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도 안 되는 사용인들과 함께, 내가 뭣도 없이 토르랑 저택을 관리해온 게 아니란 거지.”?133회
정원탑133.
약도와 멀리 보이는 탑을 번갈아 보며.
에우드는 얼마 안 걸려서 그곳- 정원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원탑에서는 여러 학생이 오고 가고 있었다.
오늘은 에우드의 강의가 일찍 끝난 거니까.
원래는 이 시간에 다들 나오는 것이 맞겠지.
각자 큰 트렁크를 들고 다니는 것이, 아마 연금술 강의였을까.
연금술의 상급반은 이쪽에서 주로 강의를 받는다고.
또 스틱부터 시작해서, 스태프를 들고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다. 1주 차부터 마법 실습을 하는 2년 차 이상의 상급생들이리라.
“잠깐, 쟤 포에닉스 막내 아냐?”
“히, 히익! 마주쳤다간 기절 당해버려!”
“피, 피해서 다니자........”
에우드를 중심으로 묘하게 길 하나가 나버렸다.
‘위험하지 않아요. 물지 않아요. 기절시키지 않아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에우드도 굳이 말하러 가진 않는다.
한마디 하러 갔다간 더 일이 꼬일 거 같았다.
에우드는 괜히 포에닉스 저택이 그리워졌다.
약도에 적힌 장소는 이 탑의 최상층이다.
꽃과 마력초들이 가득한 정원을 지나자, 탑의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다른 학관들과는 달리, 내부엔 상쾌한 내음이 가득했다.
그래도 곳곳에, 강의실이라던가 실습실이라던가.
여러 가지가 보이는 것을 보니, 역시 학관의 역할도 잘 갖춰져 있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며 에우드가 놀랄 때였다.
“키잉! 에우드!?”
“-아. 며칠만이네요.”
자신을 부르는 묘한 울음소리의 소녀-
키루미나가 동그란 가방을 메곤 뒤에 서 있었다.
에우드가 반갑게 인사하자, 키루미나가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저번 주에 보고 서로 못 봤으니 말이다. 오늘도 활기찬 꼬리였다.
“키루미나도 정원탑에서 강의가 있었나요?”
“네, 넵! 약초학을 조금 배우는 중이라......! 혹...... 혹시 에우드도 여기서 강의를 들-”
“저는 잠깐 볼일이 있어서 왔어요. 아직은 여기에 강의가 없었네요.”
후에 검술 강의나 마법 강의의 실습이 시작되면 올 일은 있으리라. 다만 아직은 짧게 이론을 배우는 중이었다.
“.......키이이잉.”
키루미나가 귀를 추욱 내렸다.
저번에 돌려준 강아지 머리핀도 함께 추욱 내려간다.
왠지 에우드가 미안해졌다.
혹시 혼자서 강의를 듣는 걸까. 그렇다면 쓸쓸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키루미나 아가씨, 같이 가요!”
“갑자기 후다닥 달려가셔서 정말......!”
동행인들이 있었다.
두 늑대 수인 소녀가 키루미나에게 헥헥 뛰어왔다.
아가씨라고 하는 걸 보면, 같은 푸른 늑대 파벌일 테지.
게다가-
“왁, 한밤중의 습격자?!”
“부엉이 테이머?!”
에우드와 푸른 늑대 아지트 앞에서 접전을 벌인 수인들.
그중 두 명이었다.
““그리고 아가씨를 후린 남자!!””
“응?”
“그, 그만!”
키루미나가 두 늑대 소녀를 재빨리 말려간다.
그보다 어째선지 지금 별명이 너무 많아지지 않았는가.
‘후린 건 또 뭐지......’
에우드는 억울한 별명이 참 많다 싶었다.
키루미나는 얼굴 새빨개져서, 두 소녀의 입을 꼭 막고 있었다.
모습은 소녀인데 행동은 전사다.
“.......그런데 한밤중의 습격자랑 부엉이 테이머가 뭐야?”
키루미나의 말에, 이번엔 두 소녀가 알아서 입을 턱 막았다.
* *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미 그때 저질러버렸던 거군요.......!”
키루미나는 일전에 푸른 늑대 아지트 앞 사건을 들었다.
수인 다섯과 싸우고, 이미 사울드와 랜퍼스까지 만난 것에, 거듭 사과를 전한다.
“아뇨, 저도 수인족의 룰을 배려 못 했던 거니까요.”
“수인족의 룰은 인간족이 모를 수 있으니, 저희 쪽에서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게 맞아요.......! 아무리 그날 상황이 예민해도 그렇지......! 메루, 아루, 어서 다시 예를 갖춰 사과!”
““죄송합니다!””
두 늑대 소녀- ‘메루니’. ‘아루니’에겐 이전에 사과를 들었지만, 함께 다시 사과해간다.
밤에는 잘 못 알아챘지만. 자세히 보니 머리 스타일만 서로 다를 뿐, 쌍둥이 수인이었다.
메루니가 길게 뒤로 묶은 머리, 아루니가 짧게 양갈래로 묶은 머리였다.
둘 다, 키루미나의 말에 귀를 추욱 내려 고개 숙였다.
이런 점에선 키루미나가 사울드의 동생임이 잘 드러났을까.
둘 다 사과할 땐 확실하게 하는 성격이다.
다만 이들이 사과를 계속해도 조금 문제였던게........
“이런, 포에닉스가 이젠 수인족까지 손을........!”
“무려 푸른 늑대야? 그 키루미나까지?!”
“저 수인족 쌍둥이들, 불쌍해.......!”
“이거 사울드한테 말해야 하는 거 아냐.......?”
“저건 정말로 불지옥의 마술사급.......!”
또또, 또 나왔다, 불지옥의 마술사.
제시카 말론, 불지옥의 마술사는 분명 정의의 편이라 했는데.
‘제시카 교수님, 너무 감상 차이가 심한 거 아닌가요.......!’
결국 에우드가 허둥지둥 세 소녀의 사과를 멈추게 했다.
“그런데 에우드. 볼일이라니, 무슨 일인가요?”
키루미나도 겨우 진정해서 그것을 물었다.
다만 꼬리는 계속 붕붕.
메루니와 아루니는 그런 아가씨의 꼬리를 신기하다는 듯 봤다.
에우드는 항상 만날 때마다 저런 모습이었는데.
이 쌍둥이한텐 의외의 행동이었던 걸까.
곧, 에우드는 약도를 펼쳐 그것을 설명했다.
“그렇군요, 최상층에........”
“파벌 리더들은 꼭 들리게 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파벌 리더....... 네, 파벌 리더!?”
“누나들한테 미뤄져 버렸어요.”
키루미나도 어제 포에닉스 파벌이 완성됐다는 건 들었다고.
다만 에우드가 리더가 될 건 생각 못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상황을 들은 키루미나는-
“......그럼 더 들어가고 싶었는데. 키이이잉.”
더욱 아쉬움을 드러낸다.
그래도 키루미나는 이미 푸른 늑대 파벌이니까.
마음 같아선 가입해달라고 하고 싶어도, 이젠 불가능하다.
“사울드 선배가, 키루미나를 많이 챙기니까요.”
그 말에, 메루니와 아루니가 히끅 놀라버렸다.
혹시 거기에 관해선 말해선 안 됐던 걸까.
“오빠는 이제 됐어요! 털이나 전부 다 빠져서 근육근육만 남아라!”
“아가씨, 말이 너무 아파요!?”
“으아, 떠올려버렸어.......!”
키루미나의 뺨이 삐진 것처럼 퐁퐁 부풀어 있었다.
반대로 메루니 아루니의 표정이 히이익 변해버린다.
.......설마 사울드, 정말로 키루미나에게 털이 좀 뜯긴 건가.
메루니 아루니는 그야말로 ‘아픈 이야기’를 들을 때의 반응이었다.
확실히, 예전에 제시카의 말로는 수인들은 털을 뜯기는 걸 정말 못 버틴다고도 했었다.
오늘도 에우드는, 사울드에게 약간의 응원을 보내본다.
여자 형제라는 것은, 의외로 생각을 모를 때가 많으니 말이다.
그 트루스마저도 레니안느한테만큼은 항상 쩔쩔매고.
티아나와 셀레나에게 휘둘리는 에우드인 만큼, 사울드에게 조금 공감했다.
원래 키루미나 쪽은 이제 기숙사로 돌아가려 한 듯하다.
오늘 약초학 강의는 전부 끝났다고.
하지만 키루미나는 슬쩍 에우드 쪽에 가까이 왔다.
“키루미나?”
“저, 정원탑은 처음이시죠?! 그럼 잠깐 같이 가보는 것도.......!”
사실 위치도 약도에 다 적혀 있기에, 헷갈릴 일은 없는 거 같다만.
뒤에서 메루니 아루니가 눈을 반짝이며 이쪽을 보고 있다.
왠지 모를 무언의 압박과 기대가 전해진다.
에우드도 그 기세에 압도당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잠깐 같이 부탁드릴게요.”
“키이이잉.......!”
키루미나의 꼬리가 더욱 붕붕붕거린다.
그 모습에, 메루니와 아루니가, 엄지를 서로에게 몰래 척 올린다.
정원탑은 총 7층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각 층은 온실 정원도 있기에, 공간이 상당하다고.
때문에 포에닉스 저택하곤 층이 둘 밖에 차이가 안 남에도, 두 배 정도의 높이였던 거다.
처음엔 계단을 통해 올라가려 했지만, 키루미나가 재빨리 에우드를 불러세웠다.
“여긴 승강기가 있거든요!”
“승강기?”
승강기가 뭔가 해서 보니-
웬걸. 가만히 있어도 위로 올려다 주는 매직 아이템.
통칭, ‘엘리베이터’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다행히 줄을 기다리는 이들은 없었다.
키루미나가 먼저 다가가 버튼을 누르자, 지이잉 문이 열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위로 향하는 승강기. 처음 타 보는 승강기에, 에우드는 눈을 계속 반짝였다.
키루미나는 에우드가 놀라는 모습에, 기쁜 듯 반응한다.
“이거, 저희 저택 도입이 시급할 거 같아요.......!”
“네? 포에닉스 저택에 말인가요?”
“술 취한 사람도 위층에 잘 보낼 수 있을 거 같거든요.”
“......???”
에우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제시카 및 여러 인원의 배송이 용이할 거라 느꼈다.
사실 제시카는 물론, 저택에는 에우드에게 안겨서 배송되는 걸 즐기고 있는 이들이 많다.
엘리베이터가 저택에 도입됐다간, 수많은 아쉬움이 불어닥칠 테지.
그 이전에 비용대비 문제로 가레스가 허락을 안 할 테지만.
“실은, 최상층은 저희도 거의 온 적 없어요.”
“최상층은 정원밖에 없으니까요. 약초향도 너무 심하고!”(아루)
“강의 끝나면 호다닥 아지트로 가고 싶어요!(메루)”
최상층은 강의실이 있는 층은 아닌 모양이다.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장소인 만큼, 정원은 더욱 많았다.
게다가 약초향이 강한 것들이 많아, 수인들은 조금 익숙지 않다는 듯하다.
“그런데도 약초학을 들으시는 거군요.”
“싫다고 계속 피할 수는 없으니까요. 민감한 냄새에도 적응해서, 약초 기술을 더욱 키워야 해요. 수인족은 전체적으로, 약초나 연금술 지식이 부족하니까요.”
싫다고 피할 수 없다- 티아나도 비슷했다.
그리도 싫다고 했던 검술을 꾹 참고 배워, 지금은 상당한 기술을 익혔다. 익숙지 않은 것을 피하지 않고 배웠다.
그건 정말, 에우드로서도 존경해 마지않는 점이었다.
지금 키루미나에게도 그렇게 느꼈다.
“에우드, 에우드.”(아루)
“에우드군, 에우드군.”(메루)
쌍둥이지만, 의외로 에우드를 부르는 방식은 조금 차이가 있었다.
“저희 푸른 늑대 일족은 칭찬할 일이 있으면 머리를 쓰다듬어요!”(아루)
“에우드군, 슥슥슥 해주면 돼요!”(메루)
“그런가요?”
“히흑!?”
에우드는 꼭꼭 고개를 끄덕인 후, 키루미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건강한 머리카락이 폭신폭신했다.
“와아아아앙........!”
키루미나가 황홀하다는 듯 강아지 같은 울음을 냈다.
귀가 쫑긋쫑긋.
승강기 한편에 닿고 있는 꼬리는, 마치 맨들맨들 청소할 기세로 움직인다.
다만 얼마 있지 않아, 승강기가 최상층에 도달했다.
키루미나의 황홀경은 아쉽게도 멈추게 되었다.
“......왜 계단으로 간다는 걸 말렸을까, 내가.”
키루미나는 자신의 실수를 크게 실감했다.
마침 에우드의 누님들도 없고, 이 상황을 더 오래 즐기기 위해선 승강기의 존재를 알려선 안 됐는데.
“에이, 기회는 많은 걸요, 그치, 메루?”
“물론이지, 아루.”
자책하는 키루미나를, 메루니와 아루니가 뒤에서 조용히 응원한다.
최상층은 역시 강의실이 없어서일까.
그 길 전체가 정원. 중앙의 복도를 제외하곤, 모두 정원이었다.
그만큼 향긋한 냄새가 더 풍부해져 간다.
에우드에겐 꽤 좋은 냄새지만, 수인 아이들은 조금 코를 씰룩였다.
에우드는 호다닥 갈까 했지만, 의외로 키루미나의 걸음이 살짝 느렸다.
수인족들은 전체적으로 신체 능력이 좋을 텐데.
에우드는 역시 걸음걸이엔 다들 개인차가 있는 걸까 싶었다.
그렇다면, 일단 배려해서 걸음걸이를 맞춰야겠지.
느긋한 걸음으로 약도에 적힌 곳으로 쭈욱 향하자, 거기엔 아담한 유리문 하나가 있었다.
안쪽엔 또 정원이 있는 듯하다.
다만 그 문 옆으로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관계자 외에 출입 금지.]
“하긴.”
에우드가 관계자라고 보는 건 맞겠지. 하워드가 직접 가라고 했을 정도고.
다만 혼자 오라고 하기도 했으니까.
키루미나, 메루니, 아루니는 관계자가 아니다.
에우드는 함께 와줘서 고맙다고 세 수인 소녀들에게 말하려 했다.
“저, 저기 에우드........”
키루미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키루미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될까요.......?저, 저희랑 같이 돌아-”
키루미나가 말을 조금 흐리자, 단숨에 아루니와 메루니가 손을 번쩍한다.
“에우드, 기다릴 테니까 다녀와요!”
“에우드님, 이쪽 복도에 있을게요!”
“언제 끝날지는 모르는 데, 괜찮겠어요?”
“물론!!”
에우드가 살짝 되묻자, 키루미나가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뭐, 하워드 말론 잠깐 갔다 오면 된다고 했으니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그럼, 다녀올게요. 혹시 늦을 거 같으면 잠깐 나와서 말할게요.”
세 수인 소녀 모두, 붕붕 고개와 꼬리를 끄덕였다.
* * *
정원 내부로 들어서자, 향긋한 냄새와 함께 익숙한 향이 전해져 있었다.
1층에서부터 느껴지던 향에 더해-
‘마력의 잔향.......?’
마법을 담고 있는 특이한 냄새가 에우드의 코를 살짝 자극했다.
그리고 그 실내정원의 중앙-
“오호, 그래........ 포에닉스의 이번 리더는 자네였던 건가.”
그곳의 원형 테이블에 앉은, 훌륭하고 풍성한 수염을 가진 노년의 남성.
“베르네이 알페일이라네. 어서 오게나, 에우드.”
아카데미의 학장님이 있었다.
에우드는 왜 하워드가 ‘괴짜’라고 말했는지를 그제야 이해했다.