렸다.
“-너 이 자식, 남자! 라피스 공주님의 말에 좀 더 공경과 존중과 사랑을 담아서 대답하지 못할까!”
“에이트리는 조금만 조용히 있기예요~.”
“넵, 라피스 공주님!”
라피스의 권고에 난쟁이 에이트리는 순식간에 입을 꼭 다물었다.
근데 입은 다물었는데도 표정이 시끄럽다.
아마 소리 하나 내지 않아도 소란스러운 타입이겠지.
“에우드, 저 여자하고 대화하지 마. 대화하면 안 돼.”
에우드가 라피스의 존재에 긴장(절반은 당혹)을 삼키고 있자, 레니안느가 그것을 조용히 말했다.
“대화하면 안 된다고……?”
“……대화해도,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목소리는 차분했다만. 그래도 평소의 레니안느보다도 훨씬 격양되어 있긴 했다.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하듯, 청색의 마안까지 드러내고 있다.
에우드도 라피스를 앞두고 긴장을 머금고 있긴 하다만. 레니안느는 그 이상이었다.
“라피스 공주님! 저 메트리 막내, 저번에도 그랬지만 너무 예의가 없는 눈빛입니다! 이참에 제가 따꼼따꼼 혼내주겠슴다!”
“저 난쟁이가……. 그보다, 언제 날 봤다는 거야.”
“으이익?! 저 애, 나 기억 못 하고 있어!? 아, 진짜! 더 혼내줄 거야!”
그새 다시 적의를 뿜어내는 에이트리를 보며, 레니안느도 즉시 돌격이 가능하도록 발끝에 힘을 모아간다.
에우드도 시력보호 안경을 정리한 후, 서둘러 몸에 투기를 끌어올렸다.
“-에이트리, 합죽이가 됩시다, 합.”
“혼내주- 하으읍.”
곧바로 라피스가, 에이트리의 시끄러운 입을 손바닥으로 꼬옥 틀어막는다.
……아무래도 라피스가 있는 한, 에이트리 쪽에서도 이 이상의 충돌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저 메트리 막내, 저번에도 그랬지만 너무 예의가 없는 눈빛입니다!”라니.
아까 막 만났을 때도 그렇고. 레니안느는 이미 라피스 측을 만난 적이 있던 것 같았다.(에이트리하곤 뭔가 어긋나 보였다.)
물론 이제 3년 차 벼락치기 귀족인 에우드면 몰라도, 레니안느는 강대 세력 메트리의 막내딸이다.
해외의 왕족 정도야 충분히 면식이 있을 만하다.
그래도 역시, 지금 분위기는 단순히 ‘면식이 있다, 없다’로 설명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레니안느의 이런 반응이 처음인 건 아니다.
저번에 포에닉시안에 가던 열차에서도 그랬다.
(“갑작스레 ‘어떤 높으신 분’의 방문이 예정되어버렸다고 했거든요.”
(“높으신 분?”)
(“일단은 다른 나라의 공주님이라고만 들었어요.”)
(“…….”)
객실 안에서 라피스의 이야기가 나왔던 그때.
레니안느는 홀로 찌푸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그렇게, 양측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을 때.
한 노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말씀도 없이 빨리 오시다니. 정말, 방문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