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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마검사 도련님-216화 (214/264)

라줄리는 그 말이 상당히 재밌었는지, 그 뒤로도 한동안 키득키득 웃음을 이어갔다.?216회

사서216.

그 뒤로 정원탑까지 향하는 짧은 시간.

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깔린 정원길 아래에서, 에우드와 라줄리는 잡다한 대화를 나눴다.

에우드가 아카데미에서 어떤 학문을 주로 배우고 있는지.

아카데미엔 여러 출신의 학생이 많다든지.

에우드가 안경을 원래부터 쓰고 있었는지.

이곳에 펴있는 꽃이나 나무의 종류에 대해서 말한다든지.

정말 어찌 되어도 상관은 없는 대화긴 하다.

뭐,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니까.

대화에 영양가가 살짝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을까.

그래도 에우드도, 나름 즐겁게 대화한다곤 생각했다.

기묘하게도 이 라줄리라는 여성은 처음 보는 인물일 텐데.

에우드에게 라줄리는, 마치 ‘오랜만에 보는 친밀한 누나’같이 느껴졌다.

그것은…… 라줄리가 품은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라줄리의 행동 전반. 그리고 목소리에는, 묘하게 상대에게 경계심을 풀게 하는 감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에우드는 회중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12번 보도에서 출발한 지 대충 15분.

이제 곧 정원탑이 보일 것이다.

이후 정원탑에 라줄리를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은 빠르게 직선으로 뛰면, 체르니가 도착하기 전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으리라.

혹시나 체르니가 먼저 와도, 회중시계로 연락을 나눌 수 있으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약속해 놓은 주제에, 약속 장소에 없게 되면 좀 미안하다만…….

먼저 도착했다면, 솔직하게 바로 사과하자 싶었다.

근데 와이즈도 또 의외로 돌아오질 않는다.

와이즈의 속도라면, 벌써 왕복은 하고도 남은 시간일 텐데.

아무래도 플로라가 누나들하고 있는 걸까.

되도록 들키지 말라고 했으니까. 쪽지를 줄 타이밍의 각을 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 안 온다 싶으면, 이따 다시 피리로 부르도록 하자.

“그런데- 아카데미는 이번에 시험 기간이 끝났다고 들었는데. 에우드는 어떤 노트를 보고 있던 건가요? 혹시 시험에서 틀린 걸 바로 복습하시던 거라던가요?”

그리고 길이 얼마 안 남았을 때, 라줄리는 에우드에게 그것을 물었다.

라줄리도 아카데미가 시험 기간이었다는 건 알고 있던 것 같다.

하긴. 행사의 참여를 위해 온 거라면, 아카데미 스케줄 정도는 알고 있는 게 보통이겠다.

지옥 기간이라는 말은 모르는 것 같지만.

그건 사실상 아카데미 학생들과 교수진 사이의 은어니까.

“아뇨아뇨, 아카데미 공부랑은 조금 관계없이, 저 혼자 따로 하는 일이라…….”

“-아, 후훗, 그럼 혹시 소설이라던가 쓰시는 걸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 글솜씨는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어머어머.”

라줄리가 빙긋 웃는 것에, 에우드는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서술형 문항을 적는 솜씨는 좋아졌다만.

에우드는 아직, 레니안느처럼 뭔가 창작할 글재주까진 없었다.

레니안느의 동화책 제작은, 에우드의 입장에선 꽤나 존경스러운 활동이었다.

뭐, 어쨌든 딱히 감출 일도 아니니까.

에우드는 별다른 생각 없이 노트의 내용을 말했다.

“공부나 글 같은 건 아니고, 7대 던전에 대한 개인 조사를 적은 노트예요. 시험이 끝나서, 이제 조사를 재개하려고 해서.”

“7대…… 던전……? 조사?”

“네, 예전부터 그…… 사정이 있어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의외였을까.

그것을 들은 라줄리의 표정에, 아주 살짝 미동이 보였다.

“……라줄리 씨?”

그리고, 에우드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핫, 에우드도 7대 던전에 관심이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네요♡”

“-아, 아, 넵.”

그 웃음은 방금까지 봤던 순수한 웃음과는, 다소 분위기가 달랐다.

사실 제대로 따지자면, 관심이라기보다도 대비에 가깝다만.

거기까지 말할 생각은 에우드도 없었을까.

그리고 라줄리는 웃음을 유지한 채로, 황홀하게 목소리를 이어갔다.

“던전. 참 멋진 장소죠.”

“……멋진 장소라고요?”

“네. 던전이란 생명을 가득 품고, 마력을 가득 품고.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

천진난만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라줄리의 눈은 여전히 동심 가득히 빛나고 있었다만.

그건, 일반적인 동심과는 조금 다른 방향성의 동심이었으리라.

“던전은 이 세계의 비밀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그중에서도 7대 던전은 더욱.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신봉하는 이들도 존재하죠.”

“…….”

“‘마법’. ‘문명’. ‘세계의 비밀’. 속물적으로는 ‘셀 수 없는 금전 가치’까지. 가득가득, 가득- ‘축복’으로 가득한 그 장소를……”

토옥-

라줄리는 조용히. 그러면서도 매우 은밀히.

에우드의 입술을 집게손가락으로 살짝 매만지며, 매혹적으로 말했다.

“그 던전을, 누군가는 신처럼 여기게 되는 거죠.”

그 말은, ‘미궁 이론’- 던전 학문의 근원이기도 한 말이었을까.

죽음이 가득한 던전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보고.

계산하고. 이용하고. 끝없이 갈구하는 것이 그 학문이니까.

그리고 라줄리가 입술을 만진 것에, 에우드가 놀라는 것도 잠시.

라줄리는 어느새 에우드의 입술에서 손가락을 떼고 몸을 물렀다.

그 행동은 흡사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한편으론 동경하는 영웅을 만난 아이처럼, 너무나 수줍어 보였다.

모호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모호하다.

만약 눈앞의 사람을 선과 악으로. 양과 음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둘 중 그 무엇도 고르지 못할 정도로.

그럼에도 에우드는……

지금 이 여성의 행동에 ‘어색함’은 느낄지언정. ‘거부감’까진 느끼지 않았다.

아니 그 이상으로-

에우드는 어쩌면, 이 여성에게 뭔가의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아, 도착해버렸네요.”

다만 에우드가 그 감각의 정체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둘은 어느새 정원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저 새하얀 탑이 정원탑이었군요. 으으음- 곳곳에 핀 꽃 냄새가 정말 좋아요~.”

꽃과 약초. 마력초와 덩굴 등.

각양각색의 식물이 자라 있는 새하얀 탑.

언제나 같이 향기로 가득 둘러싸여 있는 정원탑이었다.

마침 학생들이 많이 없는 타이밍이었는지.

의외로 주변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곧 정원탑 일대의 향기를 마음껏 맡은 라줄리는, 에우드에게 예의를 갖춰 고개 숙였다.

“여기까지 안내해주셔서 정말로 고마워요. 에우드.”

“아뇨…….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었는데요.”

라줄리의 감사 인사에, 에우드 또한 함께 고개를 살짝 숙여 그것을 받았다.

“아쉽네요.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던전에 대해서라던가. 에우드에 대해서라던가. 여러 가지로.”

아쉽다는 듯 말하던 라줄리는, 어느덧 장난기가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에우드에게 다가와, 아까 꺾었던 한 송이의 꽃을 그 귀에다 꽂아줬다.

“????”

갑자기 자신의 귀에 꽃을 꽂아준 것에, 에우드는 살짝 어리둥절함을 표했다.

“저기, 라줄리 씨, 갑자기 꽃은 왜 꽂아주시는 건가요?”

“선물이어요.”

“잉? 선물?”

“지금은 부득이하게, 제가 성의를 표할 수 있는 물건이 없으니까요. 일단은 임시로. 나중에 제대로 성의를 보이겠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주세요.”

“앗, 그런 의미였나요.”

아무래도 감사를 담은 행동이었나보다.

에우드는 거기에 살짝 쓴웃음을 짓다가, 마지막 말에 깜짝 놀랐다.

“-근데 잠깐, 아뇨아뇨! 성의라뇨, 그런 거 안 하셔도 돼요.”

“에우드야 말로 그런 말씀 마시고. 이렇게 안내해주신 은혜에 대해선, 꼭 제대로 보답을 할 테니까요.”

에우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미안함을 표하자, 라줄리 쪽에서도 되려 고개를 절레절레.

라줄리도 성의 표시를 한다는 말을, 절대 무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열세 살 소년과 스물을 막 넘었을 소녀가 서로 절레절레 도리도리.

꽤 귀여운 광경이었을까.

“-맞아, 그래요…….”

그리고 조금 뒤 라줄리는…….

무언가 좋은 것이 떠올랐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아예 에우드만 좋다면, 저한테 시간을 더 내주실 수 있을까요?”

“시간? ……지금이요?”

“네. 만약 지금, 에우드의 소중한 시간을 제게 조금만 내주신다면…….”

라줄리는 자신이 꽃을 꽂아준 에우드의 귓가에다가, 너무나도 매혹적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에우드에게 성의를 몸소 표해드릴게요. 어딘가에 들어가, 둘이서 느긋하게. 진득하게. 그리고-”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이 섞여 있는 그 매혹의 목소리는, 에우드의 머릿속을 순간적으로 뒤엉키게 했다.

“-온몸으로, 정말 달콤하게♡”

여성의 뜨거운 숨결이, 에우드의 귓가를 데울 만큼 강렬하게 전해진다.

그것은 당연하지만 유혹.

뇌를 저릿하게 녹여버릴 것만 같은, 벌꿀 냄새로 가득한 유혹이었다.

그리고 그 유혹의 목소리를 들은 에우드는……

“…….”

흡사 유혹에 몸을 맡기듯 눈을 감-

“죄-”

“-죄?”

“죄송함다. 이다음에 바로 약속이 있어서요…….”

“엡.”

“사실 제가 지금, 약간 촉박하게 온 거라……!”

“…….”

-지는 않았고.

그저 미안함 가득 사죄를 전하며, 정중하게 그것을 거절했다.

* * *

아니 뭐, 에우드에게 라줄리는 정말로. 진짜로 매력적이게 느껴지는 여성이다.

정말 어머니나 누나들에게도 꿇리지 않고.

그러면서도 또 다른 매력을 가졌고.

에우드가 무의식적으로 성적매력을 느낄 만큼 아름다운 여성이기도 했다.

다만 그래도 결국, ‘에우드의 그쪽 감각이 마모되어 있다’라는 게 사실.

아마 다른 남자였다면 절대 거절할 수 없었을 그 제안을, 에우드는 큰 고민 없이 거절해버렸다.

라줄리는 그런 에우드의 반응에 순간 멍하니 있다가-

“-풉, 아하하핫!”

결국 빵 터져버렸다.

“아니, 그러면 에우드! 선약이 있었는데도 저를 여기에 데려다주겠다고 해주셨던 건가요!?”

“그게…… 넵, 죄송합니다……. 곤란해 보이셔서. 빠르게 갔다 오면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머머, 아하하핫, 정말~ 얼마나 사람이 착한 건가요!”

“으으읏…….”

라줄리는 그게 정말로 웃겼던 걸까.

입가를 오른손으로 살포시 막곤, 폭소를 이어갔다.

아까까지 보여주던 웃음은, ‘인공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순수했는데.

지금 웃음은 정말로 꾸밈없는 웃음으로 느껴졌다.

“아까 말해준 ‘일을 사서 한다’라는 표현이 딱 맞네요~!”

“……반박할 말이 진짜 없네요.”

그래도 에우드는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말한 건데.

이렇게 상쾌하게 웃어주니, 에우드도 마음이 불편하지만은 않았을까.

에우드도, 미안함을 담아 쓴웃음을 재차 지었다.

“아아, 진짜-”

그리고 에우드와 함께 웃던 라줄리는-

“진짜로, 얼굴부터 행동까지 모든 게 너무 매력적이잖아……♡”

애정을. 욕망을.

그리고 성욕을 가득 담아 에우드를 바라보았다.

“……어?”

에우드도 그 찰나의 검은 시선을 눈치챘으리라.

그때였다.

“-에우드?”

반대편 길에서, 한 소녀가 자그만 목소리로 에우드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동화책 가방을 꼬옥 매고 있는 레니안느가 있었다.

“레니안느?”

“와아, 에우드다아아.”

“…….”

그러고 보니 메트리 파벌의 아지트는 정원탑 쪽에 가깝다 했나.

그렇다면 레니안느는 휴일을 맞이해 거기서 놀다가, 이렇게 정원탑 쪽으로 온 걸까.

……아니, 동화책 전용 가방까지 꼭꼭 챙겨온 걸 보면, 아예 에우드 쪽으로 향하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마침 레니안느도 에우드에게 반가움을 보이는 것이, 딱 ‘만났다!’라는 듯한 분위기였다.

“에우드, 에우드. 마침 제2 도서관에 찾아가려고 했어.”(쫑쫑쫑)

에우드의 생각이 맞았는지. 레니안느는 에우드가 있는 쪽으로 호다닥 뛰어왔다.

이어서 에우드가 안경 모드라는 것도 알아채곤,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반짝.

한쪽으로 묶은 새하얀 머리는, 오늘도 깜찍함을 담아 폴짝폴짝한다.

마치 숲속에서 작은 토끼를 만난 느낌이다.

그러나, 그런 작은 토끼와도 같던 레니안느의 표정은-

“어제는 올테라가 마법 이론 복습하라고 해서 못 갔다가- 어……?”

에우드의 옆에 있는, 어느새 ‘인공적인 순수함’으로 돌아온 여성을 보고 순식간에 뒤바뀌어간다.

“당신이 왜 여기 있, 어……?”

그건 레니안느에게서 처음 보는……

두려움과 당혹이 가득 담겨 있는 표정이었다.

“왜, 라피스 당신이…… 벌써 여기 있는 거야……?!”

그리고,

라피스라는 이름이 에우드에게 들려왔다.

“뭐-”

“-흐응, 조금만 더 감추고 있으려 했는데.”

그 순간. 라줄리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모했다.

“레니안느 심 메트리. 셋째 오빠랑 달리 눈치가 없네요, 요 말괄량이☆”

“에우드한테서 떨어져!”

콰아아아아아아앙!!

레니안느의 발밑으로, 급격히 국소규모의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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