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드로서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동행인이 생긴 연휴였다.?154회
뜻밖의 동행154.
연휴로 예정되어있는 건 사흘.
그러나 실제론 그 주말 이전부터 다 쳐, 5일 정도를 쉬는 우량 연휴. 그리고 학생들은 각 주 5일 차에 웬만한 강의가 끝나는 만큼- 5일하고 반나절을 쉬는 연휴라 할 수 있었다.
사실상, 아카데미 학생들에겐 오늘이 연휴의 시작인 것이다.
“으으읏! 제비뽑기 결과가 뭐야 이게! 삼남매를 이렇게 갈라도 되는 거야!?”(티아나)
“정정 요구. 가족은 원래 함께 타야해.......! 조속한 정정을 요구할래......!”(셀레나)
“아니, 저기요? 두 분이 제비뽑기로 하자고 말 하셨잖아요? 그리고 저도 지금 그 제비뽑기 때문에 이렇게 밀려났는데, 두 분만 슬쩍 정정하려 하고!”(플로라)
“제가 여길 뽑아서 죄송해여어어.......”(프란시느)
“분명히 어제 티아나도 셀레나도, ‘막둥이와의 인연은, 이런 운 따위로 막을 수 없지.’라고 말했지......?”(아나트)
““그그으읏.......””
열차의 객실. 그중에서도 특실칸 앞의 복도에서, 티아나와 셀레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에우드는 그 ‘옆방’에 들어가면서 난처히 웃었다.
“-제시카. 또 힘들게 들고 있지 말고 저한테 짐 주세요. 제가 정리할게요. 드로와 짐도 이쪽으로.”
“무슨 소리세요, 에우드 도련님?! 도련님은 앉아서 쉬셔야죠! 이 제시카에게 맡겨주시고-”
“그냥 에우드 도련님도 제시카도 쉬고 계시길. 짐 정리는 제가 할 테니, 일단 여러분 모두 앉으세요. 드로와님, 짐은 제가 받겠습니다.”
“아, 넵! 슈가씨, 고마워요......!”
슈가는 에우드와 드로와, 제시카를 자리에 앉힌 후, 짐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런 ‘옆방’의 모습을, 티아나와 셀레나가 삐진 듯이 바라본다.
이동 인원이 상당히 많으니 말이다.
이번엔 아홉 명이라는 대인원. 아카데미에 처음 올 때 여섯보다도 더 많았다.
그런 만큼 가레스와 소일이, 슈가에게 ‘특실 두 개를 빌려서 와~’라며 대금을 줬다는 모양이다.
자식들의 친구들과 포에닉스 관계자들이니, 그만큼 신경을 쓴 것이다. 또 아나트도 포에닉스 측에서 초대한 만큼 더욱이.
확실히 특실이라 해도, 일곱 명이 넘어가면 조금 복작복작하긴 할 거다. 비좁은 건 아니지만, 열차 한계 상 어쩔 수 없었을까.
어쨌든 특실 두 개를 빌린 만큼, 아홉 명 모두 방을 나눠야 했던 상황.
다만 또 인원 상당수가, 은연중 에우드와 함께 방을 쓰길 바라기도 했다.
때문에 항상 공정을 중시하는 포에닉스는, 어제 아홉 명 모두 아지트에 모여- 방을 나누는 제비뽑기를 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가 바로 이것.
특실 1호실 ? 티아나, 셀레나, 플로라, 아나트, 프란시느.
특실 2호실 ? 에우드, 드로와, 제시카, 슈가.
뭐, 그거다. 포에닉스 삼남매가 얄짤없이 분단되었다는 거다.
덕분에 셀레나도 티아나도 툴툴대고 있었다.
두 사람이 계속 툴툴대다 보니, 플로라도 어느새 함께 툴툴.
이러니 같은 방을 쓰는 아나트와 프란시느만 난처해진다.
그래도 바로 옆방이고. 조금 걸어서 문을 열면 만날 수 있으니 큰 상관은 없을까.
“어쨌든 한 번 정했으니까요! 티아나, 셀레나! 이제 따지지 않기! 이런 사소한 것에서 번복하다 보면, 끝내 포에닉스의 이름이 우는 거랍니다! 결과를 받아들여요! 저도 옆방에서 같이 자고 싶었다고요!”
참모 플로라의 꾸중에, 두 누님도 겨우 툴툴거림을 멈췄다.
에우드는 도중 옆방에 자주 들러주자 싶었다.
“이게 특실인가....... 대단하네.......”
뒤이어 누나들과 함께 객실에 들어가던 아나트가, 내부 인테리어에 감탄했다.
막상 보면, 아나트는 의외로 서민적인 구석이 많았다.
귀족이라 해도, 아나트가 진짜 귀족 역을 할 때부터는 토르랑이 흔들리고 있었고.
또 ‘분가에게로의 반격’을 위해 돈을 아끼고 있으니 말이다. 평소에도 꽤 검소하게 지낸다고.
덕분에 특실의 시설에도 꽤 진심으로 놀라고 있다.
아나트가 포에닉스 저택에 가는 것에 여전히 긴장하는 만큼, 에우드는 그녀가 열차에서 마음을 쭉 풀길 바랐다.
방에 들어와 소파에 앉은 에우드는 회중시계를 살폈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네요.”
“일찍 들어왔으니까요. 열차들이 한 시간 전에 미리 대기하고 있어서 다행이네요.”
에우드의 말에 제시카가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에우드는 못 알아챘겠지만, 도련님과의 열차 여행이 기대되는 덕이었다. 한 달 전에도 같이 탔었지만, 기대되는 건 여전할까.
에우드가 모르는 사이, 슈가도 살짝살짝 그런 기운을 보였다.
“그럼 전, 옆방에서 아가씨들을 돕고 오겠습니다.”
약간 들뜬 목소리로, 슈가는 잠시 객실을 나섰다.
열차 출발은 저녁 7시. 현재 시각은 6시 15분이다.
다들 괜히 촉박하게 도착하는 것보단, 먼저 가서 앉아 있자 싶어서 이리 일찍 온 것이다.
시간이 조금 과하게 남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에우드는 이런 느긋한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가서 할 일도 많고.
어차피 연휴가 끝나면 과제와 시험으로 다소 정신없을 테고.
지금 정도는 여유로워도 괜찮겠지.
“.......으아.”
“에우드 도련님?”
“연휴가 끝나면 바빠진다는 게 참 답답하네요......”
“싫죠~ 전 매년 연휴가 끝나질 않길 바랐다니까요.”
“맞아요, 에우드님...... 과제하고 시험...... 고생이 훤해요.”
에우드가 표정을 침울히 하자, 드로와도 함께 침울.
교수인 제시카는 그런 두 학생을 보며 쓴웃음 지었다.
“그래도 다들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입학성적도 좋았으니까요. 모두 하시던 대로 하면 될 거예요.”
“제시카는 시험 때 어땠나요?”
분명 제시카는 높은 성적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했었지.
헌터 등급은 규정상 B부터 시작했지만. 디안의 말로는 사실 그 실력도 지식도 이전부터 A급 이상- 즉, A 최상위권이었다고 한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매년 정말 정신없었죠. 저는 듣는 과목이 많다 보니 공부할 것도 많고. 교수들은 이것들이 진짜, 자기 강의만 듣는 줄 아는지. 과제량도 용서가 없고.......”
제시카는 과거를 되새기며, “그땐 그랬지~”라며 웃었다.
“후훗, 또 시험 기간 밤에는 시비 건 놈들이 과제를 하러 도서관에 가다보니 털기 좋-”
““......응?””
“-밤에는 자료들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도서관에 가야 했으니까요!”
제시카가 순식간에 말을 돌린 것에, 에우드와 드로와가 갸웃했다.
“어, 어쨌든! 연휴 때는 연휴를 즐기며 쉬면 되는 거예요! 시험과 과제 대비는 그다음부터 차근차근! 알겠나, 에우드 학생, 드로와 학생?!”
““-네, 네입!””
갑자기 교수 모드가 된 제시카에게, 에우드와 드로와 모두 경례하며 답해버렸다.
조금 뒤, 옆방을 돕고 온 슈가가 들어왔다.
“.......대체 도련님하고 드로와님한테 뭘 시키는 건가요, 제시카?”
“아, 아뇨, 슈가. 그게 아니라-”
결국 제시카는 슈가에게 한동안 꾸중을 들어야 했다.
* * *
에우드는 객실 침대에 올라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살짝 노을 지기 시작한 창밖으로 보이는 건, 학생과 시민들의 상당한 인파.
그리고 아직 출발을 기다리는 열차들이었다.
“지금 보니 열차의 디자인들이 전부 다르네요.”
“개발 상회도 다르고. 각 열차의 디자인은 그 도시와 관리 가문의 특징을 나타내기도 하니까요.”
이전에 아카데미에 올 땐, 꽤 정신없다 보니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었다.
에우드는 눈을 반짝이며 열차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현재 대기 중인 건, 이 포에닉시안 열차를 제외하면 넷.
왕도, 헤른티아(할란드), 워실디아(워스레인), 그리고 마그라트(라그나릴)의 열차였다.
라다루스는 오늘 일찍 출발했다고 하니까. 이미 수 시간 전 마그라트 열차를 타고 본가에 향했겠지.
보통 왕도행 열차를 제외하면, 열차는 2, 3시간 간격이다.
다른 열차들은 아마 이제 막 출발했기에, 대기 열차가 없는 것이리라.
에우드는 그렇게 납득하며, 창밖을 느긋이 내다봤다.
그리고 얼마 뒤-
“......이잉?”
에우드는 지금 여기 있어선 안 될 인물을 발견한다.
“무슨 일이십니까, 에우드 도련님?”
에우드가 묘한 소리를 내자, 방에 함께 있던 이들 모두 물음표를 띄웠다.
“저,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에우드님?!”
“아마 창문에서 보이는 위치일 테니까, 걱정 마세요!”
에우드는 싸한 느낌이 들어, 재빨리 열차 밖으로 나갔다.
열차에서 나온 에우드는, 역시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다 싶었다. 하긴, ‘이 하얀 머리 소녀’는 알아보기 힘든 모습이 아니다.
두 누님과 마찬가지로, 한 번 보면 상당히 인상히 강하게 박히는 소녀였다.
“레니안느?!”
“-아, 에우드다.......!”
역 한쪽에 멍하니 있던 레니안느가, 에우드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인다.
반가움을 팍팍 드러낸 덕인지, 한쪽으로 묶은 머리가 쫑쫑 튕겨 오른다. 허리춤으로 내려오는 조그만 가방이 살짝 덜렁였다.
아니,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에우드가 기억하기로, 레니안느는 이 시간에 여기에 있어선 안된다.
왜냐면-
“레니안느, 트루스는 어디 있어? 메트리우스 열차는 6시라고 했잖아?”
그렇다. 저번에 두 남매가 포에닉스 아지트에 찾아왔을 때. 분명히 트루스가 6시 열차로 예약했다고 했다.
혹시나 하여, 에우드도 말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주변엔 트루스도, 그 삼측근이라는 선배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레니안느 홀로 덩그러니였다.
그러자 레니안느도 눈동자를 살짝 떨면서 말했다.
“열차가....... 어느새 사라졌어. 에우드, 어쩌지......?”
레니안느는 정말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분명 어느새 사라진 게 아니라, 놓친 거겠지.
* * *
[“하아....... 역시 열차 놓치고 거기 있었구나.......!”]
마수정 위로, 트루스의 안도와 난색이 뒤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장소는 역무원실.
정말 다행이었을까. 각 열차에는, 다른 열차 및 역무원실과 연결이 가능한 마수정이 존재했다.
공식전 대기실에 있던 ‘영상 마수정’처럼 모습을 비추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목소리는 문제없이 주고받을 수 있었다.
각 선로에 연결되어있는 결계와 ‘마력의 줄기’ 덕에 가능한 기술이라고.
베르네이 학장의 가문- ‘알페일 가문’에서 개발한 마법기술인데, 아카데미에도 부분적으로 설치되어있는 기능이라 한다.
그리고 지금 에우드는, 역무원실에서 메트리우스 열차 쪽에 연락을 걸고 있었다.
“레니안느 잘 안 챙기고 뭐 한 거야, 트루스 너 동생 잘 챙기고 다닌다며.......”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
트루스 측도 열차에 레니안느가 없던 걸 뒤늦게 알아챘다 한다.
이제 막 차장실에 들어갔을 때, 알카라시아 역무원실에서 연락을 받은 거라고.
[“레니안느가 열차 탐험을 한다고 방에서 나가길래, 당연히 열차에 계속 있는 줄 알았는데....... 레니안느, 이 말썽꾸러기야.......”]
마이페이스인 레니안느니 말이다.
레니안느는 이전에 아카데미에 처음 올 때도, 계속 열차를 돌아다녔었다고 한다.(이건 에우드도 했던 일이라 차마 따질 수가 없었다.)
때문에 트루스와 삼측근은, 이번에도 별걱정 없이 돌아다니다 올 거라 생각했다나.
그들도, 레니안느가 적당히 2, 30분 정도 놀다가 올 거라 여겼으리라.
열차에는 휴게실도 있고. 작은 도서관도 있으니까.
어딘가에 들러서 평소처럼 느긋이 있다 올 거다 싶었겠지.
그런데 정말 열차가 출발하고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고.
이후 열차 전체를 돌아다니고서야, 열차에 레니안느가 없음을 알아챘다 한다.
[“레니안느를 찾아줘서 정말 고마워, 에우드.......”]
“찾았다기보다, 어쩌다 본 거다만.......”
트루스는 에우드에게 거듭 감사를 전했다.
역시 레니안느가 걸렸기 때문인지. 트루스는 평소의 능글거리던 말투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완전히 나잇대에 맞는 말투로 변했다.
[“레니안느, 대체 어쩌다 밖에 나간 거야?”]
“다른 열차도 구경해보고 싶어서....... 잠깐 나왔었는데. 갑자기 열차가 사라졌어.”
[“시계를 보고 다녀야지...... 뭐라도 당한 줄 알고 걱정했잖아......”]
“.......미안해, 오빠.”
레니안느도 이번엔 순순히 오빠에게 사과를 전한다.
[“어쩌지...... 다음 메트리우스 열차가 9시인데. 왕도행을 타서 워실디아에서 갈아타면.......”]
“트루스? 저기, 트루스?”
[“아니, 그렇다고 역에서 혼자 2시간 넘게 기다리기엔......”]
“.......”
트루스는 뭔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레니안느가 무사히 메트리우스로 향할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리라.
어찌나 걱정이 가득한지. 에우드가 부른 것도 잘 안 들린 걸까.
“트루스. 저기 트루스.”
[“레니안느한테 지금 돈도 없을 테고........ 거의 하루가 걸리는데 그걸 혼자 올 수 있긴 한가, 얘가-”]
“-야, 트루스!”
[“왁, 깜짝이야!?”]
결국 에우드가 목소리를 크게 내고 나서야 트루스가 반응했다.
에우드의 옆에 있던 레니안느도, 에우드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란다.
“일단 진정 좀 해봐. 뭐 하나 대화가 안 되잖아.”
[“......미안.”]
트루스도 겨우 진정했는지. 에우드에게 순순히 사과했다.
에우드는 잠시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6시 45분. 에우드 쪽 열차도 슬슬 출발을 앞둔 상황이다.
레니안느가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에우드마저 열차를 안 탈 수는 없는 지경이다.
“하아.......”
에우드는 한숨을 살짝 쉰 다음, 레니안느를 봤다.
평소와 달리 오빠한테 한 소리 들은 탓에, 약간 기가 죽은 걸까.
에우드보다 조금 작은 키를 가진 소녀는, 마수정만을 멍하니 바라본다.
“레니안느.”
“.......앗. 응, 에우드.”
에우드의 부름에 레니안느는 고양이 같은 눈을 살짝 치켜떴다.
에우드는 여전히 고민하면서 그것을 말했다.
“우리 쪽 열차, 같이 타고 갈래?”
에우드는 분명 두 누나한테 혼나겠다 싶으면서도, 소녀에게 조심스레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