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에우드는 두통과 함께, 한쪽 안구가 조여오는 감각을 느꼈다.?211회
사서211.
눈 한쪽이 조여온다.
뜨겁다. 그러면서도 차갑다.
이런 감각을 언젠가 비슷하게 느낀 적이 있었으리라.
꿈이라고 해야 할지.
단순한 무의식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 그것보다도 좀 더 다른 이야기.
기억하고 있다.
3년 전에.
그렇게도, 포에닉스 저택 전체가 깜짝 놀랐던 사건인걸.
끼리리릭. 쇠가 기분 나쁘게 겹쳐가는 소리.
녹슨 문을 억지로 비집어야 한다고 해야 할까.
기억을 억지로 비집고, 훑어가는 소리.
귀에 들리는 것은 아니다. 뇌 속에서 직접 울리는 소리였다.
그렇다. 이것은,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가 아닌 우드 갈레아로서의 기억을 훑어내는 감각.
티아나가 에우드의 기억을 봤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저 애가, 모두 죽였어.”)
(“원장님을 죽이고, 우리 동생들을 죽였어.”)
(“흉악해. 흉악해. 너무나도 흉악해! 인간의 행동이 아니야! 어서 처형해버려야 해!”)
(“은혜를 몰라! 어떻게, 라피스 공주님의 은혜 아래에서 저런 괴물이 나타나 버린 거야?!”)
(“““사형! 사형! 사형! 사형! 사형!”””)
그제야 이것이 현실이 아니란 걸 깨달으며, 에우드는 억지로 눈을 뜨려 했다.
그러나 마치 에우드의 옷자락을 잡듯.
안개 같은 비난 속에 갇혀있는 누군가가, 단 한 마디라도 에우드에게 말을 전하려는 듯.
무의식의 목소리는, 한 번 더 에우드에게 목소리를 남긴다.
<“축복이 시작되었어. 아아, 우리의 축복받은 아이. 잘, 컸구나.”>
그 말은, 기억에 남겨지지 않을지언정 에우드의 본능에 새겨졌으리라.
“-허어어억……. 하아아…….”
-가쁜 숨을 내쉬며 눈을 뜨자 여전히 주변은 어두웠다.
한밤중. 회중시계를 확인하자, 눈을 감은지 이제 2시간 정도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시각 새벽 1시.
저녁 8시 정도에 도서관에서 돌아오고.
그로부터 약 3시간 정도를 개인 훈련으로 보냈으니까.
시간 감각 상으론, 적어도 반나절은 잔 것 같았는데.
의외로 깊게 잠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 무의식의 세계에선 정말로 반나절 이상을 있었다던가.
눈을 조여왔던 감각은. 안구 안쪽에서 전해지던 압박은 사라졌다.
에우드는 여전히 뜨겁고 차갑게 느껴지는 눈을 매만진다.
천천히 왼눈의 눈꺼풀에 손을 대, 남아있는 감각 착각인지 실재인지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눈꺼풀에 손끝이 닿자.
마치 작은 불씨가 사그라들 듯. 작은 얼음이 녹아내리듯, 순식간에 그 열기와 냉기는 사라졌다.
뒤이어 손끝에 느껴지는 건, 그저 인간의 평균체온보다 살짝 낮은 온도.
밤의 찬 기운으로 인해, 아주 조금 차게 식혀진 자신의 체온이었다.
압박도. 열기도. 냉기도 전해지지 않는다.
무슨 현상이었을까.
이 짧은 순간. 에우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순식간에 사라진 위화감에.
그러면서도 뇌리에 박혀 있는 과거의 기억에.
에우드는 조용히 지친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 * *
‘잠이 다 깨버렸어…….’
몸은 여전히 졸음에 젖은 듯 노곤했다만.
에우드의 잠기운은, 아까 느낀 것처럼 반나절 정도를 잠들었다고 착각한 건지. 쉽사리 다시 잠들기가 어려웠다.
평소처럼 외투를 입고 조용히 방 밖으로 나온다.
딱히 어딘가를 향하겠다 생각하고 나온 건 아니었다.
지나가면서 잠시 휴게실을 확인해본다.
저번처럼 레몬수를 마시려고 한 건 아니다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가게 됐을까.
그리도 난장판이 되고. 심지어 창문까지 깨졌던 휴게실은, 어느새 깨끗한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창문을 변상하고, 새것으로 교체하는 건 푸른 늑대와 수인 남학생들이 맡았다 했나.
다만 에우드와 트루스의 깨진 컵은 어쩔 수 없어서.
현재는 에우드도, 저택에서 가져온 예비 컵을 꺼내 쓰고 있었다.
이어서 계단을 천천히 내려간다.
분명 목적지는 정해두지 않았지만.
정처 없이 떠돌던 에우드는 자동적으로 기숙사 1층 로비로 도착해버렸다.
일단 로비가 넓으니까, 본능에 따라 거기로 향한 건지.
아니, 그 이전에 계단을 따라 그냥 쭉쭉 내려갔기 때문이겠지.
그 이상으로 어쩌면. 어쩌면.
괜히 불안한 나머지, 에우드 자신도 모르게 어리광부릴 사람을 찾으려던 걸지도 모르고.
그렇다, 정말로.
본능적으로 찾아와버린 걸지도 모른다.
로비 한쪽을 보면서, 에우드는 조금 쓰게 웃어버렸다.
“셋 다 어쩌다 이 시간에 여기 있어?”
“엑, 에우드!?”
“막둥이.”
“어머, 에우드님!”
로비 한쪽 소파.
그곳엔, 마치 소파를 전세 낸 것처럼 편안히 앉아있는 두 누나와 플로라가 있었다.
티아나는 분홍색. 셀레나는 하늘색. 플로라는 연두색.
서로서로 세트로 된 포곤포곤한 실내복 차림이다.
세 벌 모두 아카데미에 올 때, 케인즈에서 아이들에게 챙겨준 잠옷이었으니까. 세트 상품인 건 어쩔 수 없겠지.
덕분에 플로라까지 해서, 셋이 왠지 자매처럼 보였다만.
백금색과 푸른색의 머리만 빼고 보면, 정말로 사랑스러운 세 자매다.
애초에 머리색이 검정인 에우드와도 남매로 지내고 있으니까.
오히려 이 셋이 자매인 게, 에우드보다도 어색한 점이 없을 것이다.
드로와와 프란시느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아나트 또한.
역시 시간이 시간인 만큼, 다들 잠이든 걸까.
“둘 다, 피르티가 오랜만에 돌아와서, 지금도 열심히 대화 중.”
“아나트는 연습하러 갔어. 내일 쉬니까, 몸 좀 달궈두고 오겠대.”
-라고 생각했더니, 다들 잠들기는커녕 열심히 밤을 만끽하는 모양이다. 에우드는 자신도 모르게 쿡쿡 웃어버렸다.
들어보니, 세 명 다 2시간 전까지만 해도 포에닉스 여성진+피르티까지 모두 모여있었다고.
피르티와 아나트는 서로 많이 안 마주쳤으니까. 이번엔 둘이 마주하게 하는 목적도 있었다나.
이후 마음껏 여성 모임을 치른 후 파장하고. 밤이 늦은 만큼 다들 2차 활동으로 전환.
그리고 2차 활동을 휴식으로 결정한 누님들과 플로라는, 잠시 찬 공기를 쐬기 위해 로비로 내려오게 됐다는 이야기다.
……사실 기숙사 밖을 산책하려 했는데. 의외로 추워서 그냥 로비에 있기로 한 거란다.
그거야 뭐, 실내복으로 나가려 한 거니까, 춥긴 춥겠지.
정말로 참. 역시 포에닉스 다울까.
리더가 바빴던 사이에도, 포에닉스는 친목 활동을 잘 해내 가고 있었다.
파벌 친목을 중시했던 칼투스의 충고가, 오늘도 아련하게 머릿속을 맴돈다.
무려 이번 푸른 늑대의 폭주를 막아준 검은 늑대니까.
이참에 두 파벌이 조금은 친밀해졌으면 좋을 텐데.
“그런데, 에우드는 무슨 일이야?”
“에우드, 설마……! 키루미나, 그 애 보러 가려던 거야!? 안, 안 돼! 누나는 허락할 수 없어!”
“아니아니. 잠깐 잠이 깨서 내려온 것뿐이야!”
“아~ 상상 이상의 사건이었다 했죠.”
플로라는 이번 사건을 누나들에게 들은 건지. 포에닉스 삼남매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주변을 잘 보자, 로비 곳곳에도 몇몇 자그만 이야기 그룹이 있었다.
구석진 곳에도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근처에도 있다.
물론 서로에게 안 보이려는 듯 거리는 넓적넓적 떨어져 있었다만.
이쪽처럼 파벌끼리 모여있는 이들도 있다만.
애정행각을 벌이는 학생들도 몇 있었다.
에우드의 밤눈이 밝다 보니 꽤나 잘 보였다.
그래도 에우드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려줬다.
역시 이런 건, 서로 모른 척해주는 게 암묵적인 룰이리라.
그리고 에우드가 소파 쪽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에우드?”
“응?”
“무슨 일, 있었어……?”
셀레나는, 가까이 온 막내의 얼굴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아-”
……매번 느끼는 거다만.
셀레나는 에우드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정말로 잘 알아챈다.
에우드가 몰래 침울해져 있으면, 언제나 그걸 가장 먼저 걱정했다.
다만 에우드는 이유를 설명하긴 좀 힘들었다.
저번 연휴 때 저택에서 말했던 과거가, 잠깐 떠올랐을 뿐이고…….
다른 사람들도 곳곳에 있는데.
‘사형’이라는 단어와 저주로 가득한 기억을 말해주기도 그렇고.
막상 깨어난 지 10분 정도 지난 지금은, 모호함 말곤 남지 않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에우드는 이 가족 이상의 소녀들에게 걱정 끼치기가 싫었을까.
그 시절의 얘기를 꺼냈다간, 누나들은 막내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룰 것이다.
에우드가 그런 생각을 하며 머뭇거리자, 셀레나가 살짝 엉덩이를 들었다.
티아나와 꼭 붙어있던 자리에서 쪼물쪼물 움직여, 공간 하나를 만들어낸다.
“막둥이, 이리 온.”
그리고 자그만 손으로 에우드를 부른다.
에우드가 그곳으로 쫑쫑쫑 다가가자-
“에잇.”
“우아아앗.”
셀레나는 에우드의 옷자락을 휙 잡아, 자신과 티아나의 사이에 앉혔다.
이어서 에우드의 머리를, 자신의 새하얀 허벅지 위에 올린다.
우유 향기 같은 셀레나의 살갗 내음이, 에우드의 코끝에 부드럽게 전해졌다.
“……???”
““!!!!””
어제 새벽, 에우드에게 한껏 무릎베개 받은 걸 돌려주려는 것이기라도 한지.
셀레나는 자신의 무릎을 거리낌 없이 막내 동생에게 제공해줬다.
“언니, 치사해!”
“그래요, 치사해요. 셀레나 치사해요-!”
“둘 다 쉿, 이야. 새벽. 로비. 다들 조용조용 말하는 중.”
““으으읏.””
셀레나가 핑크빛 입술 위에 하얀 손가락을 대며 쉿을 전한다.
티아나도 플로라도 주변의 시선을 살짝 느끼곤, 작은 손으로 서로 입을 꼬옥.
물론 여전히 둘 다 치사하다는 표정이다.
셀레나는 그런 두 소녀에게 “후우-”라는 한숨을 과장하며 내뱉었다.
“좀 이따가 바로 에우드 양보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
“……흥, 그럼 어쩔 수 없지. 언니 다음은 내가 할래.”
“잠깐만요, 잠깐만요. 순서를 마음대로 정하면 안 되죠, 이 폭군 티아나. 가위바위보! 공정거래!”
“플로라, 얘 또 나한테 폭군이랬어!”
“티아나 누나, 플로라. 언제까지 여기 있으려고 순서까지 정하는-”
“에우드는 따지지 마!”
“에우드님, 지금은 조용히 계세요!”
“이 사람들 너무해…….”
매번 이 누님들에게 붙잡히면, 에우드는 선택권과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리고 티아나와 플로라가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이, 셀레나는 에우드의 귓가에다 살짝 속삭여줬다.
“미안. 억지로 물으려 했던 건 아냐.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아마, 정말 걱정되어서 물어본 거겠지.
“……별일 아니야, 셀레나 누나. 정말로- 그니까, 악몽 같은 걸 꾼 것뿐이야.”
“으으음, 그건 그거대로 문젠데…….”
막둥이가 악몽을 꿨다는 말에, 셀레나가 한 번 더 걱정을 보인다.
골똘히 고민하는 것이, 참으로 첫째다웠다.
“……그래도 혹시나 뭔가 말하고 싶을 땐, 언제든지 말해.”
곧, 셀레나는 다시 에우드의 귓가에, 누나다운 목소리를 속삭여줬다.
우아한 웨이브 머리칼이 에우드의 뺨과 귓가를 살금살금 매만진다. 간지러우면서도 참 기분이 좋은 촉감이었다.
“내가 맏이니까. 언제든 누나한테 기대.”
그러곤 장난을 치듯, 셀레나는 “후-”하고 에우드의 귓가를 불어준다.
“깜짝야!”
“후훗.”
순간 들어온 숨결에 깜짝 놀라는 에우드를 보며, 셀레나는 동생이 너무 귀엽다는 듯 배시시 웃어버렸다.
다른 이들은 절대 볼 수 없는.
가족들 앞에서만 보여주는, 포에닉스 검성의 해맑은 웃음.
아마 이 로비가 조금이라도 밝았다면, 주변 학생들은 셀레나의 웃는 얼굴에 남녀불문하고 반해버렸으리라.
“……응, 꼭 말할게.”
“그래그래. 우리 에우드, 착하지, 착하지.”
에우드의 대답에, 셀레나는 에우드의 머리를 쓰담쓰담해줬다.
로로나- 어머니가 해주듯, 마음이 답답했던 에우드를 달래준다.
어제와는 반대가 되어버린 구도에, 에우드는 살짝 힘 빠진 웃음을 지어버렸다.
사형. 저주로 가득한 비난.
그리고 우드 갈레아를 괴물을 보던 눈.
그런 시꺼먼 기억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은, 다행히 조금 비워진 것 같았다.
“-아싸, 이겼다!”
“끼약! 거기서 보자기가!!”
조금 뒤. 3판 2선승제에서 훌륭히 승리한 티아나가, 의기양양 팔을 번쩍 들었다.
로비 하늘로, 보자기를 펼친 귀여운 손바닥이 파닥파닥거린다.
“그럼 언니, 내 차례! 에우드, 이번엔 내 쪽으로 이리 온!”
“네, 네입…….”
그 뒤로 에우드는, 셀레나에 다음으로 티아나에게.
이어서는 또 플로라에게 차례차례 무릎베개를 받아갔다.
누님들의 무릎베개는 참으로 말랑말랑하고 폭신했을까.
그로부터 10분 정도 후.
“……잉? 넷 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
이제 막 연습을 끝마치고 온 건지.
땀을 살짝 흘리던 아나트는, 로비에서 꼬물꼬물 붙어있는 아이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우드에게 무릎베개를 해주고 있던 플로라는-
“고생했어요, 아나트. ……아! 아나트도, 에우드님한테 무릎베개 좀 해보실래요? 에우드님은 오늘도 따끈따끈해요~.”
아나트에게도 그것을 살짝 권해본다.
좋은 것(에우드)을 즐길 땐, 언제나 아나트가 왕따 당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플로라다.
물론 당연했을까. 아나트는 플로라의 말에 화들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누, 누가 그런 걸 한다고!? 야, 에우드 너도! 누나들이 해준다고 넙죽넙죽 받지 말고! 포에닉스가 로비에서 부끄럽게 뭘 하는 거야, 진짜!”
“아야, 아야! 때리지 마요, 아나트 선배! 그리고 목소리 커요!”
플로라의 무릎을 벤 에우드의 이마를 아나트가 찰싹찰싹.
맨들맨들한 도련님의 이마가, 찰진 소리를 내며 속수무책 당했다.
아나트 토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