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보다 못한 랜퍼스가 사울드의 목덜미를 붙잡았다.?185회
지옥 기간185.
랜퍼스는 사울드를 데리고 나가는 거로, 상황을 끝내려 했다.
역시 사울드의 오른팔인 만큼 랜퍼스의 힘도 상당했던 덕인지.
사울드의 몸이 마치 목덜미를 물린 강아지처럼 쭈욱 당겨졌다.
여전히 사울드는 붕붕붕 전투 의지를 불태운다만.
“아, 이제 됐으니까! 사울드, 애초에 수인족의 습성은 타 종족한테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거잖아!”
“그르르르르! 에우드, 어디 한 번 나를 이겨 봐라!!”
“그보다 너 이거 또 키루미나 아가씨가 들으면 난리 날 게 당연하다니깐?!”
“-엑.”
랜퍼스의 말을 들은 사울드는, 그제야 히끅 울음소리를 멈췄다.
사울드도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분명 이 상황에 대해 좋은 소릴 못 들을 거라 직감한 거겠지.
랜퍼스로선 이 이상 일을 늘리고 싶지 않았을까.
포에닉스 파벌과는, 키루미나와 아루&메루를 통해 순조로이 친해지고 있는데.
이런 어이없는 상황으로 적대 관계가 생기는 건, 랜퍼스로선 정말로 피하고 싶은 일이다.
가뜩이나 휴게실에서 또 소란이 커진 덕인지. 학생회 멤버 샐리가 도서실에서 나와서, 덜덜 떨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고.
이러다 자칫, 이 소란이 학생회실로 보고되면 여기에 하워드까지 떠버릴 확률이 높다.
아니, 보고됐다간 100% 뜨겠지.
하필 이 자리에 엮여 있는 게 다 초대형 파벌이고. 무조건 하워드가 올 게 분명하다.
현재 하워드는 지옥 기간과 업무가 엄청나게 겹쳐있다.
이번 신학기를 통틀어, 가장 스트레스가 가득할 상황이다.
지금 잘못 걸렸다간 단숨에 학생회관 지하 독방에 갇혀버릴 게 분명.
안된다.
그랬다간 지옥 기간이고 뭐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랜퍼스뿐만 아니라, 에우드를 비롯한 모두가 위기일발임을 직감한다.
랜퍼스는, 서둘러 사울드의 목덜미를 질질 끌어 휴게실 밖으로 향했다. 다른 팔 한쪽엔 방금 챙겨온 자료 도서들을 낑낑 챙겼다.
“미안해, 에우드군, 플로라양......! 사울드는 내가 데려갈 테니까! 아, 과제하고 시험, 열심히 하고!”
“그르르! 에우드, 네놈의 도전! 기다리마! 철저하게 부숴주마!”
“도, 도전해야하는 건가요......”
“아, 왜 에우드님이 당신한테 도전해야 하냐니까?!”
“키루미나는 줄 수 없다, 아오오오오올!
랜퍼스에게 끌려가는 마지막까지도, 휴게실은 혼돈의 난장판이다.
그렇게 플로라의 불만과 사울드의 하울링이 복도에 메아리치고 나서야, 사태는 끝을 향할 수 있었다.
“.......어휴. 사울드 저놈도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참 질기다니까.”
“나한테 저런 오빠 있었으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었어...... 키루미나 그 애한테도 조금 동정이 생기네.”
겨우 조용해진 휴게실에서, 칼투스와 테르미가 투덜투덜.
그러다가 살짝 흔들리는 어색한 무테안경을 딸깍하고 바로잡는다.
검은 사자 남학생 둘도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역시 푸른 늑대 새끼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질겨, 질겨.”
“......어라?”
근데 분명 예전에 사울드는 검은 사자(특히 칼투스)보고 질기다고 했는데.
어째, 푸른 늑대와 검은 사자는 서로에게 내리는 평가가 똑같았다.
(“도련님, 수인족들은 정말 질기답니다.”)
.......그렇다면 공통점이겠지. 서로 인정은 안 할 테지만.
3년 전 제시카 선생님의 선구안-
아니, 제시카 교수님의 선구안에 에우드는 오늘도 감탄하고 갑니다.
그러던 중, 검은 사자 여학생들이 에우드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에우드, 목 괜찮아요?”
“그 늑대 자식 때문에 상처라도 난 거 아닌가, 몰라.......”
“아, 넵. 다친 데는 없어요.”
“““다행이다~”””
검은 사자 여학생들의 걱정에, 에우드는 꾸벅꾸벅 괜찮다고 답했다.
검은 사자 여학생들은, 오늘도 에우드가 귀엽다는 듯 안도하며 웃는다.
에우드의 얼굴은 여전히 부끄러움에 살짝 빨개져 있으니 말이다. 덕분에 더 귀여워 보인 걸까.
플로라는 아직 불만이 안 가셨는지, 에우드의 옆에서 뺨을 퐁퐁 부풀렸다.
“뭐예요, 사울드 저 사람 진짜! ......그리고 에우드님도! 막 함부로 여자아이의 몸 만지시지 마시고!”
“으아아으아- 죄송해어, 조힘하께어......!”
“으휴, 증말! 언제 만졌어요!”
플로라는 에우드의 양 뺨을 쭈욱 잡아당기며 잔소리했다.
에우드도 이번 일은 변명을 못 하기에, 잠자코 플로라에게 사과한다.
“그냥 아예 저 플로라를 만져요!”(에우드, 꼬오옥)
그러면서 또 자신의 몸은 에우드에게 착실히 밀착시키는 플로라였다.
“그보다 질기다니, 사자 새끼들 네놈들이 말할 말이냐........ 에라이, 괜히 꼈다가 기분만 잡쳤네.”
다스트는 한숨을 팍 쉬곤 휴게실 밖으로 향하려 했다.
뭐, 다스트로선 정말로 큰 관계는 없는 일이기도 하고.
또 에우드 쪽처럼 도서실 퇴출을 당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런 중, 칼투스가 다스트에게 물었다.
“으응? 그런데, 다스트 넌 웬일로 혼자 여기 왔냐?”
“.......내가 어떻게 다니든 뭔 상관이야.”
“아니, 맨날 멤버들하고 우르르 몰려다니던 놈이 혼자 있으니 이상하다 싶은 거지. 이때쯤엔 너네도 항상 아지트 생활이고. 이동할 때는 과시하듯 애들 끌고 다니-”
“-내가 항상 네놈들 수인 새끼들처럼 무리 짓기만 하는 줄 아냐.”
“아앙? 이 새끼가......! 흡, 아니지아니지.......”
퉁명스레 답하는 다스트는, 마치 뭔가를 감추는 거 같았을까.
칼투스는 거기에 바짝 짜증을 내려 했으나, 곧바로 짜증을 식혔다.
“......후우! 흥. 네놈의 시비 따위, 지금의 나에겐 안 통한다! 난 이제 감정적으로 싸우지 않기로 정했거든!”
“얜 뭐라는 거야, 껌댕이가. 야, 테르미. 이놈 상태 왜 이러냐.”
“게다가 그런 것치곤 아까까진 꽤 감정적이셨는데요.......”
“이해해줘요, 플로라. 원체 이런 남자라서요.
테르미와 검은 사자 일동도, 이번엔 칼투스 쪽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다만 다스트에겐 적대적인 눈빛을 보낸다.
”그보다 다스트, 칼투스가 이런 녀석이긴 해도 그딴 식으로 한 번 더 말하면 가만 안 있을 거니까.”
“마음대로 해보던가. 쯧.”
“후우웅!”
다스트가 불만스레 혀를 차는 것과 함께, 칼투스의 강렬한 콧김이 후웅하고 내뿜어졌다.
기세 좋은 콧김에 검은 갈기가 흔들흔들한다.
역시 성격은 거칠지만, 막상 보면 미워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다스트는 발걸음을 잇기 직전- 에우드를 고개를 돌렸다.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
“네?”
자신을 바라보는 에우드를 향해, 다스트는 상당히 예민하고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 마라. 난 네놈한테 질 생각은 없어. 너뿐만 아니라, 트루스와 악시우스, 라다루스에게도.”
에우드로선 상당히 생사람 잡는 말이리라.
“저는 앞서가고 있다던가, 그런 생각은 한 적 없는데요.”
“흥.”
에우드는 다스트의 도발 비스무리한 말에, 금세 난처한 눈을 싹 거두고 답했다.
다스트는 거기에 코웃음을 한번. 그리곤 손가락으로 에우드를 가리킨다.
그 손가락은, 왕자님처럼 불리는 외모와는 달리 너무나 거칠었을까.
확실했다.
단 하루도 수련을 거르지 않는 검사의 것이다.
에우드는 이 한순간, 다스트라는 남자의 일면을 본 것만 같았다.
별로 좋은 감정이 들지 않는 건 매한가지다만.
“-기억해 둬. 너도, 칼투스 네놈도. 이번 세대에서 정상에 서는 건 이가리트, 그리고 나 다스트 글론 이가리트야.”
그 말을 끝으로, 다스트 또한 자리를 떴다.
“......갑자기 뭐래요, 다스트 저 사람. 완전 뜬금없이.”
“그러게요.......”
에우드를 꼭 끌어안고 있는 플로라는, 반쯤 어이없다는 눈치로 고개를 갸웃했다.
* * *
그리고 남은 두 파벌도, 중앙 도서관에서 나왔다.
아직 어둑어둑해지지 않은 시간, 포에닉스와 검은 사자 모두 각자 아지트로 향하기로 했다.
일이 많다 보니, 다들 적어도 자정이 되기 전까진 아지트에서 벗어나진 못하리라.
“에우드! 사울드 그 새끼가 또 으르렁거리면 나를 불러라! 내가 수인 대 수인으로서, 그놈을 끝장내주지!”
“아뇨, 일단 제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그보다 칼투스 선배도 지금 저부터 신경 쓸 때가 아니라니까요. 지옥 기간부터 무사히 보내셔야죠.......”
“-아흑, 큭!”
에우드가 눈 동그랗게 뜨고 날린 정론에, 칼투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말에 담긴 위력만 치면, 저번 공식전만큼 아파 보였다.
“그래요. 정말 잘 말해줬어요, 에우드. 자, 칼투스도 너희도. 다들 빨리 아지트로 가자. 이번 주까지 웬만큼 끝내야 시험에 집중할 수 있어.”
“““그웨에에에.......”””
테르미의 말에, 검은 사자 일동 모두의 안경이 비틀.
반면 테르미의 안경은 반짝이는 것 같았다.
“맞다, 그런데 에우드, 플로라. 지금 시간 좀 여유 있나요?”
멤버들을 데리고 가려던 테르미는, 도중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네? 아- 조금이긴 하지만요.”
“뭐가 됐든, 결국엔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빨리 끝났으니까요.”
에우드와 플로라는, 챙겨온 자료를 보며 복잡미묘하게 웃었다.
지금 시간은 처음 에우드와 플로라가 걸리리라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이른 시간.
사울드가 골라준 도서를 실제로 직접 골랐더라면, 밖이 어두워져서야 나왔겠지.
빌리지 못하는 도서였을 경우, 노트에 옮기느라 더더욱 시간이 걸렸을 테고.
덕분에 아까 일은 그런 식으로 끝났지만, 에우드는 사울드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갖고 있다.
게다가 뭐.......
결국 동생을 걱정하는 오빠의 마음이니까.
에우드가 누나들과 친남매가 아닐지라도, 그런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남매의 소중함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아까도 사울드에겐 차마 크게 저항하기 어려웠다.
‘키루미나한테도 사과하러 가야겠네........’
꼬리를 만지게 해준 건 키루미나지만. 그렇다고 에우드가 그냥 넘어갈 성격은 아니다.
‘심정이 불편했던 나를 위해, 부끄러운 걸 꾹 참고 배려해준 거겠지.’
에우드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그렇습니다.
이놈의 도련님, 순조로이 헛짚고 있습니다.
곧, 에우드의 딴생각을 치우듯 테르미가 말을 다시 이었다.
“-그럼 마침 이렇게 만났는데. 잠깐 저희 아지트에 같이 올래요? 아마 준비가 안 됐을 거 같아서요.”
“음? 테르미, 준비가 안 됐을 거라니요?”
“침구류들이요.”
““......???””
“표정을 보니 역시 없었나 보네요.”
테르미는 1년 차 소년 소녀들의 어리둥절에 쿡쿡 웃었다.
* * *
“푹신푹신해-!”
“흐아아아....... 피로가 풀려요흐아아......”
티아나와 드로와는 아지트 2층 빈방에 깐 요에, 녹아내리는 듯 목소리를 내버렸다.
포근포근함이 가득한 요와 이불.
저택과 기숙사에선 항상 침대 생활이니 말이다.
그보다 그게 유그라시아의 기본 생활 양식이기도 하고.
덕분에 웬만해선 이런 식으로 침구류를 바닥에 까는 일은 사실상 없었다.
뭐, 저택의 티아나 공방이나, 서로의 방바닥에서 같이 데굴데굴거리던 일은 많지만.
또 에우드의 경우, 드림랜드에선 땅에 쪼그려서 자기도 했었고. 덕분에 익숙하다면 익숙하다.
“티아나 누나, 그래도 지금은 자면 안 돼. 드로와도요.”
“으아아아, 여기로 도망치고 싶어.”
“여기서 책 읽으면 최고일 거 같아요......”
곧, 푹신한 요 위에 데굴데굴하는 티아나와 드로와 사이로, 셀레나가 데구르르 굴러왔다.
그리곤 에우드 앞에 쏙 도착해, 발목을 꼬옥 잡는다.
“에우드, 누나 옆에 와 같이 눕자? 꼬오옥?”
이 누나들은 정말.......
나이를 먹고, 자신들의 외모를 자각한 순간부터 어리광 기술이 너무 좋아져서.
에우드도 순간 셀레나의 어리광에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새하얀 이불과 요 위에서 같이 포곤포곤 눕자고 유혹하는 건, 에우드에겐 위력이 너무 강하다. 치명타가 들어온다.
“으아아, 넘어갈 뻔했네......! 셀레나 누나, 안된다니깐.”
“조금만 쉬자-”
“잠깐 펴 봐 달라고 해서 폈더니, 이럴 줄 알았어.......”
“흐에에에- 포근하네여....... 이거 분명 유효타예요.”
“프란시느도, 그대로 이불에 먹히면 안 돼요!”
생소한 침구류에, 포에닉스 파벌 모두 헤롱헤롱이다.
여기에다가 페리아가 선물로 준 향초도 피운다면, 정말 기분 좋게 휴식할 수 있으리라.(물론 페리아는 잠 깨는 용으로 준 향초다만.)
침구류들의 정체는, 바로 아까 검은 사자 파벌에서 받아온 물건이었다.
지옥 기간엔, 아예 밤샘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파벌들은 그 시기마다 사용하기 위해(또는 여러 밤샘 작업을 위해), 아지트에다가 침구류를 챙겨놓는다고.
원래 포에닉스 파벌은 대충 소파에 누워 담요를 쓸 생각이었다만.(몇 주 동안 그런 식으로 보내기도 했고.)
마침 테르미 쪽에서, 포에닉스 측에 침구류가 없는 걸 기억하고 여분을 준 것이다.
몇 년 전, 검은 사자 파벌 인원이 서른 명 넘어갔을 때 잠깐 사용했던 물건이라나.
이렇게 요와 이불을 직접 바닥에 까는 건, ‘수인족의 본토’라 불리는 ‘비온 왕국’의 생활 양식이라 한다.
침구류들은 많이 쓴 물건은 아니며. 또 정기적으로 항상 꺼내서 세탁하고, 햇볕에 말렸다고.
그래도 혹시나 냄새가 나면, 테르미 말론 칼투스 탓을 해달라 한다.
(“으응?! 테르미, 나 냄새 안 나거든!? 좋은 냄새 뿜뿜이라고! 어흐으응!!”)
물론 칼투스는 억울한 듯 항변했다만.
또 칼투스의 말대로, 침구류 전체에 세제 냄새와 햇님 냄새가 가득하다. 나무 냄새도 살짝 섞여, 정말 스며들 거 같은 향기다.
아나트는 내색은 안 했지만, 베게 하나를 꼭 끌어안고 “후아아.”하며 편히 쉬고 있었다.
다행히 파벌 최고 선배도, 이 침구류들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리고 플로라는-
“갸아아악! 뭐예요, 진짜! 치사해서 정말! 에우드님한테 밀착했다고 이런 처사라니, 너무해라!”
요와 이불 속에 돌돌돌 말려, 도롱이 벌레처럼 데롱데롱 도롱도롱.
막내 동생에게 과도히 밀착한 죄로, 티아나와 셀레나에게 제재당한 후였다.
“이거 풀어줘요! 에우드님이랑 수인어 리포트 써야 한다고요! 우우! 파벌 내 폭력! 부조리!”
“플로라 에우드한테서 3m 떨어지기!”
“플로라, 에우드 옆자리에선 두 칸 떨어지기.”
“이 폭군들! 압제자들!!”
“구, 구우우우........”
아지트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와이즈(밀고자)는, 플로라에게서 슬쩍 눈을 돌린다.
......근데 와이즈 저 녀석, 대체 어떻게 보고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