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회
신비한 날207.
말 그대로 휴식 중인 맹수를 뒤에서 건드렸을 때와 같았을까.
키루미나에게 드러나는 건 경계와 적대.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것’을 뺏으리라 확신한 움직임이었다.
기숙사 휴게실에서 에우드 위에 올라탈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키루미나는 창문 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와악?! 키루미나 얘 뭐야?!”(티아나)
“늑대 언니다…!”(레니안느)
무기는 없지만, 그 신체 부위가 무기와도 같은 수인이다.
만약 잘못하면 정말 사고가 날 상황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이들 중 한 명은- 바로 ‘포에닉스의 검성’.
“좋아, 상대해주지. 걸려온 싸움은 안 피해.”
전투에 동요하지 않는, 명실상부한 아카데미의 천재 중 한 명이다.
셀레나 또한 ‘어느새 깜짝 나타나는 목검’을 들곤, 눈 하나 꿈쩍 않고 그에 대응한다.
“잠깐만요, 잠깐만, 키루미나! 셀레나 누나도 잠깐만-”
부우우웅-!
콰아아아아앙!
셀레나의 목검과 키루미나의 발톱이 충돌했다.
두 충돌로 인한 압력이 에우드의 집무실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한 번의 충돌로 멈추지 않는다.
곧바로 이어지는 제2격과 3격.
맹수의 발톱과 목검의 풍압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듯 거침없이 충돌한다.
티아나는 재빨리 레니안느를 안고, 집무실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
파바바밧-!
콰아아아아앙-!
약 3초간의 충돌이 끝난 순간.
셀레나도, 키루미나도, 맞대응을 끝냄과 동시에 거리를 벌렸다.
셀레나는 단숨에 재충돌을 위한 자세를 잡았다.
키루미나 또한 재빨리 에우드 쪽으로 돌아와, 핑크빛과 달빛이 섞인 눈을 번뜩였다.
“우리 막내는 못 준다, 늑대 새끼가!”
“그르르르르!!”
셀레나의 입이 험해지기 시작했다.
키루미나 또한 정갈하면서도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다.
이래선 안 된다.
누나들이 나타난 지 단 10초인데.
상황이 순식간에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다.
뒤늦게 아래에서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덜컹!
“무슨 일이야- 와아악!? 검성이랑 ‘눈 마주치면 생명의 위협’!?”
“에우드?! ……어? 레니안느?!”
“야, 잠깐?! 누가 생명의 위협이야?!”
“오빠도 있어?”
랜퍼스와 트루스는, 갑작스런 소녀들의 방문에 경악했다.
그리고 상황을 마주한 랜퍼스로선, 너무나도 골치 아픈 사태였을까.
어떻게 저 소녀들이 왔는지는 모르겠다만.
어떤 식으로 적대가 일어난 건지는 모르겠다만.
보아하니, 벌써 장녀 쪽과 한 번의 충돌이 일어나버렸다.
……확실하겠지. 아마 키루미나의 판단력 저하로 인한 사태일 것이다.
키루미나의 짝사랑을 응원하는 랜퍼스다.
저번 연휴 때, 키루미나와 아루&메루가 포에닉스 저택에 머물렀다는 건 알고 있다.
몬스터 습격 사건을 도운 것과.
가레스를 비롯한 포에닉스 일가와 대면해, 감사 인사를 받은 것까지.
그렇기에 키루미나가 포에닉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충돌이 일어나서야 말짱 꽝이다.
키루미나의 연애는 물론, 랜퍼스의 조촐한 야망도 뒤흔들린다.
그 이상으로, 두 소녀는 아카데미에서도 최상위의 전투력 보유자. 진짜로 더 충돌했다간 그냥 안 끝난다.
이미 키루미나와 셀레나는 재격돌에 돌입하려 하고 있다.
“둘, 둘 다 멈춰봐, 좀!”
랜퍼스는 억지로라도 전투에 끼어들어, 서둘러 둘을 말리려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키루미나-!!”
“““힉……!”””
들려온 것은 키루미나를 부르는 목소리.
그러나 한순간. 겨우 그 한 마디에 공기가 비틀렸다.
충돌조차 없었는데.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압력이 들이닥쳤다.
목소리의 주인은 에우드였다.
에우드는 마치 시꺼멓게 물들 것 같은 눈으로, 키루미나를 노려봤다.
“키, 키이이잉……!”
방금까지 눈을 번뜩이던 키루미나는, 그 압박에 에우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셀레나와 티아나, 레니안느도 역시 놀라버렸을까.
막내 동생의 눈이 어둠 속에서 무서울 정도로 번뜩였으니까.
일순 마안을 품었다고 착각할 정도의 안력이었다.
당연했을까.
아무리 상대가 키루미나라고 해도.
에우드가 아카데미에서 처음 알게 된 친구라고 해도다.
에우드는 누구든지 간에, 티아나와 셀레나를 건드리는 것만큼은 용납하지 않는다.
애초에 달려든 게 키루미나가 아니었다면. 에우드는 셀레나와 충돌도 하기도 전에 즉시, ‘머리를 잡아’ 땅에 내려찍었을 것이다.
에우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키루미나의 귀가 순식간에 접혔다.
히끅 놀라 꼬리를 내리곤, 험악해진 에우드를 조심스레 바라봤다.
“키이이잉…… 그, 그게, 에우드…….”
“키루미나.”
“후에에엥…….”
그리고 에우드는 키루미나를 시꺼먼 눈으로 바라보며-
“앉아!”
언젠가 드로와에게 빌렸던 책에서 본대로, 그 명령을 외쳤다.
“-왕!”
“““잉?”””
전투상태였던 키루미나가, 순식간에 본능적으로 무릎을 굽혔다.
방금까지 드러나던 맹수의 기백은 온데간데없이.
주인의 말을 잘 따르는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바닥에 주저앉아, 에우드를 올려다본다.
“““…….”””
“……앗.”(에우드)
험악했던 상황이 어느새 당혹으로 물들었다.
막상 에우드도, 저지르고 나서야 똑같이 당혹스러웠다만.
“……소, 손?”
“멍!”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말한 명령에, 키루미나는 앉은 채로 에우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방금까지 누나들과 레니안느에게 적의를 보이던 게 거짓말인 것 같았을까.
그저 꼬리를 붕붕 흔들며 헥헥. 에우드의 다음 명령만을 기다린다.
셀레나와 키루미나의 충돌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는, 그렇게 얼렁뚱땅 종료를 맞이했다.
* * *
드로와가 빌려준 책은 분명, 강아지를 키우는 소년의 이야기였나.
그리고 키루미나가 누나들을 공격한 것에, 에우드가 화를 내버리기 직전.
순간 에우드의 머릿속에, 그 책에서 개를 훈련 시키는 장면이 떠올랐다.
……결국 에우드가 그걸 차마 필터링을 하지 못한 채, 그냥 말해버렸다는 이야기다.
물론 책에서 나오는 건 어디까지나 그냥 대형견. 까놓고 말해 그냥 개.
그런데 어째서인지 키루미나에게도 효과가 엄청났다.
덕분에 에우드도 그렇게 될 줄은 예상도 못 했을까.
“우리 개과 수인족한테는 ‘명령’이나 ‘약속’을 따르는 본능도 있으니깐.”
랜퍼스 말로는, 발정기로 인해 그 명령이 성립되었다는 모양이다.
키루미나에게 개과로서의 ‘본능’이 드러나고 있던 만큼, 더욱 잘 먹혔다는 거다.
“정말 죄송합니다, 랜퍼스 선배…….”
“아니아니, 싸움을 말렸으니까 된 거지.”
……물론 실제로는-
에우드가 아닌 다른 인물이 ‘앉아’라고 말했다면, 키루미나가 절대 앉았을 리는 없다만.
수인족이 본능에 따라 명령을 듣는 건, ‘정말로 경애하고 존경하는 극소수의 인물’에 한정한다.
‘마음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야 가능한 일이다.
만약 전혀 관련 없는 이가 아까 키루미나에게 명령했다면, 그 즉시 모욕으로 여겨져 급소를 공격당했으리라.
그만큼 지금의 키루미나에게, 에우드가 어떤 존재인지 확실하단 거다.
뭐, 남자를 싫어하는 아가씨가 꼬리를 허락했을 정도인데.
랜퍼스도 이미 알고는 있었다만.
다만 랜퍼스는 그걸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에우드, 손 내려가고 있어.”(티아나)
“귀 옆에 붙여.”(셀레나)
“죄송함다.”(에우드)
에우드군, 누나들한테 혼나고 있으니까.
1층에 내려오자마자 무릎 꿇고 손 번쩍입니다.
보아하니 이 누나들도 정말 동생 사랑이 상당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울드와 비슷하다’ 해야 하나.
그 바보랑 비슷한 팔불출 레이디들이다.
때문에, 괜히 랜퍼스가 그쪽 말을 꺼냈다간, 에우드가 더 혼날 거 같았다.
랜퍼스는 눈치가 빠르고 분위기를 잘 읽는 남자다.
“에우드. 허벅지 너무 움직이지 마, 머리가 흔들려.”(셀레나)
“미, 미안.”
그리고 에우드의 무릎 위론, 티아나와 셀레나가 뾰로통 무릎베개를 받고 있다.
기품있는 소녀들의 백금색 머릿결이, 에우드의 실내복 위에서 사르르 움직였다.
참고로, 랜퍼스는 티아나, 셀레나, 레니안느에게도 신비한 날의 상황설명(라기보다 해명)을 전해뒀다.
그런데……
그런 귀여운 누나들한테 벌 받기와 동시에 더블 무릎베개라니.
랜퍼스는 저렇게 혼나는 거면 충분히 업계포상이라고 판단했다.
트루스 옆에 앉은 레니안느는, 그런 삼남매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와이즈를 안은 채로 엉덩이를 꿈틀꿈틀하는 것이, 자기도 받고 싶은 것 같았다.
다만 에우드의 무릎은 이미 정원 오버다.
“나중에 오빠가, 레니안느 해달라고 에우드한테 따로 부탁해볼까?”
“오빠가 부탁하면 될 것도 안 돼.”
“우리 동생 말 심해~”
언제나 신랄한 레니안느에게, 트루스는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랜퍼스는 조금 뒤, 삼남매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희 일로 에우드군- 막내분을 휩쓸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셀레나 알라이트 포에닉스, 티아나 알라이트 포에닉스.”
후배인 두 소녀에게, 예를 다해 존대와 사과를 전한다.
저번엔 누나들을 소개해달라고 하던 랜퍼스다.
분명 평소라면, 플로라를 대할 때처럼 ‘티아나양’이라던가 ‘셀레나양’이라며, 친근하게 굴었을 테지.
하지만 지금은 사과를 전하고 있기에 가벼움을 내려뒀다.
그러자 두 소녀는 에우드의 무릎베개를 받는 채로,
“흥.”
“됐어. 다 끝난 일.”
퉁명스레 그것을 받는다.
뭐, 티아나와 셀레나가 이런 반응이란 건, 그다지 잘잘못을 따지진 않겠다는 이야기다.
키루미나에 대한 고마움도 있고, 또 사정도 있었으니.
둘 다, 아까 상황으로 크게 적대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분위기를 냄새로 알아챈 랜퍼스는 살짝 안도를 내쉬었다.
“-근데 티아나 누나, 셀레나 누나. 어떻게 나 여기 있는 거 알고 온 거야?”
에우드는 양팔을 쭉 든 채로 그것을 물었다.
무릎베개를 받던 티아나와 셀레나가 고개를 에우드쪽으로 돌렸다. 뾰로통 눈빛이 금빛으로 빛난다.
“기숙사에 경보가 울리고 난리가 났었으니까!”
“남자동에 침입자가 있다고 했어.”
침입자. 어흠.
키루미나를 말하는 거다.
참고로 키루미나는, 충돌 종료 후 20분 정도 에우드가 밀착해서 겨우 재워뒀다. 지금은 2층 집무실에서, 에우드 냄새가 나는 베개를 안고 쿨쿨쿨이다.
어쨌든 두 누나가 경보를 듣고 복도에 나오니, 수인 여자아이들이 단체로 남자동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러다 복도에서 레니안느를 만나, 남자동에 함께 상황을 살피러 갔다고.
셋 다, 에우드를 걱정해서 간 거였다고 한다.
에우드는 몰랐던 사실이다만.
두 누나는 오늘 밤 에우드 방에 들르기 위해, 이미 출입 허가증을 구비하고 있었다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누나들이 방으로 습격해왔었겠지.
“나도 동화책 완성본이 하나 더 생겨서.”
레니안느는 에우드에게 작은 가방을 살짝 보여줬다. 아무래도 저번처럼 신작 동화책이 들어있는 모양이다.
콧김을 퐁퐁 내쉬는 걸 보니, 에우드가 보기를 바라는 거겠지. 이따 읽어두자 싶었다.
다만 투구의 난쟁이 이야기는 아니길 바란다.
말을 다시 돌려,
30분 정도 전에 남자동에 도착했던 세 소녀는-
“방에 가니까, 에우드가 없잖아.......”
“키루미나 이름도 들려오고!”
“침입자는 도망갔다고 하고.”
“엉망진창인 휴게실에 가보니까, 막둥이가 사용하는 컵도 깨져 있고!”
“역시 내 컵 깨졌나…….”
“내 것도 멀쩡하진 않겠네…….”
컵이 깨졌다는 소식에, 에우드와 트루스는 한숨을 푹 쉬어버렸다.
결국 막둥이의 부재에, 세 소녀 모두 막둥이가 또 뭔가에 휩쓸렸다고 확신.
그리고 ‘막둥이가 나갔을 경우 가장 갈 확률이 높은 장소’-
즉, 포에닉스 아지트로 곧장 향해온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왔는데, 에우드 너무해.”
“누나들은 걱정했는데, 키루미나랑 둘이서 놀고 있었어!”
“으아으아아. 노, 논 게 아니라-”
셀레나와 티아나가, 누운 채로 손을 뻗어 에우드의 뺨을 잡아당겼다.
힐링용이었을 에우드의 몰랑몰랑이었는데, 어느새 체벌로 빨갛게 물들어간다.
“으아으, 잠깐, 그럼 왜 창문으로 먼저 온 거야? 진짜로 깜짝 놀랐다고......”
“한 시간도 훨씬 전에 다 문 닫고 갔을 아지트에, 불이 켜져 있는데. 어째선지 딱 집무실 쪽만 커튼이 쳐져 있는걸!”(티아나)
“보안 마법까지 켜져 있고. 와이즈가 감시 중이고. 수상하게 여기는 게 당연해.”(셀레나)
……역시 포에닉스 핏줄다운 감일까. 정확한 판단이다.
에우드는 퐁퐁 콧김을 내쉬는 누나들에게 조용히 감탄을 해버렸다.
“그런데 트루스까지 와 있었을 줄은…….”
“……불청객.”
티아나와 셀레나가, 에우드의 무릎 위로 턱을 꼬옥 대며 트루스를 바라봤다.
“아하하하, 둘 다 정말. 나도 이번엔 휩쓸린 거라고?”
““흥.””
“아냐. 진짜야! 이번 건 휩쓸렸어!”
“저희 오빠가 죄송합니다아아.”
“그만하렴, 레니안느. 오빠를 그렇게 부끄럽게 여기는 듯한 발언은 부디 그만하렴.”
솔직히 트루스는 정말로 휩쓸린 게 맞으니까.
이번만큼은 트루스도 억울할 것이다.
그래도 트루스는 뭘 하면 할수록, 정치적 의도로 밖에는 안 보이니까…….
평소 행실이 이래서 중요한 건가.
그래도 그런 와중 다행인 소식이 하나 있었다.
“아까 기숙사에서 나올 때 보니까, 상황은 다 끝난 거 같았어.”
티아나 말에 따르면, 남자동 5층에서 폭주했던 개과 수인들은 모두 제압이 완료됐다 한다.
무려 푸른 늑대 & 검은 사자 여학생 연합이 해결했다나.
수인 여학생들은, 발정기 위기상황에 한정해 남자동에 넘어갈 수 있게 조치가 되어있었다고.
랜퍼스는 그 말에 안도를 보였다.
다만 그들 말고도 또 한 명-
“학생회장.”(셀레나)
“하워드 선배가 돌아다니면서 싹 다 잡았대.”(티아나)
“““엑.”””(남성 일동)
하워드 알잭 할란드의 활약도 컸다고 한다.
현재 자리에 있는 남학생 전원, 학생회장의 이름이 출현한 것에 히끅 놀라버렸다.
……듣자 하니. 하워드는 학생회 일을 겨우 마치고, 늦게 돌아와 기숙사 방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나.
그러다 굉음과 함께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해버렸고.
끝내 방에서 나와, 저기압인 채로 싹 다 제압해버린 것이다.
제압된 남학생들은, 경비기사단들이 차곡차곡 방으로 돌려보냈다 한다.
“사, 사람 몇 죽인 얼굴이었어.”
“무서웠어……!”
셀레나와 티아나의 증언에서, 하워드의 저기압이 얼마나 심했는지 대충 예상이 갔다.
“잘못하다간 몇 명 또 독방에 끌려가겠네…….”
“하워드형, 예전부터 저기압 터지면 진짜 무서워지는데…….”
랜퍼스와 트루스는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할란드는 메트리 세력 중 하나니까. 트루스는 하워드의 저기압을 본 적 있던 건지 몸을 살짝 떨었다.
적어도 다음에 끌려가는 게 자신들이 아니길 바라야 하리라.
뭐 결국, 덕분에 추격 걱정 X.
키루미나 수면도 OK니까.
일단락은 됐다고 생각하면 되겠다만.
그러나- 역시 티아나, 셀레나, 레니안느도 아까 키루미나와 접촉해버린 이상. 오늘 기숙사에 못 돌아가게 됐다.
랜퍼스 말로는, 세 사람에게도 페로몬이 상당히 묻었다 한다.
그렇게 남은 밤을 포에닉스 아지트에서 보낼 인원은, 끝내 일곱으로 늘어났다.
“에우드네 아지트에서 자고 가기……!”
다행히 레니안느는 오히려 마음에 든 건지.
포에닉스 저택에 머물 때처럼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구우우우-”
다만 와이즈는 이 이상의 수라장은 피하려던 걸까.
슬쩍 날개를 펼치더니, 잠깐 열어둔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그렇다.
도망간 거다.
망할 자식, 주인(※물주) 두고 도망갔다!
에우드가 그런 와이즈에게, 마음속 불평을 하는 것도 잠시.
“자, 그럼. 에우드는 오늘 밤 못 자.”
“낮부터 키루미나네 애들한테 포션 줄 때부터 알아봤어! 키루미나한테 했던 거, 오늘 밤 동안 우리한테도 똑같이 해!”
“동틀 때까지 쓰담쓰담 받을 거야.”
“동틀 때까지?!”
““잔소리도 들을 거야.””
“네이입…….”
순식간에 에우드의 무릎에서 일어난 누나들이, 에우드를 붙잡아 질질 끌고 갔다.
그때, 두 누나의 말을 듣던 랜퍼스는, 뭔가 떠오른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키루미나 아가씨, 결국 에우드군 포션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마셔버렸었네.”
랜퍼스는 푸른 늑대 아지트에서 나가기 직전, 방에 굴러다니던 빈 포션병을 기억해냈다.
“키루미나가 제 포션 마셔줬나요?”
“아마도. 병이 비어있었던 거 보면 마신 거 같아. 진정제를 마셨으니까, 되도록 마시지 말라곤 했는데. 결국엔 못 참았나 봐~”
누나들에게 질질 끌려가며 묻는 에우드에게, 랜퍼스는 쓴웃음 지으며 답해줬다.
병문안 대신 준 조촐한 선물인데. 그래도 마셔줬다는 것이 에우드로선 기뻤을까.
나중에 키루미나가 정신을 차리면, 좀 더 좋은 걸 주자 싶었다.
“으으응?”
다만 그 순간 티아나의 얼굴 위로 묘한 표정이 드러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급히 자신의 연금술 노트를 머릿속으로 펼쳤다.’라고 말할 상황일까.
“……잠깐, 언니 스톱. 막둥이 스톱.”
““???””
막둥이 스톱이라고 해도, 에우드는 둘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습니다만.
티아나의 갑작스러운 말에,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갸웃.
티아나는 막둥이와 랜퍼스에게 난색 가득히 물었다.
“막둥이, 오늘 키루미나한테 줬던 포션에 재료 뭐뭐 넣었어? 랜퍼스 선배 당신도. 그 진정제에 뭐뭐 들어가 있어?”
“재, 재료?”
“엥?”
티아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3년 전 무덤 동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