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마검사 도련님-210화 (208/264)

?210회

사서210.

이곳은 포에닉시안에서 막 출발한 열차의 내부.

삼남매나 다른 포에닉스 파벌 아이들이 항상 타는, 신형 열차의 내부였다.

밖은 어둡다만 차체의 복도는 은은.

그러나 아이들이 평소 탈 때와는 조금 분위기가 달랐으리라.

출발 자체가, 낮이 아닌 밤에 출발한 열차.

이른바 야간열차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현재는 연휴도 아니고.

평소보다 한적하다는 건 어쩔 수 없을까.

그 이상으로 그나마 타고 있는 승객들도, 모두 객실로 들어갔을 테고.

한적보다도, 복도가 텅 비었다고 여기는 게 맞겠지.

‘나라를 가로질러’, ‘승객을 옮긴다.’라는 면에서 보자면, 효율은 참으로 떨어지는 광경이다.

‘과학’이란 기술과 ‘마법’의 기술이 아무리 좋아졌어도. 유그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열차의 운영비용은, 보통 높은 것이 아니다.

수많은 던전의 원정과 기술자들의 노력을 통해 마석등이 상용화되었을지언정. 아직까진 ‘밤에 자유롭게 다닌다’라는 풍조는, 쉽사리 돌지 않기도 하고.

애초에 이 시간에 열차가 운행할 수 있도록 한 것 자체가, 가레스와 소일의 시민 배려였다.

이 열차는 어디까지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늦은 밤부터 출발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열차니까.

티켓값은 낮보다 조금 비쌀지라도. 결국엔 수익과는 먼 현상이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 한편 이런 손해도 감수하는 두 남자이기에, 두 가문이기에.

포에닉시안의 시민들은 더욱 그들을 지지하는 거겠지.

그리고 그런 포에닉시안 열차의 객실 중 하나.

열차의 드넓은 특실을, 홀로 차지하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특실 내부에 있는 마석등은 켜지도 않고.

그저 달빛과 별빛만으로 밝히고 있는- 그냥 단적으로 말해서 시꺼먼 공간.

달빛이 밝은 만큼, 간간이 지나치는 숲과 나무의 그림자는 더 깊어지니까. 어두울 땐 극단적으로 어두워진다.

그리고 그 어둠과 동일화하듯.

특실에 있는 여성의 머리칼은, 그 색이 마치 밤하늘과도 같다 해야 했을까.

윤기 넘치는 머리칼은 빛을 받아가면 번쩍인다.

거울이란 것이 빛을 반사한다 하면. 이 머리칼은 오히려 그 빛을 품어갈까.

달빛도, 별빛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빛무리 모두가, 그녀의 검은 머리칼 위에선 품위 있게 춤을 춘다.

너무나도 고풍스러운 흑발.

우아함을 드러내고,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밤하늘의 여신과도 같은 흑발.

그것은 ‘한 소년’과 마찬가지로, 이 나라 자체에 드문 머리 색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래의 나라에서도 그리 많이 볼 수 있는 머리 색은 아니다만.

그리고 흑발 아래로는, 뚜렷한 이목구비에 자애로운 분위기가 펼쳐진다.

성녀이자 성모, 라고 표현함이 옳겠지.

‘여신의 아름다움’.

그야말로 ‘신’이라는 것이 실존한다면, 그 대리자로서의 사명을 가졌다고 믿을 정도의 외모.

그것은 과장된 표현인 한편, 절대 허황된 표현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게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찬양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진짜 본질을 아는 이들은, 그 모두가 신성함으로 한껏 덮어둔 ‘독 늪’이라고 느낄 테지만.

그 여성.

이제 스물을 막 넘어간.

소녀와 성년의 분위기를 함께 품어, 더더욱 사랑스럽게 보이는 ‘축복받은’ 흑발의 여성.

사프라의 제2 왕녀, 라피스 엘런시아 사프라. 그녀 본인이었다.

원래라면 지금쯤 비공정에 탑승해 있었겠지.

유그라시아 왕도, 팔피아에서의 업무도 끝이 났다.

왕족과 왕도 귀족- 그들과 함께 ‘평화를 빙자하는’ 대화도 전부 나눴고.

하찮은 정치 싸움으로 인해, 유그라시아 최대 전력인 ‘황금의 기사’도 제대로 못 다루게 하는 바보 귀족들도, 느긋하게 만나 봤고.

연휴에서부터 이어진 온갖 활동을 통해, 왕도의 유그라시아 국민들에게도 성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남았던 건, ‘알카라시아에 갈 때까지의 하늘 순회’.

‘뱅퀴시 참관’ 전에 하는, 비공정을 탑승한 채로 여러 도시를 도는 행사일까.

뭐, 굳이 행사라곤 했지만.

실제로는 라피스가 비공정에서 내려 도시까지 내려갈 필요는 없는. 그냥 무늬만 있는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즉- 라피스가 있어도 없어도 그만.

그렇기에, 지금 라피스가 이렇게 열차에 있는 거고.

다만 말만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라고 했을 뿐. 진짜로 없어도 된다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현재 사프라의 비공정은, 왕도 출발과 동시 비상에 걸린 참이었다.

비공정을 왕도에서 출발시키려 하니.

라피스가 ‘알카라시아까진, 저 홀로 열차를 타고 가겠어요~’라고 쪽지를 두고 갔으니까.

당연히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몇몇 그녀의 수호기사들만이, ‘또 저질렀네.’라며 한숨을 조금 내쉬어줄 뿐일까.

뭐, 도시를 지날 때마다 발자취와 메시지를 함께 남겨놨으니까.

수호기사들이 추격조를 보냈다면 무리 없이 쫓아올 수야 있겠지.

그래도, 라피스로선 당분간은 비공정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만.

왜냐면, 지금 이 과정은 라피스에겐 중요한 과정인걸.

왜 일부러, 이번 장기 출장이 시작되기 전에 ‘갈레아 고아원’을 들르고.

볼 거라곤 그저 피와 살점에 없는, 그 ‘드림랜드’까지 굳이 다녀 왔는데.

“후후. 고아원으로. 노예로. 그리고- 포에닉스의 자제로. 현재는…… 아카데미의 학생으로.”

그 모두가, 한 소년의 발자취를 직접 느끼기 위함이었다.

수년 전만 해도 나타날 거라곤 생각도 못 한 축복의 원석.

그것이 연마되고 연마되어, 진짜 축복으로 거듭하는 과정을, 직접 느끼고 싶었으니까.

지금 이 열차도 마찬가지다.

그 소년이 아카데미로 향할 때 탔던 열차.

즉, 거짓된 귀족 자제에서, 학생으로서 신분으로 거듭날 때의 열차다.

일부러 이 열차를 타기 위해, 라피스가 굳이 이 시간에 출발한 것이다.

특실 또한, 소년이 머물렀던 특실.

지금의 라피스에겐, 마치 소년과 함께 열차 여행을 하는 감각이 전해졌을까.

숨을 크게 들이쉬며, 황홀하게 표정을 바꿔 간다.

혹시 모르게 남아있을 소년의 냄새를 찾아간다.

소년이 무심코 흘리고 갔을 ‘축복’을 감지해간다.

오싹오싹해진다.

드디어 떨쳐내야 할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왕도에서, 그 토악질 나오는 성녀의 가면을 계속 쓰고 있었으니까.

홀로 탑승한 이 열차의 특실에서, 드디어 그것을 벗어던지고 마음껏 성욕을 드러내야 할 시간이겠지.

이미 이 특실엔, 소년의 축복이 한 방울. 한 톨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만.

아주 희미하게 남은 그것이라 해도, 이 여성을 흥분으로 몰고 가기엔 충분했다.

라피스는 혀를 날름거리며, 소년이 누웠을 침대에 몸을 맡긴다.

-맡기려 했다.

[“뭐 하냐, 라피스……. 그보다 비공정은 안 타고, 왜 이쪽에 있는 거야.”]

이제 막 눈치챈 ‘여성’의 기척과 동시.

난감하게 들려오는 ‘변조 목소리’에, 라피스는 해피타임의 돌입을 멈췄다.

그리곤 기척을 향해, 불평을 한껏 전했다.

“하, 눈치도 없어라. 넌 정말 애가 참 배려가 없네. 적당히 옆 방에서 입 좀 다물고 있으면 어디가 덧나나?”

“아니, 옆방 사람 있거든? 배려가 없다는 건, 생판 남의 방에 들어가라고 하는 사람한테 해야 할 말이거든?”

모호함으로 가득한, ‘인식저해 매직 아이템’으로 몸을 두른 소녀는,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마스크 아래의 표정은 아마, ‘이 년이 지금 뭐라냐.’라는 뜻이 담겨있었겠지.

“왜? 사람이 있으면 평소처럼 죽이고 들어가지, 그래? ‘머더 메이지’인데.”

“돼지 귀족이나 상인의 소속이면 몰라도. 옆방은 평범한 가정 일가야. 죽일 대상이 아니라고. 그리고, 포에닉스가 다루는 열차고. 만약 이 내부에서 살인이 일어났다간-”

머더 메이지는 라피스의 침대 반대편 소파에 앉아, 이내 칠흑의 바이저 또한 거둬낸다.

“-검신과 불사조 자식이 움직이겠지. 여긴 어디까지나 적진. 몸을 사려야 할 장소라고.”

칠흑의 바이저 밑으로, 구리빛의 건강한 피부가 드러난다.

인식저해로 가려놨던 소녀의 젊음이, 남아있는 검은 옷 아래에서 활기차게 드러난다.

그것은 유그라시아를 뒤흔든 ‘제2의 머더 메이지’임이 분명했지만.

인식저해를 걷고 소파에 앉은 그 모습은, 이국의 아름다운 소녀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으리라.

“알아. 농담으로 해본 말이야. 진지하게 물고 들지 마. 흥, 유머도 여유도 없는 여자애.”

“유머가 없는 건 네 평소 성녀의 모습일 텐데.”

“그보다 검신 알베르토면 몰라도. 그 불사조- 가레스 알라이트 포에닉스가 널 추적하려 움직이려면, 거의 사흘은 절차 밟느라 오래 걸릴걸? 아하하핫.”

그것은 너무나도 현 유그라시아의 상황을 잘 파악한 말이었으리라.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만. 아, 그래. 또 한 녀석이 쫓아올 수 있겠네.”

“또 한 녀석?”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

“……헷.”

라피스는 그 말에, 아까와 같은 성욕 가득한 눈을 반짝였다.

“저기저기. ‘메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정말로 옆방에 있다는 그 일가, 죽이고 오면 안 돼?”

“안 돼.”

“메이, 치사해라~”

“정 부탁할 거면, 파라노이아나 크래프트한테나 부탁해. 케이오스랑 헤드리스가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지만.”

머더 메이지는, 라피스가 참으로 ‘소름 끼치는 괴물’이라 생각했다.

지금 말도, 그저 ‘시민들의 죽음에, 소년이 분노에 찰 모습’을 떠올리자 툭 던진 말일 테니까.

그 감각은 단순 보드게임의 감각이었을까.

사람의 목숨을, 이 여자는 졸병 정도의 말 가치로만 보고 있다.

언제든지 사지에 던지고. 자신이 바라는 국면으로 게임을 이끌, 그런 존재로밖에 보고 있지 않았다.

아마 옆방에 있는 일가가, 사프라가 아닌 유그라시아 사람이기 때문인 건 아니겠지.

사프라의 국민 또한, 그녀는 똑같은 시선으로 볼 게 분명하니까.

심지어- 왕과 같은 왕족들, ‘가족’까지도.

뭐,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머더 메이지로선 딱히 따질 말은 없었다만.

“그래서. 결국 라피스 넌 왜 여기 있냐. 너네 비공정, 아까 너 없어졌다고 난리 났었는데.”

“그러는 넌, 왜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이 라피스 언니를 그렇게 보고 싶었어?”

“언니 같은 소리 마. 네 행동 방향이 좀 이상해진 거 같으니까, 헤드리스가 잠깐 확인 좀 해보라고 보낸 거야.”

“헤드리스가? 그럼 케이오스도 뭐라 했어?”

“……사유만 물어보고, 네 마음대로 하게 놔두라나.”

“역시 케이오스. 내가 원하는 걸 안다니까.”

라피스는 키득키득 웃으며, 침대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방금 끝내 이루지 못했던 시간을 탐닉하듯, 소년이 누웠던 침대를 가는 손가락으로 매만진다.

깨끗하게 다듬은, 성숙한 미와 소녀의 천진난만함이 담긴 손톱이, 사르르사르르 침대의 시트를 그어간다.

너무나도 우아한 모습.

그러나 그 손톱이 실제론, 피부를 완전히 뜯어낼 수 있는 손톱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머더 메이지는 우아함이라는 감상을 전혀 느낄 수 없었으리라.

“발자취야.”

“발자취?”

“에우드- 아니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하사했던 이름, 우드 갈레아의 발자취를 확인하는 거지. 아아, 어디까지 성장했구나. 어디까지 강해졌구나. 그런 식으로 그 아이의 분위기를, 자취를…… 느끼고 싶은 거야.”

일순, 그 강인한 소년이 무방비하게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 같았을까.

이 감각 자체가 라피스의 카리스마라는 건 머더 메이지도 알고 있다만.

알고 있으면서도, 참 기분이 나빴다.

“하아, 앞에 있는 게 네가 아니라 디에스였다면 이해해줄 수 있었을 거야. 아, 어차피 디에스한테는 이런 말을 안 하니까, 변하는 건 없지만.”

“디에스 그 여자, 아카데미에서 교수직을 하지 않았나?”

“맞아. 그래서 이번에 디에스랑 만나는 것도 나름대로 바라고 있어. 우드 갈레아가 드림랜드에서 나간 뒤로는, 개인적으로 만나지 못했는걸.”

“그쪽은 너랑 마주치고 싶어 하진 않을 거다. 나라도 그럴 테고.”

머더 메이지가 비꼬듯 딴지를 전해보지만, 라피스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평소에도 머더 메이지와는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니까.

곧, 라피스는 오른손 검지의 날카로운 손톱을 요염한 입술 위로 올렸다.

“나도 오랜만에 슬슬 직접 보고 싶었어……! 정말, 너랑 크래프트, 파라노이아하고- 그리고 ‘레드 문’. 자기들만 직접 보고. 정말 너무 하다고!”

소년을 상상한 라피스는 홍조를 띤 채, 목소리에 흥분을 가득 담아 말했다.

“어서 보고 싶어…… 그 남자애는 세계 각국 조정자들을 넘어서는 축복- 아니 그 이상으로.”

한순간 창밖의 달빛은 구름에 가려진 걸까.

아니면 이 열차가 숲과 나무의 그림자에 들어간 건지는 알 수 없었다만.

열차에 어둠이 도래한 순간.

성욕으로 가득한 라피스의 눈은, 그 어둠 속에서도 더욱 어둡게 번뜩이고 있었다.

“-나랑 동등한 축복을 가진 아이니까. 동족. 메이 너랑 나와 같은 괴물. 아아, 정말. 벌써 몸이 기대로 달아올라……! 아아, 못 참겠어, 진짜!”

라피스의 왼손은 이미, 하반신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호흡이 가빠진다. 얼굴이 더욱 빨개진다. 습한 소리가 들려온다.

아까 미처 시작하지 못한 해피타임을, 다시 시작해버린 것이다.

역시 머더 메이지라 할지라도, 이건 질색을 감추지 못했을까.

자신이 앞에 있는데, 이렇게도 거리낌 없을 줄은.

혼자 핑크빛 세계에 빠진 여자를 보며, 머더 메이지는 머리를 싸맸다.

“……우리 쪽 여자들은 뭐 멀쩡한 년이 하나도 없냐.”

그런 머더 메이지의 불평을 마지막으로, 열차는 이윽고 포에닉시안을 벗어났다.

* * *

그리고 똑같은 밤.

임시 도서관 사서 일과, 어제까지 있었던 모든 사건의 피로로 완전히 곯아떨어진 에우드의 기숙사 방.

파직.

동조였는지.

아니면 소년 본인과 동등한 축복이……

똑같은 괴물이 다가오기에 느낀, 본능적인 경고였는지.

파지직.

――찌이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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