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마검사 도련님-188화 (186/264)

욱신거리는 어깨를 매만지며 침울해지는 에우드를, 프란시느가 소심하게 달래본다.?188회

지옥 기간188.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난 드디어 네가 그 애한테 접촉하나 했다~.”

학생회관의 관계자만 들어올 수 있는 지하 통제구역.

거대한 나무가 지하 5층에서부터 자라나 있는 그 도서관에서, 루네는 이제 막 온 소녀를 키득키득 놀렸다.

키루미나가 도망가기 이전. 제일 먼저 에우드에게 도망친 소녀는, 자신의 뿔테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접촉은 무슨......! 하필 거기서 그렇게 뻔하게 부딪칠 줄은 저도 몰랐다고요.......”

“부딪히고 나서 한동안은 아예 그 애인 줄도 모르고 있었지?”

“......얼굴 제대로 보기 전엔, 그냥 착한 앤 줄 알았죠.”

그 안경은 특수한 매직 아이템.

‘착용자’의 외모 인식을 40~50% 정도 저해시키고, 분위기나 기백 또한 줄여주는 루네의 수제 인식저해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안경을 벗은 소녀는 바로 체르니 윈릴.

본명, ‘체리니아 오기스트 유그라시아’.

현왕 델베르크의 막내 동생이자, 이곳에 들어오는 걸 허락받은 몇 안 되는 학생이다.

체르니가 안경을 벗자, 가려졌던 기품이 확실하게 더 드러났을까.

자신의 오빠와 마찬가지로, 왕족 태생의 기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때문에, 이러한 태생적인 분위기를 막기 위해.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이 왕족인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체르니는 아카데미에선 항상 인식저해 안경을 착용하고 다녔다.

체르니는 이대로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무사히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게 목표였다.

애초에 ‘혹시 모를 위협’을 막기 위해 정체를 감추는 거기도 했다만.

뭐, 사실 10대 귀족급의 몇몇 학생들-

악시우스와 하워드 회장, 그리고 마안 보유자인 메트리 남매는 대충 알아채고 있다.

그레도 그들과는 서로 ‘암묵적인 불가침’이 약속된 상황.

하워드는 체르니의 정체가 안 들키도록 도와주기도 했고.

그렇기에 그건 그리 문제 될 일은 아니다.

문제라면, 그 포에닉스 삼남매의 막내겠지.

“그러게 복도를 왜 뛰고 그래. 뭐, 에우드 걘 네 얼굴 모를 테니까. 별문제는 없겠지만.”

“.......”

체르니는 인식저해 안경을, 매끈한 천으로 닦으며 볼을 부풀렸다.

솔직히 자초한 건 체르니니, 본인도 할 말이 없다는 거겠지.

원래 도서관의 좋은 구석 자리는 빨리 안 가면 놓치니 말이다.

오늘 수업도 다 끝난 만큼, 재빨리 달려가서 미리 자리를 차지하려 했는데.......

결국 에우드와 부딪치고서, 도서관 자리를 잡기는커녕 이곳까지 도망쳐버렸고.

뭣 하나 제대로 풀린 게 없었다.

“그러니까 델베르크 그 바보 제자가, 너한테 직접 먼저 접촉하라고 말한 거잖아.”

체르니가 ‘에우드에게 먼저 직접 접촉한다.’

그게 바로, 에우드가 가레스에게 받아온 의뢰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였다.

정확히 말하면, 에우드가 받은 건 ‘델베르크의 막내 동생을 살펴봐 달라.’라는 의뢰.

원래라면 저번 연휴가 끝난 후. 체르니 쪽에서 에우드에게 접촉하여, 그것에 대해 논의를 이뤄야 했다.

특히 아카데미에 ‘라피스 공주’가 올 예정인 만큼, 되도록 빨리 만나는 것이 좋으리라.

하지만 지금 보다시피, 일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엄청 큰 사정이 있는 건 아니다.

딱히 지옥 기간 때문도 아니었고.

그저-

“오라버니의 걱정은 고맙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 저보다 어린 남자애한테 보호받을 생각은 없어요!”

체르니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것뿐.

그것은 왕족의 귀감이라 할 태도이기도 했을까.

본래 자신보다 어리다면 ‘자신이 지켜줘야 할’ 입장인데.

그런 입장에 차마 연하의 소년에게 부탁하기 껄끄러운 것이다.

또 체르니 본인도 무력에 자신이 있기에 더더욱 말이다.

체르니는 2살 차이 나는 어린 소년에게 보호받을 만큼, 자신이 나약하다곤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상대는 그냥 열세 살짜리가 아니다만.

“꼬맹이들끼리 차이가 나 봐야 얼마나 난다고~”

“그래도.......! 이건 오라버니의 과보호예요!”

같은 꼬맹이인 주제에 참 잘 따진다고, 루네는 체르니를 보며 어리다는 듯 웃었다.

정작 꼬맹이라고 말하는 루네는, 에우드나 체르니보다도 훨씬 어린 외관이다.

이어서 루네는 도서관 바닥에 누운 채, 붕붕 떠다니는 다과 상자를 뒤적였다.

마석등에 빛나는 ‘분홍 머리’는, 더욱 나이를 알 수 없게 발랄한 빛을 띠어간다.

올 때마다 절찬리 방구석 생활을 하는 루네에게, 체르니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 됐어요, 여기서 시험공부나 하다 갈래요...... 등, 등 하나 좀 이쪽으로 좀 주셨으면 해요, 루네......”

“예이예이. 참 이 나라 왕족들은 까칠하다니깐.”

“아, 쫌!”

체르니의 투덜거림에, 루네는 슬쩍 손가락을 휘저었다.

그러자 책이 산더미처럼 쌓인 자리 한쪽. 불 켜진 마석 램프 하나가 휘이잉하고 체르니에게 날아간다.

체르니는 그 램프를 받아, 그나마 정리가 되어있는 자리로 가 풀썩 앉았다.

그리곤 책과 노트를 꺼내기 위해, 가방을 뒤적뒤적.

......

뒤적뒤적.

“.......어라?”

“응? 왜 그래?”

“어라? 어라어라??”

그러나 가방에 뭔가 없는지.

엄청난 속도로 가방을 뒤적이다가, 마지막엔 아예 바닥에 내용물을 전부 다 쏟아버렸다.

그 모습이 마치 아까 에우드와 부딪혔을 때 같았을까.

그리고-

“없, 없어.......!”

“없다니, 뭐가?”

“제 노트가! 이번 시험 요점을 정리해놓은 제 노트가 없어요!?”

체르니는 끝내, 찾으려 했던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다.

* * *

“수인어 리포트 겨우 끝났네요, 에우드님.......!”

“온몸에 힘이 빠져요.......”

도서관에서 두 명이나 도망가버린 일은 훌훌 털고.(프란시느가 한동안 위로해줬다.)

오늘 강의를 끝내고 온 에우드는, 장장 4시간의 추가작업 끝에 디에스의 과제를 마쳤다.

이제 다가오는 주에 제출하기만 하면 끝.

차곡차곡 정리하여 끈으로 묶은 두꺼운 리포트들을, 플로라와 함께 감개무량하게 바라본다.

이번 지옥 기간의 1차 통곡의 벽을 겨우 끝낸 것이다.

물론 2, 3차(신학을 비롯한 시험의 파상공격)는 아직 남아있다.

그래도, 오늘 드디어 하나를 넘어섰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카틀레야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자, 벌써 늦은 밤이었다. 창밖도 어두운 하늘 위 달빛과 별빛으로 반짝반짝.

원래라면 이제 슬슬 기숙사에 돌아가야겠다만-

“누나들, 아예 여기서 자려고?”

“흐으아아아.”

“움직이기 시러.......”

“따끈따끈하네요.....”

마찬가지로 리포트와 여러 과제를 끝낸 누님들은, 소파에 벌렁 누워 쉬고 있었다.

둘 사이엔 드로와까지 껴 있다.

셋이서 아주, 검은 사자 파벌이 선물해준 이불을 꽁꽁 덮고 있다.

누님들의 백금색 머릿결과 드로와의 정갈하게 묶은 머리가, 부드러운 이불과 함께 꼼지락꼼지락한다.

“기숙사 가려면 또 30분 걸어야하잖아.......”

기숙사까지 30분이라곤 하지만.

사실 무투파 멤버들은, 마력을 담아 전력질주하면 빠르게 도착할 수야 있다.

그런데 그것도 막상 하면 꽤 지치니 말이다.

“움직이기 시이이-러!”

“와악.”

“꺅!”

에우드가 소파로 다가오자, 티아나가 재빨리 잡아 에우드를 품에 끌어안는다. 셀레나도 눈을 반짝이며 함께 부둥부둥.

그리곤 소파와 이불 위에서 막내를 포곤포곤 끌어안는다.

분위기에 휩쓸려, 드로와 또한 에우드를 꼭 안는다.

에우드까지 낀 만큼, 소파는 이미 만원이었을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 같이 에우드의 뺨을 몰랑몰랑 만지작만지작.

막내의 몸에서 몰랑함과 따끈함을 느끼며, 정신적 피로를 쪽쪽 회복해간다.

“뭐예요, 그거. 재밌어 보이네요......! 지나가는 에우드님을 잡아채는 식충식물인가요.”

“그렇게 따지면 아마 누나들하고 드로와는 식인식물이겠지만요.”(뺨 몰랑몰랑)

물론 누나들의 식인식물인 만큼, 에우드라면 마지 못 해 하면서 성실히 잡혀주겠지. 그리고는 누나들에게 쭙쭙 당하리라.

뭐, 필요한 물건들은 다 여기에 가져왔고.

오늘은 누나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게 나을까.

“.......이불 펼까?”

“아으아아-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저도 같이 할게요, 아나트 선배.”

“후훙.”

이부자리를 준비하기 위해 2층에 가려는 아나트를, 에우드가 살짝 불러세웠다.

아나트는 며칠 전부터 검은 사자의 침구류가 마음에 쏙 든 덕인지. 벌써부터 살짝 들뜬 게 보였다. 귀여운 콧김도 퐁퐁 나온다.

결국, 오늘은 모두 아지트에서 남은 공부를 하며 자고 가기로 했다.

“에우드님, 그럼 이부자리를 다 펴면 이제 신학 공부도 마저 하도록 하죠. 오늘 강의 내용까지 범위에 들어간다니까요.”

“가차 없네요, 프란시느......”

“제가 도와드리는 이상, 신학은 확실히 A 학점 이상을 받게 해드릴 거예요!”

“전 사실 B 정도도 만족하는데.......”

“안 돼, 안 돼. 포에닉스 막내라면, A 이상은 확실하게 받아야 해!”

“막둥이, 열심히 하기.”

“첫 시험이기도 하고. 성적은 확보하기 쉬울 때 미리 확보하는 게 좋아요.....!”

에우드를 붙잡은 식충식물 소녀들이(특징 : 셋 다 인텔리), 쪼물쪼물 쓰담쓰담하면서 성적을 강요한다.

어쨌든 일단 정리는 조금씩 하자 싶어, 에우드는 누나들과 드로와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아쉽다는 듯 더 끌어안으려는 누나들을 겨우 뿌리친다.

그리고 에우드가 자신의 가방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응?”

“왜 그래?”

2층 계단 앞에 있던 아나트는, 에우드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에우드는 가방에서 어떤 물건을 꺼냈다.

꺼낸 것은 노트. 다만 에우드가 사용하는 노트는 아니었다.

“제 물건이 아닌 노트가 가방에 있었어요......”

에우드가 쓰는 노트와 똑같은 케인즈 상회 물품이었다만.

그래도 지금 에우드의 노트들과는 표지가 달랐다.

상당히 손을 타기도 한 거 같고.

“으음? 에우드, 물건 섞일 일이 있었어?”(티아나)

“도서관에서 노트 챙기다가 옆자리 사람 걸 가져왔다던가.”(셀레나)

“오늘은 나 라다루스네랑 있었으니까, 그럴 일은- ......아.”

“““????”””

생각을 하다보니, 에우드는 어쩌다가 이게 들어왔지 대충 예상이 됐다.

오늘 낮에 ‘그 주황빛 머리 소녀’와 부딪혔을 때, 물건을 바닥에 쏟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주울 때도, 키루미나가 도와주다 보니 에우드가 가방에 직접 안 넣은 물건들도 많았고.

“있었네.......”

.......아무래도 그 과정에서, 주황빛 머리 소녀의 물건이 섞인 모양이다.

막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것에, 누나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뭐, 도망친 두 명의 소녀를 떠올리자, 에우드는 또다시 조금 침울해졌다만.......

고개를 붕붕 젓고는 다시 힘을 낸다.

힘내는 포에닉스 막둥이. 장하다.

그래도 에우드의 물건 중엔 뭔가 사라진 건 없었다.

그건 한편 다행이라 생각하며, 에우드는 혹시나싶은 마음으로 노트를 촤르륵 넘겼다.

다만 내용은 에우드가 안 배우는 학문이었는지. 쭉 읽어도 감은 오지 않았다.

그러자 아나트가 어느새 쫑쫑 다가와, 노트를 함께 보며 말했다.

“아, 이거 2학년 노트네.”

“우와, 바로 아시네요, 아나트 선배?”

“나 작년에 선택 과목으로 배운 내용이거든. 아마 재수강이 아닌 이상, 이 노트 주인도 2학년일걸? .......흠흠, 잘 정리했네. 이건 공부 열심히 하는 애의 노트야.”

역시 전투 이외에 공부도 열심히 하는 소녀, 아나트 토르랑.

잘 정리된 노트에 뭔가를 자극받은 모양이다. 기특하다, 기특해.

아나트의 설명대로라면, 주황 머리 소녀는 졸업반으로 보이진 않았으니 2학년이 맞을까.

“......어, 잠깐.”

그러다 에우드는 뒤늦게 뭔가 깨달은 듯, 허겁지겁 아나트에게 되물었다.

“재수강도 있나요?!”

“물론. 졸업반에 들어간 학생들이, 과거를 리셋하려 할 때 일어나는 불의와 비극이지.”

과거=성적이라 한다.

“아아. 맞아요, 저희 상회에도 졸업 전에 몇몇 과목을 고학점으로 올리고 온 지원자들이 여럿 있다고 들었었죠.”

아카데미 출신 일반인 학생들에게, 현재 세력을 엄청나게 확장한 케인즈 상회는 상당히 유망한 일자리.(역시 경제 및 상인 학문의 전공자들이 지원을 많이 한다고)

덕분에 플로라는 상회 일을 하면서, 그런 유형의 졸업생 입사 지원자들을 자주 봤다고 한다.

비단 아카데미만은 아니고, 다른 교육기관 출신들도 비슷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 학점으로 운영되는 교육기관의 공통이라나.

재수강할 과목이 많아졌다간, 후에 지옥 기간 횟수가 몇 차례 늘어날 거라고 한다.

당연한 게, 졸업과제로 고생해야 할 때 다시 지옥 기간을 겪어야 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

그걸 아나트에게 듣자, 포에닉스 파벌 모두가 히이이익 식겁.

포에닉스 파벌의 입학 성적 평균은 매우 높은 편이다만.

그래도 지금 이걸 다시 겪으라는 건 정말 지옥의 재래가 맞다.

에우드도 프란시느의 신학 서포트를 군말 없이 받아들이자 싶었다.

“......그럼 이 노트, 결국 어떻게 돌려줘야 할까요?”

이 정도로 잘 정리된 노트인데. 분명 그 주황빛 머리 소녀도 많이 곤란해하고 있겠지.

어쩌면 오늘 공부하려고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으음....... 기숙사에 맡긴다던가?”

“그것도 방법이겠네요.”

플로라의 말에, 에우드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러자 티아나가 고개를 붕붕 저었다.

“기숙사에 괜히 가져다줘도, 이렇게 늦어서야 주인도 못 찾을걸?”

“그런가......”

“응응. 막둥이는, 오늘 밤 누나들이랑 여기에 꼭꼭 있어.”

“내일 처리해도 늦진 않을 거예요.”

티아나와 셀레나는 막내 동생이 괜히 기숙사까지 다녀오지 않도록, 쐐기를 박듯 고개를 끄덕끄덕.

여전히 두 누나와 이불을 꼭 덮은 드로와도, 같이 끄덕끄덕해버린다.

“내일 도서관 담당 학생회한테 가져다주면, 그쪽에서 주인을 찾아줄 거라고 봐요.”

프란시느도 너무 서두르지 말라면서, 에우드와의 신학 공부 준비를 마저 했다.

“내일 잊지 말고 빨리 갔다 와야겠네요.”

에우드는 아침 일찍 제2 도서관에 들르자고, 가방에 노트를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그럼 이제 이불 편다?! 이불 깐다?!”

“네, 아나트 선배. 올라가죠.”

아나트는 이제 못 참겠다는 듯, 이부자리 준비를 위해 2층에 올라가려 했다.

에우드도 가방을 의자에 다소곳이 놓은 후, 아나트를 돕기 위해 2층에 올라갔다.

* * *

그리고 포에닉스 파벌 중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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