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늑대 아지트의 창문이 ‘안쪽에서’ 깨진 건, 그로부터 1분 뒤의 일이었다.?203회
신비한 날203.
랜퍼스는 지금 정말로 경악했을 것이다.
아가씨의 신비한 날로 인해 한적해진 기숙사.
사울드는 또 방어선을 친다고 바깥에 나가 있기도 했고.
아루&메루와 여자애들은 어제 고생했으니, 푹 쉬라고 돌려보낸 상황.
그러다 결국 솔직히 심심해져서.
아루&메루에게 빌린 소설책을 하나 독파하고 있었는데.
방금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미친.......! 설마?!”
습격인가.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남학생들이 있었던 걸까.
증세가 심한 애들은, 학생회가 미리 보호 혹은 연행하기로 했을 텐데.
그보다 지금 밖에 사울드가 있지 않은가.
그 사울드- 랜퍼스가 생각해도 ‘괴물 범주’인 게 분명한 남자를 지나치고, 직접 창문으로 쳐들어올 수 있다?
보통 놈이 아닐 게 분명.
-라고 생각할 틈은 없다.
랜퍼스는 서둘러 책상 옆에 둔 너클을 쥐고 문을 열어 재낀다.
“-어떤 새끼냐, 당장 그 X알부터 터트려주마!”
일족의 요인이자 가족인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 랜퍼스는 매섭게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막상 방에 들어가자 보이는 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
유리창이 깨진 방향은, 안쪽이 아니라 바깥.
내부에서 깨졌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걸 ‘누가’ 깨트렸는지는 이미 확실했다.
“아, 아가씨......?! 키루미나 아가씨.......?!”
“........”
키루미나밖에 없다.
수인족치고는 상당히 가녀린 주먹엔, 유리조각이 조금씩 묻어있었을까.
다만 동시에 ‘수인족 중에서도 매우 강인한 주먹’이기에. 박혀 있는 유리 조각은 존재치 않았다.
마력 경화가 시작된 키루미나의 주먹은, 강철보다도 더욱 단단하다.
랜퍼스는 일순 거기에 안도를 내쉬었다.
......그런데 어째서?
왜 창문을 깬 거지?
자아 성찰? 분노 표출?
가장 유력한 건, 랜퍼스가 모르는 사이 사울드가 뭔가 또 저지른 걸지도.
“뭐야?! 무슨 일이냐, 랜퍼스?!”
아니다. 적어도 사울드는 아직 바깥에 있다.
깜짝 놀란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사울드는 매번 자기도 모르는 사이 키루미나를 화나게 만든다만. 지금에 한해선 그런 이야기는 아니리라.
왜냐면, 지금 키루미나의 눈은 화났다기보단......
“그르르르르♡♡♡”
“으읍?! 페로몬이.......!”
황홀함과 색기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아루&메루와 함께, 키루미나를 친동생처럼 여기는 랜퍼스다.
그런 랜퍼스가 순간 침을 삼킬 정도다.
키루미나의 페로몬 냄새는 고혹적이었다.
어느새 색기와 뒤섞여 너무나도 달콤한 향기로 변했다.
나이는 어리면서도 탄탄하게 자라난 야성미 넘치는 신체.
그러면서도 매끈하면서 여성의 매력을 품은 소녀의 신체.
넘어트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위험하다.
랜퍼스가 이렇게까지 느낄 정도면, 이건 진짜 위험하다.
콰아아앙!
그때, 밖에서 사울드가 뛰어 올라왔다.
계단을 쓰지 않고, 도약으로 한 번에 창틀에 도착했다.
“키루미나! 랜퍼스! 이건 대체- 흡?!”
아무래도 사울드 또한 페로몬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그리고 사울드까지 오자 키루미나는-
“아오오오오올-!!”
““!!!!””
엄청난 기세로 하울링을 울렸다.
본능적으로 하울링에 동조해버릴 뻔할 정도였다.
늑대의 기질을 이어받은 푸른 늑대 일족이라 한다만.
하울링에 동조하는 본능은 상당히 억제되어 있다.
그런 본능조차도 열어버릴 정도의 하울링이란 거다.
그만큼, 리더의 기질을 가진 소리라는 거겠지.
만약 근처의 다른 개과 수인들이 들었다면. 즉시 야간 소음 공해 시작이다.
경비 기사단까지 늑대 무리가 출현했다고 착각할 사태의 개막이다.
“키, 키루미나......?! 무슨 일이니?! 오, 오빠가 또 뭔가 잘못했다면 말해주지 않-”
무려 사울드가 이렇게 먼저 말할 정도라니.
그만큼 상황이 심각한 게 팍 느껴진 걸까.
그러나 키루미나는 거기에 답하지 않는다.
답하지 않고 그저-
-콰아아아아앙!
“어?”
“응?”
“그르르.”
퍼어어어어억!!
“흐그읍?!”
사울드의 복부에 자신의 주먹을 꽂아버렸다.
“갸아악?! 사울드?!?!”
“그르르르르르!!”
심지어 투기까지 실렸다.
푸른 늑대의 결전병기 중 한 명인 사울드다.
그 악시우스와 맞먹을 정도로, 푸른 늑대의 천재라 불리는 남자다.
그런데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주먹이 꽂혀서인지.
아니면 동생이기 때문인지, 제대로 된 방어도 못 했다.
결국 마력 경화조차 꿰뚫을 정도로 유효타를 새긴 공격에-
콰가가가강! 쾅!
사울드의 몸이, 방 저 끝으로 날아가 버렸다.
“어버버버.”
경악. 랜퍼스 경악.
대체 어디서부터 뭘 손 봐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수라장과 혼돈이 몇 번을 교차하는 것인가.
그리고 곧바로 키루미나는, 투기를 두른 채로 방긋 웃었다.
“에헤헤헤헤헤♡♡♡”
황홀하고, 색기 넘치고, 그리고 너무나도 귀여운 웃음.
발정기로 취해버린 모습이었다.
“취했어?! 키루미나 아가씨가....... 취해버렸어?! 어째서?!”
그와 동시, 키루미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황홀한 웃음을 띤 소녀는, 순식간에 저 멀리 날아갔다.
“잠깐잠까느오오!? 사울드, 얼른 깨어나, 이 자식아!”
“그러러럭.......”
“상황 최악이 됐다고! 당장 키루미나 아가씨를 잡아야 해!!”
“꾸어어......”
방의 바닥 위로, 오늘 에우드가 줬던 포션병이 데굴데굴 구른다.
* * *
오늘도 학생회관 지하 도서관에 박혀 있는 루네.
밖은 낮부터 지옥 기간 종료로 반쯤 축제 분위기다만.
루네에겐 달라진 일은 딱히 없다.
교수라곤 해도 가명을 쓴 명예교수.
딱히 담당하는 강의도, 시험도 없는 만큼, 하는 일 없는 건 비슷했을까.
물론, 완전히 달라진 게 없는 건 아니다만.
“아하핫, 보고용 정기 통신을 시작하더니. 행동이 팍 달라졌어, 이 깍쟁이 왕족.”
회중시계끼리 통신을 연결해주고부터.
체르니가 이 도서관에 오는 시간이 많이 달라졌다. 줄어들기도 했을까.
체르니의 ‘왕족 신분을 내려놓고 배운다’라는 의지는 결코 거짓이 아니라서.
평소 밤 11시가 될 때까지는, 보통 여기서 공부나 독서를 하곤 했는데.
이제 10시마다 보고를 하기로 정하고부터는, 9시엔 칼같이 방에 돌아간다.
아예 그 전에 돌아갈 때도 많고.
마치, 생일 파티가 기대돼서 1시간이나 먼저 움직이는 아이 같았을까.
물론 질릴 대로 질린 사교계에선, 그런 식으로 했다간 바로 아웃이다.
1시간이나 먼저 움직여도 OK인 건, 소일 같은 진성 상인이라던가.
아니면 어지간한 험담도 안 통하는데 영향력까지 강한 괴짜 귀족들 정도다.
예를 들어 자신들 알페일 가문이라던가.
......사실 알페일의 경우. OK라기보다는 ‘건드려도 좋은 결과는 없다’라며 반쯤 포기하는 거다만.
어쨌든 이건 나쁜 일이 아니다.
공부도 공부지만.......
역시 그 왕족 소녀에겐 다소 친구가 필요했으니까.
요 1년간 말벗이 자신이랑 쿠루루, 오베론, 티타니아.
그리고 베르네이와 픽시들 정도라니.
요 1년간의 모든 말벗이 ‘인외적 존재’. 혹은 ‘연령 오버’들이지 않은가.
한창 청춘일 소녀에겐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아마 델베르크는 이것까지 고려하여, 에우드에게 의뢰를 한 거겠지.
기특하게 견문을 넓히러 간 막내가, 커뮤니케이션 고갈 상태로 돌아온다니.
현왕이기 이전에, 장남으로서 버티기 힘들었을 거다.
눈물이 먼저 앞을 가릴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호위에 필요한 건 ‘실력’과 ‘신뢰’.
마지막으로 ‘왕족 신분의 배려 따윈 전혀 없는 누님 전문 대화 상대’.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귀족 소년은 얼마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 절친 가레스의 보증도 있는 프로.
하필 막내 소녀는 오빠의 깊은 뜻을 못 알아챈 덕에.
여기까지 오는 데에도 꽤 오래 걸렸다만.
뭐, 이젠 꽤 재밌게 연락을 취하고 있다.
지금도 픽시들의 보고에 따르면, 체르니가 에헤헤 목소리로 통신을 시작했다나.
이런 식으로 자주 대화를 나누다, 체르니가 에우드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면-
그때부터 제대로 호위 임무를 실행하면 되리라.
‘그 싸이코 여자가 오기 전엔 웬만큼 풀 수 있겠지.’
순조로운 진행에, 루네도 마음의 짐을 살짝 덜었다.
그런 편한 마음으로, 바닥 위에서 베개를 베고 데굴데굴하고 있더니. 픽시 하나의 보고가 들려왔다.
[“-루네, 루네.”]
“으응?”
[“웬 수인 여자애가 엄청난 기세로 움직이고 있어.”]
“잉?”
[“그리고 조금 떨어진 데에서, 수인 남자애가 헉헉거리면서 쫓고 있어.”]
뭔 소린가 이건.
루네는 어리둥절하면서 누운 채로 손짓을 살짝 했다.
멀리 구석에 박혀 있던 영상마수정 하나가, 순식간에 루네에게 날아온다.
곧바로 영상마수정을 기동시키자.......
“아, 이 여자애는. 푸른 늑대의 이번 세대 신동이라 했던 키루미나 아즐볼프.”
거기엔 얼굴을 알고 있는 수인 소녀가 있었다.
“......어라? 얘 이번에 발정기이지 않았나? 벌써 나와도 되나, 진짜?”
방향을 봐선 ‘기숙사’.
그것도 U자형 건물 중 오른쪽인 남자동의 방향이었다.
그런데 진짜 빠른 속도다.
마치 몸이 흥분한 것 같은 움직임.
......관계를 앞둔 남성이나 여성의 흥분 상태와 비슷했을까.
그쯤 되자 루네도 알아챈다.
저건 보통 상태가 아니다.
어제 난장판을 벌인 수인들처럼, 발정기에 취해버린 게 분명하다.
여성 수인이 이 정도로 취하다니.
얼마나 강한 자극을 받았다는 건가.
아니 어쩌면- 뭔가의 약효가 적용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와아아.......”
이걸 어떻게 할까.
이 아카데미 전체를 볼 수 있으며.
동시에 파밀리어도 보낼 수 있는 루네다.
아마 오베론과 티타니아. 그리고 쿠루루까지 보낸다면 통제는 할 수 있으리라.
“.......”
인간은, 언제나 ‘할 수 있다’와 ‘한다’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임의와 강제.
언어를 가진 인류에게 닥친 숙명.
그니까 말장난이라 해야겠지.
“놔두는 게 더 재밌을 거 같은데?”
[“““그렇지?”””]
주변 책장에서 대기 중이던 픽시들까지 함께 고개를 끄덕끄덕.
이곳에 밖에 있을 수 없는 루네 또한, 재미에 굶주린 네추럴 아카데미 태생이다.
솔직히 말해서,
엔터테인먼트는 언제나 환영이다.
남동생 베르네이의 고생이라던가.
학생회장 하워드의 골머리라던가.
그런 건 일단 뒤로 미루도록 하자.
지금 준비할 건 뽀샥뽀샥 먹을 과자와 음료다.
팝콘을 가져와라.
* * *
이제 막 보고 연락(잡담)을 끝내고. 에우드는 기숙사의 복도로 나왔다.
기숙사 복도는 저택과 마찬가지로 은은한 분위기.
로비는 아직 불을 밝게 켜 놨다만.
생활 구간인 이쪽은, 피곤한 학생들을 배려해 불을 어둡게 해뒀다.
에우드도 몸이 피곤했으니까, 이건 나름 괜찮은 배려였을까.
오랜만에 기숙사용 외투를 입고, 따땃하게 복도를 걷는다.
말을 좀 많이 한 덕인지. 방에 둔 물을 전부 마셔버렸다.
에우드라면 물 마법을 써서 채울 수는 있다만.
일단 기숙사 내부는 마법 엄금.
무엇보다도 각 층 휴게실에 가면, 레몬수가 나오는 포트가 있으니까.
약간 상큼한 게 땡긴 덕에, 직접 나가자 싶었다.
그리고 휴게실에 도착하고서야, 에우드는 “아, 괜히 나왔다.”라며 이마를 짚어버렸다.
“응? 아하하. 뭐야, 그 차림. 왜 이렇게 귀여운 외투야?”
“불만있냐...... 얼마나 편한데, 이게.”
“아니. 나쁜 뜻은 없었어.”
트루스가 먼저 휴게실 한쪽에 앉아있었다.
마침 트루스도 비슷한 목적이었는지.
컵에 담긴 마실 것을 가볍게 호로록.
다른 학생들은 마침 없었다.
마침 없던 건지. 트루스 때문에 없던 건진 모르겠다만.
넓적넓적하지만 텅 빈 휴게실의 위로, 호로록 소리만이 의외로 크게 울린다.
이놈도 만만치 않게 기숙사에 안 붙어있으니까.
당연히 놀러 나갔을 거라 여긴 게 실책.
실제로 지금 파벌 소속들은 꽤 많이 밖에서 놀고 있으니까......
그보다 기숙사 휴게실에서 이렇게 만나는 건 거의 없었는데.
앞으로 5년간 아카데미 생활이니까. 안 만날 리가 절대 없긴 했다만.
“앉을래? 레몬수 한 잔 대접해줄 테니깐.”
“기숙사 공공재에 대접이고 뭐고 어디 있냐.”
“너무해라. 그리고, 이거 그냥 레몬수가 아니거든? 아직 많이 안 알려진 대단한 물건이거든?”
에우드의 퉁명스러움에, 트루스가 키득키득거리면서 뭔가를 가리켰다.
트루스의 컵 옆에 놓여있는 다기였다.
휴게실 비품인 줄 알았더니. 트루스의 개인 물건이었다.
“레니안느를 저번에 맡아주기도 했잖아. 지옥 기간에 바로 들어가서, 감사 인사도 아직 제대로 못 했고.”
“뭘, 벌써 얼마나 지났는데. 저번에 데우트님이 저택에 와서, 아버지한테 정식으로 인사를 하셨고.”
“내가 너한테는 안 했잖아.”
“......마음대로 해라.”
에우드도 그냥 포기하고 트루스 쪽으로 향했다.
결코 다기 안에서 달달한 냄새를 느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근데 이거, 설탕?”
“비슷하지. 과일 말린 거랑. 몇 가지 비밀 레시피로 만든 분말. 물이나 레몬수에 타 마시는 거야.”
메트리 가문의 요리사들이 개발해준 물건이라 한다.
현 메트리우스에선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트루스는 에우드가 가져온 잔에다가 레몬수와 그것을 몇 번 휘적거렸다.
“짜잔.”
“와......!”
그러자 어느새 복숭아색의 음료가 완성되었다.
“맛있지?”
곧 에우드가 속는 셈 치고 마셔보니.......
맛있는 걸 정말 인정해야 했다. 대단하다, 메트리 가문 요리사분들.
에우드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트루스는 좋은 어필이었다는 듯 웃었다.
“전에 레니안느를 챙겨줘서 정말 고마워. 다들 너무 친절했다고 말해주더라.”
“......사용인들도, 또 어머니도 레니안느를 마음껏 귀여워 해줬으니까.”
“어찌나 재미있었나 본지. 레니안느는 이번 지옥 기간에도 쉴 땐 포에닉스 얘기만 했다니깐.”
그 정도로 좋아하면, 에우드도 역시 코가 간지러웠을까.
“맞다. 그리고 약혼 얘기도 들었어.”
“커흡.”
에우드는 마시던 레몬수를 뿜어버릴 뻔했다.
“난 언제든지 환영이야? 너 정도의 영향력과 실력이잖아? 우리 사용인들도 그걸 들으니까, 다들 ‘그분이라면 아가씨를 맡길 수 있지!’라는 반응이었다?”
“언제 그 정도로 이야기가 풀린 거야.......”
메트리의 사용인 규모도 포에닉스와 비슷하다.
대충 포에닉스 저택 인원 ×2 정도의 인원이 알고 있는 거다.
뭐야 그거.
이미 소문 다 퍼진 것이지 않은가.
“......난 누구랑 약혼할 만큼의 인물도 아닌걸. 그럴 상황도 아니고.”
“에이. 에우드도 참, 겸손도.”
“겸손 아니다만.”
에우드로서도 결코 겉치레라던가. 예의를 갖춘 거절은 아니었다.
애초에- 5년 뒤에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모르는 만큼.
약혼 같은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혹시 모를 후계 이야기’도 진행 안 되는 것이지 않은가.
에우드의 창고에 모이고 있는 자산 또한 그렇고.
에우드의 의도를 이해했는지. 아니면 그냥 능글거리는 것인지.
트루스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손으로 턱을 괬다.
“으음. 하지만 나로서는.”
레몬수를 섞던 스푼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트루스는 가벼운 투로 말했다.
“만약 나한테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레니안느를 맡길 만한 사람이, 바로 너라고 생각했으니까.”
“뭐?”
순간 들려온 말에, 에우드는 물음표를 띄워버렸다.
그건 마치.......
‘자신에게 일이 생길 것’을 예상하는 말 같지 않은가.
트루스는 곧바로 아무 말 안 한 척 시선을 돌렸다.
순식간에 시침 뚝이다.
“잠깐, 너 그건 무슨 소리야?”
“농담이야. 메트리 가문 식 조크. 지나가는 소리지.”
“농담이라기엔 수상한데.......”
에우드가 다시 묻는 것에, 트루스는 실수했다는 듯 말을 얼버무리려 했다.
다만 그때,
“수상하기는 무슨. 이건 그냥 장난치는 느낌으로 말한-”
트루스의 입에서 말이 끊겼다.
“......어? 야, 트루스?”
“저기, 에우드? 에우드군?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
“뭐냐, 뭡니까. 트루스 심 메트리. 갑작스런 그 명칭 다양성.”
뭔 일이길래 트루스 얘가 이렇게까지 굳었을까.
에우드는 어리둥절하면서 트루스를 봤다.
그리고-
에우드는 자신의 코끝에,
레몬수 말고도 또 하나의 냄새가 출현했음을 깨닫는다.
달콤한 냄새.
이건 그냥 달콤함이 아니다.
이 달콤함은, 아마 ‘성적인 달콤함’에 가깝다.
그건 원래라면 인간은 맡을 수 없는 냄새다만.
‘후각이 비정상적’인 에우드이기에, 조금 눈치챌 수 있었을까.
쿵.
그리고 에우드는 트루스와 똑같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우드, 트루스)
“에우드.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층이, 몇 층이었지?”
“......5층, 이지?”
높다. 높은 게 맞다.
그리고 보통 5층이 아니라, 각 층의 천장 높이도 빠방한 호화건물이니까. 웬만한 건물의 5층 높이를 훨씬 넘어간다.
그런데요.
그런 높이인데요.
웬 소녀의 실루엣이 창문에 매달려 있어요.
““으어어어어어억!?!?””(에우드, 트루스)
포에닉스와 메트리의 도련님들이 동시에 괴성 비명이라니.
아니, 지금 문제 삼아야 할 건 그딴 사소한 게 아니다.
“으어에어?! ......응?! 설마, 키루미나예요?!”
창문에 있던 건, 무려 키루미나의 실루엣이었다.
“에우드에우드에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