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그 비극’이 일어나기 전까지 갈레아 고아원을 후원하고 있었던 왕족 소녀였다.?161회
뜻밖의 동행161.
휘리리릭-
퍼어어억!!
“게흡?! 뭐, 뭐야?!”
다음날 새벽 5시. 에우드는 안면에 내리꽂힌 충격에 깨어났다.
“.......아.”
범인은 티아나.
대체 어떻게 잔 건지, 에우드의 머리 부분에 티아나의 다리가 와 있었다.
사교회에선 셀레나와 함께 레이디가 다 되었다고 칭찬받는 티아나다만. 이놈의 잠버릇은 여전히 폭군이다.
보아하니, 에우드의 안면에 꽂힌 건 바로 발꿈치였다.
어쩐지 한 위력 한다 싶었다. 3년간 티아나의 전투 능력이 상승한 만큼 더 강해졌다.
심지어 발꿈치 내리찍기 테크닉은, 에우드가 직접 가르친 기술이고.
잘 배웠다.
에우드조차 눈물 찔끔 흘릴 정도로 정말 잘 배웠다.
에우드 스승님은 더는 티아나 제자님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찌잉거리는 코를 문지르며, 에우드는 뒤집힌 티아나의 잠옷을 정리해줬다.
그리곤 침대에서 잠시 내려와, 티아나를 공주님 안기로 제 위치에 되돌려놓는다.
셀레나는 이번엔 다행히 공격받지 않았나 보다.
새근새근 이불과 웨이브 머리칼이 돌돌 말린 채 잠들어 있다.
덕분에 에우드가 덮을 이불이 없다.
아카데미에선 셀레나가 티아나와 2인실에서 지낸다만.
혹여나라도 셀레나는 티아나와 같은 침대를 쓰지 않는다.
과거 티아나와의 동침 결별을 선언한 후부터. 셀레나가 티아나와 함께 자는 건, 둘 사이에 막둥이를 뒀을 때만.
.......에우드는 그게 실질 배리어 취급이라는 사실을, 한 2년 정도 전에 깨달았다.
그래도 티아나의 잠버릇은 상상을 초월해서, 배리어를 뛰어넘고 다이렉트 어택이 들어갈 때가 자주 있다.
막둥이 배리어는 만능이 아니다.
잠든 사이에 슈가가 방을 정리해준 걸까.
밤늦게까지 레니안느의 그림을 구경한다던가, 아나트의 이야기를 듣는다든가 하여 어질러진 방은, 상당히 정돈되어 있었다.
“돌아왔구나.”
“구우우우우-”
에우드는 방 한쪽 가지 위에 앉은 와이즈에게 키득키득 웃었다.
에우드의 방 창문은 딱히 잠그지는 않는다.
덕분에 창문을 스스로 여닫을 줄 아는 와이즈는, 출입 또한 프리패스.(방에 들어올 땐 창문도 잘 닫고 다닌다.)
와이즈도 나름대로 여가를 끝내고 돌아온 모양이다. 덕분에 피리를 불 필요는 없었다.
“......일찍 일어난 김에 산책이나 할까 하는데, 같이 나갈래?”
“구웅.”
틱틱대는 울음소리. 그게 와이즈 나름의 동의라는 건, 에우드도 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잠옷 차림의 에우드가 팔을 걷자, 와이즈는 기다렸다는 듯 그 위에 올라탔다. 물주님의 팔에 마력경화가 걸린 것을 알기에, 거리낌 없이 발톱으로 꼭 잡는다.
살짝 안개가 낀 저택을 걸으면 좋은 냄새가 전해진다.
습기랑 잔디 특유의 냄새.
창고 구역 쪽에서 전해지는 가공식이나 훈제의 냄새.
또 요리사 사용인들의 식사 준비 냄새도.
포에닉스는 새벽부터 부지런하니 말이다.
“도련님이다!”
“에우드 도련님, 아직 주무실 때일 텐데 무슨 일이세요?”
“와이즈도 함께였군요.”
“조금 일찍 깨서요. 잠깐 산책하고 있었어요.”
야간 근무였던 헌터들 넷이 에우드를 보곤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경비를 서고서 돌아오는 길이었나보다.
엘리리 팀 소속이자, 과거 무덤동굴에서 고생했던 타라스와 마르크.
그리고, 과거 제시카와 같은 시기에 채용됐었던 딕시스와 마사였다.
딕시스와 마사는 3년 전만 해도, 신입인 만큼 에우드에게 조심스레 대했지만. 지금은 둘 다 귀여운 조카 대하듯 거리낌 없다.
“도련님도 참, 얼굴 대보세요. 단정하게 하고 다니셔야죠.”
“아, 마사 고마워요오오-아아압.”
마사는 에우드의 머리를 정돈해주면서, 손수건으로 눈가도 꼼꼼히 닦아줬다.
에우드의 얼굴이 쪼물딱쪼물딱 깨끗이 정리되어간다.
와이즈는 재빨리 품에서 나와, 잠시 정원의 나무 위로 올라갔다.
30대 중반의 여성인 마사는, 아이들에 대해선 항상 걱정이 많은 헌터였다. 여러 의미로 어머니 파워가 가득하다 해야 할까.
특히 마사는 여성 헌터중에서도 남성 못지않게 덩치가 있는 덕에 더욱, 그 파워가 잘 전해진다. 그 몸집과 근력을 살린, A급의 대검 전사로도 유명하다고.
삼남매 이외에도, 페리아를 비롯한 나이 어린 사용인들은 그녀의 크고 작은 돌봄을 받은 적이 많았다.
“휴일인데 더 주무시지. 도련님은 너무 부지런하시다니까.”(타라스)
“아카데미에서도 심하게 하시는 거 아니죠?”(마르크)
“전 아직도, 도련님이 예전에 너무 과하게 해서 조안님한테 혼났던 게 기억납니다.”(딕시스)
“가레스님도 엄청 혼나셨지.”(마사)
“아니, 휴일에 야간 근무하신 분들이 그렇게 말하셔도요.......”
뭐, 결국 서로를 너무 걱정해주다 보니 나오는 대화다.
포에닉스 도련님과 헌터들 모두 킥킥 웃었다.
“아 맞아, 아까 레니안느님도 봤었는데요.”
“레니안느요?”
마르크가 레니안느를 봤다는 말에 에우드가 되물었다.
“네, 잠깐 나오신 거 같더라고요.”
“다들 너무 잠이 없으셔. 성장기엔 많이많이 자야 무럭무럭 자라시는데.”
마사가 살짝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마사는 어렸을 때 하루에 한 12시간씩은 꼬박꼬박 잔 게 분명하- 아야!? 아악! 아얏!”
퍼어억! 퍽! 퍽!
자신보다도 더 큰 마사에게, 딕시스가 드디어 단서를 잡았다는 듯 말했다. 물론 바로 세 대 맞았다.
대검을 휘두르며 단련된 마사의 굵직한 공격에, 딕시스의 몸이 엄청스레 뒤흔들린다.
에우드와 타라스, 마르크가 그런 둘을 보며 쓴웃음.
같은 날 채용된 두 헌터인 만큼, 이런 티격태격은 벌써 3년은 이어진 일이었다.
“일단 저희도 슬슬 돌아가 보겠습니다, 도련님. 레니안느님은 만족할 만큼 걷다가 별채에 돌아가서 다시 주무신다니, 혹시 아직 밖에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저희도 지금 너무 졸리네요.......”
타라스와 마르크가 졸린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웃었다.
“네, 모두 고생하셨어요.”
에우드가 귀족답지 않을 정도로 꾸벅 노고를 치하하자, 헌터들 모두 얼굴이 풀려버렸다.
이런 꼭두새벽에 도련님의 감사하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헌터들의 피로의 절반은 회복된다.
그리고 헌터들과 헤어진 후. 다시 와이즈를 품에 안고 5분 정도 걷자, 정말로 레니안느가 있었다.
위치는 손님용 별채 앞의 정원.
뭔가를 발견한 건지, 레니안느는 쫑쫑쫑 걸음을 이어가고 있었다.
복장은 여전히 티아나의 잠옷.
사실 저택에서- 그것도 다른 가문의 저택에서 저런 복장인 채로 뛰놀면 조금 아웃이긴 하다만.
레니안느라는 소녀 자체가, 그런 것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았다.
“레니안느도 새벽에 잘 깨어나네.”
“-아.”
이틀 연속으로 새벽에 마주치는 것에, 에우드는 키득키득 웃어버렸다. 레니안느는 에우드를 보더니 반짝반짝 눈을 빛냈다.
너무 반가워 해주니, 괜히 에우드가 더 부끄러웠다.
“이제 막 돌아가려고 했어.”
하품을 살짝 하면서, 레니안느는 에우드에게 뽈뽈 다가왔다.
그러다 곧 에우드가 품에 안은 와이즈를 알아채곤 더 눈을 반짝인다.
“와이즈다......!”
“구룩?”
그리곤 와이즈를 쓰담쓰담.
레니안느 또한 예전에 다과회에서, 와이즈를 자주 봤었으니 말이다.
레니안느의 성격상 라다루스보다는 얌전하게 귀여워 해주기에, 와이즈는 레니안느에겐 딱히 저항하진 않는다.
뭐, 누가 보면 의무적이다 싶을 분위기로 그것을 받아간다만.
역시 프로 반려동물(몬스터입니다만). 쓰담쓰담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그러다 레니안느가 와이즈를 안고 싶어 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무표정 사이에 그런 기색이 살짝.
다만 조금 참듯이 말을 하진 않는다.
에우드는 그걸 바로 알아채고, 레니안느에게 와이즈를 넘겨줬다. 와이즈도 그걸 알고 발톱을 얌전히 하며 레니안느에게 안긴다.
졸린 아이가 베개를 끌어안은 것처럼, 레니안느의 표정이 포곤해졌다.
“포에닉스 저택, 정말로 좋아.”
함께 별채 앞 벤치에 앉자, 레니안느가 그것을 말했다.
“아하하, 고마워.”
“정말로, 정말로야.”
겉치레가 아니란 걸 주장하듯, 몇 차례 더 반복하여 말한다.
“나, 친구들이랑 같이 밤에 논 거 처음이야. 언니들이랑 방에 다 같이 누워서 과자를 먹었던 것도 처음이야. 같이 책 읽었던 것도 처음이야.”
“.......진짜?”
“응. 그래서, 아카데미에서 출발할 때부터 정말로 좋았어.”
레니안느로선, 요 이틀은 전부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긴, 메트리 가문의 막내딸이기도 하고. 세력 내에서 그녀에게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아이들은 몇 없으니 말이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고서부터는 그게 더욱 커졌다고 한다.
친구들이 생길 수 있는 관계가 아닌 거다.
레니안느에게 친구라고 해봤자, 다과회로 종종 만나던 멤버들 뿐일까.
그런데 ‘친구들하고’라니......
레니안느는 의외로 아나트까지 친구로 봐주는 듯했다.
레니안느가 그린 동화책도 같이 보고. 어색하긴 해도 피하지 않고 잡담을 나눈 덕일까.
긴장은 여전했던 탓에, 아나트는 어제 조금 먼저 지쳐버려 돌아갔다만.
“로로나님도, 슈가씨도 좋아. 제시카씨도 좋고. 다른 메이드들도 좋아. 포에닉스는 어딜 가든 다들 따뜻해서, 함께 있으면 좋아. 아까 헌터들도 그랬어.”
레니안느는 와이즈를 끌어안은 채, 에우드의 어깨 쪽에 기댔다.
이 새벽에 눈을 떠버린 건, 오늘 돌아가는 게 아쉬워서라고 한다.
에우드도 그 기분이 약간 이해됐다.
아카데미에 처음 떠나던 날엔, 자신도 모르게 저택이 그리워질까 봐 조금 눈을 일찍 뜬 적도 있었다.
즐거운 장소에서 떠나야 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여운을 가지려고 일찍 깨버리는 거다.
“......나도, 막상 보면 친구들이 별로 없지.”
지인은 있지만, 친구라고 부를 이들은 많지 않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보니, 에우드라고 레니안느랑 다를 건 없어 보였다.
“아니 그보다-”
“응?”
“애초에, 나 남자인 친구조차도 라다루스 말곤 없는 거 같은데......?”
그나마 칼투스나 검은 사자 파벌은 이제 친해졌지만, 아직은 친구보다도 ‘선후배’이자 ‘동지’라는 느낌이고.
심지어 라다루스는 귀여운 남동생 느낌이다.
에우드는 그제야, 자신의 주변에 또래 남성이 정말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사실 3년 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곤 있었다만.
에우드가 친한 남성은 많지만, 비슷한 나잇대의 남성 친구는 거의 없다.
애초에 포에닉스 파벌도 에우드 말곤 다 여성.
라그나릴 파벌 구성을 보고, 뭐라 신기한 감상을 낼 때가 아니다.
이 도련님, 인간관계가 심각히 편향되어있다.
“동성 친구. .......에우드, 우리 오빠가 있긴 해.”
레니안느, 비장의 카드(트루스 오빠)를 내밀었다는 듯 눈을 반짝.
“.......끄으으으응.”
에우드는 차마 “그건 그렇지.”라곤 대답 못 하고 난처함을 보였다.
에우드가 신 과일을 먹은 듯한 표정을 보이자, 레니안느가 키득키득 웃었다.
평소 멍한 레니안느라도, 에우드와 트루스의 관계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사이임은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친구라고 해야 할까. 이해득실과 귀족 정치가 뒤섞인 관계라 하는 게 더 옳으리라.
아마 여기에 트루스가 있었으면, “아하하핫, 당연히 친구지.”라고 말했을 테지만.
“이렇게 같이 더 놀고 싶다...... 더 있고 싶어...... 아카데미에 가면...... 또 서로 싸우는 분위기인걸.”
레니안느는 살짝 떼를 쓰듯 중얼거렸다.
아카데미에선 시선이 많은 탓에, 어울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그곳에 있으면, 다들 귀족 간의 관계 때문에 조금씩 날이 선다.
이번에도 꽤 이례적으로 일어난 일이고.
그런 만큼, 레니안느는 아직 아쉬움이 큰 모양이다.
“.......”
“......쿠우.”
“어라, 레니안느?”
그러다 어느새, 레니안느는 에우드를 기댄 채 잠이 들어버렸다.
방에 다시 돌아가려 했다더니. 정말로 졸리긴 했었나 보다. 열차에서도 새벽에 한참 깨어나 있었고. 어제도 늦게 잠들긴 했으니까.
원래 잠이 적었던 에우드면 몰라도, 레니안느는 이틀간 조금 수면 부족이었으리라.
수면 부족이어도 더 놀고 싶고, 동화책을 그리고 싶어서이긴 했겠다만.
레니안느가 깨지 않도록, 와이즈에게 ‘쉿’ 표시를 보낸다.
그리고 에우드는 와이즈를 자신의 머리 위로 올라가게 했다.
이어서 코오 잠든 레니안느를 조심스레 안아, 별채로 들어갔다.
에우드의 포에닉스 배송 서비스는, 손님에게도 차별 없이 제공된다.
“......아버지한테 한번 말 해봐야겠네.”
에우드는, 자기도 트루스 못지않게 레니안느한테 약하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