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미소를 짓던 슈가의 표정에 순간 동요가 서렸다.?153회
연휴를 앞두고153.
슈가가 에우드의 말에 이렇게까지 동요한 적이 있었을까.
아니, 동요한 적이 없던 건 아니다.
토르랑에서 처음으로 포에닉스에 왔을 때. 그땐 에우드가 난처해하며 말한 것들에 조금조금 동요했었으니까.
항상 밤에 함께 있는 걸 지적받거나.
한쪽 구석에서 서 있는 걸 지적받거나.
.......도련님한테 붙잡혀서, 강제로 침대에 앉혀지거나.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도련님의 배려다.
슈가가 보인 동요라고 해도, 잠시간의 놀람일 뿐.
게다가 그 동요라는 것도 도련님의 순수함과 배려에.
또 배려 사이사이에 보이는 야성미라는 갭에.
돌아보면 미소가 절로 나올 슈가만의 추억이다.
하지만 이번 건 다르다.
동요의 종류가 다르다.
굳이 말하자면, 메이드의 일탈을 들키기 직전인 동요다.
“도련님, 흥, 미가 겹친다는 것, 이라면......?”
“아뇨, 그 저번에 디에스님이랑 만났는데-”
“디에스? .......유펠하이넴 교수?!”
“네, 디에스 교수님이죠.”
“너, 그 사람하고도 친한 거야?!”
“친하다고 해야 하나.......? 편지를 나누기도 했지만....... 애매하네요.”
“편지?! .......트루스랑 레니안느도 그렇고. 넌 은근히 까다로운 사람이랑 잘 지내네.”
“저기, 트루스는 제 쪽에서 뭐라 좀 따질 게 많긴 한데요. 근데 디에스님이 까다로운가요?”
“그렇지. 안 그래 보여도, 귀족들 사이에선 얼마나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대화하긴 쉽지만, 친해지긴 어려운 사람.”
아나트가 대화에 들어온 것에, 슈가는 잠시 무언의 쾌재를 불렀다. 이대로 대화를 이끌어, 슈가에게 온 질문이 묻혔기를 바랐다.
“-그렇군요. .......그래서, 슈가. 저번에 디에스님이 제시카랑 친해졌다고 했거든요. 말이 잘 통한다고. 그래서 혹시 화제라던가 흥밋거리가 겹치나 해서요.”
하지만 어느새 도련님은 아나트에게 말을 다 듣곤, 슈가 쪽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질문은 묻히지 않았다.
“네, 넵. 흥미랄까. .......‘취향’이랄까, 겹치긴 하죠.”
“슈가하고도 친해졌다고 들었어요.”
친해졌냐, 안 친해졌냐고 하면 아마 ‘친해졌다’가 정답이지만.
슈가로서는 참 난감하기 그지없는 동사였다.
그렇다. 밤에 디에스의 방에 찾아가는 정도이니. 분명 친한 게 맞겠지.
하지만 진짜로 난감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처음엔....... 슈가로선 ‘감시’와 ‘주의’의 목적으로 제시카를 따라간 거였는데.
설마 자신 또한 그 대화에 낄 수 있는 취향이었다곤 생각 못 했으니 말이다.
슈가는 그런 동요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에우드를 봤다.
일단 거짓말을 해서라도 상황을 무마해야 할까.
적당히 얼버무려야 할까.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슈가는 이 사태를 무사히 회피할 말을 탐색하려 했다.
“셋이 친해졌다는 게, 생각지도 못한 거라....... 슈가도 제시카도, 아카데미에서 친분이 늘어나는 거 같아서 마음이 놓여요.”
“아앗.”
에우드는 뺨을 살짝 긁적이며 말했다.
이리도 도련님이 푸근하게 말하면 슈가도 받아치기가 힘들다.
순수함 때문에 오히려 거짓말을 꺼내기도 힘들었다.
그럼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취향’을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가.
빠르게. 의심을 느끼지 않도록, 1초 안으로 대답을 결정해야 한다.
“!!!”
곧 그 1초간 수많은 사고를 반복한 슈가는-
“-‘말랑한 피부’에 대해, 의외로 서로 통하는 게 있었답니다.”
웬 이상한 말을 대답이랍시고 내버렸다.
“말랑한...... 피부?”
“네, 말랑한 피부.(동공지진)”
슈가도 그 이상함을 파악하고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그저 이 이상의 추궁이 날아오지 않기를 바랄 뿐.
그러자 에우드는 어리둥절하면서도 곧 눈을 반짝였다.
“......아, 혹시 디에스님도 피부관리에 집중하고 계시나요?”
아무래도 피부라는 말에, 에우드도 겨우 납득해준 모양이다.
게다가 예전부터 제시카의 피부미용 노력이 투철한 건, 에우드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넵. 디에스님도, 최근 피부의 피로가 많이 쌓이셨던지라.(진지)”
“그렇군요....... 근데 말랑......?”
“말랑입니다.(엄격)”
슈가는 진중한 눈빛으로, 에우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말랑한 피부라는 건 본인들이 아닌-
‘에우드 도련님의 피부(뺨)’에 대한 것입니다만.
그 이상으로, 진짜 겹치는 화제는 ‘에우드 도련님 본인’에 대해서입니다만.
슈가는 그것을 최대한 얼버무리고, 2할 정도의 진실을 말했다.
‘거짓말만 안 했다’라고 해야 할까.
물론 좀 허술한 덕에, 에우드도 여전히 갸웃하곤 있었다.
하긴 애초에 피부 얘긴데, ‘탱탱’이 아니라 ‘말랑’이라니.
오죽하면 옆에서 함께 듣던 아나트도, 뭔가 엉성함을 느끼는지 “응? 왜 말랑이지?”이라는 목소리를 냈다.
“......그럼, 포에닉시안에 가면 오랜만에 다 같이 케인즈 상회에 가볼까요?”
다만 에우드는 깊게 묻지 않고 넘어간다.
그것뿐일까. 슈가가 곤란치 않도록 적절하게 권유까지 해준다.
단 1초이지만, 슈가가 대답에 살짝 난처해 한 걸 알아챈 것이리라.
이렇게 도련님이 항상 배려해주는 게, 슈가는 정말로 좋았다.
싸울 때처럼 야성적이고 강인한 모습도 좋지만.
무엇보다 사용인을 배려해주는 상냥한 모습이 너무 좋았다.
.......이미 여기서 슈가가, ‘두 사람처럼 슬슬 글러 먹기 시작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만.
슈가는 아직 스스로 거기까진 아니라고 믿고 있다.
곧바로 슈가는 자신의 동요를 다 지우고, 에우드에게 평소처럼 웃으며 답했다.
“네, 에우드 도련님. 가는 김에 디에스님에게 줄 선물도 사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제시카랑 슈가를 통해서 드리는 게 좋으려나요.”
“뭐야, 아까부터....... 나도 좀 알 말을 해줘, 에우드, 슈가 씨.”
“아, 요 몇 년간 케인즈 상회에서, 귀족가 한정으로 피부관리 상품을 여럿 냈거든요. 이게 들어보니 다 성능이 좋아서.”
“.......그건 꽤 구미가 당기는데.”
아나트가 자신의 뺨을 살짝 매만졌다.
최근 걱정거리가 넘쳐났었으니, 피부가 거칠어진 것을 걱정하는 걸지도 모른다.
“아나트 선배도 저택에 오실 거니까, 그때 같이 가보는 게 어떨까요?”
“그럼 나야 좋- 아....... 벌써 너희 저택에 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구나.”
“아버지는 나쁜 짓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가레스님은 인품이 훌륭하신 분입니다, 아나트님.”
“그래도 좀 떨려.......”
여전히 저택에 두려움을 표하는 아나트를, 에우드와 슈가가 살살 달래본다.
또 슈가는 대화의 화제가 바뀐 것에 마음속으로 안도한다.
.....뭐 오늘 밤에 돌아가선, 그 글러 먹은 두 사람에게 주의를 좀 줘야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오늘 밤의 이야기.
일단 지금은 느긋이 도련님을 모시다 가자 싶었다.
* * *
그날 밤, 교수 숙소의 한 곳.
최고 신분을 가지는 교수를 위한 거대하고도 호화로운 숙소- 바로 디에스의 방.
그곳에서 디에스는, 방의 불빛을 은은히 하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둥근 테이블의 위에는 유펠하이넴 가문에서 공수한 술과, 교수 숙소 주방장에게 특별주문한 안주가 준비되어있었다.
평소엔 본래 성격대로 어지럽히던 방도, 꽤 깔끔하게 변해 있다. 정확히는 딱 적당하게 청소한 느낌일까.
약간의 생활감도 배어있는 것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정도.
그건 이제부터 찾아올 인물이, 디에스에게 있어 꽤 마음을 놓은 상대라는 의미기도 했다.
디에스로선 참 신기한 일이었다.
대화를 시작한 건 이제 일주일 정도 넘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디에스는 그녀에게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분명 사교계에서도 자신은 ‘대화하긴 쉽지만, 친해지긴 어려운 인물’로 불리고 있을 텐데.
웬만한 인물들에게는, 적어도 반년 이상은 경계를 쭉 유지할 텐데.
그런 자신이, 일주일 정도에 이렇게 마음을 풀어버리다니.
어쩌면 디에스는, 22년 평생 중 처음으로 진정한 친구를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 ‘서로의 취향이 비슷했기 때문일까.’
정말 서로 모든 신분을 내려두고 마주해도, 진심으로 친해질 것 같았다.
경계심 높은 디에스가 이만큼의 감상을 담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똑똑-
곧, 넓디넓은 호화로운 방에 차분한 노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상대가 누구인지는 확인치 않는다.
현재 이 교수 숙소에서, 10대 귀족의 방에 약속 없이 올 수 있는 건 몇 없으니 말이다.
하물며 엘토도 지금은 강의 준비 때문에 연구실에 있는 상황.
올 사람은 ‘그녀들’ 말고는 없었다.
방문을 열고 차분히 들어온 것은, 옆방에서 넘어온 제시카였다.
“와아......! 디에스, 이건 처음 보는 술인데요!”
“후훗. 제시카가 좋아할 거 같아서. 며칠 전에 저희 본가에다가 직접 보내달라고 말해뒀죠. 저희 특산품인 만큼, 꼭 대접해드리고 싶었답니다.”
“좋죠, 특산품 술은 정말 좋죠!”
제시카의 현재 상태는, 단정히 양 갈래로 땋은 머리에 안경. 그리고 폭신폭신한 파자마.
도련님 아가씨들과 지낼 때와 비교해, 경계 레벨이 0.5단계 정도만 높은 복장이다. 즉, 제시카도 꽤 마음을 풀고 있는 거다.
디에스 또한 평소의 격식 있는 차림이 아니다.
제시카와 비슷하게, 잘 때 입는 녹색 파자마 차림.
짠-!
““그럼 오늘 밤도, 진득하게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둘 나름의 파자마 파티 스타일이었다.
“슈가는 아직 안 왔나요?”
“아마 이제 곧 올 거예요. 오늘은 포에닉스 아지트에서 몰래 삼남매분들을 모시고 있었거든요.”
“에우드 모시기라니....... 좋네요, 그런 주종 플레이도 참 좋아요......!”
“역시 뭔가 대화의 레벨이 다르네요, 디에스. 들을 때마다 감복해요. 아, 저도 사정상 도련님을 가끔 모신 적이 있었죠.”
“제시카가요?!”
“후훗, 일일 메이드라는 건데요. 예전에 에우드 도련님이 잠시 아프실 때가 있어서-”
“뭐예요, 그거. 좀 더 이야기를 들려줘요!”
건배한 술잔을 기울이며, 디에스와 제시카가 뺨을 조금씩 붉혀간다.
그 파벌 대전 이후, 디에스가 제시카와 슈가를 처음 방에 초대했을 때부터. 이들의 파자마 파티는,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소재는-
포에닉스의 막내,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였다.
“도련님의 뺨은 정말 말랑말랑해요. 치유되요. 한 주의 피로가 싹 날아가요.”
“말랑말랑한 게 딱 보이죠. 저도 한번 만져보고 싶어요. 저번에 도서관에서 그걸 만지는 걸 보는데...... 하아, 정말!”
“의외로 직접 부탁하면 들어주실지도 몰라요?”
“진짜요?! .......맞아, 강의 때 눈을 반짝이는 것도 참 귀여우시죠.”
“수업하는 보람이 있죠~ 배우는 것도 꽤 빠르셔요. 항상 더 가르쳐드리고 싶다니까요.”
“하아, 교수 이상으로, 저도 개인 교사였으면....... 어째서 유펠하이넴은 포에닉스와 많이 친분이 없던 걸까요.”
즉, 이 파티는 ‘글러 먹은 레이디들’의 ‘글러 먹은 취향’을 이야기하기 위한 자리란 뜻이다.
이들은 요 며칠 이틀 간격으로 자리를 열어, 에우드에 관한 이야기를 꾸준히 나누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 소년 한 명으로 이리도 질리지 않게 얘기를 하는 건지.
이런 글러 먹은 자리는, 원래 엘토가 미연에 방지할 테지만.......
이번만큼은 엘토도, “그래. 차라리 마음껏 이야기하면, 외부에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겠지.”라며 묵인하는 중이었다.
또 처음엔 슈가도 고삐 역할을 자처하며 들어왔었다만.
막상 파자마 파티가 시작되면, 그녀조차 자신도 모르는 사이 대화에 빠져드니 말이다. 덕분에 디에스는 슈가도 영혼의 친구처럼 여기고 있을 정도다.
슈가는 아직 부정하고 있지만. 얼마 안 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말 테지.
어쨌든 그런 식으로, 고삐 없는 피로연이 완성.
지금은 누구도 예상 못 한 여걸들(※글러 먹음)의 우정이, 이 교수 숙소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거 아시나요, 도련님은 끌어안으면 따끈따끈해서 기분이 좋아요.”
“뭡니까, 제시카 그거. 우씨, 부럽네.”
“방에 꼭 두고 싶다니까요.”
“하아아....... 키우고 싶다니까요.”
.......누가 이분들의 글러 먹음을 좀 멈춰주세요.
뭐, 사실 에우드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고.
그 외에도 여러 잡담을 하긴 한다.
교수끼리의 이야기라던가. 그 나잇대 여성들의 당연한 이야기라던가. 또 진짜로 피부 미용에 관한 이야기 또한.
간격으로 치면 7:3비율일까.
당연 에우드가 7이고, 그 외가 3이다.
그렇게 두 여성이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흐음...... 제시카, 연휴 땐 다 같이 저택에 다녀온다고 했었죠?”
“네, 슈가가 어제 미리 티켓을 준비했죠. 디에스님은 역시 유필리아로 바로 가시나요?”
“네. 저도 차기 당주인 이상, 행사 자체엔 참여할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왕도에 갈 수 있도록 준비는 해야겠죠.”
“귀족들도 다들 고생이네요.”
“이런 시기는 어디든 다들 고생이죠....... 으음.”
디에스는 안주로 가져온 치즈를 살짝 쥔 채 중얼거렸다.
“......잘만 시간을 조정하면, 어쩌면 연휴 도중에 갈 수 있을지도.”
“디에스?”
“아뇨아뇨, 혼잣말이에요, 제시카.”
디에스는 치즈를 입에 넣으며 말머리를 바로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서로 술과 안주를 나눠 먹으며, 여전히 글러 먹은 대화를 후후훗하며 나눠간다.
* * *
그리고 며칠 뒤, 유그라시아 전역에 연휴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