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언젠가’가 언제인지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어느새 냄새는 에우드의 코끝에서 사라져간다.?140회
검은 안개140.
“언니, 언제까지 뚱하니 있을 거야.”
“셀, 셀레나님, 간식이에요.......!”
“(뚜우웅-)”
대전 직전 포에닉스의 대기실.
장녀 셀레나는 삐진 듯 불만스럽게 앉아있었다.
이번엔 휘두를 기회 없는 목검까지 옆에 두고 말이다.
프란시느가 준 간식을 와작와작 씹지만, 불만은 여전.
불만의 이유는 당연히도, 자신이 대전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겠지.
분명 이틀간의 검증으로, 셀레나는 아나트에게 ‘맡겨도 된다’고 판단 내리긴 했다.
하지만, ‘맡겨도 된다’와, ‘자신이 나가고 싶었다’는 별개의 이야기.
오랜만에 막내와 태그를 이룰 수 있었는데.
게다가 상대는 A~S급 헌터 레벨이라 여겨지는 아카데미의 인재들이다.
셀레나로선 정말 먹음직스러운 전투 상대.
그걸 결국 아나트에게 양보한 만큼 아쉬움이 큰 것이다.
그래도 투정 좀 부리는 거로 끝나는 걸 보면, 셀레나의 성격도 참 많이 성장했다 해야 할까.
예전 같으면 양보 없이 고집을 부려, 자신이 직접 나갔으리라.
“양쪽 다 제자리로 이동했어요, 곧 시작이에요!”
티아나와 프란시느가 셀레나를 달래는 사이, 드로와가 대기실에 놓여 있는 마법 구슬을 보며 말했다.
이 마법 구슬은 콜로세움에 분포된 요정, ‘픽시’들의 시야를 마력으로 전송해주는 물건- 이른바, ‘영상 마수정’이라 불리는 고위 매직 아이템이었다.
각 파벌 비 선발 인원들이 대기실에 있을 땐, 이 매직 아이템으로 밖을 볼 수 있게 한다.
크기는 성인 남성 머리의 두 배 정도였다.
대전에 선발되지 않은 파벌 인원들은, 규정상으론 관객석 혹은 대기실에 있어야 했다.
필드의 가까이에 갈 경우, 상대 파벌의 위치 정보라던가 몇몇 지원 마법이라던가. 여러 부정행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필드 자체에도 공식전이 개시되면, 대전자를 제외한 인원이 못 들어가도록 결계 마법을 펼치게 되어있다고.
“필드 결계 마법은 열차 선로의 ‘몬스터 물리기’와 비슷한 매커니즘이라고 하더라고요.”
플로라는 이전 열차 사업을 진행하면서, 그런 정보를 들었다고 한다.
덕분에 시합이 ‘공인된 룰에 의해’ 종료될 때까지 결계가 작동.
공인 참관인과 학생회장, 학장급 인사 말고는 진입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 그리고 피해를 줄이는 마법 또한, 그 결계 마법의 능력이라고 해요........!”
“이 마수정도 그렇고 필드도 그렇고, 아카데미는 기술이 엄청나네.......!”
프란시느가 이어서 설명해준 것에, 티아나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게다가 이 영상 마수정 또한, 아직 세계 곳곳에서 개발 중인 고위 매직 아이템이다.
그런 물건이 이렇게 대여될 수 있다니. 역시 아카데미답게, 기술 도입이 참 빨랐을까.
플로라는 마수정을 보면서 뭔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콜로세움 전체에 걸린 마법 덕에, 꽤 효율이 괜찮게 기동하는 거군요. 이거 좀 더 기술을 넓히면, 사업 회의할 때도 여러 가지로 불편함을 덜 수 있을 텐데요.”
“대체 몇 등급짜리 마석을 얼마나 정제했길래 이 정도 크기의 수정을 만들 수 있는 거지?”
“아까 살짝 물어보니 티아나 이 수정구, 아카데미는 대략 20개 정도 보유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야말로 아카데미!”
티아나와 플로라 둘 다, ‘매직 아이템 제작’ 과목을 골랐으니 말이다. 마수정에 대한 흥미가 상당했다.
물론 곧 수정 위로 막내와 신입의 모습이 나오면서부터는, 대화가 쏙 들어갔지만.
검은 사자 파벌에게도 똑같은 영상이 전송되는 덕인지, 칼투스와 테르미의 영상 또한 띄운다.
양측이 제자리에 도착했음을 확인시키는 영상.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확실했다.
곧, 피르티의 중계가 시작되었다.
[“승리 조건은 ‘상대측 두 선수 모두 쓰러트리거나’ 어떻게든 ‘파벌 리더’만 쓰러트리는 것! 그것이 태그전의 규칙입니다! 그럼 지금-”]
대애애애애애애앵-!!
[“파벌 대전, 2 VS 2 태그전, 시작하겠습니다!!”]
콜로세움의 종소리와 동시에, 피르티가 개전을 선언한다.
학기 두 번째 파벌 대전이자, 포에닉스의 첫 싸움이 개시된다.
그렇게 포에닉스 파벌 모두가, 영상 마수정에 집중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응? 응야앗!”
티아나는 갑작스레 따끔거리는 감각에 눈을 찌푸렸다.
“티아나?”
“어, 어라.......?”
티아나가 짧게 낸 비명에 셀레나를 비롯하여 모두 어리둥절.
곧, 티아나는 자신의 눈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깨닫는다.
“방금....... 마안이 마음대로 반응했어........?”
“.......티아나 마안이?”
“응...... 최근에 이런 일 없었는데 이상하네.......”
마안이 제멋대로 움직인 건 3년 전 에우드의 과거를 강제로 들춰본 것이 마지막.
그 이후로는 폭주하는 일 없이 잘 유지되던 마안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방금 제멋대로 짧게 기동했다.
마치, 마수정 저 너머 무언가에 반응한 것 같았을까.
어쩌면 이 순간.......
셀레나와 티아나는, 뭔지 모를 본능적 위기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 * *
에우드는 검을 준비함과 함께, 지팡이- 리퀴드 팽을 등 쪽 홀더에 재차 고정했다.
코의 감각을 되살리며, 필드의 냄새를 맡아간다.
......방금 느낀 냄새는 역시 느껴지지 않았다.
저번과는 규칙이 달라서일까, 필드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이전 메트리 VS 온트라스의 필드엔 ‘7 VS 7 난전’이 가능하도록 상당 범위의 공터가 존재했는데.(물론 결국 난전은 없었다만.)
이번엔 꽤나 나무와 기둥, 수풀 등의 장애물들이 많아졌다.
태그전은 인원이 적은 만큼, 공터의 범위를 줄인 거겠지.
시합 개시 후 이제 1분 정도 지났을 것이다.
관객석이나 중계석에서 보기엔, 아직 사태는 부동.
“........!!”
그러나 에우드는 방금 뭔가의 변화가 시작됐음을 깨달았다.
필드의 위의 공기가 바뀌기 시작했음을 파악한다.
장애물들이 어떻게 뒤흔들리고 있는지를 알아채 간다.
눈치챈 건 아나트 또한 마찬가지.
공식전 경험은 포에닉스 파벌에서 가장 많을 소녀니 말이다.
“......오고 있어, 에우드.”
“네.”
아나트는 검은 나이프를 수차례 회전시키며, 자신의 곱슬머리를 한 번 정리했다.
느껴진다. 움직인다.
나무가. 기둥이. 땅이. 수풀이.
장애물이라 할 수 있는 지형과 필드가.
우르르르르르르!!
쿠구구구구구구!!
맹수들의 질주에 진동을 자아내고 있다.
단 두 명의 맹수임에도, 그 기세와 기백은 그야말로 군세.
뿜어내는 아우라는, 확실히 그들이 베테랑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근처의 나무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린 순간-
“-검은 사자는 먹이를 놓치지 않는다.”
모습을 드러낸다.
“칼투스!? 칼투스다!!”
“테르미까지! 역시, 선공은 사자 녀석들이야!”
칼투스와 테르미가, 에우드와 아나트 측에 단숨에 치고 들어왔다.
“그리고 먹이는 당연히 네놈이다, 에우드-!”
“에우드!”
“-그쪽 신경 쓸 틈이 있나, 악마?”
콰아아아아아아앙-!!!
칼투스의 주먹이 에우드에게 급속도로 내리 찍혔다.
테르미의 쌍검이 아나트의 빈틈을 순식간에 노린다.
“흐읍-!!”
에우드가 재빨리 검을 휘둘러 그것을 막아냈지만 묵직하다.
사자 수인 특유의 근력. 그에 더해진 칼투스 본연의 힘.
그 두 개가 에우드의 몸에 급격히 전해진다.
방심하지 않는 것을 드러내듯, 녹색의 투기까지 두껍게 둘려 있다.
아니, 그러나 칼투스의 힘에만 신경 쓸 수는 없었다.
‘여기서 한쪽에만 신경 썼다간.......!’
순식간에, 칼투스와는 다른 방향에서-
‘-테르미 쪽에서 이쪽의 빈틈을 노려 온다!’
테르미가 아나트를 공격하던 그때.
테르미는 이미 에우드까지 타깃으로 보고 있던 것이다.
칼투스를 상대하면서 생긴 에우드 짧은 틈.
테르미는 그것을 단 1포인트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에우드에게 공격을 걸었다.
칼투스를 상대함과 동시, 에우드는 테르미의 검을 막아야 했다.
이것이, ‘무리 짓는 맹수’들과의 싸움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점.
이들에게 팀 업을 허락하는 순간, 전투 효율은 수 배로 늘어난다.
그렇다면 차라리 태그전이라는 게 다행이었을까.
만약 5 VS 5 이상의 시합이었을 경우, 그 복잡성은 수십 배로 늘어났을 테니까.
하지만- 그랬다, 이것은 태그전.
“네년이야말로, 거기 신경 쓸 틈 있냐, 암사자년이!”
“-!!”
칼투스 쪽 말고도, 에우드 쪽에도 매우 믿음직한 파트너가 존재한다.
채애애애애앵!!
에우드의 옆을 공격하던 테르미의 검을, 아나트가 단검을 휘둘러 막아낸다.
그리고 그 충격에 테르미의 왼손이 위로 튕겨 올라가는 순간-
퍼어어어억!
―――콰아아아아아앙!!
아나트의 발등 차기가 테르미의 복부에 작렬한다.
검은색의 투기를 다리에 단숨에 실어, 테르미의 몸을 수 미터 멀리 밀어낸다.
에우드 또한 멈추지 않는다.
칼투스의 주먹을 막던 검을 고속으로 재정비한다.
이어서 연격을 가하는 칼투스의 주먹을, 그 검으로 수차례 막아낸 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휙!
검을 잠시 놓는다.
“뭐라고?!”
“‘리퀴드 볼(Liquid Ball)’.”
그 즉시 홀더에서 뽑아 고속으로 바꿔 잡은 리퀴드 팽으로, 빠르게 형성.
그것을 칼투스의 틈에다가 쏘아낸다.
퍼버버버벙-!!
랑그는 단순. 형태도 단순. 리퀴드 볼은 결코 강한 마법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밀도는 출중하다.
에우드 본연의 마력량에 의해,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위력의 수압이 터져간다. 연발의 마법이 칼투스에게 적중한다.
리퀴드 볼의 수압에 급격히 밀려나 버린 칼투스는, 서둘러 땅을 짚어가며 수차례 몸을 회전시킨다.
낙법을 반복해, 재빨리 테르미의 근처로 착지한다.
에우드 또한 튕겨 나간 검을 회수한다.
개전 1분. 접전 약 10초.
칼투스와 테르미의 동시 급습.
그것을 정확히 반격해낸 에우드와 아나트.
일순 벌어진 충돌에, 관객석이 뒤숭숭해진다.
포에닉스를 시찰하기 위해 왔던 파벌들도, 방금 보인 전투에 눈을 크게 떴다.
“아나트 토르랑의 움직임은 역시 엄청나.......!”
“역시 공식전의 악마.......! 그 짧은 찰나에서, 에우드에게 갈 공격을 예측했다는 건가!?”
“잠, 잠깐, 근데 뭐야, 포에닉스 막내가 순식간에 지팡이를 꺼냈어?!”
“보이는 거로는 평범한 하급 물 마법일 텐데!”
“아니, 그런 건 문제가 아니야! 지금 저 반응속도는-!”
아무리 마법과 검술을 병행하는 이들은 여럿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방금 같은 급속도의 전투에서 그걸 전부 활용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스틱’이나 ‘지팡이’를 이용해야 하는 마법이라면 더욱.
하물며, 그걸 이 짧은 틈에 스타일을 가변시키는 이는 손에 꼽겠지.
명실상부, 천재의 영역임이 분명한 전투술이다.
“후우우.......! 그르르르.”
리퀴드 볼의 충격을 버텨낸 칼투스의 표정엔 고통은 없었다.
“역시 포에닉스. 그리고 몰락해도 토르랑이란 거냐. 유그라시아의 무가 귀족들.”
물론 그건 아프지 않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싸움의 계기가 무엇이든. 어떤 것이 걸려있든 간에.
천성적으로 사자 수인들은 전투를 즐거워한다.
그리고 검은 사자들이 느끼는 전투의 재미는, 상대가 강할수록 더욱더 상승하는 게 당연.
그런 재미와 강함의 스릴 사이에서 이기는 것이, 사자 수인의 본질이다.
가죽 장갑 손가락의 끝. 그 비어있는 틈으로, 칼투스의 발톱이 드러났다.
테르미 또한 다시 송곳니를 드러낸다.
바닥에 꽂아 밀려나는 것을 막아주던 쌍검을 재차 쥔다.
타격을 한 번씩 먹였다만, 그래도 아직 큰 피해는 주지 못했다.
“에우드. 말했던 대로 가자.”
“네, 물론. 지금 이렇게 살짝 붙었는데도 느껴지네요.”
에우드는 지팡이를 세 바퀴 정도 휘두른 뒤 자세를 바로잡았다.
“붙여놓으면 꽤 힘들겠어요.”
“그러니까 나눠야지.”
눈을 서로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
아나트는 곧바로 자신의 손 위로 다섯 자루의 단검을 펼쳤다.
그것에 투기를 담아, 화살과 같은 속도로 날려버린다.
퍼버버버버버벙-!!
한순간 몰려온 단검의 폭격이, 칼투스와 테르미의 사이로 꽂혀간다.
단검에 실린 강렬한 투기가, 필드의 바닥을 크게 일으켰다.
그 폭격을 피한 칼투스와 테르미가 양쪽으로 갈라진다.
“노림수는 그거냐! 하지만.......”
터져 오르는 필드의 잔해를 사이에 두고 두 수인이 시선을 마주친다.
칼투스는 몸 전체에 투기를 둘렀다. 근육이 더욱 팽창하고, 발톱은 더욱 날카로워져 간다.
일렁이는 검은 갈기는 그야말로 사자 그 자체의 모습일까.
콰아아아아아앙!
터져 오른 바닥은 무시한 채, 칼투스는 에우드에게로 몸을 날렸다.
거대한 폭발을 추진력 삼듯 날아온 주먹을, 에우드는 다시 한번 검을 이용해 맞받아쳤다.
“‘1대1’로 가는 건 나도 원하는 바다,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
“-!!!”
그리고 그사이, 테르미는, 새로이 자신에게 날아온 나이프를 양손의 검으로 전부 튕겨냈다.
휘리리리리릭-!! 채애애애앵! 채애애애앵!!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이 공식전의 악마는, 단순히 던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촤아아아아아악-!!
날아오는 단검을 상대하던 그때, 이미 아나트는 테르미의 뒤에서 칠흑의 단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것을 직감한 테르미가, 급격히 몸을 돌려 검으로 막아낸다.
채애애애애애앵!
채재재재쟁!
두 자루의 검과 한 자루의 단검이 난무를 교차한 즉시.
테르미와 아나트가 일시적으로 서로 거리를 벌린다.
“-솔직히 전혀 생각지 못했어. 칼투스의 변덕 때문이라 해도, 공식전의 악마 너하고 맞붙게 될 줄은.”
“그건....... 뭐, 나도 예상 못 하고 있었지만. 설마, 최선책 차선책 다 망가졌는데, 결국 파벌에 들어오고. 게다가 검은 사자랑 학기 초부터 싸울 줄 예상이나 했겠어.”
테르미는 사자 수인 여자아이인 만큼 갈기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특유의 풍성한 머리칼이, 투기와 함께 일렁이니 말이다.
그러니 알아챌 수밖에 없지. 이 소녀 또한 어느새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아나트는 ‘역시, 쿨한 척해도 얘 검은 사자 맞다니깐.’이라며 마음속으로 슬쩍 생각했다.
“양측으로 나뉘는 건가?!”
“칼투스와 에우드에 이어, 테르미와 아나트까지 1대1 구도다!”
“검은 사자 서브 리더와, 공식전의 악마가!!”
고속으로 변하는 양상에, 관객석의 학생들이 경악을 내지른다.
“그래도 뭐-”
아나트는 칠흑의 단검을 평소대로 역수로 취했다.
“기회를 잡은 만큼, 열심히 살려야지. 이제부턴 포에닉스의 성공이 내 성공이니까.”
“이쪽도 모처럼 온 싸울 기회- .......그르르르르!!”
아나트와 테르미가, 동시에 땅을 박차며 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