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 포에닉스 저택을 뭐라 생각하고 있는 건가, 이 악마 아가씨.?147회
완성147.
“별말 안 하실 거라니깐....... 저희도 같이 돌아가는 거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요.”
에우드는 겁먹은 아이를 달래듯 말을 해본다.
사실 상황은 거의 들어맞는다만.
“포에닉스 저택은 둘째치고 황금의 기사라고........ 넌 네 아빠니까 그렇게 가볍게 말하는 거지만.......!”
생각해보니 아나트의 반응도 당연할까.
말이 포에닉스 가문의 호출.
실제론 유그라시아에 다섯밖에 없다는 강자 중 한 명이 부르는 것이다.
에우드도 한 번 머릿속으로 입장을 바꿔 보자 싶었다.
만약 자신이 트루스의 아버지이며, 또 황금의 기사인 데우트에게 불린다고 가정한다면-
‘음, 절대 가기 싫지. 죽어도 가기 싫지.’
에우드도 똑같은 반응을 했으리라.
거절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가기도 그렇고.
그나마 마음은 조금 편한 레니안느면 몰라도,
가서 데우트와 트루스하고 앉아 차를 호로록 마시면.......
안 넘어간다. 차 마시다가 체할 정도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나트의 반응이 십분 이해된다.
“하아, 언젠가 한 번 지나갈 일이라곤 생각했는데, 그게 너무 빠르잖아........”
아나트도 파벌에 처음부터 들어오려고 계획했었으니 말이다.
언젠가 가레스를 마주한다는 건 각오하고 있었으리라.
그래도 벌써 이렇게 초대받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나.
“메이드들도 꼭 보고 싶다고 하니까요, 아나트 선배.”
“........”
“슈가도 그날 같이 돌아갈 거예요.”
토르랑 메이드들 이야기를 꺼내자, 아나트는 입을 삐죽였다.
그래도 걱정과 불안은 조금 가라앉아있었다.
역시, 자신을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아나트도 조금은 마음이 놓인 듯했다.
저택에 가면 삼남매와 함께 며칠을 체류할 텐데.
그렇다면 토르랑 메이드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지.
“얘는 악마악마, 그렇게 불리더니. 완전히 쫄보였네.”
곧 음료를 쪼르르 마시던 테르미가 아나트를 슬쩍 놀렸다.
아마 어제 대전에서 당한 것도 있으니, 골려줄 목적이었으리라.
물론 아나트가 거기에 반응 안 할 리가 없다.
“.......테르미 너 한 번 더 땅에 머리 박아야 그 입 다물까?”
“원한다면 한 번 더 뜨던가. 어제도 칼투스가 정신 사납게만 안 했으면, 그렇게 빈틈을 내진 않았어.”
“괘, 괜히 미안하군.”
테르미와 아나트의 으르렁거림에 칼투스는 갈기를 긁적였다.
“좋아, 암사자년. 넌 1대1 공식전 가능해지면 그 광견년(앨리스) 털고 바로 다시 상대해주겠어.”
“원하는 바야, 악마. 광견한테 또 먼저 당하지나 말라고. 그때도 말싸움까지 밀렸으면서.”
“너 그냥 지금 당장 붙자.......!”
파벌 대전이 끝난 게 어제인데, 벌써 공식전 예약이라니.
역시 무가 핏줄. 참으로 호전적인 신입이다.
곧, 다른 한쪽에서 가구를 보고 있던 티아나와 드로와가 오도도 뛰어왔다.
“에우드, 에우드! 저쪽에 괜찮은 책상 있어!”
“에우드님도 한번 와서 봐보세요!”
둘 다 머리칼을 쫑쫑 튕기며 말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걸 찾은 것 같다.
“책상? 연금술 실험할 때 쓸 책상이야? 아니면 서재용 책상?”
“그건 이미 다 골랐고!”
“저, 저도 골랐어요. 에헤헤.......”
“카하하핫! 고른 건 이따가 정리해서 알려주면 고맙겠군, 티아나 알라이트 포에닉스, 드로와 에이르나!”
티아나 공방 아카데미 버전과 아지트 서재는 이미 계획이 거의 끝난 듯하다. 칼투스는 거침없는 두 소녀의 선택에 크게 웃었다.
“책상은 에우드의 리더 집무실 책상! 거기에도 멋진 책상 놓아야 하니까!”
“같이 놓을 책장들도 괜찮은 게 많아요.”
“와아악-”
에우드는 그대로, 티아나와 드로와에게 이끌려, 가구를 구경했다.
이후엔 셀레나와 프란시느 쪽에도 잡히고. 플로라와 검은 사자 여학생들에게 포획당하듯 끌려다녀야 했다.
그로부터 수 시간.
가구점의 5층까지 싹 돌아다니고,
나중엔 거리의 중소규모 가구점까지도 전부 들린 후에야, 가구 쇼핑은 끝이 났다.
구매한 각각의 가구들은 다음날 일제히 배송될 거라고.
에우드는 포에닉스 아지트의 약도를 새로이 그려, 각 구매처에 그것을 전했다.
아카데미 정문에서 아지트까지는 꽤 거리가 되니 말이다.
확실히 길을 알려주지 않으면, 도착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으리라.
참고로 칼투스의 저금은 40% 정도 털렸다고 한다.
그래도 플로라가 최대한 적정가의 상품들로 골랐기에, 엄청난 과소비는 일어나지 않았다.
가구를 사며 호쾌하게 웃는 칼투스에게, 에우드는 정말 감사를 표했다.
* * *
“연금술 공방!”(티아나)
“서재!”(드로와)
“거실이군요!”(플로라)
“대, 대련장!”(프란시느)
“간식 찬장......!”(셀레나)
“거기에 반응하기인가요......?”(아나트)
“저거 최고야......!”(셀레나)
그 외에도 기타 등등.
가구 쇼핑 다음 날, 포에닉스 아지트는 드디어 제 모습을 갖췄다.
Before, 가히 몬스터 등장 직전의 위험도 C급 던전.
After, 번듯하고 아기자기한, 10대 귀족다운 비주얼.
엘프의 나라 못지않게 고풍스러우면서, 그러면서 기능성을 충실히 챙긴 아지트였다.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정말 막막하게 생각했는데.
드디어 이렇게 완성되었다는 것에, 멤버 모두 하이파이브를 했다. 서로 다른 찰싹찰싹 소리가 귀엽게 울린다.
뭐, 완성이라 해도 약간 부족한 것들은 있었지만.
앞으로 아카데미 생활도 박차를 가할 테고. 그것들은 이제부터 차근차근 채워가면 될 것이다.
아나트는 조금 부끄러워하면서도, 플로라의 하이파이브를 받아갔다.
입꼬리가 살짝살짝 오르는 게, 아나트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리라.
“아나트님도 이것을 한 잔.”
“어머, 고마워요, 슈가.”
슈가가 건네주는 차를, 아나트는 우아하게 받았다.
슈가는 아지트에 가구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어느새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아니 아예 도착한 수준이 아니라- 가구점 직원들과 함께 가구를 옮기고 있었다.
“아까 슈가가 직원이랑 같이 책장을 옮기고 있어서 놀랐어요.”
“죄송합니다, 에우드 도련님. 도련님 아가씨들의 아지트가 완성된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정말로 도움이 됐어요.”
에우드의 말에, 슈가는 살짝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히야, 분위기 좋네요.......”
“어제 심혈을 기울인 쇼핑으로 완성시켰지요!”
“역시 플로라님. 케인즈의 눈은 상당하군요.”
“어머머, 제시카 선생님도 참.”
“교수님이랍니다~ 뭐, 둘 다 상관없지만요.”
제시카도, 거실 소파에 플로라와 다소곳이 앉아서 차를 홀짝인다.
제시카는 아까 슈가와 함께 왔었는데, 걸레질이라던가, 깨지기 쉬운 인테리어 옮기기라던가, 여러 잡일을 도와줬다.
‘일일 메이드’ 제시카는 아직 건재하다나.
듣기로는 일일 메이드복도 교수용 숙소에 보관하고 있다고.
“가끔씩 와서, 도련님 아가씨들이랑 이렇게 쉬면 좋겠어요.”
제시카는 에우드를 보며 소파에 몸을 폭 기댔다.
그래도, 아직 에우드의 걱정은 다 안 가신 것 같았다.
그렇기에 오늘 슈가와 이렇게 빨리 찾아온 거겠지.
에우드는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제시카에게 웃으며 답했다.
“언제든지 오셔도 괜찮아요, 제시카.”
“교수 입장에선 그럴 수 없지만요. ......네, 그래도 자주 와볼게요!”
제시카는 쓴웃음 지으며 답했다.
.......근데 제시카의 시선이, 뭔가 에우드의 뺨을 쪼물딱대고 싶어 하는 눈치다.
그래도 주변에 파벌 인원들이 가득하니, 제시카도 참고 있는 거겠지.
“그럼 난 오늘은 공방에서 지낼 거야! 밖에 있는 테구르꽃! 그걸 완전히 끝내버리겠어!”
티아나는 이미 연금술을 개시할 마음으로 가득하다.
당장이라도 테구르꽃을 제거하기 위한 독 포션을 만들겠다고.
어제 쇼핑을 하면서, 재료들도 상당히 많이 구입해왔다.
콧김을 퐁퐁 내는 게, 당장이라도 공방에 뛰쳐 들어가고 싶으리라.
물론 티아나뿐만이 아니다.
쉬는 날이기도 하고.
드디어 아지트를 완성하기도 했고.
다들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일들은 많을 테지.
그렇게 티아나를 시작으로, 각자 아지트 곳곳에 퍼져 여가를 즐기기로 했다.
셀레나와 프란시느는 방으로 가 연습용 복장으로 갈아입기 시작했고, 플로라는 한동안 제시카와 잡담을 나눌 예정인 듯하다.
에우드도, 서재 쪽에다가, 조사 중이던 여러 도서를 가져다 놨으니까. 한동안 파벌이니 아지트니 하다가 못한 자료 정리를 해보자 싶었다.
드로와 또한 오늘 하루 서재에 박힐 생각인 듯하니, 함께 향하기로 한다.
“저는 여러분들의 간식을 만들겠습니다.”
슈가는 오늘 하루 여유가 있으므로, 아지트에서 멤버들의 사용인 역을 해주겠다고.
또 슈가는 아나트와 대화할 것도 참 많으리라.
이렇게 슈가와 아나트가 마주하는 건, 에우드도 정말 바라 마지않는 일이었다.
‘와이즈도 도착해서 쉬고 있으려나.’
에우드는 드로와와 아지트 서재로 향하며, 자신의 주머니에 넣은 와이즈의 피리를 살짝 매만졌다.
이전 같은 속도를 감안한다면 또 내일쯤 돌아올 것 같다.
* * *
그 시각 포에닉스 저택.
집무실에서 이제 막 편지를 받은 가레스는 잠시 이마를 매만졌다.
편지를 가져온 와이즈는 일단 페리아에게 맡겨뒀다.
현재는 리퀴아의 레이지도 돌봐주고 있으니까. 와이즈도 충분히 잘 다뤄주리라.
한동안 페리아에게 돌봄을 받으면, 와이즈도 알아서 주인(에우드)에게로 향할 테지.
다만 저번 편지는 꽤 유쾌하면서 읽는 맛이 있었는데.
이번 건 우려하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기억의 교단과 에우드가 있었던 갈레아 고아원.
그리고 티아나의 마안이 반응했다는 것까지.
“아이고 머리야.......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에우드에게 접촉한다는 건, 분명 에우드의 계승절까지는 보류라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그놈들의 말을 믿는다는 것부터 틀려먹은 것일 수 있다만. 아니면 의외로 ‘그 내부가 통제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들이 움직였기 때문에’, 아카데미에 충분히 교단 관계자가 있다는 확신을 잡을 수 있었다.
가레스는 편지 내용을 모두 머릿속에 넣은 후, 그것을 알베르토에게 건넸다.
알베르토 또한, 사건과 더불어 삼남매가 무사하다는 말에 안도했다.
그런 두 남자를, 집무실 소파에서 한 남자가 보고 있었다.
“별로 재밌는 내용은 아니었나 보군. 가레스.”
“아무렴. 네 방문 못지않지.”
가레스는 다소 귀찮음을 감추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네가 올 때마다 별로 좋은 일이 안 일어나니까.”
“오랜 친구한테 그렇게 말하는 것도 참 너무하단 생각이 드는데.”
“오랜 친구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지.”
집무실 한쪽.
‘평소 입고 있을 복장’이 아닌, 평범한 상인처럼 차려입은 남자. 변장이라 해야겠지.
그러면서도 그 본연의 기품이나 기백은 쉽사리 줄지 않는다.
짊어진 것의 무게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짊어진 것. 바로 왕으로서의 무게였다.
집무실에 찾아온 건, ‘델베르크 오기스트 유그라시아’.
이 유그라시아의 현왕이자, 가레스, 소일의 오랜 친구였다.
“......아카데미에 교단으로 추정되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거, 너도 들었겠지?”
“그렇군. 그것에 대한 편지였나.”
델베르크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델베르크의 방문 목적 중 하나는, 에우드의 편지에 적힌 내용을 말하려던 것도 있었겠지.
“그래서 이번엔 뭔 일인데.”
오랜 친구라고 해도, 가레스는 델베르크를 그닥 반기지는 않았다.
사실 델베르크가 싫은 건 아니다.
‘좋다’ ‘싫다’로 말하자면, 분명 ‘좋다’일 것이다.
다만 그저, 이 델베르크는 왕이 된 후 직접 찾아올 때마다, ‘골치 아픈 사건’을 하나씩 손에 들고 오니까.
13년 전, 머더 메이지를 직접 제거해달라고 말한 것처럼.
그 외에도 요 13년간, 외부에 알릴 수 없는 여러 사건까지.
델베르크가 가져온 사건을 물자처럼 센다면, 마차 트레일러 하나는 전부 채우고도 남으리라.
덕분에 황금의 기사들 사이에선, ‘델베르크에게 먼저 연락이나 접촉이 올 땐 정말 골치 아프다’라는 게 정설이었다.
델베르크도 가레스의 생각을 알아챘는지. 키득키득 웃음을 내버렸다.
“근데 가레스 너, 자식들 다 아카데미에 보냈다고, 그렇게 까칠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너무 예민해졌잖아.”
“흥!”
가레스는 델베르크의 말에 고개를 획 돌렸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차마 반박은 못 했다.
가레스도 그렇고, 오늘은 귀족가들과의 미팅에 나간 로로나도 그렇고.
사랑스런 삼남매를 한동안 못 보고 있는 덕에, 둘은 최근 꽤나 힘이 빠져 있었다.
포에닉스 부부는, 하루빨리 아이들이 귀가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알베르토는 옆에서 웃음이 날뻔한 걸 콜록콜록으로 가려간다.
그리곤 수염을 한 번 매만진 후, 두 사람에게 내줄 차를 준비한다.
“-부탁이 하나 있어서 왔어.”
“부탁?”
델베르크는 알베르토에게 차를 받으면서 말했다.
“‘투구의 난쟁이’를, 잠깐만 빌려줬으면 해.”
“그게 에우드라는 건 알고서 말하는 거겠지, 델베르크.”
그 순간. 가레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엎어졌다. 델베르크에게 엄청난 살기를 뿜어낸 것이다.
무려 검신 알베르토까지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위협. 포에닉스 저택 전체에 퍼질 정도였다.
현재 저택 내부에 있는 사용인들 또한, 그 살기를 직감했으리라.
“물론. 드라베스가 헌터 승인을 내릴 때, 나도 그걸 확인했었으니까.”
“........”
델베르크는 그 살기에 압박을 느끼면서 말을 이어갔다.
“-또 우드 갈레아를 네 양아들로 들여올 때, 그 정보를 무사히 조작하도록 해준 것도 나니까. 모를 리가 있겠어?”
“.......하아. 망할 새꺄, 그 말을 굳이 꺼내냐.”
에우드에 관해선 이 델베르크에게 은혜가 확실했기 때문일까.
입양할 때 했던 모든 터무니 없는 정보조작은, 델베르크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했던 것.
결국 가레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살기를 거뒀다.
“에우드한테 불리한 이야기면 절대 안 들어줄 거야. 무엇보다 무슨 이야기가 됐든, 아들하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전해줄 거고.”
델베르크는 “알겠다, 알겠어.”라며 차를 호로록 마시며 답했다.
“그보다....... 진짜 아들 사랑이 엄청나네. 상상 이상이야.”
“얼마나 귀여운데. 얼마나 키우는 맛이 있는데. 넌 딸들밖에 없어서 모르는 거겠지.”
“얼씨구, 3년 전까진 가레스 너도 딸들밖에 없었으면서.”
“자식은 남매로 두는 걸 추천한다. 더 힘내라고, 현왕.”
“.......난 이제 의무방어전도 지치는 몸이야.”
“지랄을 하는구만. 그런 건 아내 사랑이 있으면 다 해결돼.”
“애처가에 팔불출에, 이 황금의 기사도 미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