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경박해 보이지만, 참으로 사려 깊은 소년이어라.?164회
뜻밖의 동행164.
“-알베르토님, 계시나요?”
“음? 아, 에우드 자네였군.”
집무실에서 평소처럼 일하고 있던 알베르토는, 에우드의 방문에 허허 웃었다.
셀레나와 더불어, 자신이 가르친 무예의 수제자이자.
싸움터에선 등을 맡길 동료이기도 한 소년의 방문이다.
여러 이유로 결혼하지 않은 알베르토지만, 만약 결혼하여 아들을 가졌다면- 자기 자식이 딱 이 정도로 자라주길 바랄 정도일까.
이미 알베르토에게도 에우드는, 아들이자 손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도 그렇고, 알베르토님도 지금이 더 바빠 보여요.”
“어허허, 어쩔 수 없지. 지금이어야 처리할 수 있는 일도 많으니까.”
아무리 휴일이 있다 해도, 누군가는 일해야 한다.
비단 포에닉스 저택만이 아니다. 나라는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누군가가 쉴 수 있는 환경은, 누군가가 일을 해야 만들어질 수 있는 거다.
귀족과 평민도 그런 관계.
적어도 알베르토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포에닉스 사용인들이 있어야, 가레스와 로로나- 포에닉스 일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만큼, 매년 휴일에는 지금까지의 노고를 치하하며, 다들 전력으로 쉬길 바랐다.
뭐, 이 세상의 귀족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이들이 대다수다만.
“레니안느님도 더 머물기로 하셨다는데, 지금은 다들 즐겁게 놀고 있으신가.”
“네, 누나들이랑 다니기로 했어요. 아, 페리아도 같이 갔고요.”
“하하, 페리아도 오늘 비번이었지. 아나트님은?”
“어머니랑 같이 있어요.”
“허참, 에우드가 웬일로 왕따를 당했군, 홀로 남았잖나.”
“아하하.”
알베르토의 농담조에, 에우드도 쿡쿡 웃어버렸다.
그 말대로 어째서인지 누나들은, 이번엔 에우드만 쏙 빼놓고 갔으니까. 분명 아가씨 모임이라고 말하며 레니안느와 페리아를 데리고 갔다.
레니안느의 경우 두 누나와도 더 놀고 싶었던 덕에, 눈을 반짝이면서 따라갔다. 순수하게 눈을 반짝이는 모습은, 그 안에 마안이 있다곤 정말 생각하기 힘들 정도일까.
페리아는 오늘 비번인 만큼, 너무 고생은 시키지 않길 바랐다.
아나트의 경우, 오늘은 로로나와 작은 환담을 하기로 했다.
각오에 대해선 가레스가 말했으니까. 이번엔 로로나 쪽에서, 어머니된 입장으로서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겠다고.
무거운 대화를 하려는 건 아니었고, 정말로 마음 놓고 잡담을 하려는 거였다.
어제부터 로로나에게 많이 휘둘린 만큼, 아나트도 이번 호출엔 그리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마음 편히-
아마 어머니의 부름에 따르는 것처럼, 로로나에게 갔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가레스에겐 이미 한 번 더 다녀왔다.
내일 데우트와 마주쳐야 한다는 것에 칭얼거리며, 에우드를 한 30분 정도 둥기둥기했다.
“그러다 심심해서 이쪽으로 온 건가. 차선책이었군!”
“으에에.......”
“허허, 장난이라네.”
한 달 만에 봐서 그럴까.
알베르토는 에우드를 놀리는 게 은근 재밌었다.
에우드는 항상 솔직한 반응이다 보니, 알베르토는 그 반응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손주를 놀리는 기분이 이런 거겠지.
“아, 아니. 꼭 그것만은 아니에요! 알베르토님, 아직 점심 안 드셨다고 해서.”
“음? 아-”
알베르토는 그제야 에우드가 작은 왜건을 가져왔음을 알아챈다.
왜건 위에는 작은 쟁반에 담긴 샌드위치가 있었다.
마리가 추가로 만든 샌드위치였다.
“그렇군. 조금 있다 먹으려고 잠깐만 미룬다는 것이, 계속 잊고 있었군.”
서류에 집중하다 보니 잠시 배가 고픈 걸 잊은 걸까. 슬슬 휴식을 취할 시간이기도 하니, 알베르토도 그것을 바로 먹자 싶었다.
그보다 어쩌다 에우드가 알베르토의 식사를 가져다준 걸까.
오늘은 물론 비번 메이드들이 많다만. 그래도 알베르토에게 식사를 가져다줄 메이드 아이들도 여럿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다가, 알베르토는 에우드의 얼굴을 보곤 피식 웃어버렸다.
이래 봬도 이 소년, 가레스의 아들이지 않은가.
항상 알베르토가 바쁘게 일할 땐, 슬쩍 차나 다과를 가져와 격려하는 게 바로 포에닉스의 수장인데. 아들도 쏙 빼닮았다.
이 서로 너무 닮은 부자의 모습을 보며, 알베르토는 몰래 납득했다.
“요 한 달, 아카데미는 어땠나.”
알베르토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그것을 물었다.
굵직굵직한 이야기는 이미 편지나 어제의 가족회의에서 나누었지만. 알베르토는 그것 말고도 다른 것들을 듣고 싶었다.
이 소년이 그곳에 가서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알길 바랐다.
에우드는 알베르토가 함께 내려준 차를 보며 생각했다.
“여기 오고서 3년간. 많이 경험하고, 또 많이 배웠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배울 것이 많아요.”
“호오.”
배울 것이 많다.
그게 비단 지식에만 국한되지 않은 것을, 알베르토는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싸운 그 사자수인 학생은 강했나.”
“네.”
당연하다. 알베르토 또한 진성 무인인걸.
“단순히 이긴다, 진다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에우드는 자신이 칼투스 & 테르미 페어와 싸웠던 것들을 말했다. 파라노이아가 나타나기 전까지, 자신이 느낀 것을 말했다.
그것은 새로운 환경에서의 싸움.
애초에 사교회에서 대전을 벌일 땐, ‘마법’을 사용하거나, 거친 격투전을 벌이거나. 아예 수인족과 싸우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 목숨을 걸며 싸웠던 드림랜드와 달리 ‘시합’으로서 온 힘을 다해 자웅을 겨룬다.
자유로운 검술, 격투, 마법 역량의 발휘.
이제껏 만나지 못한 또래 천재들의 전투기술.
그리고 다양한 규칙과 그에 따른 전략 요구까지.
아카데미의 공식전은, 전사와 마법사들에게 있어 최고의 성장 장소라 할 수 있었다. 에우드는 이번 대전에서, 그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에우드 자네는 역시 진성 무인이 맞군.”
“.......어, 어라? 무슨 소리세요?”
“표정에서 지금 신난 분위기가 전해진다네.”
알베르토의 말에, 에우드가 서둘러 입꼬리를 만지작거렸다.
“셀레나님도 에우드 자네처럼 이번에 공식전을 경험하면 좋았겠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었군.”
“셀레나 누나도 그걸 이해하고 양보한 거니까요.”
“뭐, 어차피 앞으로도 기회는 많으니. 셀레나님이라면 문제없겠지.”
알베르토는 재능 넘치는 두 제자가, 더욱 많은 경험을 하길 바랐다.
‘악시우스 레볼트 그리피너’나, ‘하워드 알잭 할란드’. ‘다스트 글론 이가리트’-
현재 아카데미에 재학하고 있는 10대 귀족 아이들이, 저마다 성장을 거둔 것처럼 말이다.
“티아나님도, 더욱 성장할 수 있을 테고.”
알베르토는 티아나가 몰래 전투기술을 배우던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 그걸 모르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다들 모르는 척해주는 것일 뿐이지.
포에닉스 둘째가 3년간 열심히 수련했다는 건, 저택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뭐...... 티아나 누나는 이미 눈빛으로 제압하고 다니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요.......”
“눈빛? 무슨 이야기인가?”
“그게.......”
티아나 알라이트 포에닉스- ‘눈 마주치면 정말 무서움.’
키루미나 아즐볼프- ‘눈 마주치면 집어 던져짐.’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 ‘눈 마주치면 기절.’
이번 학기 초부터 아카데미에서 유명한, ‘눈 마주치면 안 되는 3대 신입생’들이다. 이미 취급만큼은 메트리 남매의 마안급이다.
셀레나의 경우 ‘눈 마주치면’이라는 이야기는 없지만.
애초에 입학 전부터, ‘포에닉스의 검성’으로 다른 학생들에게 경외를 받고 있다. 살벌한 소문 없어도 충분히 위압을 터트리고 있는 거다.
“허허! 역시 티아나님이군, 눈빛은 셀레나님 이상으로 강렬하지!”
“티아나 누나는 마안 없이도 엄청나죠......”
에우드에게 이야기를 듣고, 알베르토는 집무실 위로 크게 웃어버렸다.
로로나나 조안이 들으면 ‘포에닉스다운 조신함을 지켜야죠!’라면서 혼날 이야기였다만.
반대로 무인 알베르토에겐, ‘포에닉스다운 전과’로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내일은 알베르토님도 아버지와 함께 왕도에 가신다고 하셨죠?”
“그렇네. 아무리 가볍게 간다 해도, 황금의 기사로서 보좌는 붙여야 하니까.”
가레스의 보좌는 알베르토와 더불어, 메이드 크로엘과, 설리번- ‘포에닉스 특수대응팀 메이드’ 소속인 두 명이었다.
가레스의 혹시 모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확실한 인선이다.
실은 가레스로선 자신의 안전보다도, 내일 데우트와의 동행에서 자신을 지켜주길 바라고 있었다만. 주로 데우트의 러브콜으로부터 말이다.
조금 뒤 알베르토는 샌드위치를 완식했다.
마리가 만든 샌드위치는, 질리지 않도록 새콤한 맛이 섞여 있어서 그럴까.
최근 나이 탓에 식욕이 잘 안 돌 때가 있는 알베르토도, 꽤 식욕을 돋우면서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알베르토는 자신이 처리하던 서류를 잠시 옆으로 미뤘다.
“에우드.”
“네?”
“식사도 끝내기도 했고. 또 어제부터 몸도 많이 뻐근해지지 않았겠나.”
알베르토가 의자에서 일어나 어깨를 붕붕 돌렸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에우드도 이해했다.
마침 에우드의 옷도 움직이기 편한 연습복 차림.
그대로 훈련장으로 향해도 문제없는 복장이었다.
“저야 제 쪽에서 부탁드리고 싶었는데....... 일은 괜찮으신가요?”
“어차피 거의 다 끝냈네. 오늘은 낮에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여가를 보내려 했으니. 마침 딱 좋은 기회지. 이따가 셀레나님도 불러서, 한 달간 검술이 안 굳었는지 확인해야겠군.”
스승과 제자는 서로를 보곤 씨익 웃은 후, 함께 집무실에서 나간다.
물론 훈련장으로 향하기 전에, 방에 있는 왜건과 빈 접시는 메이드들에게 돌려준다. 쉬는 날에 일을 해주는 메이드들에게 감사 인사도 잊지 않는다.
에우드와 알베르토. 스승과 제자 모두 이런 점에선 정말 착실했다.
“덕분에 잘 먹었네. 마리한테도 고맙다고 전해주게. 오늘 하루, 조금만 더 부탁하겠네.”
“다들 고생하십니다......”
“도련님도, 알베르토님도 그런 말 안 하셔도 되는데.”
“저희 일이니까요.”
“지금부터 훈련장에 가시나요?”
“그렇지.”
“알베르토님도 나이가 있으시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에우드님도 살살!”
“저기, 살살이라던가 무리라기보다, 여전히 제가 매번 땅에 꽂힙니다만.......”
“허허, 나도 아직 정정하네!”
그렇게 노신사와 도련님이 함께 훈련장으로 향하는 모습에, 근무 중인 메이드들은 모두 키득키득 미소를 지어버렸다.
포에닉스 일원 모두가 오랜만에 보는, 사제 간의 친밀한 모습이었다.
참고로 이후 에우드는 알베르토와의 대련에서, 역시나 또 땅에 내리꽂혔다.
“으에에엑........”
“그래도 움직임이 더욱 좋아졌군. 성과가 두드러지게 보이네, 에우드.”
“감, 감사합니다.......”
“그럼 한 번 더 가겠네.”
“엑, 바로인가요?”
검신 알베르토 체로스.
에우드에게 있어선, 리퀴아와 함께 변함없이 높은 목표다.
.......그 뒤로 세 번 더 내리꽂혔다만.
* * *
그렇게 모두 저마다의 휴일을 보내고 난 다음 날.
아침부터 가레스가 데우트와 만나야 하는 것에 “으에에에- 그 아재 보기 싫어어어어어.”라며 불평을 하고.
그런 가레스를 알베르토와 크로엘, 설리번이 잡아 마차에 싣고 나서 한 시간 정도 후.
포에닉스의 아이들 또한 거리에 외출하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단체 인원이 되어버렸네요.”
“으으으...... 그러네요, 도련님.......”
에우드가 마차에서 살짝 말하는 것에, 페리아는 조금 아쉽다는 듯 입가를 오물오물거렸다.
페리아와 에우드는 이틀 전 책갈피를 사러 거리에 가자는 약속을 했다만.
어제 페리아가 ‘아가씨 모임’을 빙자한 누님들의 심문에 걸려, 결국 그 약속을 다 불어버렸다.
추가로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로로나가, “그럼 다 같이 나가볼까요?”라며 기분 좋게 선언한 것이다.
덕분에 지금 한 마차에는, 에우드와 페리아 말고도, 티아나와 셀레나. 레니안느. 아나트. 다른 마차에는 로로나와 제시카, 슈가, 엘리리까지 하여 움직이는 중이었다.
가벼이 외출하려던 거였는데. 아예 매년 연휴에 하던 것처럼 대인원이 되어버렸다.
특히 로로나는 오랜만에 하는 아이들과의 외출에, 엄청나게 들떠있었다.
“페리아, 선수 치기 있기 없기?”(셀레나)
“페리아, 슬쩍 약속 잡아놓고 말이야, 약았어.”(티아나)
“으아아아- 아가씨들, 제가 막 감추려고 했던 게 아니라요오오-”
“누나들, 페리아 괴롭히지 마.......”
““괴롭히는 거 아냐.””
셀레나와 티아나가 페리아를 몰랑몰랑 포옹하며 말했다.
최근 한창 자라나는 이 아가씨들의 몰랑몰랑 포옹은, 같은 여자아이인 페리아도 마음이 편해진다. 물론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몰랑몰랑 포옹이다만.
두 아가씨의 따끈한 몰랑몰랑 포옹을 받으며, 페리아는 아쉬운 한숨을 내쉬어버렸다.
뭐, 솔직히 이 두 누님이 눈을 번뜩 뜨고 있는데. 둘이서만 나갈 수 있을 거라곤 생각은 못 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참고로 지금 페리아의 복장은, 평범하면서도 귀여운 사복.
결국 그 팔랑거리는 옷과 치마는 포기했다.
도련님이 칭찬해주긴 했지만, 역시 아직은 부끄러움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특히 다른 가문의 아가씨들도 있는 판에, 혼자 너무 노출이 많으면 많이 그랬다.
그래도 어제 도련님표 칭찬을 받은 덕에, 엄청 만족은 했다만. 그 칭찬은 벌써 페리아의 마음속 보물상자에다가 꼭 담아뒀다.
아마 평생 보관되리라.
“이제 아지트의 연금술 공방도 잘 쓰고 있으니까. 이참에 재료를 사서 가져가야겠어.”
“티아나, 돌아갈 때 짐 너무 늘어나게 하진 마. 제발 조심.”
“조, 조심할 거거든?!”
“티아나는 미리 안 말하면 쇼핑에서 꼭 폭주하니까. .......오늘 그런 기미가 보이면, 나 바로 에우드 쪽으로 갈 거야.”
“그으으읏......”
셀레나가 미리 주는 주의에, 티아나가 차마 따지지를 못한다.
“아나트 언니는, 이번에 어디 들릴 거야?”
“레니안느, 너 나 언니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로, 로로나님하고 슈가씨랑 같이, 케인즈 상회 쪽에......”
“플로라네?”
“아, 응, 오늘은 플로라도 상회에 와 있다고 했고.”
“플로라도 있구나....... 나도 가고 싶네.......”
아나트는 손가락을 꼬물꼬물하면서, 레니안느의 물음에 꼬박꼬박 답해줬다.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대화를 잘 나누는 것이, 에우드는 참 보기가 훈훈했다.
“구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