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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마검사 도련님-214화 (212/264)

약속 없던 소녀(※왕족)의 나른한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214회

사서214.

일단 체르니 말로는, 아마 지금 루네는 자고 있을 거라고 한다.

보통 둘이서 이렇게 대화하고 있으면, 저번처럼 ‘이미 듣고 있었다는 듯’ 회중시계에 연락을 걸 텐데.

그러지 않는 걸 보면 확실하다나.

[“루네, 제가 알기론 어제 꽤 오래 매직 아이템을 연구하고 있었거든요. 아마 아침 점심도 거르고 자고 있을 거예요.”]

“밤낮이 바뀐 거군요…….”

[“벌써 한 나흘쯤 됐어요…….”]

뭐, 결국 에우드의 예상대로였을까.

정말 혼자 갔다간, 문 앞에서 하염없이 서 있을 뻔했다.

어쨌든 체르니의 준비(세수)도 기다려야 하니까.

에우드는 체르니와 의논해, 12번 교내 보도 쪽으로 가 있기로 했다.

[“기숙사 쪽은 앞에 사람이 좀 많으니까요.”]

체르니는 그새 창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밖의 상황을 본 듯했다.

12번 교내 보도- 사거리 형태로 되어있는, ‘유그라시아 역’과 ‘기숙사’, 그리고 ‘학생회관’ 등등을 이어주는 길이었다.

정확히는 ‘아카데미에 오는 모두가 들르는 길’이라 해야겠지.

에우드도 처음 아카데미에 왔을 때, 그쪽 길을 지나쳐 기숙사로 향했으니까.

여하튼 거기에 좋은 구석 벤치가 있으니, 그쪽에서 먼저 만나자고.

역시 체르니.

구석진 자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소녀다.

[“에우드, 역시 아까부터 계속 좀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죠?!”]

“아뇨아뇨, 전혀전혀.”

그리고 감도 좋은 소녀다.

그렇게 상황을 얼버무리면서 통신을 끊은 후.

에우드는 피리를 꺼내 와이즈를 불렀다.

와이즈는 에우드가 사서 일을 하는 동안, 근처에 있었던 건지. 꽤 빠르게 날개를 펄럭이며 에우드에게 날아왔다.

그리고 에우드는 와이즈에게 쪽지를 쥐여주며, 플로라에게 가져다주라고 부탁했다.

“누나들한테는 되도록 들키지 않게. 알겠지?”

“구르르릇!”

“만약에 누나들이랑 계속 같이 있어서 들키기 어렵다 싶으면, 도중에 돌아와도 돼.”

“구루루-!”

이틀 전에 수라장에 갇힌 물주를 놔두고 도망친 전적이 있어서일까.

오늘따라 와이즈의 대답은 구르르 우렁차다.

어떻게 해서든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기세다.

하하 짜식.

그래도 누나들한테 잡힌 물주를 두고 도망간 일은, 아직 잊지 않을 거다!

그렇게 와이즈를 플로라에게 보낸 후.

느긋한 걸음으로 약속 장소에 가려는 그때.

덜컹덜컹덜컹-

저 멀리서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향 상, 제2 도서관과 알카라시아 역이 그리 멀지는 않았던 덕일까. 또, 12번 교내 보도 쪽으로 향하고 있던 만큼 더욱이.

가끔 이쪽 길을 걷다 보면, 열차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운치 있게 들려올 때가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겐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다만. 에우드에겐 꽤 선명하다.

다만 이 시간대엔 별로 열차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하긴. 열차 스케쥴 상, 지금 도착한다는 건, 보통 ‘포에닉시안’에서 야간에 출발한 열차일 테니까.

야간열차의 운행 수가 적은 만큼, 이 소리를 많이 못 듣는 건 어쩔 수 없을까.

……아니, 딱히 에우드라고 해서 열차 스케줄을 작정하고 외우고 있던 건 아니고.

저번 연휴에 레니안느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열차에 관심이 많았던 레니안느였으니 말이다.

레니안느가 열차를 놓쳐 포에닉시안 열차에 탔을 때.

그때의 짧은 열차 모험 중, 차량 내부의 승무원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고.

열차 스케줄이라던가. 야간열차의 이용량이라던가.

그런 심오한 지식들을 숙지하고 온 모양이다.

아마 그건, ‘다신 열차를 놓치지 않을 거야.’라는 굳은 의지도 들어있었겠지.

레니안느 심 메트리.

실수를 재차 범하지 않으려는 기특한 귀족 소녀이다.

그런 덕분에 에우드도 레니안느에게 그걸 전해 듣고, 상당한 스케줄은 파악하고 있었다.

뭐, 지금 도착하는 승객이 누군지는 몰라도.

아마 에우드가 지금 12번 보도에 가는 만큼. 지나가듯 길에서 마주칠 수야 있긴 하겠지.

그렇게 포에닉시안 발 열차 도착에 약간의 친밀함을 느끼며.

에우드는 다시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이어갔다.

* * *

지하의 도서관 내부.

새벽까지 연구를 거듭하다가 겨우 잠들었던 루네는, 바닥에서 비틀비틀 몸을 움직였다.

자고 있다곤 했다만, 사실 ‘편안한 수면’과는 좀 동떨어진 모습이었으리라.

이런 모습을 자주 본 체르니나 베르네이 정도가 아니라면, ‘잠’보다도 ‘기절’. 혹은 ‘졸도’나 ‘사망’으로 생각할 정도의 광경이니까.

그보다 ‘수많은 책 아래’에서 낑낑거리고 있는데.

누가 이걸 수면이라고 여기겠는가.

당장 구해줘야 할 사건으로밖에 안 보지.

아무리 좋게 봐도, ‘바닥에 퍼질러 자는 사이, 책의 탑이 쏟아져 내렸습니다.’다.

이 책들조차 루네가 ‘이불’처럼 쓴 거다만. 그 사실을 말해도 믿어주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누아아아악.”

그리고 분홍 머리의 소녀는, 그런 책 아래에서 기지개를 켰다.

우르르우르르. 따끈따끈한 체온이 전해진 책들이, 루네의 위에서 하나둘 바닥에 떨어진다.

그 모습을 가면의 집사&메이드 파밀리어- 오베론과 티타니아가 난감하게 보고 있다만.

주인은 항상 수면 부족일 땐 예민하니까.

가면 너머로 조마조마 바라볼 뿐이다.

“……흐앙, 몇 시간이나 잤지?”

그 말에, 오베론이 다가가 회중시계를 보여줬다.

시간은 3시 반 정도.

잠든 게 아침이니까, 설마 새벽 3시 반은 아니겠지.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루네의 의도가 전해졌는지. 티타니아가 오도도 다가와 고개를 끄덕끄덕.

‘오후 3시가 맞아요, 루네.’라는 반응이었다.

말이 없는 두 파밀리어다만. 루네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능숙하게 파악하고 있다.

“우헤헤.”

루네가 묘한 만족감을 드러내며 웃자, 오베론과 티타니아가 안도한다.

푹 잤는지 예민함은 없다.

곧바로 따뜻한 물과 수건을 가지고 와, 주인의 얼굴을 꼭꼭 닦아준다.

분명 실제 나이는 70- 콜록콜록.

60대 후반인 루네다만.

신체와 정신은 항상 균형을 이루기 때문일까.

루네는 이 신체가 된 후로는, 아이처럼 행동해버릴 때가 많았다.

신체가 작아진 것을 틈타. 원래의 나이로는 할 수 없는 어리광을 피운다 해야겠지.

……물론 그런 식으로 이미 10년을 보냈다.

그럼에도 이 몸은, 단 한 살도 나이를 먹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

‘작아진 것을 틈타’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시간이 오래 흐른 것이다.

그보다 ‘~을 틈타’라는 표현이 통하는 건, 루네가 심심풀이로 만들었던 ‘성별 변화의 약’ 정도에만 해당하는 말이다.

그 약의 효과는 대충 반나절 정도니까.

아, 약발이 잘 듣는 사람에 따라선, 하루 정도 이어진다만.

40년 전엔, 남동생 베르네이에게 먹였다가 아주 재밌는 꼴을 보기도 했고.

지금도 지하 책장 어딘가에, 한 다섯 병 정도 예비로 만들어놨다.

그렇다. 정말 무료할 때 재미를 느끼기 위한 예비 물품이다.

덕분에 베르네이는 그 약을 볼 때마다 깨트리고 싶어서 안달이다.

……말이 좀 엇나갔다만.

뭐, 어쨌든 지금은 그저-

남동생의 흰머리가 희끗희끗 늘어가는 것을 보며.

자신의 제자들이 조금씩 노년에 들어서는 것을 보며.

그리고 새침한 유그라시아 왕가 아이들을 보며.

희미하게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 정도가, 루네가 느끼는 세월의 전부라는 이야기다.

정말 이건, 저주인지 축복인지 알 수가 없었을까.

이 ‘시간 흐름을 거스른 모습’은, 누군가에겐 저주. 누군가에겐 축복일 테니까.

그리고 루네는-

“꾸아압. 티타니아, 조금 살살 닦아줘우우웁. 응? 눈가도 꼭꼭 닦아야 한다고-옵으으.”

지금 모습을 저주로 여기고, 그것을 풀려는 쪽이었다.

매일 하는 연구 또한, 그것과 관계된 일이었고.

“-푸하. 고마워, 오베론. 티타니아.”

[“(끄덕끄덕)”]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간단한 세수를 받은 루네는, 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이처럼 구는 일이 많은 루네다만.

이 ‘수제작 키잡 소설’ 주인공들의 이름을 딴 파밀리어들에겐 항상 감사를 느끼고 있다.

오베론&티타니아도 함께 꾸벅.

모두모두 예의가 바르다.

‘70대 소녀’에겐 조금 어긋나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만.

루네는 이어서 자신의 근처에 둔 대여 논문들을 확인했다.

개인 소장하고 있는 논문이나 혹은 그 사본도 있다만.

최근에 발표된 자료들은, 사본을 만들기 힘든 것들도 있으니 말이다.

아예 지금처럼 각 잡고 빌려올 때도 자주 있었다.

그걸 위해서, 남동생 베르네이한테 ‘1급 교수’ 도장까지 받아온 거고.

현재 루네가 집어 든 논문은-

‘고대 아우그스 왕국의 문화’.

‘헤루네비아 시공간 이론’.

‘베델기우스 학회, 마법회로 연구 및 고찰’.

그렇다.

루네는 딱히 그 논문들을 잊어버린 건 아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엔터테인먼트 쪽이면 몰라도.

이런 쪽에선 의외로 기억력이 착실한 루네다.

그보다, 요 한동안은 계속 그 논문들을 살펴보고 있었고.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단순히 어려운 학문’일 테지만.

루네처럼 ‘진실의 일부를 아는 사람들’이 보면, 이 논문들은 모두 ‘7대 던전’에 관련된 일이니까.

“……리퀴아 꼬맹이, 그 녀석은 분명 슬슬 이 시기에 차원탑이 나타날 거라고 했었지.”

더욱이 현재 실종된 리퀴아 ‘꼬맹이’가 했던 말이 있는 만큼.

루네로서도 연구에 좀 더 시간을 들이고 싶었을까.

그리고 리퀴아를 생각하자, 루네의 머릿속엔 자연스레 에우드 또한 떠올랐다.

픽시들의 보고에 따르면-

에우드는 리퀴아의 행방을 찾는 걸, 어떻게든 도우려 하고 있다고 하고.

리퀴아 본인 또한, 3년 전에 ‘7대 던전’으로 떠나기 전.-

(“금마는 보통 놈이 아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엄청난 열쇠를 쥘 거라 내는 생각한다. 루네 아지매- 커흡! 어흡! 악! 와, 와 때리나!? 와, 몸만 작아졌지, 여전히 스엉격 참 드럽- 악! 악!”)

-어흠.

그런 말도 하긴 했으니까.

……실은 저번 ‘검은 안개’와 싸울 때까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만.

“…….”

저번에 찾아왔을 땐, 솔직히 때가 아니기도 했고.

정말 루네는 지금도, ‘자신이 얼마나 확실하게 알고 있는지’도 애매했던지라.

무엇도 안 말해주고 돌려보냈는데.

역시- 이후의 목적을 생각하면, 이야기해주는 것이 옳긴 했을까.

“……뭐, 그래도 지금은 그냥 학교랑 체리니아에게 집중해주는 게, 난 더 마음이 편하다만.”

곧바로 루네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어제까지 정리한 연구 결과를 팔락팔락 넘겼다.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도움 덕에, 얼굴의 찝찝함도 사라졌다.

저주받은 신세라 해도, 대충 세수해도 피부가 탱탱하다는 점은 참 편하다.

다만,

“흐아아아암- 응? 아갹!?”

――구우우우웅!

구우우우우우웅!!

그때, 루네에게 진동이 느껴졌다.

눈앞이 뒤흔들린다.

아니, 이건 물리적인 진동이 아니다.

마치 머릿속을 안쪽에서 망치로 치는듯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진동이다.

던전을 공략하던 시절에 느꼈던.

주시자의 감옥을 공략할 때 느꼈던 감각.

경고. 세계정상급 던전 공략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본능의 경고.

‘특이 존재’.

‘세계의 뒤틀린 축복을 받은 ‘괴물’.

‘보스급’이 나타날 때의 감각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감각.

제육감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진동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시꺼먼 지하 도서관은 다시 똑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하지만, 진동을 느꼈다는 결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곧, 픽시들이 일제히 루네에게 날아왔다.

[“루네, 루네!”]

[“무서워! 무서운 여자가 왔어!”]

[“너무 무서워……! 보는 것만으로도 들킬 거 같아!”]

[“그 남자애랑 비슷한데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무서워!!”]

“……!?”

장난기 넘치는 픽시들인데, 반응이 심상치 않다.

픽시들은 ‘사람의 본질’을 알아채는 아이들이니까.

에우드가 ‘황금의 기사’들처럼 내부에 ‘괴물’을 품고 있음에도.

그 소년의 본래 성격을 알기에, 본질적으론 무서워하지 않던 픽시들일 텐데.

지금의 반응은, 진짜 사악한 것을 봤을 때의 것이었다.

루네는 서둘러, 영상 마수정을 기동시켰다.

픽시들의 눈을 빌려, 이변을 찾기 위해 눈을 굴린다.

“저년,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야……?!”

수정 너머에는,

너무나도 성녀와도 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소녀. 아니, 여성이 있었다.

* * *

그리고 그보다도 조금 더 앞선 시간.

확실히 구석진 자리였을까.

이 12번 보도는, 학생들의 이동량이 상당했다만.

막상 구석의 벤치에는 그리 학생들이 오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지나가는 용도의 큰길’.

그런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보다 구석에 멍하니 앉아있으니, 조금 심심했을까.

와이즈도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고.

딱히 읽을 책은 없었으니까. 아주 조금 심심했을까.

‘정말로. 예전엔 심심하다는 게 뭔지도 잘 몰랐는데.’

어제 이전 기억을 오랜만에 떠올려서인지. 조금 감성적으로 생각해버렸다.

곧바로 고개를 붕붕.

‘우드 갈레아 시절’을 떠올리기 보다도,

저택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자유의 과다공급’이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음음. 그게 더 친숙한걸.

곧 에우드는, 자신의 작은 가방에 노트가 있었음을 떠올린다.

7대 던전 개인 조사 노트.

이제 지옥 기간도 끝났으니. 다음 월요일부터 디에스와 함께 다시 살펴갈 조사의 기록이다.

다만, 월요일 아침 수인어 강의에서 시험 결과를 듣고.

바로 그다음 점심시간 전에 만나게 되는 거니까.

……혹여나 수인어 점수가 나쁘면,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걱정도 있긴 하다.

뭐, 미궁 이론도 점수가 제일 좋게 나왔다고 했으니까.

수인어도, 노력한 만큼의 점수가 나오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에우드는 노트를 팔락 넘겼다.

더 자세히 보려는 듯, 안경의 다리를 살짝 매만져 위치를 조정한다.

이전에 새로이 정리한 덕에 반듯해진 종이와 잉크의 냄새를, 무의식적으로 맡는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왔다는 것 또한 바로 알아챈다.

-체르니는 아니었다.

“실례합니다, 학생분. 잠시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그 검은 머리의 여성은, 예고도 없이 에우드에게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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