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밤, 그 노트로 인해 사건이 도래한다는 걸.?189회
그림자와 도둑189.
새벽이 되어가는 시간.
에우드는 아지트 뒤편의 연습용 공터에 나와 있었다.
사실 딱히 연습용 공터는 아니다만.
아지트를 싹 정리하면서, 가장 괜찮은 공터다 싶어 다 같이 정한 공간이었다.
덕분에 딱히 경계 같은 것도 설치해놓지도 않아서. 낮에 아이들이 없을 때는 야생 고양이들이 낮잠 장소로 쓰곤 한다.
때로는 고양이 집회 장소로도 이용된다.
밤에 창문 너머로 고양이들이 모인 것을 볼 때면, 참으로 장관이었을까.
보안 마법이 걸려 있는 포에닉스 저택은,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동물이 못 들어오게 되어있으니까. 삼남매에겐 꽤 생소한 장면이었다.
물론 지금은 에우드가 마법 연습을 하는 덕에, 다들 요리조리 도망갔다만.
아마 또 와이즈가 주변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와이즈는 이미 이 근처의 동물 서열 1위로 거듭나 있다.
포에닉스 저택 근처의 숲에서도 생태계 1위를 먹더니, 여기서까지......
에우드는 위험도 A 몬스터가 대체 뭘 하나 싶었지만.
평화로우니 됐나.
“후아아.......”
그리고 에우드는, 리퀴드 팽을 몇 차례 빙글빙글 돌리면서 마력을 거뒀다.
주변은 이곳저곳 땅이 드러나 있었다.
이전에 사용한 ‘어스 업’을 비롯하여 간단한 땅 마법들의 흔적이었다.
이 연습은 우선, ‘뾰족뾰족 마력’으로 인한 ‘물 속성 이외 마법의 딜레이’를 줄이기 위함이 크다.
제시카의 조언에 따르면, 현재는 쉬우면서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좋다고. 해봤자 땅이 작게 솟아오르는 거라, 소음이 적기도 했고.
지옥 기간이라 강의 때 말곤 못 보는 제시카다만.
서로 못 보기 전에 미리 많은 수업을 진행해서 다행이었다.
저번에도 강의가 끝날 때, 에우드에게 몰래 마법 조언을 적은 쪽지를 주고 가기도 했다.
만약 답장이 가능한 쪽지였다면, 과제가 좀 심하지 않냐고 불평할 뻔했다.
그렇게, 오늘 연습량은 무사히 소화했다.
사실 더 할 수야 있지만.
그래도 너무 과도하게 했다간 내일 강의에 지장이 생긴다.
일상생활을 하려면, 항상 일정 퍼센트 이상의 마력은 남겨놓는 게 좋았다.
에우드는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한 후, 솟아오른 바닥 위에서 꽁꽁 땅 고르기를 해갔다.
“정말, 지옥 기간에도 이렇게 하시니까 지치는 거죠, 에우드님.”
도중부터 연습을 지켜보던 플로라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나무란다기보다도, 참 기특한 동생을 보는 눈빛이다.
평소엔 플로라는 머리를 양 갈래로 묶는다만. 이제 곧 잘 준비를 하기 위해서인지, 머리를 풀어 내리고 있었다.
덕분에 발랄함보다도 누나 같은 분위기가 더 드러났을까.
“티아나 누나의 포션 사탕 덕에 버티고 있다니까요.”
“혹시나 또 다른 사람들한테 포션 사탕 주려다가 일이 안 터져야 할 텐데요.”
“아하하하......”
사울드 때의 일을 떠올리며, 둘 다 큭큭 웃어버렸다.
현재 티아나는 공방에 박혀 있고, 셀레나는 드로와에게 트라이벨어 특강.
그리고 프란시느와 아나트는 방금 막 이불에 들어갔다고 한다.
에우드도 슬슬 졸리던 참이라, 씻고 잘 준비를 하자 싶었다.
“플로라도 공부하고 있었나요?”
“30분 전까지요. 그리고 자기 전에, 잠깐 그 물건을 살피려고 했죠.”
그 물건- 플로라와 똑 닮은 인형의 이야기다.
그러자 에우드는 “맞다!”라고 말하며, 플로라에게 쫄래쫄래 다가갔다.
“응? 에우드니아웁-”(쪼물쪼물)
“혹시나 모르니.......”
가짜 플로라 구별법을 한 번 할 때가 되었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플로라의 뺨을 쪼물쪼물 만져본다.
“아이참! 아까부터 계속 같이 있었는데, 눈앞의 플로라가 가짜일 리가 없잖아요!”(쪼물쪼물)
“그, 그래도.......”
확실히.
꼭꼭 만져보니, 아침과 마찬가지로 보들보들한 플로라의 뺨이다.
영양액과 여러 보습 크림의 냄새가 달달하게 전해졌다.
케인즈 상회의 차기 회장인 만큼, 플로라의 피부 관리는 항상 확실했다.
플로라 말로는, “지금은 제 얼굴이 곧 케인즈 상회의 신상품 시연회예요.”라나.
“아니 뭐, 저, 저야 좋긴 하지만요.......♡”
여전히 걱정 가득한 에우드의 표정에, 플로라는 부끄러워하면서 도련님의 섬세한 손길을 받아갔다.
에우드는 준비해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물었다.
“룬 교수라는 분은, 역시 아직 정보가 없었나요?”
“네. 지옥 기간 때문에 차질도 있고요.”
정보를 찾으러 다니고 싶어도, 이 시기엔 교수와 과도히 접촉하기도 힘들다. 플로라로선, 고위 교수를 한 명 잡은 후-
“-케인즈 상회의 신작 다과와 상품들을 건네고, 가볍게 티타임을 가지면 웬만한 정보가 나오는데요......”
“케인즈의 협상 스타일이군요.”
“뭔가 말이 조금 강해졌잖아요, 에우드님. 산뜻한 어감을 위해, 케인즈의 다과회 스타일이랍니다.”
그게 그거 같다만.
고위 귀족과 사업가들의 다과회는, 결코 그냥 다과회가 아니니.......
차와 과자에 별별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며, 상대를 고상하게 압박해가는 무대이지 않은가.
에우드로선 되도록 겪고 싶지 않은 자리다.
어쨌든 플로라가 만약 그런 자리를 마련한다면-
현 유그라시아의 인기를 선도하는 케인즈 신상품 러쉬가 이어지겠지.
그것들 앞에선, 역시 교수들도 버티기 힘들 터.
뭐, 지금은 시험도 껴 있기에 잘못하면 교수들에게 의도의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학생들 모두, 각 교수 연구실 출입이 한동안 제한되기도 했고.
때문에, 플로라도 시기가 안 좋다고 한 것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그보다 에우드님도 어서 샤워하고 주무셔야죠. 자, 지팡이랑 수건은 저한테 주세요. 정리해둘 테니까 바로 씻으러 가세요?”
“아, 고마워요, 플로라.”
“맞다, 제가 씻는 거 도와드릴 수도 있는데요♡”
“장난으로라도 말하진 마세요, 그런 거!”
“지금 건 농담이었지만, 부탁하면 언제나 가능하답니다~”
에우드는 부끄러워지는 걸 감추듯, 플로라에게 지팡이와 수건을 호다닥 건넸다.
머리를 푼 플로라는 평소보다 더 누나 같아서, 에우드도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잘못하다간 휘둘리는걸.
뭐, 언제는 안 휘둘린 적이 있었냐 만은.
그렇게 에우드가 아지트 뒷문을 향하려던 중이었다.
어째선지, 방금까지 키득키득 웃던 플로라의 발걸음이 멈춰있었다.
“......후아으응.”
“......플로라?”
“흐에에......♡”
“플로라?”
“하흣?!”
순간 함께 오지 않고 뒤에서 멈춰선 플로라를, 에우드가 살짝 불렀다.
어두운 공터 위에서, 플로라가 깜짝 놀란 듯 숙였던 고개를 올린다.
어째서인지 에우드의 수건과 지팡이를, 품에 꼭 끌어안고 있다.
“무슨 일이예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에우드님!”
“......설마 플로라, 정말 가짜라던가-”
“-아까 직접 만져서 확인했잖아요, 정말!”
“그랬죠, 참.”
플로라는 자신의 뺨 탄력을 강조하듯, 직접 뺨을 꼭꼭 만져 올렸다.
그리고 에우드가 쓴웃음 지으며 다시 걸어 나가자-
“후우우웅...... 하아아아......”
두 누님이 바쁜 나머지, 에우드를 잘 지켜보지 못하는 지금이 빈틈이다.
플로라는 다시 한번 몰래 에우드의 수건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 냄새를 맡고 짓는 표정은, 푸른 늑대의 소녀랑 조금 비슷했을까.
케인즈의 후계자는 사소한 기회도 절대 놓치지 않는다.
* * *
플로라와 함께 아지트 뒷문으로 들어가자, 1층의 마석등은 모두 꺼져 있었다.
이불도 2층에 펴뒀고, 티아나 공방도 2층.
셀레나의 트라이벨어 특강도 2층에서 진행되는 걸까.
빛이라곤 바깥의 달빛 정도인 아지트 1층의 모습에, 에우드는 살짝 신선함을 느꼈다.
......아니아니, 신선함도 신선함인데.
왠지 기묘하게 싸한 느낌이다.
플로라도 그걸 느꼈는지, 아주 약간 몸을 히끅 떨었다.
“......불 켤게요, 플로라?”
“네, 너무 어둡...... 어라?”
에우드의 말에 붕붕 끄덕이던 플로라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플로라?”
“아뇨, 에우드님. 정말. 정말정말 막 별문제는 없는 말인데요.”
“네, 넵.”
뭔가 플로라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입으로는 별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약간 난처한 분위기일까.
플로라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가 아까 나올 때, 1층 마석등들의 출력을 살짝 낮춰놓고 나왔거든요.......”
“.......네?”
“그....... 어두우니까 걷는 데 안 넘어지게, 잔잔하게만 불을 켜놓으려고.”
확실히. 에우드가 나올 때는 1층이 꽤 밝았으니까.
거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으니, 플로라는 심야에 맞게 출력을 줄인 것이다.
그런데...... 플로라 말로는 그렇다는데 지금 거실은......
그 뭐냐,
시꺼멓다. 정말로.
달빛, 그게 끝이다.
물론 에우드는 대충 보인다만. 지금은 단순히 보이고 안 보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에이~”(에우드)
“에이~”(플로라)
에이, 뭘 이런 거 가지고.
너무 비약하는 거다.
분명 누나들이나 멤버들 중 누군가가 껐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들 이래 봬도 귀족의 영애다. 그것도 상당한 권력과 재산을 가진 영애.
일반 가정집이 아닌, 저택 생활을 하는 진성 아가씨들이다.
그렇다면, 분명 밤에 살짝 마석등을 켜놓는 건 버릇이 들었을 텐데.
그렇다면, 누구든지 굳이 그런 마석등까지 끄진 않을 텐데.
.......대체 왜 오늘따라 이렇게 싸아아한 느낌일까.
어두운 곳에 익숙한 에우드임에도, 조금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켤, 켤게요!”
“네, 넵, 에우드님!”
에우드는 가장 가까운 마석등으로 가, 마력을 기동시키는 소형 스위치를 눌렀다.
마석등을 넣은 벽걸이 램프 아래에서, 딸깍하고 소리가 들려온다.
켜지지 않는다.
“하하.”
“아하하.”
그래. 결론을 내리자.
마석등이 아까 막 고장 난 거다. 가끔 있지, 불량이란 것은.
역시 공산품은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까.
이런 건 으레, 구매한 상점에다가 불량품을 가져다주면 웬만해선 교환해준-
-생각해보니 이거 티아나의 수제작 마석등이다.
티아나가 연금술로 만들어낸 마석등은, 그 연금술 천재 ‘카밀라 에메스 라그나릴’도 인정한 물건.
한 번 사용하면, 최소 3개월은 버티는 대단한 완성도다.
게다가 아지트 리뉴얼은, 분명 이제 막 한 달이 지난 후고.
즉, 이 마석등들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야기다.
혹시나 해서 다른 등들의 스위치도 눌러본다만.
안 켜진다.
““......””
에우드와 플로라 사이에 묘한 긴장이 돌았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에우드의 손을 잡았다.
“흡- 아, 플로라 손이었군요. 깜짝이야.”
옆에 플로라가 있으니까. 역시 플로라도 무서워서 에우드의 손을 잡은 걸까.
다만 플로라의 표정은 좋지 않다.
“저, 저기 에우드님.......?”
“넵, 플로라.”
에우드는 살짝 안도하며 플로라에게 답했다.
“제...... 제 손이 아닌데요......?”
“.......”
플로라가, 자신의 자그만 손을 에우드에게 보여줬다.
그랬다. 에우드도 플로라의 손을 보니, 확실히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손’이 조금 작은 사이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건 누구죠.”
“아앗. 아아앗. 제발제발제발. 에우드님, 제발-”
에우드와 플로라는 동시에 자신들의 사이로 시선을 내렸다.
[“그, 거 어. 디. 있어?”]
그곳에는, 에우드의 손을 꼭 잡은 자그만 아이가 있었다.
인형같이 정말 자그만 아이가.
“아아아아아아아악!?!?”
“끼야아아아아아악!?!?”
아이? 아이가 맞나?
그보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니?
손끝부터 시작된 에우드의 오감에, 인간과는 조금 다른 생기가 전해져온다.
저번 ‘가짜 플로라’ 때처럼 완전히 차갑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에우드를 잡은 손은 의외로 따뜻했다.
.......근데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은 아니다!
인간과는 동떨어진 분위기를, 에우드는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악!!”(에우드)
“갸아아아아아악!!”(플로라)
“뭐, 뭐야?! 에우드?! 플로라?! 왜 그래?! 누나가 왔어, 울지 마?!”
“막둥이 무슨 일이야?! 티아나, 목검!”
“으와아아아?! 두 분 괜찮으세요?!”
그 사이, 에우드와 플로라의 비명을 들은 티아나, 셀레나, 드로와까지 2층에서 내려왔다.
정말로 거의 들어본 적 없는 막내 동생의 비명이다.
티아나와 셀레나는 이미 물 흐르듯 서로 목검을 나눠 들고, 비명의 원인을 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깐, 왜 이렇게 어두워?! 에우드, 우리 막내 어디야?! 내 마석등 아직 나가려면 멀었는데?!”
티아나가 스위치를 눌러보지만, 여전히 불은 들어오지 않는다.
“으으. 안 보여- 어......?”
그때, 셀레나가 뭔가 본 것처럼, 새하얘진 안색으로 말했다.
“티아나, 드로와, 잠, 잠, 잠, 잠깐만 비켜 봐......?”
“언니?”
“셀레나님?”
셀레나는 티아나의 옆으로 나와, 직접 가져온 마석등의 출력을 최대로 키워 거실을 비췄다.
그리고-
“““아.”””
거실에 마석등의 불이 밝게 퍼진 순간.
포에닉스는 ‘천장에 있는 그것’을 눈에 새겼다.
아니, 그것이 아니다.
‘그것들’.
뭐라고 해야 할까-
[“어딨. 어?”]
[“어딨어?”] [“어딨어?”]
[“어딨어?”] [“어딨어?”] [“어딨어?”] [“어딨어?”]
시뻘건 눈을 번뜩이는 그림자들의 군세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다섯 명 전원, 비명을 내질렀다.
[“-어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