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마검사 도련님-183화 (181/264)

?183회

지옥 기간183.

중앙도서관 내부는 역시 면학 분위기로 가득했다.

디에스가 이전에 했던 말대로, 이 시기엔 시간 관계없이 꽉꽉 차 있었다.

도서관 자체가 넓은 덕에, 또 제2, 제3 도서관도 멀지만 있기에 자리가 부족한 일은 없다만.

그래도 책과 필기구로 채워진 책상은, 역시 공부 지옥을 방불케 했을까.

“흐아. 이 가득한 종이 냄새랑 잉크 냄새. 싫다 싫어. 빨리 좀 다 끝났으면.”

“다음 주면 일단 과제지옥은 끝나겠지.”

“그다음은 이제 시험지옥이지만.”

랜퍼스는 사울드의 뒤를 따르면서, 키득키득 투덜거렸다.

그래도 목소리는 확실하게 작게 낸다.

역시 랜퍼스 드아즐볼프.

보기엔 경박해도, 참 배려 많은 남자다.

평소엔 에우드 같은 10대 귀족급 학생. 혹은 거대 파벌 리더급이 들어오면, 시선이 잠깐 몰린다만.

이번만큼은 다들 책상 위에 집중하느라, 에우드가 들어온 걸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알아채도 히끅 한 번 놀란 후, 다시 책을 보고.

애초에 에우드도 ‘눈 마주치면 순식간에 기절’ 타이틀의 보유자이지 않은가.

차라리 모른 척하고 책을 보는 게, 학생들에겐 나으리라.

에우드로선 무반응이 훨씬 마음 편했다만.

그렇게 네 사람 모두, 최대한 소리를 줄이며 책장이 즐비한 도서실 쪽으로 향했다.

도서관 내부엔 면학 장소와 도서실이 좀 떨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곧이어 책으로 가득 채워진 책장이, 마치 미궁처럼 에우드를 맞이한다.

“그런데, 에우드랑 플로라는 수인어 자료를 찾는다고?”

“네. 디에스님- 아니, 디에스 교수님의 과제라서요.”

“수인어 역사 관련해서 리포트 제출이에요. 종족별 언어가 갈라진 시기부터 해서, 현대까지 독자적 견해를 넣어 조사하라고 하셔서.”

눈앞에 있는 게 마침 수인족이기 때문이었을까.

플로라는 혹시 모를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는지, 과제 내용을 랜퍼스와 사울드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그 10대 귀족 교수님, 우리도 까다로울 걸 시켰네.”

랜퍼스는 책장 쪽을 함께 찾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수인어 사용자들인 수인족에게도 까다로운 과제라니. 얼마나 심한 걸 내준 건가.

그러자 사울드가 책장 한쪽을 멀리까지 눈으로 훑었다.

“.......흠.”

“사울드 선배?”

“잠깐만 기다려라, 에우드. 플로라.”

사울드는 반대편 책장까지 마저 훑은 후-

척척척척.

순식간에 늑대 같은 빠른 걸음으로 책장 옆을 누볐다.

“이거랑. 이거랑- 좋아. 이거군. 아, 디그리프 교수님이 쓴 책도 괜찮지.”

그러더니 어느새, 다양한 책들을 품 안 가득 가져왔다.

그리고 그걸, 에우드와 플로라에게 건넨다.

“수인어 역사라면 이 책들이 내 추천이다. 저자들은 모두 존경할만한 이들이고. 공용어 번역도 웬만큼 잘 되어있지.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 책은 수인어 원서도 같이 가져가는 게 좋을 거야.”

““.......잉?””(에우드, 플로라)

“공용어에선 번역하면서 조금씩 내용이 꼬이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걸 수정하기 위해서라도 다 가져가. 일단 둘 다 수인어는 잘 읽을 수 있지? 마침 이 책들은 여분도 많아서 대여에 문제없을 거 같- ........뭐야? 너네 왜 날 그런 눈으로 봐?”

착실하게 자료별 특징을 알려주는 사울드를, 에우드와 플로라는 놀란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을까.

사울드는 휘둥그레진 아이들의 눈을 보며, 순간 움찔 놀라버렸다.

랜퍼스는 상황을 파악했는지 킥킥 웃으며 말했다.

“이래 봬도 우리 보스, 언어학 전공이거든. 공용어, 수인어, 트라이벨어. 최근엔 마인어와 고대어도. 어때?! 사울드 대단하지?!”

“......흥. 마침 전공과 취미가 맞았을 뿐이야.”

““와아아......!””

랜퍼스가 경박하게 보낸 칭찬에, 사울드는 별거 아니라는 듯 흥 소리를 냈다.

즉, 이 사울드 아즐볼프.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인텔리 수인.

키루미나가 매번 ‘근육 바보’라고 불렀기 때문이었을까.

에우드는 솔직히 말해서, 사울드가 이 정도로 학문 조예가 깊은 인물이라곤 생각 못 했다.

“대단하네요, 사울드 선배.......!”

“5개 언어라니! 존경스러워요!”

에우드는 진심으로 사울드에게 감탄을 표했다.

플로라는 상인 핏줄답게, 기회를 재빨리 잡아 칭찬을 쏟아붓는다. 물론 언어를 많이 배우려는 플로라로선, 정말 존경을 전한 거기도 하다만.

“어, 어흠. .......훗. 뭐, 별건 아니다. 후후. 파벌 리더로서, 이런 건 어디까지나 교양이지. 교양.”

랜퍼스의 칭찬엔 시큰둥했던 사울드도, 두 아이의 반짝반짝 눈은 기분 좋았던 걸까.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씰룩여버렸다.

그런데 파벌 리더의 교양이라니.

라다루스나 트루스 정도의 인재면 몰라도. 에우드는 그게 꽤 까마득해 보였을까. 게다가-

“저도 그렇지만, 칼투스 선배 쪽도 공부와는 조금 연이 없으셨거든요.......”

사울드처럼 수인족 파벌 리더인 칼투스도, 절대 공부를 잘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놈은 머리가 나쁜 건 아닌데. 역시 일단 본능이 먼저인 놈이라.”

“아하하. 칼투스네 애들은 매번 실기로 성적을 커버하고 있으니까. 애초에 검은 사자는 테르미랑 몇몇 여자애들 빼면, 다들 필기 성적이 좋진 않지.”

랜퍼스의 말대로다.

참고로 현재 검은 사자 파벌은, 아예 테르미의 주도로 아지트에서 과제와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필기 공부 더럽게 안 하는 멤버들을, 테르미와 여학생 간부들이 멱살 잡고 총괄한다나.

거대 파벌인 만큼 체면용 성적은 내야 하니, 테르미 쪽에서 최대한 커버하려는 것이다.

덕분에 칼투스도 아무 말 못 하고, 매일 테르미에게 붙잡힌 채 아지트로 향하고 있었다.

어쨌든 사울드의 도움으로, 자료를 찾는 시간은 팍 줄었다.

적어도 한두 시간은 쓸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에우드는 플로라와 함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수인족 수재의 공인 자료이니, 리포트 작성에서도 든든한 무기가 되리라.

그런데, 에우드와 플로라가 감사히 책을 받으려 할 때였다.

“에우드.”

“넵?”

사울드의 표정이, 아까와 같이 침울해졌다.

“키루미나가, 내 동생이....... 여전히 나랑 대화를 해주지 않는다........”

“아아앗.”

역시 키루미나 때문이었나 보다.

에우드는 자신의 예상이 딱 맞은 것에 놀라면서도 안타까웠다.

사울드는 아예 귀도 추욱, 꼬리도 추욱. 그렇게도 강인한 신체의 늑대 수인인데, 지금만큼은 수척해 보일 정도다.

“포에닉시안에 다녀오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싶었는데. 그래도 나한테는 말을 제대로 안 건다고......”

“아, 그래도 키루미나 아가씨, 네 물음에 대답은 했잖아. 예전보단 나아진 거라고?”

“그래도......”

사울드 말로는 포에닉시안 사건을 듣고, 걱정되어서 말을 걸었다만. 거기에 “문제없었어. 다친 데도 없고.”라는 대답만 했다고.

가끔 보면, 사울드가 보는 키루미나와 에우드가 보는 키루미나는 전혀 다른 인물 같았다.

가족과 친구의 차이겠다만.

“그래서 그런데...... 그나마 내가 아는 남학생 중에선 네가 키루미나와 친하다고, 아루&메루가 말했으니까.”

“삐진 걸 풀어줄 만한 방법을 알게 되면, 그걸 사울드한테 알려달라는 이야기지.”

“아하......”

사실상 지금 자료를 찾아준 건, 그걸 위한 밑밥이었다는 걸지도.

솔직히 상황이 매번 악화되는 건, 어째서인지 ‘키루미나와 에우드가 대화할 때마다’였다만.

에우드도 눈치가 있으므로, 거기까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저야 충분히 도와드릴 순 있지만....... 아, 그런데 아루&메루는 안 말해주나요?”

“내 동생들은 기본적으론 키루미나 아가씨 편이라. 키루미나 아가씨가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하면 안 말해줘. 아, 아루 메루가 내 동생이란 건 말했었나?”

“저번에 아루&메루한테 들었어요.”

랜퍼스는 “그런가, 그런가.”하며 쾌활히 웃었다.

웃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아루니와 메루니의 인상이 보인다.

포에닉스 못지않게, 푸른 늑대의 피도 역시 진하다.

“네, 최근엔 지옥 기간이라 바빠서 못 만날 때가 많지만. 혹시나 알게 되면, 사울드 선배한테 바로 전해드릴게요.”

“.......정말 고맙다.”

사울드는 고개를 굳게 끄덕이며, 에우드와 플로라에게 자료용 책을 건넸다.

다행히 사울드도 이 이상으로 붙잡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맞아, 사울드님, 랜퍼스님, 혹시 ‘룬’이라는 교수님에 대해서 들은 게 혹시 있으신가요?”

그 사이, 플로라는 ‘룬 교수’에 대해 정보를 얻어보려 했다.

“룬 교수? 있었나, 그런 교수가.”

“......으음, 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미안해, 플로라양.”

다만 3년 차인 그들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인지. 만족스러운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아나트에게도 이전에 물어봤는데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로 ‘아는 사람만이 아는’ 인물이라는 거겠지.

생각해보니, 베르네이가 후에 에우드를 호출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는 소식이 없었다.

에우드는 만약 호출을 받게 되면, 혹시 모를 정보를 위해 플로라와 함께 가보자 싶었다.

“그럼, 고생해라. 랜퍼스, 이제 슬슬 우리도 자료 찾으러 가자.”

“흐아암. 빨리 오늘 분량 끝내고 자고 싶다.”

적당한 잡담을 마친 후, 사울드와 랜퍼스가 하품을 하며 인사했다.

에우드는 인사를 받던 중, 랜퍼스의 모습에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물건을 떠올렸다.

“랜퍼스 선배, 잠시만요. 사울드 선배도.”

“응?”

“왜, 에우드군? .......아, 사탕이네!”

“아하, 좋은 생각이네요, 에우드님.”

에우드는 티아나가 파벌 전원에게 나눠준 포션 사탕을 꺼냈다.

작은 유리병에 귀엽게 담긴, 청량감 넘치는 사탕이다.

큰 도움을 받았으므로, 역시 빈손으로 보내기 미안했을까.

플로라도 옆에서 끄덕끄덕.

아까부터 거대 파벌과 순조로이 커넥션이 만들어지는 터라, 참모로선 참 만족스러운 광경이었다.

“저희 누나가 포션으로 만든 거라서요. 졸음이 많이 가실 거예요.”

“맞다, 맞아. ‘눈 마주치면 생명의 위협이 꽂힘’이 에우드군 누나였지! 포에닉스의 검성도 그렇고, 둘 다 엄청 예뻤는데, 나중에 소개 좀!”

“랜퍼스, 남의 누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라. 수작 부리지도 말고. 가뜩이나 키루미나랑 에우드 이 녀석도 이상한 별명이 붙었는데. ......고맙다, 에우드.”

“아하하.......”

에우드(눈 마주치면 순식간에 기절)는 유리병을 열어, 랜퍼스와 사울드의 손 위로 사탕을 떼굴떼굴 떨어트렸다.

그러다가 나름 기분 좋게 흔들리는 두 남자의 꼬리를 보고, 에우드는 잡담하듯 그것을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키루미나가, 푸른 늑대들은 꼬리를 만지면 긴장이 풀린다고 했었어요.”

“키루미나가....... 아아, 뭐, 그렇긴 하지.”(오물오물)

“푸른 늑대는 아기 때 본능적으로, 자기 꼬리를 꼭 잡고 잠들거든.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는 거지. 다른 개과 일족들도 비슷한 일이 많아.”

“와아, 그런 이유가.”

“신기하네요.”

“또 하나의 엄마 뱃속 같은 느낌인 거지.”

에우드와 플로라는, 종족별 특성에 오오, 하고 감탄을 내보였다.

그리고-

에우드는 여기서 잡담을 끝냈어야 했다.

“-그럼 꼬리를 만졌을 때 졸음이 깨는 것도, 역시 이유가 있는 건가요?”

““.......???””

사울드와 랜퍼스의 머리 위로, 수많은 의문이 솟아올랐다.

“에우드, 그건 무슨 소리냐?”

“졸음이 깨다니. 사울드, 우리 그런 습성이 있었나?”

“없어없어. 난 들어본 적 없다.”

“나도. 으음, 아무래도 다른 늑대 일족이랑 헷갈린 거 같은데, 에우드군?”

“어, 어라?”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는 두 늑대 소년에게, 에우드는 어리둥절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가요......? 하지만, 키루미나가 저번에 그렇게 말해줬거든요.”

“키루미나가?”

“네. 제가 졸음이 남아있을 때. 꼬리를 만져보라고 권해줘서요.”

“-뭐.”

“앗.”

사울드의 눈이 휘둥그레.

그리고 랜퍼스는 뒤늦게 이제부터 일어날 상황을 알아챘다.

“잠, 잠-”

“며칠 전엔 마음이 진정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만지게 해줘서...... 진짜, 꼭 끌어안으니까 정말 마음이 편해졌-”

“잠깐! 제발, 에우드군! 사울드 앞에서 그 이상 말하지 마!”(랜퍼스)

플로라 쪽에선 무슨 일인가 싶어, 에우드와 푸른 늑대를 번갈아 보는 그때-

부우우웅, 콰아아아아앙!!

에우드의 말이 차마 끝나기도 전에, 순식간에 푸른 투기의 주먹이 에우드의 앞에 들이닥쳤다.

“깜짝이야!?”

“에우드님!?”

에우드는 특유의 본능으로 그것을 피했다만. 그래도 순간 얼굴 근처가 저릿했을까.

주먹의 압력이, 순간적으로 크게 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주먹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사울드 아즐볼프.

“에우드,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사울드 선배?! 왜 그러세요?!”

사울드는 방금까지의 차분한 표정은 거두고, 완전히 으르렁 송곳니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키루미나가.......! 너한테 꼬리를 만져달라 했다고?!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만, 만, 만졌다고?! 에우드 이 자식, 감히!”

“네?!”

“꺄악?!”

원래 개과 수인이 이성에게 꼬리를 만져달라는 건, 반쯤 ‘구애’.

그리고 최근 성인 수인들 사이에선, 그 뭐냐......

‘그 이상까지 가고 싶다’는 의도까지도 내포되어 있다.

아직은 조금 순진한 키루미나도 거기까진 생각 안 했겠지만.

그래도 여동생 팔불출인 사울드로선, 그것만큼 날벼락인 상황이 없었다.

“내가 널 잘 못 봤군,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 그래도 네놈은, 요즘 남자 놈들과 달리 꽤 순수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다가 눈에서 피눈물까지 날 지경이다.

사울드는 분노와 왈칵거림이 섞인 표정으로, 에우드의 멱살까지 부여잡아버렸다.

“으아아?! 꼬리 만진 거 가지고 어째서요!?!?”

“꼬리 만진 거 가지고!?!? 이 자식, 그렇게 가벼이 말하다니!!”

“사울드 당신, 에우드님한테 갑자기 뭐 하는 거예요!? 어서 손 떼요!!”

“미치겠네, 진짜! 사울드, 진정해봐 좀!”

그런 습성까진 모르는 에우드로서도, 이건 날벼락인 상황입니다만.

그보다 방금 막 과제에 도움을 받은 참인데. 여기서 멱살까지 잡히면, 에우드로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그때였다.

쿠우우웅!!

척척척척!!

도서실의 바닥 위로, 왠지 익숙한 기세의 충격이 크게 울림과 동시.

“-사울드, 너 지금 에우드한테 뭘 하고 자빠진 거냐!”

“““!!!!”””

검은 갈기를 일렁이는 그 남자가, 포효를 터트리며 나타났다.

“내 은인한테서 떨어져라, 어흐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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